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창고/20112019. 1. 26. 17:49

2011.01.18 19:51


셈수호르/ 기계적 도식적인 사고는 현실에서 정치운동을 축소시킬 수 있습니다.


원시 조회 수 950 댓글 12 ?


새진보당 논의나, 통합관련 토론은 따로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통합 논란> 문제의 원인들은 여러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정치를 포함해서)  당내에, 당게시판에서, 잘못된 이분법, 노동정치 강조=진보신당 사수파이고, 나머지는 통합파 이런 식 논의는 문제의 복잡성을 너무 단순화시킨 것입니다. 올바른 문제진단도 아니고, 해법도 <속칭 묻지마 만사형통 통합파>와 비생산적인 논의만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습니다.


중간계급과 노동자계급(진보신당이 당 통합 논의에 휘둘리는 이유)

셈수호르 2011.01.18 16:29:48 691 / 0 2

http://www.newjinbo.org/xe/962415 


셈수호르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열심히 데모하고,공장노동자들과 같이 정치사업을 하시는 분에게, 비판을 가하려니 기분은 좋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전적인 (좋은 의미로)" 활동가시라는 느낌도 받습니다. 


요새 당게시판, 그리고 한국 좌파들,진보정당들, 정치인들, 셈수호르님이 "이론적인 마르크스 해설서" 언급하시면서 중산층/중간계급, 이런 것과 과연 얼마나 상관이 있을까? 셈수호르님은 <중간계급 middle class : 중산층, 중간층 이렇게 해도 무방하다고 봄> 틀로 설명해보려 하지만, 1) 그런 시도는 의미도 있겠다 그런 생각도 듭니다만 2) 너무나 많은 다른 논쟁들이나 사회조사가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가버릴까 우려됩니다.


1. 셈수호르님의 글에서 나타난,  "노동자 계급", "계급과 정치의식"의 관계에서,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사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한국에서 고민해야 할, 또 전세계적으로 생각해봐야할 지점은, "노동자 계급이 혁명적이다"는 명제에 대한 신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것인가?", 혹은 "왜 노동자들은 한나라당에 투표하고, 민주당에 투표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우리의 정치적 답변이 있어야 합니다. 


또 구체적으로 현대자동차 노조,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선거 패턴은 왜 "1차 투표에서 비운동권 1위, 2차 결선투표에서는 1차 투표에서 2위를 한 운동권 정파가 다시 이기는가? (실용주의파가 이긴 적도 있지만)" 87년 투쟁, 97년 IMF 위기 이후 그 차이는 뭐고, 왜 한국의 노동조합 노조도 "완장과 계층 상승"의 논리 앞에 무기력한가? 이런 "정치의식"에 대한 원인 분석과 답변, 실제 피튀기는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셈수호르님은 아니 정규직 말고, 다른 어떤 순수한 계급의식을 말하고자 합입니까?


2. 셈수호르님의 정치적 주장 (통합논의 등)에 대해서 공감은 가지만, 이를 증명하는 방식은 별로 답변이 못된다고 봅니다. 


초등학교 야구배울 때, 코치님이 "직구 이외에 변화구나 커브를 못 던지게 합니다." 그러나 프로야구에 와서, 야구 투수들의 어깨와 팔의 성장이 어느정도 멈추기 시작한 시점에서는 "변화구, 체인지 업, 슬라이더, 포크볼, 팜 볼, 스플릿" 등 직구가 아닌 다른 구종들을 장착하게 합니다. 


계급분석 직구입니다. 계급과 정치의식의 관계, 또 계급과 거리가 실제 존재하는 (상대적 자율성이건) 정치의식에 대한 설명은, 야구투구와 비유하자면,  변화구, 커브, 체인지 업, 슬라이더, 포크볼, 팜 볼, 너클 볼, 스플릿 등입니다. 


