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2015. 6. 18. 15:08



그였다. 한번 더 돌아서서 그 자리를 먼저 쳐다보았다. 똑바로 보지는 못하고 살짝만. 그가 십여 년 전처럼 열심히 잡지를 탐독하고 있었다. 해진 청바지에 화이트칼라들이 사무실에서 입는 윗옷 차림새로. 다만 옷 색깔이 많이 바랬을 뿐이지 그 차림새 형식은 그들과 같다. 반가웠다. 그가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은 잡지에 파묻고 있고, 양 미간을 찌푸리고 가끔 가다 적은 소리를 내며 신경을 곤두 선 채로. 옛날 그 모습과 거의 유사했지만, 얼굴 주름은 더 늘었다.


“20분 이상 머물러서는 안 된다. No Loitering. 20 minutes Time Limit" 이런 경고판은 큰 의미는 없었다.


그의 등장은 심상치가 않았다. 하얀 회색 색상 알루미늄 서류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커피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 알루미늄 가방을 괴나리봇짐 모양 어깨에 메고 온 것이었다. 오른 손이랄지 왼 손이랄지 손으로 들고 온 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역시 나처럼 자전거를 타고 도시 안을 이동하기 때문이었다. 그 괴나리봇짐 매듯이 줄로 칭칭 매고, 그 알루미늄 서류 가방을 테이블에 놓는 모양새 역시 심각했다.


그가 읽는 잡지, 신문은 주식 시장 동향을 비롯한 경제 뉴스, 국제 뉴스, 스포츠 다양했다. 잡지들과 그의 눈과는 10센티미터도 안되어 보였다. 그는 밤 10시 근처에 도착해서 새벽 3시, 4시까지 그가 알루미늄 가방에 넣고 온 잡지들을 읽다가, 시계를 확인하곤 마치 퇴근하는 사무실 직원처럼 괴나리봇짐을 등에 매고 커피집을 나갔다.


나보다 더 늦게 퇴근한 적도 많았다. 그는 진지했고 심각했으며 외로운 사상가처럼 보였다. 뭔가 맡은 사명이 있는 것처럼. 그는 좀처럼 옆 테이블 사람에게는 말을 건네지는 않았고, 내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아니 타인에게 방해될 만한 시선이나 말 행동은 없었다. 가끔 앓는 소리를 내거나, 그것도 아주 적게 들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 크기로. 혼자 그냥 자기와 사투하면서 양 미간을 찌푸리면서 매거진을 뒤적거렸다.


오랜만에 다시 들린 그 커피 체인점 테이블에 그가 십여년전 모습 그대로 그 잡지 탐독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었다. 반가웠다. 그가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그가 무슨 일을 하냐고 궁금했지만, 나는 그 당시도 오늘도 묻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그가 살아 있다는 게 반가웠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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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노트(독후감)2014. 3. 3. 20:17

와일드 "사회주의 하에서 정신(쏘울)" / 복지를 넘어서 진정한 개인주의를 향해

2010.07.05 15:16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는 정치학이나 경제학, 법학자는 아니고, 소설,시인, 작가인데, "사회주의 하에서 정신"- 국가와 개인의 역할에 대해서 쓴 게 있더군요. 사회관습과 보수적인 문화풍토에 저항하기도 하고, 귀족 아들 알프레드 더글라스와 동성애로 (당시 와일드를 Somdomite 로 언론에서 부름) 2년간 중노동에 처해지기도 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사회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생각을 아주 도식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제 이해입니다만), 사회주의 하에서 "창의적인 개인"의 창출이야말로 그가 생각한 이상적인 공동체였다고 봅니다.


이 오스카 와일드가 국가 (사회주의)와 개인의 역할을 둘로 나누는 부분이 조금 인상적이고, 또 당시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 돕는 자선행위에 대해서 "(자본주의적) 사유 재산권"을 지키면서 남 돕는 것 = (요새 말로 복지)에 대해서 비판한 대목이 기억에 남네요.

