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비교/노동2020. 7. 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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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경비원에 비친 3가지 종류의 주민들 - “임계장” 독서 노트 2020년 6월 19일


책 “임계장 이야기” 저자 조정진은 1956년생인 노회찬 연배이다. 오랜만에 우리말로 된 책을 읽었다. 품앗이 대가로 L 선생이 e-book 으로 사주셨다. 처음 읽는 온라인책이기도 하다. 4월 총선 전후 몇 개월 무슨 전투를 치른 것 같다.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새삼 다시 알게 되었다.


“임계장”은 일터에서 생긴 일을 적은 노동수기이다. 진보정당은 1년에 1만개가 넘는 직업 숫자, 일터에서 “임계장”과 같은 노동수기 경연대회를 적어도 4차례 해야 한다. 민주노총, 정의당 위기도 “임계장”과 같은 생생한 이야기들을 정치노선과 정책으로 발전시키지 못해서 발생한 것이다. 정맥과 동맥만 커진 정의당과 민주노총, 반면에 “임계장”같은 모세혈관은 희미해졌다.


“임계장” 주인공, 조정진은 38년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아파트 경비원이 되었다. “임계장”에서 인상적인 대목만 두서없이 적는다. 그가 바라본 아파트 주민들과 분류표이다. 그 시선에 담긴 아파트 주민들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좋은 사람 소수, 대부분 주민들은 무관심, 나쁜 사람은 극소수”이다. 김갑두라는 주민이 갑질을 하는 대목에서, 저자는 주민들을 이렇게 세가지로 나누었는데, 문제는 ‘극소수 갑질 나쁜 주민’이지만,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대다수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크게 신경쓰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잔존했던 한국의 ‘집성촌 (같은 성씨끼리 모여사는 주거 집단 마을)’은 40년간의 급속한 도시화로, 철저히 계급화된 ‘아파트 촌’으로 바뀌었다. 집성촌에도 다른 성씨끼리 ‘너네는 상놈이고, 우리는 양반이다’라는 경쟁이 있었지만, 도시화 이후 아파트 촌은 평수와 돈크기로 ‘계층 서열화’되었다.


‘상놈 양반 구별했던 자존심 대결’은 ‘화폐 크기’로 이미 싱겁게 종료되었다. 같은 성씨는 이제 필요없고, 익명이라도 ‘화폐크기 보유량’이 비슷한 유유상종의 아파트가 한국인의 삶의 형태로 자리잡았다.


집성촌 마을 어귀 ‘장승’ 대신에, 아파트에는 “임계장 (임시 계약식 노인장)” 경비원들이 들어섰다. 미국과 캐나다에는 “임계장” 조정진과 같은 경비원, 제니터 Janitor 노동조합이 있다. 한국 “임계장” 저자 조정진은 노동조합원이 아니기 때문에, 윗사람 구두로도, 전화 한통으로 잘린다. “임계장” 저자도 그 네번째 직장, 터미널 보안요원으로 일하다가 과로로 쓰러졌는데도, “아프면 잘린다”는 나쁜 관행에 따라 전화 한통으로 해고당하고 만다.


두번째 인상적인 장면은, 105페이지에 나오는 조정진 저자가 부상을 당하는 순간이다. 겨울에 빌딩 경비원으로 일할 때,빌딩 공간들이 아주 미끄럽다는 것이다. 혼자 보호 장비없이 빌딩 구석구석을 점검하다가 미끄러져서 빌딩 조형물과 충돌하고 말았다는 장면은 너무나 처참했다. 이마가 깨져버렸다.


높은 빌딩이나 고층 아파트 자체는 공학 물리학 법칙들이 작동하는 고도의 거대 체계인만큼 위험과 사고 발생 가능성도 크다. ‘산업재해’ 요소들이 곳곳에 깔려있는데도 경비원들은 무방비 상태로 이러한 위험들에 노출되어 있다.


“임계장” 저자 조정진은 악발이다. 아파트 경비와 빌딩 경비 두 군데 동시에 일했다. 아파트에는 샤워시설이 있는데, 관리자만 쓰고, 빌딩에는 샤워시설이 있어서 그게 장점이라고 말한다. 아파트 경비원이 해야할 작업은 100가지 넘는데, 쓰레기와 악취와의 전투가 그 중 하나다. 손을 하루에도 30~50번 씻어야 하는데, 정작 아파트에서는 자유롭게 샤워를 할 수 없다. 점심 먹을 공간도 석면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이었다. 빌딩에는 아예 점심 먹을 공간도 없다.


빌딩 경비 업무 환경은 살인적이었다. 지하 2층에서 지하 6층까지는 지하 주차장 건물이라서 공기가 오염되어 있고, 미세먼지는 지상보다 3배이다. 70세 경비원이 이런 빌딩 경비를 돌다 쓰러지기도 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일할 때, 자동차 배기가스 오염이 심하니까, ‘마스크’를 지급해 달라고 회사에 요구하니, 돌아오는 답변이 “얼마나 오래살려고”라는 비아냥이었다. 정규직을 고용하면 비정규직 계약직보다 3배 임금이 드니, “임계장”같은 값싼 인력을 고용하는데, 그들의 건강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노동통제 뿐만 아니라, 임금 착취도 일어나고 있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니, 무급 휴식 시간을 늘려서 임금 인상 효과를 없애버렸다. 2017년 최저임금이 6030원에서 6450원으로 440원 인상되자, 아파트 고용주가 무급 휴식 시간을 늘려버려, 결국 440원 인상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임계장”을 고용하는 회사는 주로 용역회사인데, 1년 일하면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서, 한 아파트에서 11개월 정도 일하면, 1년을 채우지 못하게 해서, 다른 아파트로 파견 보내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부당한 임금 착취에 맞서서 광주에서는 ‘비정규직 센터, 경비원 일자리 협의회’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임계장”의 저자 조정진은 자기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조직과 상사에 충성하고 복종하는 버릇(146쪽)’을 가진 사람이다. 베이비 부머 세대에다 공무원 생활을 38년 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묘사가 이해가 된다.


“임계장”에서 네 가지 직장생활 수기가 나오는데, 조정진은 독자인 내가 피부로 느낄만큼 성실하게 일했다. 동명고속 수하물 탁송노동을 하면서, 운전기사에게는 6천원 식권이, 조정진에게는 4천원짜리 식권이 배정되는 이 쪼잔하지만 존엄성을 짓밟는 ‘차별’을 겪는다.


아파트 경비 업무 중에 주차 관리가 중요한데, 아파트 본부장 사모님 차를 향해 호루라기를 불었다고 해서, 사모님이 관리소장에게 ‘저 호루라기 분 경비원 잘라라’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조정진은 서류와 보고서에 익숙한 공무원 출신이어서, 아파트, 빌딩,버스 수하물, 터미널 보안요원을 하면서 ‘노동 일지’를 꼼꼼히 작성했다. 그런데 그의 직장 동료들은 자기 가족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말고, 보여주지 말라고 조정진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가족들이 알면 자기들이 부끄럽다고 했다. 세상에 부끄러운 노동도 있는가?


민주(民主), 민주주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다. 민이 주인이다. 아파트 경비원, 버스 터미널 수하물 배송원, 보안요원, 빌딩 경비원의 노동이 없다면, 우리 사회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1987년 민주주의를 예찬하는 영화도 나왔고, 당시에는 감옥에 갇히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민주화 주역들이 민주당 국회의원도 되었다. 이런 시절에, 자기 노동을 ‘자기 가족들에게는 알리지 말아야 하는’ 그런 부끄러운 시대가 공존하다니, 민주(民主)라는 말 자체가 모순적이다.


“임계장”은 일터에서 생긴 일들을 자세히 묘사했다. 이것이 진보정당의 기초 정책이어야 한다. 지난 20년간 이런 일터 수기가 1년에 100권씩 수상작으로 뽑혔다면, 2000권을 읽어야 했을 것이다. 200권을 뽑았다면 4000권을 읽어야 했을 것이다.


500권을 뽑았다면, 1만권을 공부해야 했을 것이다. 1000 군데 일터에서 노동수기를 발굴했다면, 2만권이 진보정당의 정책 기초자료가 되었을 것이다. 일터가 아니더라도 삶의 터전에서 2000권을 1년을 만들어냈다면, 4만권이 정책 자료가 되었을 것이다. 매일 '혁신'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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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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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20152020. 3. 1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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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kjung Kim

July 20, 2015 · 

민주노총에서 오래 일하신 염경석님이 "기본소득이 계급타파 운동과 연계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표명한 글을 보고 든, 3가지 메모


원시 Kyung Seog Yeom님 몇 가지 떠오르는 생각적어도 되겠죠?


(1) 기본소득은 "임노동" 관계를 초월했다는 점에서, "계급적 성격"을 어떤 측면에서는 논하기 힘듭니다. 이런 측면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흥미롭죠? 그래서 실제로 캐나다 우파 보수당에서도 '기본소득'과 비슷한 '현금 지급'을 주장하기도 하고, 현재 다른 나라들에서 시행되는 시민권자면 무조건,즉 자산소득조사 (means-test)없이 월 40만원씩 시급하기도 하고, 또 명절 때 그 정도 돈을 주기도 합니다.


