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2020. 12. 6. 17:10

2014.Aug.25.

· 

돌이켜보니, 벗을 사귀는 것을 참 등한시 했다. 더군다나 벗의 '덕'을 벗삼기는 더더욱 제대로 실천하지도 못했다. 사람은 자기가 말해놓고도, 자기가 글을 써놓고도, 그것도 지키지 못하면서 살 때가 많다.


 너무 바깥으로 돈 것 같다. 사람은 스스로 안으로 도는 시간이 많아야 하는데.  최근 취직을 준비하는 졸업반 어느 한 분과 대화를 했다. 


그에게 정치정당이란, 조직이란, 정치적 벗이란 무엇일까? 20년 전 난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돌이켜보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또다른 미래를 준비하면서 쓴 글이다. 


<나를 안다는 것, 그리고 조직의 존재 이유> NJ 





Wonshe

Comments

조찬형

어디를 가면

글 자세히 볼수 있을까요~?



Nakjung Kim

조찬형/ 아이쿠 아름이 아부지..ㅋㅋ 아니 책은 아니고요, 제 메모입니다. 아마 제가 학생운동하는 후배들을 위해서 쓴 메모였습니다. 몇 페이지 안되요. 제 블로그에 전문을 올려놓을게요.



Yongsun Ryu

강호의 도리가 땅에 완전히 쳐박힌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보통 감정의 병폐 속에서 살기에도 바쁜, 그런 지겨운 시대에 살고 있어요...



Joohyun Yoon

취직하게요?ㅎㅎ


Nakjung Kim

Joohyun Yoon it was written in 1994.



아라으르

왜 이건 블로그에 안올려줘요?



정영운


천하(사람들)"이", 병폐(인정통환)"을"...오타(?)인 듯 합니다. ㅎㅎ, 제가 사는 세상은 벗들을 그리워하며 가끔 만나는 세상이라 이런 글월을 보노라면 가끔 미안합니다.



Nakjung Kim


정영운/하하...꼼꼼히 읽으셨네요. 인정통환이라는 단어를 쉽게 풀어서 설명한 단어가 병폐입니다.

어디로 이사가셨나요? 산골로 아예 들어가셨나?



정영운

음...저는 창원 진해 용원에 그대로 살아요. 원시님의 우회적 비꼼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다만 자유주의적인 삶을 살고 있고 내 공동체에만 의미 부여를 해서요.



Nakjung Kim

정영운/ 자유주의적이라는 말이...liberalist 인데요, 원래 그 말은 tolerant 종교적으로 타 종교에 대해서 관용을 베푸는, 정치적으로도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에 대해서 시민내전을 벌이지 않고, 인정해주는 그런 의미도 ...영국역사에서 기원해서...



Nakjung Kim

liberalist 지금이야, 한국의 민주당 정치적 입장 정도로 좁게 쓸 수 있거나, 혹은 일상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고 ? 산다? 그 정도로 좁게 쓸 수도 ...

근데 기본적인 가치관과 정치적 입장표명 혹은 표현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정영운


원래 영국에서의 리버럴은 재산권 가진 사람들이 자기 재산 마음대로 쓰는 , 자본가들의 경제적 자유를 중시하는 이들을 말하고 미국의 자유주의는 조금 진보적인 사람들, 폴 크루그먼이나 케네디 같은 사람들을 말한다고 하는데, 제가 쓰는 자유주의는 말 그대로 자유롭게 산다는 뜻입니다. 음...용어를 조심해서 써야 겠네요. : )



정영운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정당은 원시님 계신 정당이었는데 지금은...글쎄요 입니다. 정치적 입장에 대하여 원시님처럼 일관적이지 않아요.



Nakjung Kim


정영운/ 많은 분들이 탈당도 하고, 지지를 철회했다고 들었습니다. 2011년 노회찬 심상정 탈당이후에는 탈당자가 적었는데, 오히려 그 이후에 보여준 모습들 때문에 많이들 탈당했다고 들었습니다. 자세한 건 조사를 해봐야죠...


Nakjung Kim


정영운.그래도 궁금하네요. "글쎄요?" 이렇게 말씀하신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문제점이나 어떤 실망 요소같은거요?



