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민주당2017. 2. 8. 20:43


정당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생각하다


- 감동하다가 식어버린 이유


고민정은 스승 신영복을 말했고, 전인범 특전사 사령관은 “문재인은 빨갱이가 아니죠? 전 확신합니다”라고 했다. 논리적 모순을 찾아야 하는 내 직업병일 수도 있겠지만,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다.  신영복을 스승이라고 한 고민정과 전인범의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민주당이야 이념적 흐름들이 다양하고, 또 한 정당 내부에서 서로 긴장하고 경쟁하거나 상충할 수도 있는 정치적 노선들도 공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좋은 신호는 결코 아니다.


사실 고민정의 문재인 캠프 합류 뉴스보다는 그 남편과의 사연이 더 크게 보였다. 눈시울이 뜨거웠다. 이름도 어려운 무슨 난치병을 가진 시인 남편에 대해 고민정은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고 했다.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시대에, 또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도 ‘존경’이라는 말이 많이 줄어든 이 세태와 대조적으로, 고민정의 ‘존경’ 언급은 품격있는 고전적인 클래스였다. 


이런 뉴스 때문에 고민정이 읽는 ‘문재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듣게 되었다. 고민정은 문재인과의 첫 만남을 소개했다. 고 신영복 선생의 영결식장이었다. 고민정은 신영복을 자기 스승이라고 언급했다. 신영복은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빨갱이"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를 가둔 건 516 군사쿠데타 이후에도 김종필 박정희의 좌익전력도 의심하고 세탁하려고 했을 정도로  반공사상이 투철했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신영복 선생은 “빨갱이” 죄목으로 20년간 감옥살이를 해야했다.   


고민정과 많은 이들이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 사색>이라는 책에 감명을 받는 이유는 꼭 신영복 저자가 정치적으로 좌파여서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은 1988년 출소 이후 줄곧 ‘연대’ 정신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는 우파보다는 좌파라는 일관성 노선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신영복 선생이 애초 자기 전문 분야인 경제학보다는 노자 장자 사상과 유가 사상을 통해 한국 사람들의 삶을 설명하려 했다. 기존 좌우 프레임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하지만  그 일관된 사상적 기초는 “함께 맞는 비 (연대)” 정신이었다. 


그런데 전인범 특전 사령관은 무대 위에 올라오자 마자, “문재인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다. 한미 동맹을 강화시켜 국민의 안전을 지켜내겠다”고 했다.


도대체 소련과 미국의 냉전 종식은 1989년 몰타 회담에서 그 시작점을 알렸다. 28년이 지났다. 소련은 러시아로, 중국은 미국을 대체할만큼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이런 변화된 국제정치 힘관계에서 한국의 안보 개념은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자립적이고 실용적인 외교 노선을 정립해야 한다. 미국의 무기 수출국가가 아니라 한반도를 평화구역으로 만들 궁리와 실천을 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안보 아닌가? 


보수 유권자를 향해 “문재인은 빨갱이가 아니다”를 외치는 게 이러한 변화된 국제질서를 반영한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발언인가? 정치적 후퇴이고 퇴행이다. 


민주당 문재인의 영입인사가 어디 전인범, 고민정 이 두 사람뿐이겠는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연찮게 이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한 무대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보고, 민주당이 너무 급해 보인다. 보수적인 유권자들 때문인가? 


고민정과 난치병 시인 조기영과 감동적인 아름다운 사연에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지다가, 전인범 특전사령관의 발언을 듣고 나서, 갑자기 그 뜨거움이 식어버렸다.



사진 출처 동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39biUMaFJmU&t=3946s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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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2016. 2. 13. 14:29

박근혜 통치스타일은 박정희의 '군사작전'을 흉내낼 뿐이다. 전두환-노태우는 스네이크 박정희의 '변신술'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최근 현대사 책들을 다시 검토하면서, 50년대~70년대 선배들의 투쟁에, 그들 중 일부는 이후에 변절했다할지라도, 총에 맞고 죽어간 감옥에 투옥된 선배들을 다시 생각해 보고 있다. 2016. January 20 at 12:27pm · 

박정희는 그 '동지들(육사 5기, 육사 8기)'도 집권연장의 '폭죽'으로 사용해 하늘에 아름답게 날려버렸다. 결국 그 동지들 총 맞고 박통이 박살나버렸지만. 그야말로 배우 황정민 50배를 능가하는 변신의 귀재, 스네이크 박정희의 '화해의 죽음'은 '죽음의 전설'이었다.