(*한국의 좌파 수입업자들 중에, 알튀세의 "over-determination: A라는 결과를 낳는 원인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이상일 될 수 있고, 정치적 정세에 따라서 어느 특정 원인이 더 부각되거나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다라는 의미 = 다-원인 결정 이라는 의미인데요. 이걸 중층결정론이라고 번역을 해서, 한국말이 이상해짐. 여튼 인간의 정치 의식을, 계급 계층의 정치의식을 결정하거나 규정하는 요인이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한 대답이라고 봄) 


고전적인 의미에서 "노동자 계급의식은 외부에서 - 전위 정당, 조직 정당- 주어지는 것이다 (레닌)",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주체적 능동성을 강조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대립각이 해결된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그람시와 다른 좌파들이 70년, 60년 전에 던졌던 질문 "왜 노동자계급들은 공산당에 투표하지 않고, 다른 정당들에 투표하는가?" 이런 문제들도 지속적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주제들입니다. 


3. 한국 정치사에서, 반독재 저항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 등에 대해서 실사를 하게 되면, 위와 같은 셈수호르님의 도식적인 계급 = 의식의 일치 공식은 이에 대한 합당한 사례들보다는, 반례들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가 앞으로 더욱더 고려해야 할 정치적 주제들은, 도시들 안에 거주하는, 다양한 계급 계층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의식들입니다. 공장 플랜트 안에서만 일하는 "노동자 계급의식"이 아니라, 도시 전체 삶의 공간과 인적 네트워크에서 움직이는 노동자 시민들에 대한 정치적 문화적 의식들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노동정치가 확장되지 않으면, 셈수호르님의 분류법이나 계급=의식 일치/상응 공식은, 오히려 노동정치를 축소시킬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위 글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쓴 것입니다. 세세한 것은 시간이 허용하는대로 올려보겠습니다만...당원들과 같이 토론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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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2'

카르킨 2011.01.18 20:31

다른 나라에 계시는 분이라 설정이 아니라 


일부라도 실현을 하고 있는 그곳에서 본대로 얘길하시네요.


 댓글

셈수호르 2011.01.18 21:21

 제 글에 대한 코멘트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아쉬운 점은 제가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한 평가라는 점에


있습니다.  저는 계급 분석만 했지 그들의 정치의식을 단 한번도 분석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했던 


것은 한국 사회의 구성 계급을 양적 크기로 분석해본 것이 고작입니다.   제가 당게에 글을 쓰는 것은 노동자 

대중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아실 것입니다.  당원들에게 호소하고 설득하기 위해 쓰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단 한번도 노동자계급은 노동자 의식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존재적 위상이 노동자라는 것 뿐이지 그들이 노동자 의식으로 무장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그런 불일치를 해결해가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이기도 하지요.  자동적으로 존재와 의식이 일치하면 우리들이


구태여 정당을 만들고 활동을 할 이유는 하나도 없겠지요.  그들이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원시님은 저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원시님 자신의 의견을 올리시는 것이 좋겠네요.


저는 비록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보다 사회 전체가 강요하는 의식의 강력함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저는 지속적인 실천을 강조합니다.  말이 아니라 실천!  우리 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어떤 정책과 공약을 내놓아도 노동대중들은 그저 괜찮구나! 하는 수준에서 그냥 흘려보냅니다.


마음을 안 열고 있는 것이지요.  자본주의 사회의 지속적인 강력한 세뇌가 그들의 마음을 우리로부터


닫아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닫힌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은 제가 볼 때는 바로 신뢰! 그 자체입니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 우리들이 믿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우리들에게도 마음을 열고 우리의 주장을 들어보게 됩니다.  그렇게 하여 자본주의


사상과 우리의 사상이 경쟁하게 하는 것이지요.  


"공장 플랜트 안에서만 일하는 "노동자 계급의식"이 아니라, 도시 전체 삶의 공간과 인적 네트워크에서 움직이는 노동자 시민들에 대한 정치적 문화적 의식들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람시적인 목소리로 들리는군요.  그런데 전 그런 접근법에 대해선 하등 관심이 없습니다.  패배자의 변명같은 느낌이 강해서 말입니다.  저는 학자적인 분석에 현실을 꿰어맞추는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것이 부족해서 우리 운동이 질곡에 빠졌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잎처럼 원칙조차 지키지 않고 끊임없이 개량화하는 운동가 자신이 운동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라서 입니다.