(2) 하지만, 기본소득 지지자들 중에 '사회주의적 이행' 전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건 이미 마르크스가 "고타 강령 비판"에서 가장 발전된 단계, 공산주의에서 분배는, '노동시간'이 기준이 되지 않고, "필요 needs"가 그 척도가 된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앙드레 고르 등 68운동 이후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포스트 포디즘 체제 하에서, 임금-노동자, 임노동-자본의 관계 틀로 더이상 설명이 되지 않는 탈-포드주의 사회를 염두해 두고 정치기획을 구상했습니다. 

 (* Fordism 은 서구 유럽 사회복지 국가 체제의 경제적 토대였습니다. 사회복지가 가능한 물적 토대는 바로 대량 생산 대량 소비였고, 국가 행정 서비스 체제 확보해서, 자본가와 노동자가 계급 투쟁 폭발로 가지 않고, 타협점을 찾게 했지 않습니까? 실업보험, 대학교육 무상, 육아 보조금, 보편적 연금제도 도입, 의료 공공화 등이 그 대표적인 예들이니까요)


그런데 1971년~1973년 오일쇼크와 브레튼우드 협정 체제 해체 이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도입과 맞물려, 포디즘은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앙드레 고르 Andre Gorz 같은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포스트-포디즘'의 생산양식의 특징, 노동자-자본가간의 권력 관계의 변천, 노동자 의식의 변화 등을 일본, 유럽, 미국 등 공장과 회사,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을 분석해 냅니다.


한국 기본소득 주창자들이 아직 미진하거나 제대로 연구를 못한 부분이 바로 한국 자본주의 변천사, 발전사와 기본소득을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기본소득'과 그 계급 차별 타파 운동과의 연계성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3)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진보정당 (녹색당, 노동당, 정의당이건) 이론이나 실천을 굉장히 폭 넓은, 유연한 리그 정당을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해당 지역 (군, 시, 구청, 전국 등)에 사는 주민들이 직접 그 혜택을 피부로 경험해야, 그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의미를 알 수 있는데, 말로만 '선전문구'처럼,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2002년 민주노동당' 슬로건에 해당하는 기본소득만 세미나 열고 계몽주의적 확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이를 가능케하기 위해서는, 직접 행정업무를 통해서, 성남 이재명 시장처럼, 기본소득 개념을 실천할 의지를 가지고 집행을 할 필요가있고, 그에 대한 '정책적 평가'를 객관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그냥 좋은 이야기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현재 한국 공장, 회사, 화이트 칼라 블루 칼라, 가정주부 등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프로그램을 우리가 만들지 못하면, 일자리 나누기, 청년실업 문제, 기본소득 등도 실천하기 힘들 것입니다.



(앙드레 고르, 책 제목이 노동을 다시 되찾아오다, 임금-기반 사회를 넘어서)

[기본소득과 정당 관계]


전 정당에서는 1개 주제로 올인하면 안된다는 입장이고, 현재 행정부 모든 부서들의 주제들을 다 이제 책임져야하고, 그 많은 주제들을 감당할 사람들을 직접 만들고, 그게 타고 태어난 생이빨이 아니면, 틀니라도 끼워야 한다는 생각이며, 치과 의사들처럼 이빨이 닳거나 빠지면 '고쳐서 써야'한다는 태도입니다.

기본소득 개념들이 정치적으로 폭발력을 가지지 못한 이유는, 무슨 영화나 음악처럼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 정치적 시그널이 다양한 계급 계층에 전달이 되고 있지 못하다고 봅니다.

작년 기본소득 (2년마다 하는 국제행사임) 몬트리올 회의에 통역해주러 갔다가, 칼 폴라니(Karl Polanyi) 딸되시는 분이 "한국에 비정규직, 불안정 프레카리아트 노동자가 많냐고?" 물어보시던데, ... 그 분은 캐나다에서 사시는데, 캐나다 사람들은 연금을 대략 2~4개 정도 드는 것 같습니다.

기본소득 회의장 바깥에 커피 숍에서 점심 먹다가, 은퇴한 전기회사 직원 (70세 넘음)에게 물어보니까, 연금 부어놓은 거 총액이 한 달에 우리 돈으로 대략 350~400만원 넘는 같더군요. 아니러니하죠? 기본소득이 필요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각 국가별로 도시별로 '연금제도', 그리고 각 년령별로 개인소득에 대한 조사가 필요해보이더군요.

'서민에게 복지를, 부자에게 세금을 (재분배 re-distribution)' 그거, 분배도 아니고, 재분배 정치 구호 만든지 2002년 이후 13년 지났는데, 우리가 세금 정치학을 좌파적으로 잘 해석하고 실천했는지,  동네 정치 차원으로까지 가서 실천해야 합니다. 

뭔가 우린 기본적인 케인지안 정책 교과서가 만들어놓은 주제들에 대한 좌파적인 대안도 만들지 못하고 있어서 마음이 바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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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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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20122019. 1.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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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5 19:46

홍세화대표 <배제된 자; 배제된 노동> 비판적 검토 (1)

원시 조회 수 988 댓글 1 ?

생각나는 것 몇 가지 적습니다. 글쓰기 전에 서설, 진보신당 현상 = 홍세화 (안효상)은 해태 (야구) 왕조(16년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인데, 진보신당은 기아 타이거스(간당간당 5등). 




2011년 9-4 당대회 이후, 새로운 대표단을 구성할 때, 당 안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4가지 세대들간의 대화/소통, 차이와 동일성을 정치적 실천으로 융해해 낼 수 있는 지도부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지금 2012년 8월 중간에 평가를 해보면, 현재 사회당-진보신당 집단 지도 체제는 성공적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홍세화-안효상 지도체제에 비판적인 사람들이나 집단도 당에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실천할 때는 같이 하고 그랬으면 합니다. 




정당은 철학적 관점만 가지고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조건들과 충분조건들의 구별이 필요해 보입니다. 




1. 홍세화 대표 <선언문>,그리고 프레시안 기사 2개를 읽고 문제점 - 지젝한테 묻지 말고 홍세화를 보라, 친정엄마를 보라. 




<배제된 자> <배제된 노동> 이야기는 새로운 정치 주체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해석합니다. 아니 늘 우리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들을 발굴하고 찾아 나서야 합니다. 




당원들의 원성(?)이 자자한 지젝 (Zizek), 마르쿠제 (Marcuse), 구하 (Guha) 등 이런 이름들 빼고 그냥 말 뜻 그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배제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특히 '노동'은 하는데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빼앗긴 자들이나 사회적 '승인'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비정규직 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순위를 따지는 척도들을 말하기 전에, 진정한 좌파라면 <배제된 노동>을 이야기하려면 한국에 있는 이주민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들과의 정치적 연대와 실질적인 당의 활동을 보여줘야 한다. 2050년에 가면 한국도 지금의 경제발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천만 이상의 노동력을 해외에서 들여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 홍세화 대표가 20년간 파리에서 이주민노동자 택시 운전수를 했기 때문에, 위 사실을 모를리가 없다. <대선 선언문>과 <진보의 자살인가 타살인가?>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배제된 노동> 개념부터 명료하게 설명하지 않고서 지젝의 모호한 개념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한국에서 아이들 돌보는 친정 엄마, 시어머니, 고모 이모들의 노동은 어떠한가? 얼마 전 지인이 한국 해남군에 사는 할머니가 서울에 사는 딸 아이들 보러 주 5일간 있고, 주말에는 전남 해남에 있는 할아버지 (남편) 밥해주러 출퇴근하고 있다는 말을 해줬다. 진보신당이 진정한 좌파이려면 그리고 여성 친화적 정당이면, 한국 자본주의의 작동원리에 대해서 진지하고 창의적으로 고민한다면, 지젝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친정 어머니, 시어머니 육아 비용 지출하라" 전국의 친정 어머니 시어머니들 종로에 다 모이거나 여의도에 모셔서 데모를 해야 한다.




"친정 어머니를 공무원화하라 !!" 지금 누가 한국을 먹여 살리고 있는가? 왜 친정 엄마 시어머니들이 아이들 보느라 근육통 무릎통에 시달려야 하는가? 그리고 주말이면 영감탱이 ^^ 밥해주러 또 5시간 버스타야 하는가? 




모텔, 호텔 노동자들을 비롯해서 도시공간에 존재하는 <배제된 노동>은 많다. <배제된 노동> 선언이나 인용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조사와 탐구에 기초한 주체적인 실천 프로그램들을 만드는 것이 좌파당이 할 일이다. 몇 가지 아이템을 찾아서, 민노총이나 통진당 등 타 당에 비해 상대적인 정체성 확보로 자족할 일이 아니다. 



2012.08.25 20:19

홍세화대표 <배제된 자> 비판적 검토(2) 배제-포함의 척도들의 다양함 해결해야

원시 조회 수 876 댓글 0 ?

2. 배제된 노동 개념을 사용하기 앞서 - 생각해야 할 점




진보신당은 지적으로 게으른 측면이 있다. 남들이 쓴 개념들의 역사성에 대해서 탐구하지 않고 그냥 수입하거나 빌어오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또는 빌어오는 것도 정확하고 엄밀하게 써야지, 자의적으로 사용하고 더군다나 자기 권위까지 실어서 타인의 비판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까지 있어서 "사유의 폐색성"을 보게 된다. 