정영운

멋지고 당당하게 사시는 분들에게 폐가 되지나 않을까 우려되어 조심스럽네요. 노동당으로 바뀐 이후는 문제점이나 실망를 지적할 정도로 들여다 보지 않았어요. 내 삶에 와 닿지 않는다고 할까요 그게 가장 큰 것 같네요. : )

Posted by NJ원시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국정치/정의당2020. 2. 8. 16:38


2020.feb7.

진중권은 입진보가 아니다. 그 이유 3가지. 정의당 심상정, 윤소하 의원의 ‘진중권 탈당’ 논평은 감탄고토 (甘呑苦吐)였다.

주제: 신자유주의 체제의 유산 감탄고토를 종식시키자.


인간관계가 참 짧다. 아니 짧아졌다. 그래서 아쉽다. 2004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10석 이후, 운동권의 자긍심은 불량제품 고려청자 박살나듯이 팍 깨졌다. 달면 삼키고 쓰면 토해내는 ‘감탄고토’, 다시 말해서 진보가 그렇게 경멸하는 신자유주의적 행동지침이 평당원들 사이에, 지도층, 오래된 운동권들, 20대에게 다 퍼졌다.


진보정당이 집권당이 위해서는 지방행정(군수,시장,구청장등) 15% 정도를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20세기 전 세계 정치가 논증하는 집권 전제조건이다. 이런 집권전략은 실천하지 않은 채, 2004년 이후 16년간 ‘국회의원’ 중심으로 진보정당을 이끌어왔다. 변화구없는 170km 속구 투수이다.


진중권이 최근 이런 심경을 남겼다. 요지는 이렇다. ‘지난 18년간,총선, 국회의원 그거 많이 해봤잖아요? 그런데 뭐가 특별히 달라졌다는 느낌 없어요.’ 난 진중권이 패배주의나 허무주의, 진보정당 불필요론에 빠졌다고 보지 않는다.


인간관계들이 너무나 근시안적으로 변해버렸고, 좁쌀 마인드가 ‘리더십’으로 둔갑했다.


원래 하려던 이야기, 진중권은 입진보가 아니다로 돌아간다. 세가지 이유들만 언급한다.


첫번째, 윤소하 의원이 ‘진보지식인입네 하는 분들, 난해한 말로 삶의 현장을 왜곡하지 말라’고 진중권을 비난했다. 진중권은 이 발언과 무관하다. 아니 반대다.


내가 본 진중권은, 2002년 6월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 이문옥 선거운동권이 되어, 지하철에 당시 국회의원 0석이던 ‘민주노동당’ 이름을 알리기 위해 만든 ‘어깨 띠’를 두르고 ‘민주노동당’을 입으로 외쳤다. 두개골로 외친게 아니라, 진중권의 ‘입’으로 외친 것을 온라인으로 봤다. 나중에 만난 이문옥 서울시장 후보의 증언도 일치했다.


한국에 민주노동당이 최초로 국회의원 10석을 만든 2004년 총선 이전에,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 시장 후보 이문옥, 부산 시장 후보 김석준 (현 교육감)이 민주노동당을 ‘전국화’ 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진중권도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민주노동당 띠 두르고 선거운동했다. 그 띠를 ‘입’으로 물고 다닌 게 아니라, 어깨에 둘러멨다.


두번째, 정의당 노유진 팟캐스트를 들은 적이 있다. 진중권 예술철학자 겸 시사 평론가에게 확인해봐야겠지만, 진중권은 노유진 카페에 무료로 자원봉사 출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맨입’으로 출연해서 자기 이권을 챙겨간 게 아니다.


그리고 이런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진중권과 노회찬은 ‘노유진’에서 유시민과 정치적 차이를 드러냈다. 예민한 청취자들은 몇 차례 그 차이를 감지했을 것이다.


유시민의 논지는 “정의당 안에 좌파(노회찬,진중권 등 포함)는 심장이 너무 뜨거워”그러면서 더 큰 공간으로 이동하지 못한다고 타박했다. 유시민 주장은 정의당이 민주당에 과감하게 들어가서, 빅텐트 안으로 들어가서, ‘집권 정치, ‘큰 정치’를 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이에 반해, 진중권과 노회찬은 민주당과는 차별되는,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유제도에 충실한 리버럴 민주당과 ‘정의당’은 달라야 한다는 정치적 주장을 했다. 진보정당의 독자성이야말로 정의당의 존재 이유라고 주창한 사람들이 진중권과 노회찬이었다.