 댓글

잘살자 2011.01.18 23:21

원시님의 말은 '시의적절하게 변화구도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인데요.

 댓글

원시 2011.01.18 23:25

셈수호르님/ http://www.newjinbo.org/xe/824120 => 여기서 쓰신 내용이 정운영<가치론>에 나오는 이야기랑 비슷합니다. 아니면 셈수호르님과 정운영님이 우연찮게 똑같은 책이나 비슷한 글을 읽은 것 같군요. 




우리 운동을 회생시키기 위한 조건들은 많다고 봅니다. 


이론이 뭐를 의미하는지 모르겠지만, 필요한 공부는 늘 하는 것을 셈수호르님이 부정하는 것은 아닐테고요. 




학습의 범위는 무궁무진하고 다양하다고 봅니다. 그것까지 부정하실 필요가 있나요? 


셈수호르님도 계속해서 이론적 용어도 사용하고, 비판도 하면서 쓰시는 용어들도 다 어떤 특정 이론적 사유나, 관점이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네 현실에서 팩트 팩트 사실 사실 이런 게 있나요? 




학습과 이론공부라? 이렇게 개명된 세상에 그 두 개가 분리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삼성이 바보여서 <경제연구소> 만들어서 수십명 조사원 데려다가 월급주고 고용하는 게 아닙니다.


셈수호르님은 누구랑 싸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치적 적들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지?


비정규직 노동자들 교육시켜서? 박사만들어서 <삼성경제연구소>에 대적하자? 그게 아닙니다. 




누가 우리의 정치적 적이나, 경쟁자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그 정도입니다. 




알튀세니 뭐니 그건 에피소드에 불과하고요. 


 댓글

셈수호르 2011.01.18 22:37

 죄송한데요.  정운영씨의 책은 읽어본 적도 없네요.  저는 이론적인 부분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이론이 


우리 운동을 회생시켜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람시 이후부터인


것 같군요.  그래서 알튀세도 전혀 와닿지 않았습니다.  실천적으로 패배하고 실패하니 그것에 대해 자꾸만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하는 것이 위와 같은 이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학습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런 학습은 기본적인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본이 어디까지인지가 문제긴 하지만요.




원시님은 지금 학습과 이론 공부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댓글

원시 2011.01.18 21:41



"오히려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잎처럼 원칙조차 지키지 않고 끊임없이 개량화하는 운동가 자신이 운동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라서 입니다."




=> 좋은 사례들을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그게 알려졌건, 알려지지 않았건, 큰 성공이건, 적은 성공담이건, 그런 일을 잘 하시는 분들도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셈수호르님이 학자적인 분석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 학자들이 말하는 것을 쓰고 있지 않나요? 정운영"가치론"을 요약해서 올린 것도 있던데요. 셈수호르님 용어가 학자적이라고 봅니다 "자본주의 사상"이 뭔지, 거기에 경쟁하는 우리의 "사상"이 뭔가? 이건 학자적 용어가 아닌가요? 님이 예를 든 마르크스는, 자기 고향 트리어에서 가까운 "본 Bonn"대학에 입학했는데, 본인 의지이건 부모님 권유인지 모르지만, 당시 프러시아에서 유명한 대학인 베를린 대학으로 "편입"합니다. 




님이 자주 쓰시는 마르크스는 실천가이자 학자입니다. 그래서 셈수호르님의 "실천 강조"를 이해 못함이 아닙니다.


전 지구 끝까지라도 가서, 우리에게 필요한 경험이나 이론이 있다면, 정치적 지혜가 있다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우리 운동이 질곡에 빠진 이유들이 뭔지 계속해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에는 문맹률이 높았습니다. 지금 한국의 노동자들은 마르크스 시대 학자만큼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정치 정당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고민을 했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학자와 노동자를 구별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시대건 공산주의시대건, 학자도 지식 노동자입니다. 이미 대학 교수도 노조원이니까요. 


그리고, 전 노동자들이 학자가 쓰는 용어를 쓰는 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는 그런 시대가 왔으면 합니다. 