예를들어서, 진보신당이 새로운 주체를 찾는데, 왜 <배제된 노동> 개념이 <착취노동> 개념보다 더 나은가? 어떤 사회적 현상들을 더 많이 더 잘 설명해주는가? 최소한 이런 이론적 작업이 홍세화 대표가 지젝의 모호한 <배제>개념을 끌어들이기 전에 이뤄져야 한다. 지젝이 아니더라도 이미 정치학에는 "배제와 포함의 정치"문제가 있습니다. [exclusion, inclusion politics를 번역]




과거에 써온 착취, 지배와 같은 개념도 여전히 필요하다면,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조직적으로 필수적이라면 굳이 버릴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민노총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이들 학원 보내느라 잔업 하루에 3~4시간 하고 학비 버는 게 현실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일자리 뺏고 있고 (결과적으로, 잔업할 우선순위도 원청 정규직 노동자에게 먼저 갑니다) 그래서 노동자-노동자 갈등이 심합니다. 이런 현실을 두고, 정규직 노동자들을 "혁명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조.중.동에서 사용하는 "귀족노동자"라고 우리가 진단해버려야 합니까?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착취 노동"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더 강도높게 사회적 차별까지 당하고 있는 것은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이라는 것은 또다른 사회적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두가지 문제들을 다 같이 다 고려해야 합니다. 




2. 배제-포함 정치학의 논리적 실천적 기준




<배제의 정치학>에서 중요하게 우리가 한가지 고민해야 할 지점은, <배제>의 주체가 누구고, <배제당한>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떤 기준들에 따라서,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 그렇게 되는가? 입니다. 




제가 볼 때는, 진보신당과 같이 실천적 능력 크기가 적은 당에서 이 거대한 프로젝트들을 다 완수하기는 당장에 쉽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점만 지적하겠습니다. <배제 정치학>을 당에 끌여들일 때는, 적어도 당에서,  배제 자체 문제가 아니라, 배제-포함 기준을 놓고 제 2차 논쟁과 토론의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배제만을 이야기해서는 안되고, 그 대안, 포함 inclusion 의 정치적 전략과 실천이 있어야겠습니다. 




그럴려면 당 안, 당원들끼리, 정견이 다르더라도 서로 <배제시키지 않는> 당활동 문화를 정착시켜야 하겠습니다. 진보신당 4년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은, 당의 시스템의 결함으로 인해, 1) 직장 당원들의 참여구조를 만들지 못하고 당에서 배제당하고, 2)  지역에서 모임들에서 소-패권적 행태들 때문에 정작에 필요한 당원들은 탈당하고 3). 지도부와 평당원들 사이,  평당원들 내부 끼리끼리 문화를 통한 지위확보 등 당의 공적 성장보다는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도 보이는 등, 일상적인 미시적인 <배제> 문화가 많았습니다.  당의 활동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면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고인 물'이 생기고 썪게 마련입니다. 




그럼 <포함>과 <배제>의 어떤 기준들을 가지고 위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겠습니까? 




그냥 <포함>은 좋은거고 <배제>는 나쁜거고? 그럼 끝입니까? 그렇다면 페이스북에서 like (좋아요) 눌러주고, 카카오톡 대화방 친구 <포함>이면 좋은거고, 아니면 <배제>된 것이고, 이런 기준들은 다 무엇인가요?  


2012.08.25 20:57

홍세화 대표 <배제된 자> 개념 비판적 검토(3) 지젝으로 제한하지 말아야

원시 조회 수 794 댓글 0 ?

우선 이 문제를 지적해야겠습니다. 한국에서 좌파라고 하면서 1987년 민주화체제와 1997년 (혹은 2008년 금융자본 위기) 이후 진보주의를 구분하는 경우가 있는데 (홍세화 대표 프레시안 글도 대표적인 이분법), 이것은 정치적인 오류입니다. 우리가 자유주의자(민주당: 통진당내부 liberalist 리버벌리스트)와의 구별을 하기 위해서는 87년 민주화 운동의 특성, 즉 정치적 자유주의를 넘어서자, 그리고 김대중과 민주당표 386들이 다 가져가 버린 그 87년 민주화운동을 초월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포함하는 좌파정치학을 만들어보자. 아니 정체성 구별하자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역사에 대한 재해석 투쟁입니다. 1980년 광주, 1987년 민주화 운동이 현재 민주당 (김대중-노무현 계승자들 + 학생운동 386세대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좌파가 정치력이 있기 위해서는 87년과 같은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치적 폭발성과 휘발성 (MB의 경제정책은 김대중-노무현 노선과 큰 차이가 없지만, 정치-사회-언론에서는 몇 가지 차이가 있음: MBC, KBS, YTN,국민일보 파업 등으로 대표 + 촛불시위의 민주주의 요구 등)은 무시하거나 폄하하거나, 사회민주주의적 요소의 부차적인 악세사리 쯤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배제된 자>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홍세화 대표의 문제의식이나 진보신당에서 좌파의 자기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새로운 주체들을 찾는 과정으로 이해해야겠습니다. 따라서 <배제된 자>이 개념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이 단어에 국한시켜서도 안됩니다. 




몇 가지 예들만 들어보겠습니다. 새로운 주체들이란, 1980년대 전두환을 타도하자, 1970년대 유신독재 타도하자. 그 항거의 주체들은 누구였습니까? 여론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가장 주축이었습니다. 이것을 이론적으로 어떻게 설명하고 정당화하겠습니까? 


마르크스의 <자본 축적 방식과 공황, 이윤율 저하 경향 TRPF> 이런 틀로 설명하겠습니까? 아니면 지젝처럼 "실체성 없는 주체성, 사회적 존재로 지녀야 할 실체를 박탈당한 주체 (*추상적이서 또다른 설명이 필요하지만)"로 설명하겠습니까?




또다른 새로운 주체들을 봅시다. 지금은 중국 마오쩌뚱을 하나의 모델로 삼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1949년 중국인민공화국 건설 이전에, 중국 혁명과정 (사회주의화)에서 1931~1934년 강서시대는 굉장히 중요한 분수령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는 중국공산당 내부에서 구추백 이립삼 등이 도시 노동자계급을 혁명주체로 간주하고 도시 진공작전을 쓰고 있었고, 이 소련유학파들이 장악한 상해 지도부 노선이 광조우 등에서 실패하게 됨에 따라서, 그 이후에 마오와 주덕 등이 농촌 근거지, 마오의 고향 창사 같은 곳에서 농민이 주축이 되어 추수폭동(항거)를 일으키면서, 혁명의 새로운 주체들로 '농민'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운동에서 새로운 주체 형성 문제는 늘 조직노선과 사업 순위의 선차성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주체들을 찾아 나서기 위해서는 소련 유학파들처럼 당시 사회주의 조국을 자처하는 소련 코민테른의 지시만 따를 게 아니라, 외국에서 직수입하지 말고, 스스로 그 해당 사회 제도 법률 사람들 의식을 연구하고 탐구해야겠습니다. 




세번째 사례로, 1968년 서유럽과 북미의 68세대입니다. 실제로 지젝보다 30년 앞서서 <배제> 문제를 다룬 사람이 마르쿠제 (일차원적 인간, One Dimensional Man: 1964)입니다.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마르쿠제가 보기에는 전통적인 산업 공장 노동자들은 미국 자본주의 복지제도,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대중문화에 푹 빠지거나 안주해서, 사회변혁 주체가 더 이상 아니다, 그리고 마르쿠제가 실제 당시 현실에서 베트남 전쟁 반대, 인종주의 차별 반대, 여성권리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학생을 비롯, 사회 주류가 아닌 외부자들 왕따당한 사람들 (outcasts, outsiders=배제된 자), 인종차별을당하는 사람들, 실업자들과 실업 가능성이 높은 불안정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 등이었습니다. 이 마르쿠제의 진단과 주장을 두고 많은 논쟁들과 토론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토니오 그람씨의 "서브 알턴 sub-altern: 다큐먼트가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 개념을 확장 발전시켜, 인종, 계급, 성, 성적 취향, 인종, 종교 등 문제에서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무시당하는 사람들을 "서브 알턴"이라고 규정한 라나지트 구하 (Ranajit Guha) 등과 같은 인도를 포함 남아시아 국가들에서 탈-식민화, 탈-제국주의적 운동의 주체들을 찾아보려는 시도들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렇고 현시점에서도 새로운 주체들을 발굴하고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들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들을 지젝 등 몇 사람 이야기에 한정시킬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홍세화 대표의 <선언문>이 자칫 잘못하면, 민주노총은 역사적 임무를 다했다. 정규직 노조운동은 "실리주의 business unionism"으로 끝났고, 새로운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해석되어서는 안됩니다.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당과 노조 (총연맹)의 정치적 역할 분담이 있는데, "역사적 임무"라는 거창한 용어를 삽임함으로써 오히려 정작에 중요하게 해결할 정당-노조간의 역할분담에 대한 비판은 사라지고, 한쪽에서는 "왜 우리를 욕하느냐? "로 가거나, 아니면 "순혈주의 대 개량주의"라는 잘못된 이분법으로 흐를 가능성이 큽니다.