조국 사태에서도 진중권은 이러한 정의당의 독자적인 자기 입장을 고수하려고 했다. 그래서 리버럴스트 민주당이 말하는 ‘기회의 공정’을 넘어서, ‘결과의 공정’, 이 결과의 공정까지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체제 변혁을 주장하고 있는 게 지금 진중권 글이다.


세번째 진중권이 입진보가 아니라 진보 실천가인 이유는, 2008년 촛불 시위 때, 진보신당 온라인 방송의 ‘송해’ 리포터 역할을 탁월하게 해냈기 때문이다.


당시 난 컬트조와 ‘칼라tv’ 온라인 방송을 기획했는데, 운동권들이 연단위에서 연설하는 방식을 뛰어넘는 쌍방향 의사소통 ‘미디어 실천’을 진보신당 안에서 실천하고자 했다.


KBS 전국노래자랑 ‘송해’ 역할을 진중권에게 맡겨서, 촛불 시위에 나온 시민들이 ‘연단’ 위로 올라와, 정치 주체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진중권이 송해로 변신, "왜 촛불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나요?"를 물었고, 참여자들이 답변하기 시작했다. 직접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진보정당의 정치 실천 방식을 보여준 것이다.

지루하게 윤리학자처럼 당위론에 그치기 쉬운 데모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 만든 컨셉이었다.


진중권은 이러한 ‘시민에게 마이크를 주는’ 역할을 가장 탁월하게 소화화냈고, 시민들 속에 파묻혀, 칼라tv중계를 하다가, 전경차에 시민들과 같이 끌려가는, 즉 시민과 리포터가 한몸이 되는 협연을 연출하기도 했다.


진중권의 본 직업은 ‘예술철학’ 연구자이다. 한국에 ‘미학자’로 알려져있으나, aesthetic (미학)이 외국 거리에서는 손톱 네일아트 숍 이런데서 쓰이니, “예술철학”으로 하는 게 좋겠다. 암튼.


그가 정치 시사평론가를 하는 건, 불의를 못참아서였다. 윤소하 의원이 부당하게 평가한 것처럼 “진보지식입네 하고” “난해한 말 (발터 벤야민이나 아도르노 등 독일 철학자들이 쓰는 문장들 등)”이나 쓰면서 삶의 현장을 왜곡한 적은 거의 없다.


총선이라 바뻐서, 화해할 시간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윤소하 의원은 진중권 전당원이 지난 18년간 무형 유형으로 진보정당에 기여한 것을 인정하고, 정치적으로 화해하기 바란다.


그리고 진중권 전 당원께서도, 복잡한 심경, 서운함, 너무나 자연스런 감정이고, 많은 이들도 동감할 것이므로, 특정 인물이나 코멘트보다는, 지난 20년 어렵게 쌓아온 진보정당과, 어렵지만 향후 가야할 20년, 30년을 위해, 대승적으로 화해하길 바란다.


97년 IMF 신자유주의 독재 체제 이후, 우리 사회에, 사람들 사이에 코로나바이러스처럼 퍼진 이 감탄고토라는 전염병을, 이제 우리가 같이 예방해야 하지 않겠나요?


돌아온 진병장 환영~하며.


원시 씀.


(2008.5월 어느날, 데이비드 맥날리 David McNally가 한국 진보정당, 인터넷 방송에 참여해, 박형준 진중권 등과 토론하고 있다)


Posted by NJ원시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국정치2018. 1. 18. 21:12


오늘 김희중 관련 한겨레 신문을 보고, 어제 이명박이 왜 패잔병처럼 보였는지 의문이 약간 풀리고 있다.  전형적인 감탄고토 (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이야기가 패잔병 해산식 같았던 이명박 기자회견 속에 숨어있었다. 


