정치경제2020. 8. 5. 07:36

"자본주의 대칭어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인본주의다"

조선일보

오산=유석재 기자- 수정 2008.01.08 02:29

퇴임하는 마르크스 경제학 1세대 박영호 한신대 대학원장

정운영·김수행 교수와 80년대 '트로이카' 이뤄

"좌파적 방법론이 신자유주의 약점 보완할 수도"

"제가 보기에 '자본주의(資本主義)'의 대칭어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인본주의(人本主義)'입니다."


다음 달 정년 퇴임하는 박영호(朴榮浩)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대학원장)는 "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아니라 물질이 중심이 된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고, 그나마 그 병폐가 완화된 것은 민주주의와 결합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분명 20세기는 사회주의의 혁명이 실패로 끝났음을 입증한 시대였다"고 말했다. 폭력을 앞세우고 전체주의로 빠졌던 사회주의는 현실 역사에서 자본주의에 패했다. 


그러나 이제 '혁명을 포기한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경제학(마르크스 경제학)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잉여가치와 임금, 노동의 생산성을 연구하고 물질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규명해 자본주의 그 자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유일한 학문입니다."


박영호 교수는“나는 마르크스 연구자일 뿐이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고 말했다.‘ 주의자(主義者)’는 자신이 믿는 대상을 움직일 수 없게끔 신봉하는 사람이지만, 그러면 세상의 변화에 적응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불변 자본(생산수단)에 대한 가변 자본(노동력)의 비율을 줄여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높이려는 자본주의의 속성이 더욱 두드러지고, 필연적으로 구조조정과 대량 실업이 따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사회복지 정책과 안전수당, 실업수당 같은 좌파적 방법론이야말로 사회 통합을 도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의 '퇴진'은 1980년대 이후 한국 좌파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던 마르크스 경제학의 제1세대가 모두 강단에서 물러난다는 것을 뜻한다. 


그와 함께 '마르크스 경제학의 트로이카'로 불렸던 정운영(鄭雲暎) 전 경기대 교수는 3년 전 작고했고, 김수행(金秀行) 서울대 교수도 이번에 교단을 떠난다.



1960년대, 고려대 경제학과 학생이던 청년 박영호는 당시 종암동에서 등교하던 서울대 상대생 김수행과 의기투합했다.

 한국의 처참한 상황을 해석하기 위해 몰래 금서를 구해 읽었고, 밤을 새워 종속이론과 제국주의론에 대해 토론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이론이라 생각하고 유학을 결심했지요." 비행기 표값을 벌기 위해 일부러 은행을 다녔다. 

독일 괴테대에서 '자본론'을 원 없이 읽었고, 국내 은행의 영국 지점에 파견 나온 김수행을 설득해 런던대에 주저앉혔다. 벨기에 루뱅대에서 공부하던 정운영도 알게 됐다.



1980년대 초 세 사람은 한신대 교수로 임용됐다. 영(김수행)·불(정운영)·독(박영호) 계열의 마르크스 경제학자 세 명이 모인 한신대는 이 분야의 아성(牙城)이 됐지만,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 많은 학생과 연구자들이 마르크스 경제학을 버렸다. 


하지만 박 교수는 계속 이 학문에 매진했다. "80년대의 마르크스 경제학 붐이 시대적 유행 때문이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유행으로 공부했던 사람들은 애당초 학문이 아니라 정치를 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겁니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 미국 경제학자 슘페터를 연구했고, 지난해엔 '칼 맑스의 정치경제학'을 출간했다. 그는 앞으로 분당에 자본주의연구소를 열 계획이다.



다른 대학에 마르크스 경제학의 학맥이 끊길 우려가 큰 지금, 그가 떠난 뒤에도 한신대에는 그 분야를 전공하는 7명의 교수들이 건재하다. 


한신대가 계속 국내 마르크스 경제학의 유일한 '센터'로 남아 있게 되는 셈이다.



 지난 4일 경기도 오산 한신대학교 빈 강의실에서 퇴임을 한달여 앞둔 대표적 마르크스 경제학자 박영호 교수가 본지와 인터뷰를 했다.