셈수호르님이 쓰시는 "학자" 개념 규정은 위에서 제가 말한 게 아니다, 라고 하실 수 있지만,


전 그런 대립구도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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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본주의 특성과 노동 패러다임 : 노동(1)이란? 신분차별 혁파의 무기로 거듭나야 한다

87년 체제와 97년 이후 차이 - 노동에 대한 인식 변화 ,2013.07.12 00:50


[문제의식] 노동담론의 의미는, 마르크스 '자본 ' 서술 당시, 제조업 공장 노동자들처럼 현재 한국 자본주의 노동자 계급 구성이 단순하지 않고, 적어도 3천여가지 직종에 노동자들이 산재해있지 않습니까? 계급의식들이 다양해지고, 노동자들의 '연대' 가능성은 과거처럼 쉽지도 않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그럼 어떠한 방향으로 '피해대중들의 정치의식'을 모아낼 것인가? 


우리는 노동과 직업을 둘러싼 생물학적 사회진화론적 가치관과 싸워야 합니다. 97년 IMF 통치 이후, 한국식 자본주의는 봉건적인 신분차별적 성격을 강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사회와 일상 생활에서는 교육제도를 매개로 사회적 지위/신분계층의 고정화, 계급계층의 고착화, 부와 가난의 대물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잡대, 서-연-고 IN 서울 대학, 엄친아론 등은 우리들에게는 문화적 충격이고, 정치적 좌절의식까지 생기게 합니다.


한국 교육제도는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고 있고, 노-노 갈등을 정치경제 문화적으로 분열하고 조장하고 있습니다. 익히 아는 사실입니다. 87년과 같은 민주노조 운동을 통해서 계급의식의 생기거나 노동자의 단결의식이 만들어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총연맹이나 산별노조의 단체협약이 동일 업종에 적용가능한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노-노 갈등이나 상대적 박탈감이 조장될 가능성이 오히려 더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산업구성에서도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가장 고용이 많은 직종이 ‘상점 점원 (알바)’입니다. 제조업 고용 성장의 한계에 부딪혔고, 한진 조선업의 필리핀 수빅만으로 이전과 같은 자본의 지리적 (공간) 이동도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노조는 노조대로, 좌파정당은 정당대로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후자에 대해서만 간단히 쓰자면, 우리는 “가난과 부의 대물림 구조” “개천에서 더 이상 용 나지 않는다”는 불공정 게임과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담론과 정면으로 싸워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노동소득’으로 행복추구가 가능하고 자아실현 및 가족 부양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 숫자는 97년 이전과 그 이후가 확연히 다를 것입니다. 자본주의 자본축적의 원리(이윤의 극대화)를 자기 가치관으로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내재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동산 자산, 금융 자산이 없는 사람들도 역시 ‘노동 소득의 종말’ 이데올로기에 동참하고 있고, 시민사회의 보수화는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 소득’의 문제, 분배영역에서 정치 윤리학의 붕괴 현상을 우리 좌파가 먼저 제기해야 합니다.


노동 담론의 복원과 신분차별 혁파의 무기로 나아가야


2000년 이후, 한국 진보정당에서 전 사회적으로, 혹은 민주당과 보수당과의 경쟁에서 문제제기한 주제들을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2002년 민주노동당의 경우: 재분배 (redistribution) 즉, 세금의 정치학 (부유세등)을 가지고 민주당과 한나라당(새누리당)과 경쟁했습니다. 그 자체로 정치적인 혁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재분배 세금 정치학도 제대로 세련되게 발전시키지 못했고, 2004-2008년 노무현 정권 기간에, 노-노 갈등을 부추기고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는 노동 소득 분배(income distribution)의 정치 역시 성공적으로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2008년 미국 금융자본 공황 이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위기의 근원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고 그 해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자본주의적 생산과 현행법에 의거한 소유권의 문제: 1) 생산체제에 대한 비판, 2) 선진금융기법과 앵글로색슨식의 금융화 이윤산출방식 비판, 3) 노동소득에 대한 전사회적인 경시 풍조, 회의주의적 태도, 그것들을 조장하는 정치제도, 법률, 정당 등 사회세력에 대한 비판과 직접 행동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물론 소득 재분배, 소득 분배, 생산 영역에서 생산수단과 소유권 그 순서를 일률적으로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노동 과정과 노동 소득만 언급하자면, 월급과 연봉 문화로 대표되는 분배 문제에, 그리고 신분 차별을 강화하고 조장하는 소득 차별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해야 합니다. 대학개혁 역시 이 분배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임금 격차 by 김유선.jpg