이명박의 최측근 (집사) 김희중씨가 검찰에서 이명박이 구속될 수 있는 ‘증거들’를 진술한 속사정이 있었다. 김희중 전 비서실장이 국정원 특활비 10만 달러(1억원)를  이명박 관저 직원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어떻게 왜 15년간 이명박 비서를 지낸 김희중씨는 이명박과 틀어졌는가? 기사에 따르면 몇가지 계기점들이 있었다.


(1) 2012년 이명박 재임시, 김희중씨가 솔로몬저축은행으로부터 1억 8천만 뇌물을 받고 실형1년 2개월을 선고받았다. 법원 판결 전, 청와대는 김희중을 축출했다. 그럼에도 김희중은 이명박의 특별사면을 기대했다. 그러나 최시중, 박정규 등은 사면되었지만 김희중은 배제되었다.


(2) 만기출소 1개월 전 김희중의 아내가 생활고로 비관 자살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측은 김희중 문상을 외면했다. 조화도 상가집에 보내지 않았다고 정두언은 증언한다. 


이게 한겨레 신문이 밝힌 김희중과 이명박의 엇갈린 인연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것 말고는 다른 이유들은 없을까? 김희중씨를 왜 그렇게 쉽게 이명박은 토사구팽, 감탄고토 해버렸는가?

잠시 스쳐가는 생각이다. 

회사 사장 출신이 자기 피고용인을 해고시키고 자른다는 것이 이명박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런 것 아니었을까? 


이런 이명박의 해석과는 아주 다르게, 김희중씨는 이명과의  ‘정치적 동지관계’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같다. 

29살 때부터 15년간 김희중씨는 이명박에게 충성했는데, 특별사면에서도 배제당하고, 아내 상도 무시당했다. 김씨의 아내와 김씨가 느낀 배신감은 쉽게 이해할만 하다. 정치를 떠나 인지상정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명박은 크리스찬이고 교회 장로로 알려져있지 아니한가? 


혹시 이명박은 ‘김희중, 네가 잘한 일이 없기 때문에, 하느님이 내린 벌’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을까? 

느닷없는 하느님의 부름 Calling 으로 이명박이 어떤 도덕적 순결한 아우라에 사로잡혔던 것은 아닐까? 

아니 서울특별시를 하느님에게 봉헌해야 자기가 천국가는데, 김희중의 뇌물수수는 그 천국가는 길에 걸림돌이 된다고 믿어버렸던 것일까? 


이것 말고 또 다른 원인들이 있을까? 이명박은 왜 15년간 자기에게 충성한 사람을, 한 차례 비리를 저질렀다고 토사구팽했을까?

의문이 풀릴 것 같았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감탄고토가 어디 이런 비논리적인 우파 정치인들에게서만 발견되는 이야기인가?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나? 씁쓸하다.



참고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8360.html?_fr=mt1



성골 집사’로 MB 돈 관리 맡고 청와대 부속실장까지 지냈지만
저축은행 사태 때 비리 연루돼 실형…특별사면에서 외면 당해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2012년 7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2012년 7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제 재임 중에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달라 하는 것이 저의 오늘의 입장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서울 강남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격에 나섰습니다. 최근의 검찰 수사가 ‘처음부터 자신을 향한 것’이라며 격양된 반응을 보였죠. 짜맞추기 정치보복 수사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은 “나에게 물어라”라고 했지만, 정작 ‘국정원 특수활동비’나 ‘다스’ 등 구체적 의혹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았죠. 참모들 역시 “궁금한 점은 아마 내일 이후에 저희들이 소상하게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애매한 말로 즉답을 피했습니다. (▶관련 기사: [뉴스AS] “나에게 물어라” 했지만…대답 없이 떠난 MB) 이 전 대통령은 이럴거면 왜 자청해서 기자회견을 했을까요? 이 전 대통령이 급박하게 기자회견을 연 건 ‘MB의 성골 집사’라고 불리는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김 전 실장이 이 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2011년 10월 국정원 특활비를 달러로 바꿔 10만달러(1억여원) 정도를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가 머물고 있는) 관저 직원에게 전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는 등 검찰수사에 적극 협조 중이라는 겁니다. (▶관련 기사 : “MB 갑작스런 기자회견은 ‘키맨’ 김희중 진술때문이다”)

■ 15년간 MB만 바라본 ‘집사 중의 집사’ 김희중

하루 아침에 뜨거운 관심 대상이 된 김희중 전 부속실장은 어떤 인물일까요? 김 전 실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여러 권력 실세 가운데 한 명입니다. 청와대 제1부속실장은 대통령 집무실 바로 옆에 사무실을 두고 대통령의 일정과 면담 등을 조정합니다. 대통령의 개인적인 일도 보좌하곤 하는데요. 그래서 김희중 전 부속실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문고리 권력’이라고 불렸습니다.