홍세화 대표가 사용한 <배제된 자> <배제된 노동>이라는 개념을, 새로운 주체 발굴과 실천이라는 맥락에서 해석하고, 지젝 등의 용어로 굳이 한정시킬 필요 없고, 보다 더 역사적으로 또 현재 한국자본주의 축적방식의 변화와 통치방식의 변화 등에 보다 더 창의적으로 우리가 대응하면서 <배제된 자> 개념이 아닌 다른 개념어를 만들어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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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여성2018. 9. 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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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여성의 노동력 때문에 내가, 우리가 이렇게 살아왔다. 


부끄러운 현실에, 또 나아가야 할 길을 분명히 깨닫다.


노동하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정당하게 사회 정치적 시민권을 부여하는 날이 꼭 와야겠다.



[포토다큐]세월만큼 굽은 허리, 펼 틈 없는 어머니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추석을 앞둔 시골집의 어머니는 더 바빠진다. 자식·손주들과 조금이라도 더 명절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조금이라도 더 싸주려고, 조금이라도 더 농삿일을 미리 해놓기 위해서다. 전남 신안군 안좌도 오동리 마을 장연월씨의 마늘 심는 손길이 여느 때보다 분주하다. 자식들을 위한 삶으로 한없이 굽어진 등허리를 제대로 한 번 펴지 않고 따가운 가을햇살 아래 하루를 보낸다. /강윤중 기자

추석을 앞두고 전남 신안군 안좌도 오동리 마을을 찾았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낮은 산봉우리 사이에 자리 잡은 마을. 19가구 30명이 살고 있는 아담하고 평온한 동네다.

“여그 시골 추석은 자식들이 일손 도와줄라고 와요.” 김영근 이장(60)의 첫마디다. 바빠서 별다른 명절 분위기가 없다는 말이다.

흙을 덮은 검정 비닐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난 구멍으로 마늘을 밀어넣는다.  /강윤중 기자

흙을 덮은 검정 비닐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난 구멍으로 마늘을 밀어넣는다. /강윤중 기자

파란 가을하늘 아래 마늘을 심는 농민의 손길이 분주하다. /강윤중 기자

파란 가을하늘 아래 마늘을 심는 농민의 손길이 분주하다. /강윤중 기자

마늘 심는 오동리 마을 주민들. 추석 즈음은 농사일로 바쁘다. 품앗이를 하거나 일당을 받는다.  /강윤중 기자

마늘 심는 오동리 마을 주민들. 추석 즈음은 농사일로 바쁘다. 품앗이를 하거나 일당을 받는다. /강윤중 기자

이른 아침부터 이웃집 밭에서 마늘을 심던 주민들이 새참으로 짜장면을 먹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이른 아침부터 이웃집 밭에서 마늘을 심던 주민들이 새참으로 짜장면을 먹고 있다. /강윤중 기자


섬마을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오전 7시쯤이면 이미 마을은 텅 빈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밭에서는 밭주인 부부, 나이 지긋한 주민들이 마늘을 심고 있다. 

따가운 가을 햇살 아래 밭일은 오후까지 계속됐다. 허리와 팔다리를 두드릴 수밖에 없는 고된 일이다. “우린 늘 이것을 한께…. 처음 하는 사람은 겁나게 힘들어하제.” 박월단씨(74)가 검게 탄 얼굴로 웃었다. 

마늘은 오동리 마을의 주요 산물이다. 

깨와 녹두를 거둬들인 밭에 추석을 즈음해 파종한다. 김 이장의 말처럼 추석에 자식들이 일하는 줄 알고 오는 이유다. 이 마을도 여느 시골처럼 ‘일꾼’ 구하기가 힘들다. 서로 품앗이를 하거나, 품앗이가 아니라면 8만원의 일당을 준다.


김순례씨가 공공근로에 나서기 전 낫을 갈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도로가에 웃자란 풀을 베는 일이다. /강윤중 기자


김순례씨가 공공근로에 나서기 전 낫을 갈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도로가에 웃자란 풀을 베는 일이다. /강윤중 기자

배양례씨와 인순심씨가 공공근로에 나섰다. /강윤중 기자


배양례씨와 인순심씨가 공공근로에 나섰다. /강윤중 기자

공공근로에 나선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며 웃고 있다. /강윤중 기자

공공근로에 나선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며 웃고 있다. /강윤중 기자

비가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마늘 파종을 미뤄야 한 주민들 몇몇은 낫과 도시락을 챙겨들고 공공근로에 나섰다. 명절을 앞두고 도로가에 웃자란 풀을 베는 일이다. “일당이 솔찬혀. 허허허.” 곧 보게 될 손주들에게 용돈이라도 쥐여줄 재미 때문인지 하나같이 환한 표정이다.

 아침 8시쯤 공공근로에 나선 주민들은 오후 5시쯤 돌아왔다. 그러곤 다시 밭으로 나갔다. 어둑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이옥순씨가 무와 배추 등을 심은 밭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란디 이리 돌아댕기면 좋아. 그랑게 하제. 애기들이 여그서 난 것을 좋아혀.” 자식들 만류에도 밭에 나오는 이유다. /강윤중 기자

이옥순씨가 무와 배추 등을 심은 밭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란디 이리 돌아댕기면 좋아. 그랑게 하제. 애기들이 여그서 난 것을 좋아혀.” 자식들 만류에도 밭에 나오는 이유다. /강윤중 기자


윤병수씨가 녹두밭에서 일을 하다 카메라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아내 유삼순씨와 8남매를 키워냈다.  /강윤중 기자

윤병수씨가 녹두밭에서 일을 하다 카메라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아내 유삼순씨와 8남매를 키워냈다. /강윤중 기자

이 땅의 연로한 ‘부모’들은 좀체 쉬지를 않았다. 이옥순씨(85)는 틈만 조금 있으면 호미를 들고 무, 배추, 깻잎 등을 심은 밭으로 나간다. “(자식들이야) 하지 말라고 날마다 전화오제. 

그란디 이리 돌아댕기면 좋아. 그랑게 하제. 애기들이 여그서 난 것을 좋아혀.”

 열여덟에 시집와 70년 가까이 흙을 만진 손. 거칠지만 잡초를 뽑아내는 손놀림은 몹시 빠르다. 녹두밭에서 만난 윤병수씨(84)는 “시골은 다 일하니께. 나이 묵으면 다 아파. 안 드러누운 이상은 일해야제”라고 말했다.

오동리 마을회관에서 박월단씨가 추석을 앞두고 머리염색을 하고 있다. 농삿일로 늘 바쁘게 지내는 박씨가 모처럼 염색을 하며 명절 기분을 내보는 것이다. 염색약을 발라주던 부녀회장 임선자씨가 “이뿌게 디려졌소”라고 하자 그을린 얼굴에 새하얀 웃음이 피어난다.  /강윤중 기자

오동리 마을회관에서 박월단씨가 추석을 앞두고 머리염색을 하고 있다. 농삿일로 늘 바쁘게 지내는 박씨가 모처럼 염색을 하며 명절 기분을 내보는 것이다. 염색약을 발라주던 부녀회장 임선자씨가 “이뿌게 디려졌소”라고 하자 그을린 얼굴에 새하얀 웃음이 피어난다. /강윤중 기자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명절맞이 머리염색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명절맞이 머리염색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명절을 앞두고 머리염색을 한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앉아 농사얘기, 자식얘기를 나누고 있다.  /강윤중 기자

명절을 앞두고 머리염색을 한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앉아 농사얘기, 자식얘기를 나누고 있다. /강윤중 기자

저녁밥을 먹은 주민들이 하나둘 마을회관으로 모였다. 

마을부녀회장 임선자씨(57)가 명절맞이 머리염색 소집을 통보한 것이다. 임씨가 어르신들 머리에 염색약을 바르는 동안 농사얘기, 자식얘기가 두런두런 이어진다. 

“이뿌게 잘 디려졌소.” 임씨의 말에 배양례씨(70)가 받았다. “멋~져부러? 하하하.”


8남매를 키워낸 윤병수·유삼순(75)씨 부부에게 고향 찾을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뭐 있것어요. 조심히 안전하게 왔다 가라. 늘 그 말이제.”

전남 신안군 안좌도 오동리 마을 전경. /강윤중 기자

전남 신안군 안좌도 오동리 마을 전경. /강윤중 기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9221542001&code=210100&sat_menu=A076#csidxbbcd869c19e831fa6a745efe831bb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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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2018. 8. 2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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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좌파의 의미 (메모)2008.03.05 21:03



원시 조회 수 2965 댓글 4 조회 수 2965 ?수정삭제




생활좌파의 숙제: 쓰레기 대 문화재

2003-04-22 06:25:39


 


우리나라 곳곳이 다 문화재다. 동네 밭이라도, 혹은 저수지, 보 하나 파더라도, 옛날부터 깨진 그릇이 우르르 나오곤 했다. 우리나라는 왠만하면 다 문화재로 둘러싸여 있다. 다 모르고, '현대화'다 '새마을 운동'이다 해서, 선조들이 물려준 것 다 버리고, 그게 왜 "여기에 있었는지"를 반성할 시간도 없었다. 