대강 발췌해서 번역했으니까요, 재미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사회주의 하에서 인간의 쏘울/영혼/정신) / 오스카 와일드 1891년


대부분의 사람들이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면, 가난한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 정도로만 한다. 혹은 조금 진일보한 사람들의 경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위안거리나 즐거움을 제공하는 정도로 빈곤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빈곤을 타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빈곤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진짜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것은 “빈곤은 있어서는 안된다”는 토대위에 우리 사회를 재구성하고 그런 사회를 실험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타적인 덕목들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어 왔다. 가장 나쁜 노예주는 그 노예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노예주인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친절을 베풂으로써,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듯이, 그 (노예) 체제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그 체제의 공포, 그 노예체제에 대해서 깊은 인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 알려진 그 체제의 공포를 차단-예방해버리는 것처럼, 가장 해악을 끼치고 있는 사람들이란 바로 가장 최고로 좋은 일을 하려고하는 사람들이다.


마침내 이 빈곤문제를 실제적으로 연구해온 괄목할 만한 사람들의 업적이 있었고, 빅토리아 런던의 가장 가난한 동네에 사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그 동네 공동체에서는 자선이나 자비와 같은 이타적인 충동들을 억제했다. 왜 그렇게 행동했냐면, 그러한 자선이나 자비가 사람들의 존엄성을 상실하게 하고 도덕적으로 해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각은 옳았다, 왜냐하면, 차선이나 자비행위가 죄악들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해석된다. 사유재산제도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악(빈곤같은)을 누끄러뜨리기 위해서 사유재산을 사용한다는 것이 비-도덕적이다. 이는 비도덕적이면서 동시에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다 고쳐질 수 있다…. (중략)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의 행복과 부를 나눠가질 수 있다.

다른 한편 사회주의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는 개인주의로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유재산을 “공동/공공 부”로 전환시키고, 경쟁을 “협동/협력”으로 대체함으로써, (우리가 이름을 뭐라고 붙이건 간에)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한 사회를 완전히 건강한 유기체(organism)로 복구시킬 것이고, 또 공동체 구성원들의 물질적인 행복을 보장해줄 것이다. 이러한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인생에서) 삶의 기초와 적합한 환경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최고로 완벽한 양식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을 완전히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뭔가 더 있어야 한다. 더 필요한 이 뭔가가 바로 개인주의이다.

1) 사회주의가 만약에 권위주의적이고, 2) 지금 (대영제국) 정부가 정치권력을 가진 것처럼, 경제력을 장악하고 있는 정부가 있다고 한다면, 3) 우리가 산업 독재체제들을 가져야 한다면, 마지막이 처음 것 보다 더 나쁠 것이다.


(…중략…그렇다면 국가와 개인의 관계와 역할은?)

(자발적 결사체로서 사회주의) 국가는 노동을 조직하는 자발적인 조직(협회)가 될 것이고, 국가는 매뉴팩쳐가 될 것이고, 필요한 상품들의 분배자가 될 것이다. “국가는 (우리에게) 필요하고 유용한 것을 만드는 것이다. 개인은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

(중략…) 기계는 인간의 허드렛 일을 대신해주고, 인간은 창조적인 활동 (철학, 과학, 문학, 문화 등)을 할 수 있도록 “여가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진화는 인생법칙이고, 개인주의를 향한 것없이 진화란 없다.

신-개인주의 (이를 위해서 사회주의가 복무해야 하는데, 물론 사회주의가 하려고도 할 것이고 하지 않으려고도 하겠지만)는 이제 완벽한 조화를 의미한다.

(고대 아테네처럼 노예노동을 착취하지 않아도 되고, 르네상스 시대처럼 노예를 굶어죽게 할 필요도 없고, 이제 사회주의 국가가 물질적 행복을 구성원들에게 제공해주는 제 3단계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 (사회주의 하에서 인간의 정신: 1891)

Oscar Wilde: The Soul of Man Under Socialism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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