김 전 실장은 1997년 비서관으로 당시 초선의원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 때 김 전 실장의 나이 39살. 이후 15년 동안 이 전 대통령의 참모이자 비서로 일해 왔죠. 이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에는 수행비서였고, 청와대 입성 뒤에는 제1부속실장이 됐으니까요. ‘영원한 비서관’이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한때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도 김 전 실장을 “집사 중의 집사, 성골집사”라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이 문고리 권력은 ‘돈의 유혹’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 2012년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 뒤 추락

2011년 부산저축은행 불법인출 사건을 시작으로 터진 저축은행 연쇄 부실 사태를 기억하시나요? 한때 높은 이자를 내걸고 서민들의 자금을 빨아들였던 저축은행은, 2011년 일부 저축은행이 부실 금융기관으로 선정되면서 각종 비리도 함께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저축은행들은 2000년대 후반부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많은 대출을 해줬는데, 2008년 금융위기와 부동산 침체를 겪으면서 상당수의 대출이 계속해서 연체되기 시작한 겁니다. 부산저축은행을 시작으로 8개 저축은행이 2011년 영업정지 됐습니다. 일부 저축은행은 영업정지를 피하기 위해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터져나왔죠. 김 전 실장이 연루된 건 솔로몬저축은행이었습니다.

김 전 실장은 평소 친분이 있었던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경영진단 및 부문검사와 관련해 금융감독 당국 관계자에게 부탁해 솔로몬저축은행에 대한 검사기준을 완화해주고, 향후 솔로몬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받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2011년 8월 말부터 2012년 1월까지 3차례에 걸쳐 1억8000만원을 받았습니다.

임석 회장은 저축은행 사태의 핵심이었는데요. 임 회장은 솔로몬저축은행 구명로비를 벌이며 김 전 실장 뿐 아니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징역 1년2개월 확정·만기출소)에게도 현금 3억원을 건넸죠. (▶관련기사: ‘만사형통’ 이상득, 징역 2년 선고에 법정서 ‘휘청’) 임 회장의 전방위적인 로비 덕이었을까요? 실제 솔로몬저축은행은 2011년 9월 영업정지 ‘유예’를 받았습니다. 그 사이 솔로몬저축은행의 부채는 2000억원 더 늘어났습니다. (▶관련 기사: 저축은-금융위-정치권 뇌물 커넥션 금융당국 상시감시로 ‘피눈물’ 막을까)

김 전 실장은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졌을 때 바로 사표를 냈습니다. “언론보도처럼 금품을 수수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일로 내 이름이 거론된 것과 관련해 도의적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면서요. 이렇게 그는 처음에 금품수수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청와대 실세가 비리에 연루됐지만,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처음 언론보도가 나왔을 때 ‘진상조사를 하겠다’고는 했지만 김 전 실장이 사표를 내자 이를 곧장 수리하곤 “민간인이라 진상조사를 할 수 없다”고 말을 바꿨죠.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이에 걸맞은 조처를 취하는 게 상식적인 데도 대충 넘어간 겁니다. (▶관련 기사: ‘문고리 권력’ 김희중, 저축은행 의혹 사표에…민간인 신분 돼 진상조사 못한다는 청와대)

청와대가 침묵하는 사이 김 전 실장은 구속기소됐습니다. 1심 법원은 2012년 11월 징역 1년3개월 형을 선고했습니다. 징역 2년을 구형한 검찰도 항소하지 않고, 김 전 실장도 항소하지 않아 형이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곧 대통령 선거가 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도 3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았던 시점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 설(2월10일)을 전후로 특별사면을 단행하겠다는 뜻을 당시 밝혔는데요. 김 전 실장이 이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2013년 초 MB의 마지막 특별사면에 김희중 전 비서실장이 포함될 거라는 언론보도.
2013년 초 MB의 마지막 특별사면에 김희중 전 비서실장이 포함될 거라는 언론보도.