세계에서 한강 이남처럼 살기 좋은 자연적 조건을 지닌 곳도 드물다. 어쩌면 철학과 사변이 불필요할 정도로 살기 좋은 곳, 그 속에서 피어난 문명에 대해서 되돌아 볼 여유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좌파는, 인간은 그저 죽도록 일하거나 돈만 산더미처럼 버는 경제적인 동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운치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유가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좌파의 운동인 것이다. 유럽에서 좌파의 등장, 그 철학적 배경에는, 인간의 자유란 노동의 경계, 안과 바깥의 그 경계사이의 긴장에서 오락가락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긴장을 제대로 해결한 역사적 주체는 아직까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노동의 의미를 물었다. 노동만을 찬미한 것이 아니라. 그 힘든 노동만을 찬양만 했을라면, 우리가 개미와 벌과 무엇이 달라겠는가 ? 이러한 심미안을 놓치게 될 때, 좌파는 다시 썩어문드러지는 것이다. 그것이 20세기가 남겨놓고 간 숙제였다. 이 온 동네가 다 문화유산으로 가득차 있고, 소위 민이라는 사람들이 동원되어 만들어놓은 문명이 거기에 살아 숨쉬는 것이다. 


다음 봄에는, 곡갱이 들고, 할아버지 논이라도 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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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매립장 부지서 청동기 주거지 확인[23191] 


재단법인 경북도 문화재연구원(원장.윤용진)은 19일 포항시 남구 호동산 8-24 일대 쓰레기매립장 확장 예정부지에서 청동기 및 삼국시대 주거지 160여기와 무문토기 및 돌도끼, 항아리 등 각종 유물 100여점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연구원인 이날 오전 현장 설명회를 갖고 2001년 8월부터 최근까지 발굴조사한 1만2천800㎡에 대한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문화재연구원은 조사지역에서 직사각형 모양의 규모가 거의 비슷한 청동기시대 수혈 주거지(길이 8.3m, 너비 4.8m, 깊이 45㎝)를 발견했으며, 주거지의 평면 형태와 벽 등 시설은 이미 발견된 포항을 비롯한 경주나 울산권을 대표하는 형태를 띠고있어 경북 동해안 일대 청동기시대 취락형태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했다.


또 이곳에서는 4-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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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4'

서현순 4.00.00 00:00

오천년 역사 품은 한반도 남도에, 옛 자취 아련하다 애달픈 대운하. 을숙도 바라보니 낙동강을 아느냐, 원 그려 우는 마음 부산에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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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진 4.00.00 00:00

원시님...참 좋은 글이네요.....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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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4.00.00 00:00

서현순/ 부산가기 전에 구포라는 곳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멀리서 보고 반해버렸어요. 정말 우리 나라 강은 너무나 멋있는데, 낙동강, 아 그 갱상도 보리 문댕이 시인들의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해요. 어쩌다가 진보의 고향 대구가 깡보수 한나라당 아지트로 되었는지 한숨만 나오는데... 낙동강 이거 살리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터인데. 풀, 새, 물, 태양, 달, 이것으로도 충분한데. 우리나라 강이 대부분 동서로 흐르는데, 낙동강이 남북으로 흐르잖아요. 그 묘미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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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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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2021.07.09 10:48 [ ADDR : EDIT/ DEL : REPLY ]

2018. 3. 1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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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독일 쾰른 노동운동 

주요 표제어, 슬로건= 자유, 형제애, 노동

Freiheit, Brüderlichkeit, Arb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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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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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노동2016. 8. 1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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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이 오히려 한국의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을 배워야 한다.

거꾸로는 별로 취할 게 많지 않다.



2012.08.25 19:46

홍세화대표 <배제된 자; 배제된 노동> 비판적 검토 (1)

원시 조회 수 772 댓글 1


생각나는 것 몇 가지 적습니다. 글쓰기 전에 서설, 진보신당 현상 = 홍세화 (안효상)은 해태 (야구) 왕조(16년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인데, 진보신당은 기아 타이거스(간당간당 5등). 


2011년 9-4 당대회 이후, 새로운 대표단을 구성할 때, 당 안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4가지 세대들간의 대화/소통, 차이와 동일성을 정치적 실천으로 융해해 낼 수 있는 지도부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지금 2012년 8월 중간에 평가를 해보면, 현재 사회당-진보신당 집단 지도 체제는 성공적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홍세화-안효상 지도체제에 비판적인 사람들이나 집단도 당에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실천할 때는 같이 하고 그랬으면 합니다. 


정당은 철학적 관점만 가지고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필요조건들과 충분조건들의 구별이 필요해 보입니다. 


1. 홍세화 대표 <선언문>,그리고 프레시안 기사 2개를 읽고 문제점 - 지젝한테 묻지 말고 홍세화를 보라, 친정엄마를 보라. 


<배제된 자> <배제된 노동> 이야기는 새로운 정치 주체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해석합니다. 아니 늘 우리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들을 발굴하고 찾아 나서야 합니다. 


당원들의 원성(?)이 자자한 지젝 (Zizek), 마르쿠제 (Marcuse), 구하 (Guha) 등 이런 이름들 빼고 그냥 말 뜻 그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배제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특히 '노동'은 하는데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빼앗긴 자들이나 사회적 '승인'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비정규직 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순위를 따지는 척도들을 말하기 전에, 진정한 좌파라면 <배제된 노동>을 이야기하려면 한국에 있는 이주민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들과의 정치적 연대와 실질적인 당의 활동을 보여줘야 한다. 2050년에 가면 한국도 지금의 경제발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천만 이상의 노동력을 해외에서 들여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 홍세화 대표가 20년간 파리에서 이주민노동자 택시 운전수를 했기 때문에, 위 사실을 모를리가 없다. <대선 선언문>과 <진보의 자살인가 타살인가?>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배제된 노동> 개념부터 명료하게 설명하지 않고서 지젝의 모호한 개념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한국에서 아이들 돌보는 친정 엄마, 시어머니, 고모 이모들의 노동은 어떠한가? 얼마 전 지인이 한국 해남군에 사는 할머니가 서울에 사는 딸 아이들 보러 주 5일간 있고, 주말에는 전남 해남에 있는 할아버지 (남편) 밥해주러 출퇴근하고 있다는 말을 해줬다. 진보신당이 진정한 좌파이려면 그리고 여성 친화적 정당이면, 한국 자본주의의 작동원리에 대해서 진지하고 창의적으로 고민한다면, 지젝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친정 어머니, 시어머니 육아 비용 지출하라" 전국의 친정 어머니 시어머니들 종로에 다 모이거나 여의도에 모셔서 데모를 해야 한다.


"친정 어머니를 공무원화하라 !!" 지금 누가 한국을 먹여 살리고 있는가? 왜 친정 엄마 시어머니들이 아이들 보느라 근육통 무릎통에 시달려야 하는가? 그리고 주말이면 영감탱이 ^^ 밥해주러 또 5시간 버스타야 하는가? 


모텔, 호텔 노동자들을 비롯해서 도시공간에 존재하는 <배제된 노동>은 많다. <배제된 노동> 선언이나 인용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조사와 탐구에 기초한 주체적인 실천 프로그램들을 만드는 것이 좌파당이 할 일이다. 몇 가지 아이템을 찾아서, 민노총이나 통진당 등 타 당에 비해 상대적인 정체성 확보로 자족할 일이 아니다. 



2012.08.25 20:19

홍세화대표 <배제된 자> 비판적 검토(2) 배제-포함의 척도들의 다양함 해결해야

원시 조회 수 67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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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제된 노동 개념을 사용하기 앞서 - 생각해야 할 점


진보신당은 지적으로 게으른 측면이 있다. 남들이 쓴 개념들의 역사성에 대해서 탐구하지 않고 그냥 수입하거나 빌어오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또는 빌어오는 것도 정확하고 엄밀하게 써야지, 자의적으로 사용하고 더군다나 자기 권위까지 실어서 타인의 비판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까지 있어서 "사유의 폐색성"을 보게 된다. 


예를들어서, 진보신당이 새로운 주체를 찾는데, 왜 <배제된 노동> 개념이 <착취노동> 개념보다 더 나은가? 어떤 사회적 현상들을 더 많이 더 잘 설명해주는가? 최소한 이런 이론적 작업이 홍세화 대표가 지젝의 모호한 <배제>개념을 끌어들이기 전에 이뤄져야 한다. 지젝이 아니더라도 이미 정치학에는 "배제와 포함의 정치"문제가 있습니다. [exclusion, inclusion politics를 번역]


과거에 써온 착취, 지배와 같은 개념도 여전히 필요하다면,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조직적으로 필수적이라면 굳이 버릴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민노총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이들 학원 보내느라 잔업 하루에 3~4시간 하고 학비 버는 게 현실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일자리 뺏고 있고 (결과적으로, 잔업할 우선순위도 원청 정규직 노동자에게 먼저 갑니다) 그래서 노동자-노동자 갈등이 심합니다. 이런 현실을 두고, 정규직 노동자들을 "혁명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조.중.동에서 사용하는 "귀족노동자"라고 우리가 진단해버려야 합니까?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착취 노동"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더 강도높게 사회적 차별까지 당하고 있는 것은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이라는 것은 또다른 사회적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두가지 문제들을 다 같이 다 고려해야 합니다. 


2. 배제-포함 정치학의 논리적 실천적 기준


<배제의 정치학>에서 중요하게 우리가 한가지 고민해야 할 지점은, <배제>의 주체가 누구고, <배제당한>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떤 기준들에 따라서,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 그렇게 되는가? 입니다. 