(출처: 김유선 연구원 : http://iminju.tistory.com/1094 )


아주 단순하게 1가지 사례를 들겠습니다. 직장인들에게 (학교 교사나 교수,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없이) 가장 중요한 맥주집 소주집 소맥집 치킨집 화두는 “연봉과 승진” + “정년” 입니다.

여론의 1차적 작업은 “소득 차별”을 줄이자가 아니라, “소득 차별의 정당화”에 대해서 묻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소득차별’ 해소 문제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도대체 당신은 자기 직장에서 바로 위 상사와 얼마나 적게 받아야 안심/만족, 혹은 정의롭다고 생각하는가?”이렇게 대중들에게 물어야 하고 여론전에 임해야 합니다.


좌파의 정치적 행위의 출발점은 대중들의 의식과의 교류라고 봅니다.

노동소득의 무효화 시대, 즉 땅이나 부동산, 주 채권 펀드 등 금융자산이 없으면 '안심‘이 되지 않거나 ’중산층 (10억 현금 보유)‘이 되지 못하는 이 노동소득의 무시 시대에, “노동 소득” 문제의 정치화는 2가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현 한국정치체제 (리버럴 데모크라시: 자유-민주주의)에서 노동소득과 관련된 ‘정의’ 문제를 좌파적 시각에서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고, 노동과 관련된 정치적 주제들을 내걸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더 공론화하고 확산시키기 위해서도 “노동 소득의 차별” 문제를 제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문제를 접근하는데는 지니계수, 로렌쯔 커브 (Lorenz Curve), 1인당 GNP와 중간값(median) 중위소득의 차이 문제, 노동소득과 자산소득의 비율 (서울과 지방도시 비교 등) 등 소위 케인지안과 제도학파들을 쓰는 주제들을 좌파적으로 해석하고 파고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소위 개량과 혁명의 접합지점을 우리가 먼저 형성해내야 합니다.


한국정치사에서 “소득 차별” 문제는 방치된 정치적 주제입니다. 2002년에 “세금의 정치학” 문제가, 1945-1975년 서유럽 사회복지국가 체제의 황금기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였던 “세금”제도가 한국 정치사에서는 “경제성장과 독재타도” 화두 때문에 전면에 등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소득 차별 문제가 지연된 정치 투쟁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소결


그래서 저는 우리가 지금 한국 시민사회에 노골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생물학적 사회진화론의 가치들과 정면으로 맞서고, "부자 DNA는 없다"는 슬로건을 외쳐야 한다고 봅니다. 노동빈곤(the working poor: 일해도 가난한 사람들) 문제에 대해서,노동소득으로 더 이상 행복해질 수 없는 대한민국 스타일 자본주의를 고발,직접적으로 비판해야 합니다. 이들이 우리 당원들이 되게 해야 합니다.


올해 초반 남양유업 갑/을 담론부터, 재벌 2세, 3세들의 동네 빵가게, 수퍼마켓, 식당 독식에 대한 전 국민적인 분노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식칼 테러의 책임자 현대 정주영에 대해서는 하다못해 창업주라는 레테르를 붙여주지만, 그 이후 재벌 2세, 3세들에 대해서는 '부모 잘 만난 것 빼고,' 당신들이 사회에 기여한 게 뭐냐? 삼성 이재용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CB) 사건 승소 “무전 유죄, 유전 무죄”에 대한 공분. SK 최태원의 금융 파생상품 투자 손실 이후 회사돈 회계 분식 등에 대해서 시민들이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동 담론의 부활이 필요한 시점이고, 보다 더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노동이 신분차별을 강화시키는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을 혁파할 수 있도록, 노동담론의 부활과 이데올로기 투쟁의 재점화를 시도해야 해야 합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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