 박 교수는 "이 세상에 영원한 보수.영원한 진보는 없다"며 "보수는 진보에게 많은 걸 배울 수 있고, 진보 또한 보수에게 많은 걸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오종찬 객원기자 ojc1979@chosun.com




서문
1. 정치경제학과 노동가치론
2. 자본론 성립과정-노동계급의 정치경제학
3. 맑스 정치경제학 방법론-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
4. 맑스의 고전학파 정치경제학 비판
5. 맑스 정치경제학이론- 가치법칙과 잉여가치론
6. 맑스 가치변형문제에 대한 논쟁
7. 고타강령과 반듀링론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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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2015. 8. 4. 11:19

돌아가서 만나야할 사람이 있는데 이제 만나지 못한다. 서울에서 이메일을 받고도, 뉴스에도 보도되고 있는데도, 그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이 힘들다. 미국 유타 모압, 여기서 3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어쩌면 김수행 선생님만큼이나 그간 고생하시고, 또 미완의 제자들을 거둬주신 사모님의 충격과 상심은 얼마나 클지 헤아릴 수가 없다. 고등학교 국민윤리 교과서에서 나오는 마르크스는 서슬 시퍼런 인정없는 혁명가였다. 나도 우리도 그렇게 배우고 외우고 시험도 봤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마르크스를 가르치는 김수행 선생님은 어떤 측면에서는 김제동보다 더 시민들에게 학생들에게 친근한 동네 아저씨같은 분이다. 베트남의 ‘호’ 아저씨, 호치민이 있다면, 김수행 선생님은 학교와 거리의 ‘마경(마르크스 경제학)’ 아저씨이다.


보통 선생 그러면 학생 입장에서는 늘 ‘좋은 면’만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김수행 선생님은 흔치 않게, 좋은 이야기도 나쁜 궂긴 이야기도 콩나물 국밥을 같이 먹으면서 나눌 수 있는 분이다. 제자치고 어디 못난 면을 선생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선생님의 이론은 '깊은‘ 단순함과 명료성이고, 일상은 온갖 궂은 일들 도우미이다. 그야말로 일하는 사람들 삶의 에너지 그 자체이다. 만약 한국 시민들이 피부로 우러나오는 김수행 선생님의 친근함을 알게 된다면, 마르크스에 대한 편견이나, 반공이데올로기는 사라질 것이다.


“자기가 정말 마음 속으로 느껴서, 좋아서 해야한다꼬~오”


유럽,아시아,라틴 아메리카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55년 동안 벌어진 일들이, 한국에서는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단 4년 만에 응축적으로 발생했다. 1989년 김수행 선생님은 ‘마르크스 경제학’을 직접 강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89년 중국 천안문 사건,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91년 소련 해체가 연달아 일어났고, 그 배후로 ‘마르크스’가 지목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를 영국에서 보낸 김수행 선생님에게 소련이나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란 어느 정도 이미 예측된 것이었고,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충격은 아니었을 것이다.


언젠가 강의하시다 말고 이런 말을 하셨다. “소련이 망했다꼬 운동을 그만두거나 전향했다꼬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이야, 그건 변명이라꼬, ~ 자본주의는 그렇게 쉽게 망하는 게 아니야, ” 그리고 나서 학생들을 쭈욱 둘러보시더니 “운동은, 자기가 정말 마음 속으로 느껴서어~, 좋아서 해야한다꼬, 그래야 오래할 수 있다꼬, 잘들 한번 생각해보라꼬”


잘은 아니지만, 선생 말씀대로 ‘생각’해보고 있는 사이, 그 검던 머리도 백발이 되었고, 이제 대구 억양의 영어도 노래도 들을 수 없게 되다니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죄송할 따름이다. ‘선생님의 그 부지런함 절반만 따라했어도 지금보다 나았을텐데’ 이런 자책이 든다. 김수행 우산 속에서 몰아치는 폭풍우 비를 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이제 태풍에 그냥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그에 맞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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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검정색이었을 때는, 그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선생과 학생 사이에 벽이 높았을까? 그냥 막 찾아가서 물어봐도 되었을 것을. 당시 우리들의 한계였다. 지적 정치적 행동의 한계. 좁은 시야. 몇 년이 지나서야, 97년 IMF 외환위기를 맞고, 시민내전을 치르고, 사람들이 '자본'의 채찍에 살점이 떨어져 나갔을 때, 다시 나는 선생님을 찾아갔다. 이 순간 애도하지도 못하는 이 불량제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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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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