제가 볼 때는, 진보신당과 같이 실천적 능력 크기가 적은 당에서 이 거대한 프로젝트들을 다 완수하기는 당장에 쉽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점만 지적하겠습니다. <배제 정치학>을 당에 끌여들일 때는, 적어도 당에서,  배제 자체 문제가 아니라, 배제-포함 기준을 놓고 제 2차 논쟁과 토론의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배제만을 이야기해서는 안되고, 그 대안, 포함 inclusion 의 정치적 전략과 실천이 있어야겠습니다. 


그럴려면 당 안, 당원들끼리, 정견이 다르더라도 서로 <배제시키지 않는> 당활동 문화를 정착시켜야 하겠습니다. 진보신당 4년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은, 당의 시스템의 결함으로 인해, 1) 직장 당원들의 참여구조를 만들지 못하고 당에서 배제당하고, 2)  지역에서 모임들에서 소-패권적 행태들 때문에 정작에 필요한 당원들은 탈당하고 3). 지도부와 평당원들 사이,  평당원들 내부 끼리끼리 문화를 통한 지위확보 등 당의 공적 성장보다는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도 보이는 등, 일상적인 미시적인 <배제> 문화가 많았습니다.  당의 활동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면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고인 물'이 생기고 썪게 마련입니다. 


그럼 <포함>과 <배제>의 어떤 기준들을 가지고 위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겠습니까? 


그냥 <포함>은 좋은거고 <배제>는 나쁜거고? 그럼 끝입니까? 그렇다면 페이스북에서 like (좋아요) 눌러주고, 카카오톡 대화방 친구 <포함>이면 좋은거고, 아니면 <배제>된 것이고, 이런 기준들은 다 무엇인가요?  





2012.08.25 20:57
홍세화 대표 <배제된 자> 개념 비판적 검토(3) 지젝으로 제한하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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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문제를 지적해야겠습니다. 한국에서 좌파라고 하면서 1987년 민주화체제와 1997년 (혹은 2008년 금융자본 위기) 이후 진보주의를 구분하는 경우가 있는데 (홍세화 대표 프레시안 글도 대표적인 이분법), 이것은 정치적인 오류입니다. 우리가 자유주의자(민주당: 통진당내부 liberalist 리버벌리스트)와의 구별을 하기 위해서는 87년 민주화 운동의 특성, 즉 정치적 자유주의를 넘어서자, 그리고 김대중과 민주당표 386들이 다 가져가 버린 그 87년 민주화운동을 초월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포함하는 좌파정치학을 만들어보자. 아니 정체성 구별하자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현실은 역사에 대한 재해석 투쟁입니다. 1980년 광주, 1987년 민주화 운동이 현재 민주당 (김대중-노무현 계승자들 + 학생운동 386세대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좌파가 정치력이 있기 위해서는 87년과 같은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치적 폭발성과 휘발성 (MB의 경제정책은 김대중-노무현 노선과 큰 차이가 없지만, 정치-사회-언론에서는 몇 가지 차이가 있음: MBC, KBS, YTN,국민일보 파업 등으로 대표 + 촛불시위의 민주주의 요구 등)은 무시하거나 폄하하거나, 사회민주주의적 요소의 부차적인 악세사리 쯤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배제된 자>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홍세화 대표의 문제의식이나 진보신당에서 좌파의 자기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새로운 주체들을 찾는 과정으로 이해해야겠습니다. 따라서 <배제된 자>이 개념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이 단어에 국한시켜서도 안됩니다. 

몇 가지 예들만 들어보겠습니다. 새로운 주체들이란, 1980년대 전두환을 타도하자, 1970년대 유신독재 타도하자. 그 항거의 주체들은 누구였습니까? 여론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가장 주축이었습니다. 이것을 이론적으로 어떻게 설명하고 정당화하겠습니까? 마르크스의 <자본 축적 방식과 공황, 이윤율 저하 경향 TRPF> 이런 틀로 설명하겠습니까? 아니면 지젝처럼 "실체성 없는 주체성, 사회적 존재로 지녀야 할 실체를 박탈당한 주체 (*추상적이서 또다른 설명이 필요하지만)"로 설명하겠습니까?

또다른 새로운 주체들을 봅시다. 지금은 중국 마오쩌뚱을 하나의 모델로 삼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1949년 중국인민공화국 건설 이전에, 중국 혁명과정 (사회주의화)에서 1931~1934년 강서시대는 굉장히 중요한 분수령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에는 중국공산당 내부에서 구추백 이립삼 등이 도시 노동자계급을 혁명주체로 간주하고 도시 진공작전을 쓰고 있었고, 이 소련유학파들이 장악한 상해 지도부 노선이 광조우 등에서 실패하게 됨에 따라서, 그 이후에 마오와 주덕 등이 농촌 근거지, 마오의 고향 창사 같은 곳에서 농민이 주축이 되어 추수폭동(항거)를 일으키면서, 혁명의 새로운 주체들로 '농민'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운동에서 새로운 주체 형성 문제는 늘 조직노선과 사업 순위의 선차성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주체들을 찾아 나서기 위해서는 소련 유학파들처럼 당시 사회주의 조국을 자처하는 소련 코민테른의 지시만 따를 게 아니라, 외국에서 직수입하지 말고, 스스로 그 해당 사회 제도 법률 사람들 의식을 연구하고 탐구해야겠습니다. 

세번째 사례로, 1968년 서유럽과 북미의 68세대입니다. 실제로 지젝보다 30년 앞서서 <배제> 문제를 다룬 사람이 마르쿠제 (일차원적 인간, One Dimensional Man: 1964)입니다. 간략하게 이야기하면, 마르쿠제가 보기에는 전통적인 산업 공장 노동자들은 미국 자본주의 복지제도,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대중문화에 푹 빠지거나 안주해서, 사회변혁 주체가 더 이상 아니다, 그리고 마르쿠제가 실제 당시 현실에서 베트남 전쟁 반대, 인종주의 차별 반대, 여성권리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학생을 비롯, 사회 주류가 아닌 외부자들 왕따당한 사람들 (outcasts, outsiders=배제된 자), 인종차별을당하는 사람들, 실업자들과 실업 가능성이 높은 불안정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 등이었습니다. 이 마르쿠제의 진단과 주장을 두고 많은 논쟁들과 토론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토니오 그람씨의 "서브 알턴 sub-altern: 다큐먼트가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 개념을 확장 발전시켜, 인종, 계급, 성, 성적 취향, 인종, 종교 등 문제에서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무시당하는 사람들을 "서브 알턴"이라고 규정한 라나지트 구하 (Ranajit Guha) 등과 같은 인도를 포함 남아시아 국가들에서 탈-식민화, 탈-제국주의적 운동의 주체들을 찾아보려는 시도들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렇고 현시점에서도 새로운 주체들을 발굴하고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들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들을 지젝 등 몇 사람 이야기에 한정시킬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홍세화 대표의 <선언문>이 자칫 잘못하면, 민주노총은 역사적 임무를 다했다. 정규직 노조운동은 "실리주의 business unionism"으로 끝났고, 새로운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해석되어서는 안됩니다.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당과 노조 (총연맹)의 정치적 역할 분담이 있는데, "역사적 임무"라는 거창한 용어를 삽임함으로써 오히려 정작에 중요하게 해결할 정당-노조간의 역할분담에 대한 비판은 사라지고, 한쪽에서는 "왜 우리를 욕하느냐? "로 가거나, 아니면 "순혈주의 대 개량주의"라는 잘못된 이분법으로 흐를 가능성이 큽니다.

홍세화 대표가 사용한 <배제된 자> <배제된 노동>이라는 개념을, 새로운 주체 발굴과 실천이라는 맥락에서 해석하고, 지젝 등의 용어로 굳이 한정시킬 필요 없고, 보다 더 역사적으로 또 현재 한국자본주의 축적방식의 변화와 통치방식의 변화 등에 보다 더 창의적으로 우리가 대응하면서 <배제된 자> 개념이 아닌 다른 개념어를 만들어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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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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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al leadership2016. 8. 10.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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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2 00:50


[당명제안, 평화노동당 해제2] 


노동(1)이란 신분차별 혁파의 무기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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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노동당 당명 안건으로 발의하려고 지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읽어보시고 의견 주세요.


평화노동당 당명 해제 (2) 노동이 갖는 정치적 의미와 우리의 임무


87년 체제와 97년 이후 차이 - 노동에 대한 인식 변화


우리는 노동과 직업을 둘러싼 생물학적 사회진화론적 가치관과 싸워야 합니다. 97년 IMF 통치 이후, 한국식 자본주의는 봉건적인 신분차별적 성격을 강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사회와 일상 생활에서는 교육제도를 매개로 사회적 지위/신분계층의 고정화, 계급계층의 고착화, 부와 가난의 대물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잡대, 서-연-고 IN 서울 대학, 엄친아론 등은 우리들에게는 문화적 충격이고, 정치적 좌절의식까지 생기게 합니다.