역사 책 속에서 다시 깨닫는다. 박근혜 덕택에 말이다. 전두환-노태우는 박정희 체제 하에서 18년간 '군사작전 (블리츠-크리크 Blitzkrieg)식 적군 및 경쟁자들 섬멸작전을 배웠다. 전두환-노태우가 박정희에 비해 소심했던 것은, 동지들의 총 맞고 죽지 않기 위해 '돈다발'을 동지들에게 자주 자주 찔러주면서 박정희처럼 '직접적 섬멸'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전에 난 미 노스캐롤라이나 미 해병대 라이언 상사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중동에 대 테러전쟁에 참여한 전쟁 베테랑이다. "(전쟁터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 무섭진 않냐?" 는 질문에 "적을 꼭 죽여야겠다고 쏘는 건 아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쏘는 거다"

군사작전식 정치라는 것은 '먼저 쏘기다'.

 두 박통들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적을 섬멸하고 블리츠클리크로 집중포화해서 콕 꼬집어 죽이는 것일 뿐', 꼭 그들이 인간적으로 미워서 그러는 건 아니다. '내가 이 전쟁터에서 총을 먼저 쏘지 않으면 적의 총탄에 내가 죽기 때문이다' 그게 박정희식 정치였다. 적도 동지도 1초, 3초, 2년, 10년 가는 것일뿐, '내가 살기 위한 군사작전'만 있을 뿐이다.

박근혜 말대로 '저런 건 슬픔도 아니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벌꿀 (꿀벌)처럼 열심히 매일 매일 적들과 경쟁자들을 섬멸하기 위해서 벌꿀 벌꿀을 따야 한다. 쉴 새가 없는 것이다. 유병언 죽음의 쇼도 해야 하고, 정보기관 '손발'도 필요하면 천국 지옥으로 파견보내고, 온라인에서도 'Blitzkrieg' 팀을 만들어서, 혼외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 적을 섬멸 타격할 모든 자원을 가동해서, 화염방사로 자존심과 자긍심을 불태워 씨를 말려야 한다.

꼭 그들이 인간적으로 미워서가 아니다. 그들의 정치적 이념은 이렇다. "산다는 게 다 전쟁터이고, 내가 배반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쏘지 않으면 내가 죽기때문이다." 이런 정치적 가치와 이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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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 당시, 장도영 참모총장을 앞장 세웠으나, 3개월 후 반혁명분자로 실각시키고, 미국으로 망명보냈다.





박정희는 516 군사쿠데타 주력 군대였던 육사 5기 (오른쪽 김재춘)와 육사 8기 (왼쪽 김종필)를 서로 충성 경쟁시키면서, 처음에는 김종필을 중앙정보부 창설 책임자로 내세우다가, 그 다음에는 육사 5기 대표격인 김재춘에게 자유민주당 창설을 맡기고, 김종필의 '공화당'과 경쟁을 부추긴 후에, 최종적으로 김재춘을 내쫓고 김종필을 등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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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 왼쪽, 김형욱: 가운데 ) 



박정희는 육사 5기 김재춘 등을 권력에서 배제한 이후, 육사 8기인 김종필과 8기생 김형욱을 다시 등용하고 서로 경쟁시킨다. 이북 출신이자 반공반북주의자였던 김형욱은 중앙정보부장을 6년간 재임하면서 동백림 사건, 인혁당 사건, 통혁당 사건 등을 발표했고, 심지어 박정희와 김종필의 좌익 경력을 문제삼고 이를 세탁하기 위해 노력할 정도였다. 그러나 박정희는 김종필과 김형욱 어느 누구 편도 들지 않고, 둘 다 견제하고 둘 다 용도 폐기했다. 
이후 김형욱은 미국에서 유신독재 박정희 타도를 외치다가, 1979년 10월 살해당했다. 
군사 쿠데타 주역들 내부에서 서로 매도하고 서로 죽이는 결과를 낳고, 참혹한 배신과 배반의 역사를 남겼다.





박정희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 당시 육사생도였던 전두환과 노태우 (육사 11기)를 집권 내내 지원했고, 이들은 영남 출신 육사 장교 모임인 '하나회'를 윤필용과 더불어 만들었다. 

박정희는 군사쿠데타 주역이었던 육사 5기와 육사 8기를 견제할 차세대 육사 11기를 내부에서 키웠다. 전두환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친위 시가지 행진을 벌였고, 그 이후 박정희에 대항하는 육사출신 선배들 (육사 5기, 육사 8기)과 경쟁하면서 자파인 '하나회'를 키워나갔다. 이로써 1979년 박정희의 사망 이후, 1212 군사쿠데타를 감행할 물리적 군사력을 전두환은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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