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014. 9. 13. 00:17

힘껏, 전속력으로 달리다 (2) - Y를 업고 논둑길을 달리다. 내가 중 1, 초 6 정도 되었나? Y와 Z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비가 온 후였다. 고향 집에는 빨간 색으로 된 큰 물 양동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목욕용 대야)가 있었다. 어린 시절에 얘들 2명씩 넣어서 목욕시키던 대야다. 뜨거운 물이 들어오면 파닥파닥 놀라서 대야 바깥으로 나오기도 했던. 그 빨간 대야는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받이로도 쓰였다. 빨간 기왓집 빨간 대야. 그것들은 고향 집을 상징하는 추억거리이다.


식당 방에서 혼자 시험지 정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Y가 울면서 들어왔다. 반바지에 셔츠 차림에 Y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같이 놀던 막내 Z도 얼굴이 허옇게 질려서 빨간 대야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Y형이 다쳤다고 말해줬다. 피가 정말 철철 흐르고 있었다. 정신이 확 나가 버렸다. 무엇인가로 동생 팔을 묶고, 업었다. 뒷집 찬희네 탱자가시 언덕을 넘어 읍내에 있는 병원으로 뛰었다. 수퍼마켓 옆에 의원이 하나 생겨서 그곳으로 Y를 업고 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다니던 논둑길 위로 Y를 업고 뛰어간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5월이면 아침 이슬에 운동화가 다 젖어버렸던 그 길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형과, 나중에는 동생들 Y와 Z와 등교 하교하던 그 논둑길.


Y는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여름날 비온 후라 논둑길이 미끄러웠다. 읍내와 우리 집 사이는 온통 논이었고, 그 중간에는 전봇대들이 몇 개 있었다. 정신없이 뛰었다. Y 허벅지에는 내 땀으로 미끌미끌거렸다. 당시만 해도 Y는 지금과 달리 포동포동했다. 집과 의원이 있는 중간에서 한번 쉬었다. 숨이 벅차서, 그리고 어깨와 팔이 빠져버릴 것 같았다. 등에 업혀 있는 동생도 미끄러져 나가 논으로 빠져버릴 것 같았다.


“야, 한번만 쉬었다 가자”

“응”


이제는 울 힘도 없는지 조용히 식은 땀만 흘리고 있는 동생을 잠깐 등에서 내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숨을 몰아쉬고 나서 다시 업었다. 중간에 있는 전봇대를 넘어서 집과 의원의 중간지점을 통과했다. 그 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병원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바로 의사가 동생 다친 팔을 꿰매주었다. 나는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병원 복도에 있는 긴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한참 대기실에서 기다리니 동생이 걸어나왔다. 병원비를 냈는지 안냈는지 기억도 없다.


“괜찮냐?”

낮은 목소리로 동생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픈데, 의사가 계속 말을 시키더라고”

“그래 거 이상한 의사다야 ”


병원을 나온 후에, Y는 걸을 수 있었고, 그 논둑 길을 한참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다쳤을까? 빨간 대야 물통 속에 유리병 조각이 있었다는 것이다. Y와 Z는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놓은 빨간 대야에서, 물을 돌리면서 자기들끼리는 배를 띄워놓고 놀았는지, 그 물 통 속을 돌리면서 놀다가, 병 조각에 찔린 것이다. 지금도 어떻게 그렇게 크게 깊게 찔렸는지 잘 모르겠다. 누가 환타 병이나 사이다 병을 깨뜨렸나? 왜 대야 속에 병조각이 들어가 있었던 것일까?


Y와 이 대형 참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의과대학생이었던 Y는 당시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회고했다.

“그 의사가 나에게 말을 시킨 게 잘한 것이다. 환자가 긴장하고 있으니까 긴장을 풀게 하기 위해서, 아픔을 조금이라도 잊게 하기 위해서 말을 시킨 거라고”


아침이슬로 늘 등굣길에 운동화가 젖을까 맨 앞에 가지 않으려고 서로 중간 꽁무니로 가려고 했던 시절, 길이 좁아서 늘 일렬로 행렬을 지어서 다니던 그 길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전속력으로 논둑길을 달렸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렇게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지도, 숨이 벅차 중간에 쉬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생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된다. 그 긴박했던 30분 시간들. 병원 (의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논둑 길. 헉헉거리고 숨이 멎어버릴 것 같은 그 시간, 그 불안감은 잦아들고,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다 받아주었던 그 논둑 길.





“시체 한번 볼랑가?”