한국 교육제도는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고 있고, 노-노 갈등을 정치경제 문화적으로 분열하고 조장하고 있습니다. 익히 아는 사실입니다. 87년과 같은 민주노조 운동을 통해서 계급의식의 생기거나 노동자의 단결의식이 만들어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총연맹이나 산별노조의 단체협약이 동일 업종에 적용가능한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노-노 갈등이나 상대적 박탈감이 조장될 가능성이 오히려 더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산업구성에서도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가장 고용이 많은 직종이 ‘상점 점원 (알바등)’입니다. 제조업 고용 성장의 한계에 부딪혔고, 한진 조선업의 필리핀 수빅만으로 이전과 같은 자본의 지리적 이동도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노조는 노조대로, 좌파정당은 정당대로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후자에 대해서만 간단히 쓰자면, 우리는 “가난과 부의 대물림 구조” “개천에서 더 이상 용나지 않는다”는 불공정 게임과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담론과 정면으로 싸워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노동소득’으로 행복추구가 가능하고 자아실현 및 가족 부양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 숫자는 97년 이전과 그 이후가 확연히 다를 것입니다. 자본주의 자본축적의 원리(이윤의 극대화)를 자기 가치관으로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내재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동산 자산, 금융 자산이 없는 사람들도 역시 ‘노동 소득의 종말’ 이데올로기에 동참하고 있고, 시민사회의 보수화는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 소득’의 문제, 분배영역에서 정치 윤리학의 붕괴 현상을 우리 좌파가 먼저 제기해야 합니다.


노동 담론의 복원과 신분차별 혁파의 무기로 나아가야


2000년 이후, 한국 진보정당에서 전 사회적으로, 혹은 민주당과 보수당과의 경쟁에서 문제제기한 주제들을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2002년 민주노동당의 경우: 재분배 (re-distribution) 즉, 세금의 정치학 (부유세등)을 가지고 민주당과 한나라당(새누리당)과 경쟁했습니다. 그 자체로 정치적인 혁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재분배 세금 정치학도 제대로 세련되게 발전시키지 못했고, 2004-2008년 노무현 정권 기간에, 노-노 갈등을 부추기고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는 노동 소득 분배(income distribution)의 정치 역시 성공적으로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2008년 미국 금융자본 공황 이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위기의 근원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고 그 해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자본주의적 생산과 현행법에 의거한 소유권의 문제: 1) 생산체제에 대한 비판, 2) 선진금융기법과 앵글로색슨식의 금융화 이윤산출방식 비판, 3) 노동소득에 대한 전사회적인 경시 풍조, 회의주의적 태도, 그것들을 조장하는 정치제도, 법률, 정당 등 사회세력에 대한 비판과 직접 행동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물론 소득 재분배, 소득 분배, 생산 영역에서 생산수단과 소유권 그 순서를 일률적으로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노동 과정과 노동 소득만 언급하자면, 월급과 연봉 문화로 대표되는 분배 문제에, 그리고 신분 차별을 강화하고 조장하는 소득 차별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해야 합니다. 대학개혁 역시 이 분배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 격차 by 김유선.jpg 


(출처: 김유선 연구원 : http://iminju.tistory.com/1094 )


아주 단순하게 1가지 사례를 들겠습니다. 직장인들에게 (학교 교사나 교수,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없이) 가장 중요한 맥주집 소주집 소맥집 치킨집 화두는 “연봉과 승진” + “정년” 입니다.


여론의 1차적 작업은 “소득 차별”을 줄이자가 아니라, “소득 차별의 정당화”에 대해서 묻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소득차별’ 해소 문제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도대체 당신은 자기 직장에서 바로 위 상사와 얼마나 적게 받아야 안심/만족, 혹은 정의롭다고 생각하는가?”이렇게 대중들에게 물어야 하고 여론전에 임해야 합니다.


좌파의 정치적 행위의 출발점은 대중들의 의식과의 교류라고 봅니다.


노동소득의 무효화 시대, 즉 땅이나 부동산, 주 채권 펀드 등 금융자산이 없으면 '안심‘이 되지 않거나 ’중산층 (10억 현금 보유)‘이 되지 못하는 이 노동소득의 무시 시대에, “노동 소득” 문제의 정치화는 2가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현 한국정치체제 (리버럴 데모크라시= 자유-민주주의)에서 노동소득과 관련된 ‘정의’ 문제를 좌파적 시각에서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고, 노동과 관련된 정치적 주제들을 내걸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더 공론화하고 확산시키기 위해서도 “노동 소득의 차별” 문제를 제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문제를 접근하는데는 지니계수, 로렌쯔 커브 (Lorenz Curve), 1인당 GNP와 중간값(median) 중위소득의 차이 문제, 노동소득과 자산소득의 비율 (서울과 지방도시 비교 등) 등 소위 케인지안과 제도학파들을 쓰는 주제들을 좌파적으로 해석하고 파고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소위 개량과 혁명의 접합지점을 우리가 먼저 형성해내야 합니다.



한국정치사에서 “소득 차별” 문제는 방치된 정치적 주제입니다. 2002년에 “세금의 정치학” 문제가, 1945-1975년 서유럽 사회복지국가 체제의 황금기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였던 “세금”제도가 한국 정치사에서는 “경제성장과 독재타도” 화두 때문에 전면에 등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소득 차별 문제가 지연된 정치 투쟁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소결


그래서 저는 우리가 지금 한국 시민사회에 노골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생물학적 사회진화론의 가치들과 정면으로 맞서고, "부자 DNA는 없다"는 슬로건을 외쳐야 한다고 봅니다. 


노동빈곤(the working poor: 일해도 가난한 사람들) 문제에 대해서,노동소득으로 더 이상 행복해질 수 없는 대한민국 스타일 자본주의를 고발,직접적으로 비판해야 합니다. 이들이 우리 당원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올해 초반 남양유업 갑/을 담론부터, 재벌 2세, 3세들의 동네 빵가게, 수퍼마켓, 식당 독식에 대한 전 국민적인 분노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식칼 테러의 책임자 현대 정주영에 대해서는 하다못해 창업주라는 레테르를 붙여주지만, 그 이후 재벌 2세, 3세들에 대해서는 '부모 잘 만난 것 빼고,' 당신들이 사회에 기여한 게 뭐냐? 삼성 이재용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CB) 사건 승소 “무전 유죄, 유전 무죄”에 대한 공분. SK 최태원의 금융 파생상품 투자 손실 이후 회사돈 회계 분식 등에 대해서 시민들이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 담론의 부활이 필요한 시점이고, 보다 더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노동이 신분차별을 강화시키는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을 혁파할 수 있도록, 노동담론의 부활과 이데올로기 투쟁의 재점화를 시도해야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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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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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al leadership2016. 8. 10.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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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3 18:03

[당명발의 제안] 평화노동당 - 요약문 (서명 부탁드림)

원시 조회 수 680 댓글 28


당명 제안: 평화노동당 (약칭: 노동당)


영문표기: Peace-Labor Party (PLP) 

제안자:  원시

첨부 파일: 

평화노동당 당명 해제.pdf



※ 서명자료는 반드시 소속당협과 성명, 발의 동의여부(‘발의에 동의합니다’ 등)가 분명히 기재되어 있어야 합니다. 당대의원들과 당원들의 발의 동의를 부탁드립니다.


평화 노동당 제안 배경:


우리당의 정치적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일하는 사람들의 보람과 행복을 가로막는 정치적 질병들과 장벽들 진단하고 그 해법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데 있다. 당명은 당의 정치적 지향점을 담고 있어야 한다. 평화로운 노동자 공동체 건설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이제 새로운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지정학적으로는 한국의 경계를 넘어 동아시아 노동자들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일할 수 있는 정치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어떤 의미에서 아시아의 ‘적은 유럽연합’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당의 명칭으로 <평화노동당>을 제안한다.


평화롭고 자유로운 노동공동체가 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그것은 97년 IMF 긴축통치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살벌하고 공격적인 자본주의 체제이다. 이구동성 말한다 ‘사는 게 전쟁이다. 집 한칸 마련하는 것도 전쟁이고, 아이들 학교 보내는 것도 다 전쟁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전쟁 진짜 전쟁이 있다. 다른 나라 자본주의 경제전쟁과 비교해서 한반도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전쟁에다 실제 군사적 무기증강 전쟁을 벌이고 있다.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일한 과실은 우리 아이들 입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미국 유럽 군수자본가들의 품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우리는 ‘실질적 가상적’ 전쟁공포에 시달리고 있다.이런 정치적 무대를 고려하면, 우리는 전쟁터 (휴전상태)에서 평화로운 노동자 공동체 건설이라는 과제를 떠 안고 있는 것이다.


이제 <평화>와 <노동>담론은 새롭게 혁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89년 몰타회담이후 해체된 ‘냉전시대’ 이후, 그리고 97년 IMF 신자유주의 긴축통치 체제 이후 변화된 정치적 현실과 과제를 포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12년간 진보정당 운동의 쇠퇴와 위기 원인들도 이러한 새로운 정치적 과제들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데서 찾을 수 있다. 에둘러 가지 말자. <평화>와 <노동> 정면으로 다시 도전하자. 우리 일상에서는 <평화>담론과 <노동>담론이 떨어질 수 없지만, 형식적으로 분리해서 <평화>와 <노동> 패러다임으로 그 의미를 살펴보자.