■ 김희중, 배신감에 돌아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마지막 특별사면 직전, 김희중 전 부속실장도 특별사면에 포함될 거란 언론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김 전 실장이 1심에서 징역형을 받고 항소를 포기한 건 실제로 ‘이 전 대통령이 자신을 사면해 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대거 포함된 특별 사면 명단에 김희중 전 부속실장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관련 기사: 정권말 특별사면 노려 항소 포기할까)

김 전 실장 구속 이후 가족은 변변한 수입이 없었다고 합니다. 부인은 아이들과 함께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지만, 이들을 챙겨주는 이는 없었습니다. 결국 2013년 9월 김 전 실장의 만기 출소를 1개월 앞두고 부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당시 영월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김 전 실장이 귀휴(복역 중에 있는 사람에게 일정기간 주어지는 휴가)를 나와 문상객을 맞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조문을 가지 않았습니다. 정두언 전 의원은 “김 전 실장으로서는 너무나 철저하게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한이 맺혔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 “국정원 특활비 1억, 김윤옥 여사 명품 구입”


MB 국정원의 특활비 상납을 확인한 검찰이 지난 12일 김희중 전 비서실장을 소환하자 김 전 실장은 모든 걸 다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성실히 조사를 받았고요. (검찰에서) 궁금해하시는 점이 많아서…나름대로 잘 설명 드렸습니다.” 밤샘 조사를 마치고 나온 김 전 실장은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죠.

정두언 전 의원은 1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김 전 실장이 내게 ‘애들한테 더 못난 아빠가 되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고 문자를 보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김희중 전 실장은 검찰에서 ‘국정원 특활비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알았을 뿐 아니라, 그 비용이 환전 돼 이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에게 전달됐으며 명품 구입에 사용됐다’는 구체적 내용까지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금을 관리한 15년 핵심 측근이 아는 것이 이것 뿐일까요? 최근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인 것으로 의심받는 다스의 비자금도 수사하고 있습니다. 김 전 실장은 다스 관련해서도 핵심 증언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 박홍근 “국정원 특활비 1억, 김윤옥 여사 명품 구입에 사용”)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선다면 그건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댓글공작’ 때문일 거라는 보도가 우세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이 댓글공작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잇따르면서 ‘국정원 수사 딱 한칸만 올라가면 MB’라는 보도도 나왔죠.

사태는 검찰이 국정원 특활비가 청와대에 상납됐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급변했습니다. 화이트리스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양석조)가 국정원 간부들로부터 박근혜 정부 시절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시서관 등 문고리 권력 3인방에게 뒷돈을 상납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검찰은 “자체적으로 수사를 하던 중 단서를 포착해 수사에 착수하게 됐다”고 설명했죠.

우선 검찰은 지난 4일 국정원 특활비를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뇌물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이후 12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또 다른 ‘집사’로 꼽히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며 MB 국정원의 특활비 수사를 시작했죠. 그리고 지금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구속됐습니다. (▶?관련 기사: ‘원세훈 국정원’ 특활비 좇다 ‘MB 집사’에 유입 포착) 검찰은 김희중 전 비서실장에게 많은 진술을 받아냈을 겁니다. 어쩌면 ‘결정적 증거’까지 확보했을 수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생각보다 빨리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될 것 같습니다. (▶관련 기사: 특활비 수사 급물살…MB소환, 올림픽 전으로 당겨질듯)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치부를 모두 알고 있는 최측근 인사를 자신의 이해 관계에 따라 냉정하게 내쳤습니다. 이젠 그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제 재임 중에 일어난 모든 일 (중략) 나에게 물어달라”고 했으니, 직접 물어봐야겠지요.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소환조사에 응할까요? 이제 정말 딱 한 계단 남은 것 같습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8360.html?_fr=mt1#csidx32ecb4475d00156ba25c5c758d4d73f 




Posted by NJ원시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