연건동 병원를 가로질러 가다가, 그것도 해가 지고 으슥한 밤에 Y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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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2014.09.13 00: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수필2014. 9. 11. 15:49

힘껏 달리기 (1) 살아오면서 등에 땀이 나도록 달린 적을 되돌아보다. 오늘 구월의 따뜻한 비가 내리다. 초가을에 여름 소나기 비처럼 따뜻한 비다. 건즈-앤-로우지스의 '십일월의 비'처럼 싸늘하지 않고 맞아도 감기에 걸리지 않을 것 같은 따스한 물결이다. 이 젖은 비는 과거로 잠시 이끈다. 그 날은 참 열심히도 뛰었다. 채림과 내가 지하철 일호선을 타고 종로 근처에 노니러 갔다. 늦은 점심을 먹을 겸 둘이서 분식점에 들어갔다. 우동이나 짬뽕 같은 탕류 면을 두 그릇을 시켜놓고, 외할머니께서 싸주신 도시락 밥을 둘이서 나눠먹곤 했다. 열여덟 열아홉 데이트 밥상이었다. '림'은 밥을 먹고 난 후에 늘 하던 버릇이 있었다. 식사를 다 한 후에 물 한 모금으로 두 볼이 약간 부풀어오르게 그러나 소리가 안 나게 그렇게 마신 다음에, 한 손으로 앞니를 가리고 이를 자동차 유리 닦듯이 청소를 하곤 했다. 난 '림'이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물은 적은 없었다.


둘이 그렇게 밥과 면국물을 다 말아먹은 후, 지갑을 펼쳤다. 순간 오싹해졌다. 지갑에 천원짜리 지폐가 하나도 없었다. '림'에게 황급히 말했다. "림아, 돈을 집에 두고 왔어. 너 혹시 가져왔냐?" 그런데 이를 어쩌랴. 그날 따라 림도 지하철 월권 패스만 들고 왔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분식점 주인을 생각하니 땀이 등 뒤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삐삐도 없던 그 때에 옴싹달싹 못하고 주저앉게 생겼다.


'이를 어쩌나?' 몇 십초가 흘렀다. 생각나는 사람이 떠올랐다. 지하철 3호선 옥수 역에 막내삼촌이 근무하고 계셨다. 여기가 종로니까 잘만 하면 1시간 이내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리였다. "림아, 여기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래?" 말이 떨어지자 마자, 가방만 림에게 맡기고 뛰기 시작했다. 지하철 오르막 계단들은 평지가 되고 내리막 계단들은 미끄럼틀이 되었다. 등에서 땀이 흘렀다. 종로에서 3호선 옥수역으로 가는 길이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던지. '삼촌이 있어야 할텐데...'


3호선 옥수역 그 강변 바람은 땀으로 범벅된 등에게는 은인이었다. 옥수역 매표소를 찾아갔다. 어린시절 방패연을 신호대로 만들어주시던 막내 삼촌이었다. 그가 그 표파는 투명 유리 안에 있었다. "삼촌, 나 3천원만 주세요. 친구랑 식당에 왔다가 점심 먹었는데, 집에서 돈을 가져오지 않았네이~" 삼촌이 웃으면서 "삼천 원이면 되냐?"그러면서 사천 원을 주셨다. 인사만 하고 다시 부리나케 뛰었다. 혼자 그 분식점을 지키고 있을 '림'에게 일초라도 빨리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종로로 다시 돌아왔다. 둘이 먹던 그 분식점으로 들어갔다. '림'의 표정이 가장 관건이었다. 태연자약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이다. 삼촌에게서 사천 원을 받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림'이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고 분식점에서 내 가방을 지키며 평온하게 앉아 있어서 그랬을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몇 조각 남은 냅킨 휴지로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한 숨을 몰아쉬었다. "삼촌이 계셔?" '림'이 물었다. "림아, 가자 이제. 오래 기다렸지?" '응 삼촌이 사천 원을 주셨어'라는 말보다 이 말이 먼저 나왔다.


우리가 쓰는 밥값, 아이스크림 값, 차 값 비용이란 몇 천원 이내였다. 내가 늘 다 내는 것도 아니고, 둘이서 용돈 아껴서 나눠 내곤 했다. 내가 다시 그 분식점으로 되돌아 올 때까지, 그 사십분 시간들, '림'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때는 내가 그걸 묻지 않았다. 분식점으로 되돌아 왔을 때, 림의 뒷모습이 먼저 보였다. 내가 삼촌을 찾아 옥수역으로 떠났을 때 모습이랑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어 보였다. 사십분 기다림. 그리고 되돌아 왔을 때, 반갑게 맞아 주던 게 고맙게 느껴졌다.


살면서 또 그렇게 절실하게 일심으로 매진하면서 달릴 날이 또 올까?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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