평화노동당 <노동> 해제


1. <노동> 패러다임과 담론의 혁신 : 생물학적 사회진화론과 신분차별과의 대결

97년 IMF 긴축통치의 악영향은, 자본주의 논리가 일상생활의 삶의 원리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부자 DNA'론,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아주 정상적이고 쿨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소비 인간형이 대세가 되었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아파트 평수 맞춰서 친구 사귀는 것은 그저 과장된 풍문인가? 97년 이전과 ’노동‘에 대한 여론이 달라진 것은, ’지잡대‘라는 말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노동>이 교육제도를 통해서 ’신분차별‘을 강화하고, 마치 한국이 인도와 같은 카스트제도를 시민사회에 이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적자생존 생물학적 사회진화론과 신분차별적 ‘노동관’과 ‘제도화’를 철폐하기 위해서 좌파는 새로운 <노동>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 


근면 절약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박정희 권위주의적 통치 이데올로기는 박근혜 시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빌딩, 땅, 금융자산, 부모 재산없이 노동해서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보수 우파들의 사회통합-이데올로기의 파산선고이다. <노동>담론의 복원은 바로 지배계급의 자기 모순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노동>의 정치윤리학에 대한 좌파적 복원이다. 이는 소득 재분배, 노동소득 분배, 생산수단 금융자산에 대한 개혁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노동 소득 바깥 기본소득의 담론도 이러한 노동 패러다임과 결합이 되어야 정치적 힘을 더 크게 발휘할 수 있다.


2. <노동>정치의 혁신 : 노동과정에서 정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12년 진보정당의 오류를 극복하라.


노동정치의 출발 공간은 일터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노동과정이다. 노동자는 단순한 복지후생 복리를 받는 수동적인 현금-인수기가 아니다. 노동과정 속에서 진정한노동해방과 자아실현이 발견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자유로운 정신이 노동과정 속에서 표출되어야 한다. 자본가와 경영자의 지시와 명령 통제에 따르기만 수동적인 월급쟁이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진화해 오고 있는 공장평의회, 토지 점거운동, 노동자의 자주경영의 모델을 적극적으로 다시 연구하고 실천해야 한다.


좌파정당의 정책 생산 역시 이러한 구체적인 노동자들의 일터에서 노동과정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노동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생생한 희로애락의 이야기들 속에서 정책과 정치가 추출되어야 한다. <평화노동당>에는 해외 국가들의 선행 정책들만이 소개되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 스스로 정책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정치활동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일터가 국회이고, 노동자 1명 1명이 국회의원이 되게 하라. 3000 여 직종의 노동자들을 진정으로 대표하는 인민국회를 만들기 위한 출발점이다.


3. <노동> 패러다임 바깥 정치: 생활터전에서 정치적 실천의 주체로서 노동자


노동자가 생활터전에서 정치의 주체가 되는 것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노동 과정 바깥, 일터 이외에 생활터전에서도 노동자의 정치의식과 계급의식이 형성되고, 충돌과 갈등, 변형과 변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97년 이후 한국자본주의 돈 위주의 생활양식은 일터 뿐만 아니라, 쉼터, 놀이터, 가정, 사랑의 공간까지 다 점령하고 침입하고 있다.


노동자가 생활터전을 장악하려는 이러한 자본의 논리에 맞서서 싸우고, 계급계층차별적 요소들을 제거해 나가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논란이 되는 노동자 중심성이라는 말은 노동자가 생활터전에서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로 변경되어야 한다.


노동자가 생활터전에서 정치활동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조건은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자 문화의 변화이다. 노동자는 월급쟁이로 해석되는 게 아니라, 생활터전에서 정치적 자유시민, 문화인으로서 해석되어야 한다. 노동문화 창조자로 인식되어야 하고, 우리 당의 정치적 실천이 되어야 한다. 녹색과 생태정치의 실천 역시, 이러한 생활터전(일터,집터,쉼터,놀이터와 자연)의 정치와 결합되어야 한다.


4. <노동> 국적/인종/민족을 넘어, 아시아의 노동자 허브, 평화로운 노동자 공동체 건설로 나아가자.


한국 노동자의 일은 아시아 노동자의 일과 관심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25년 동안 한국 자본주의 축적양식과 노동자 구성은 변했다. 노동력의 국경이동, 한국 자본의 지리적 공간 이동 (중국, 베트남 등), 농촌 지역 국제결혼 증가로 인해서 노동자들의 정치의식 역시 변화하고 있다. 외국인 140만, 아시아 이주 노동자 40만 시대, 개성공단, 다가올 중국과 북한의 변화 등은 한국 노동운동과 좌파정당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는 더 크게 미칠 것이다.


이러한 노동자 구성의 변화 시대에, 노-노갈등을 조장하는 자본의 이간질에 굴종하거나 자폐적인 민족주의에 갇힐 것인가? 아니면 아시아 노동자들과 연대를 구축하는 계기로 반전시킬 것인가? 이제 <노동>은 적어도 아시아의 관점에서 재해석되고 정치적 실천 역시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좌파당, 우리가 건설할 당에, 아시아인들도 우리 당원이 되게 하자. 


workers freedom.jpg

  (모여 같이 살자)


평화노동당 <평화> 해제


1. <평화> 담론의 혁신과 확산, 그리고 직접 행동 - <평화노동당>과 청년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사람을 살려야 한다. 전쟁이 발발하지 않는데 사흘에 1명씩 청년이 죽거나 자살하는 나라는 전 세계 아무 곳도 없다. 한국 군대의 현실이다. 청년군인 인권향상에 직접 개입해야 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의 비범죄화 운동, 대체복무 운동을 벌여야 한다. 국방의 의무가 아닌 ‘청년 노동’의 관점에서 병역의무를 재해석해야 한다.


2. <평화>는 복지비 재원이다.


한국은 미국 프랑스 유럽의 군수자본에게 이스라엘 다음 최고급 럭셔리 고객이다. 이런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동자들이 일해서 번 돈이 복지로 쓰이지 않고, 보잉 록히드마틴 군수자본가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아내야 한다. 한반도와 동아시아는 군수자본의 신무기를 테스트하고 실험하는 가상전쟁터가 되어서는 안된다. 군수상품 구입비를 복지예산으로 바꿔야 한다.


3. 동아시아의 평화 공동체의 허브로 만들어야 한다.


북한의 핵무기 실험,보유 반대, 한반도의 비핵지대화, 그리고 한-미-일 전쟁연습을 반대해야 한다. 남북한 평화프로세스 주제를 민주당이나 새누리당, 특정 진보세력 소관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한반도에서 냉전해체라는 정치적 실천에 <평화노동당>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고, 담론 및 여론전 수행에 최선두에 서야 한다.


4. 한국 좌파의 정치적 책무: 

 <평화>체제 구축없이는 정치적 좌파의 대중적 확산은 난항에 겪는다.


북핵, 서해 전투,전쟁 공포 여론만 형성되면, 좌파정치는 여론에서 사라지거나 천막뒤로 사라진다. 우리는 이런 냉전체제 분단체제 하, 새누리당,민주당과의 달리기 시합에서 15kg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고 있다. 유비하자면 15kg 모래주머니 밑에 구멍을 내서 모래가 서서히 빠져나가도록 해야 한다. 좌파정치 사상의 확산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평화 담론, 실천을 우리 스스로 계발하고 실천해야 한다.


전세계 국방비의 절반 이상을 쓰는 군사강대국 미국, 러시아,중국, 일본에 둘러싸여 있는 냉전의 섬이라는 정치감옥을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전 세계 다른 나라 좌파와 사회주의자들과 다른, 우리들에게 맡겨진 정치적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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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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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노동2014. 7. 31.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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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고치는 사람들이 아침 햇살 속에 열심이다. 갑자기 사다리 탈 줄 아냐고 묻더니, 지붕 위로 데려가 줬다. 아래서 볼 때는 별로 높아 보이지 않았는데, 올라가다가 보니 꽤 높았다. 처음이라 그런지 어질 어질 했다. 이탈리아 영어 섞어 써가면서 엄청난 빠른 속도로 지붕 수선을 했다. 이탈리아 포르투칼 이민자들은 이런 일반 주택 뿐만 아니라 지하철, 도로 같은 사회간접 자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옆집에 사는 도미니코 할아버지도 프랑크캐슬 지하철 역을 자기가 지었다고 이야기 한 적도 있다. 


1. 지붕 수리기사 말에 의하면, 이 목재는 100년 넘게 버틴다고 한다. 



2. 안전줄을 매고 지붕 꼭대기에서 일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3.  못 권총 : 따따닥 귀청 떨어진다. 




4. 어딜가나 대장이 있는데, 아휴 목소리 컸다.




5. 일하는 속도가 엄청나다. 이유를 물어보니, 오후에 소나기 내린다는 예보가 있다고, 얼른 끝내야 한다고 했다.

일기 예보에 민감한 노동이다.



6. 중간에 다리를 설치해서 일하는 게 인상적이다. 



7. 지붕과 지붕 사이를 달려가는 영화 장면이 있었는데, 실제 옆집으로 뛸 수는 있겠는데, 중간 사이 낭떠러지를 보니 현기증이 일어나다. 


겨울이 길어서, 여름 내내 온통 시내가 다 공사중이다. 도로 지붕 할 것 없이.



어린시절 지붕에 고무 공이 올라가 버려서 사다리 놓고 지붕 위에 올라가곤 했다. 그 때는 빨간 기와였는데, 지붕 위로 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지붕 고치는 사람들, 못 권총을 들고 근육이 실룩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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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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