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이냐, 투자냐’ 시행사의 세계
토지수용으로 벼락부자? "수천억 돈놀이판서 원주민은 호구" [시행사의 세계]
입력
2021.11.03 04:30
<중>개발의 그늘, 토지수용과 원주민
편집자주
성남 대장동 특혜개발 의혹으로 부동산 시행사업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한국일보는 합법과 불법을 줄타기하며 한탕 수익을 추구하는 시행사의 실태와 대안을 3회에 걸쳐 살펴봅니다.
지난달 25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 주민 박원하씨가 양팔을 뻗어 3기 신도시로 지정돼 강제수용을 앞둔 토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승엽 기자
"1980년대 초 군에서 제대하고 여기서 가족들이 다같이 모내기를 했었지. 그때는 저 개울 너머까지도 우리 논이었는데, 농기계가 없었으니 아버지부터 형들과 누나, 일꾼까지 30명 넘게 달라붙었어. 아버지가 '한시라도 놀면 안 된다'고 구박을 하셔서 한바탕 다퉜던 게 아직도 생생해."
지난달 25일 오전 인천 계양구 병방동에서 만난 박원하(59)씨는 손끝으로 너른 밭의 어디쯤을 가리키며 가족들과의 추억을 더듬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을 농부로 살았다는 그는 1990년대 인근에 지하철역이 생기면서 물길이 끊긴 탓에 논농사를 그만둬야 했을 때도, 생활비가 부족해 막노동판을 전전할 때도 농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큰형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조카들이 상속받은 땅까지 합쳐 약 6,600㎡(2,000평)를 도맡아 일궜다.
그러던 2018년 12월 19일 정부가 발표한 '2차 수도권 주택공급 계획'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대대손손 지켜온 터전이 3기 신도시 계양지구에 포함된 것이다.
박씨는 토지 보상을 받으면 주변의 다른 밭을 사려고 했다. 2012년 빚을 내 시작한 복숭아농사가 겨우 흑자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박씨에게 통보한 3.3㎡(1평)당 보상가는 125만 원. 수십 년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인 탓에 주변 시세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여기에 40%에 육박하는 양도소득세까지 부과돼 수중에 쥐는 돈은 더 줄었다. 박씨는 "LH의 보상가로는 인근에 살 수 있는 땅이 없다"며 "농사를 계속 지으려면 강원도로 가야 할 지경"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박씨가 한숨을 몰아쉰 그날 LH는 3기 신도시 2차 사전청약을 시작했다.
지난 한 달간 인천 계양과 하남 교산, 남양주 왕숙 등 3기 신도시를 비롯해 수도권 공공택지 지구에서 만난 원주민 50여 명은 토지수용에 대해 피끓는 한탄을 쏟아냈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무시돼온 이들의 목소리다.
"나라에서 하겠다는데..." 눈 뜨고 코 베이는 강제수용
지난달 22일 오후 경기 하남시의 한 주택 거실에서 뇌졸중 환자 양모씨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 양씨 부인은 남편을 위해 7년 전 집을 새로 지었지만 3기 신도시에 포함됐다. 이승엽 기자
땅은 누군가에게 평생을 바친 삶의 터전이지만, 누군가에겐 수개월 만에 결정되는 개발계획의 부속품일 뿐이었다. 예고도 없이 "집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은 주민들은 황당함을 넘어 극한의 분노를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공공택지 선정 때 주민들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 고양시 용두동의 최모(64)씨는 "미용실에서 파마하다가 TV를 보고 알았다"며 "태어나서 평생 살아온 집에서 내쫓는데 그 소식을 뉴스로 들어야 하나"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경기 하남시 교산동에 사는 주부 김모(66)씨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씨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 양모(70)씨를 위해 7년 전 낡은 집을 허물고 2억5,000만 원을 들여 새집을 지었다. 잠자는 시간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휠체어에서 보내는 남편을 위해 문턱을 없앴고 장애인용 화장실도 만들었다. 김씨는 "남편이 고향을 떠나기 싫어해 인근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는데 개발 소식에 가격이 뛰어 전세를 구하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양씨 대신 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동생 양태준씨는 선산의 조상 분묘 60여 기를 이전하기 위한 방법을 찾지 못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분묘이전비 등을 보상해준다고 하지만 어떤 수목장이나 납골당을 가봐도 그 값으론 택도 없다"며 "300년간 집성촌을 이뤄 집안 대대로 살아왔는데 이제 어디에 다시 정착해야 할지 상상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귀농한 지 1년도 안 돼 새집을 찾아야 하는 부부도 있었다. 조모(58)씨는 2018년 3월 서울 강동구에서 하남시로 이사왔다. 남편 김모(66)씨의 당뇨가 심해져 밭일 등 소일거리를 하며 지내기 위해 전 재산 5억 원을 들여 토지를 매입해 평생 살 집을 지었다. 조씨는 "교산동 일대가 청동기 유적이 많이 발견돼 개발 가능성이 없다고 해서 귀농을 결정했는데 갑자기 신도시로 지정돼 황당했다"고 혀를 찼다.
지난달 22일 경기 하남시 교산동의 한 주택에서 조모씨(왼쪽)가 이웃 주민과 함께 말린 고추를 포대에 담고 있다. 조씨가 5억 원을 들여 지은 이 집과 토지도 강제수용을 앞두고 있다. 이승엽 기자
나라에 땅을 빼앗긴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 사람도 많았다. 정부가 서울과 가까운 지역부터 점차 외곽으로 택지개발을 이어나가면서 바깥으로, 바깥으로 내몰린 것이다. 하남시에 거주하는 홍모(60)씨는 "2010년 미사지구, 2012년 강일지구에 이어 이번이 벌써 세 번째 강제수용"이라며 "땅값이 너무 올라 이제는 경기도를 떠나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택지개발 계획이 발표된 뒤 주민설명회와 공청회, 전략환경영향평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공공주택법상의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된 후에야 개발이 확정된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에서 정부 결정이 뒤집히는 일은 없다.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심재만 군포대야미 공공주택지구 주민대책위원장은 "우리 지역은 규모가 작아 주민이 적으니 LH 직원이 '다른 곳에 비해 점잖다'고 할 정도였다"면서 "아무리 반대하고 요구사항을 말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신도시가 취소되는 것도 아니고 결국 정부 계획대로 진행하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신도시 부지 90%가 개발제한구역... 턱없이 낮은 보상가
인천 계양구의 과수원에서 박원하씨가 가을 수확 후 새 눈이 솟아난 복숭아 나무를 가리키고 있다. 이승엽 기자
주민들이 토지수용으로 '벼락부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존재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실상과 전혀 다르다고 항변했다. 개발 대상지역 대부분이 1970년대 그린벨트로 지정돼 50년간 가격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상가를 산정할 때 기본이 되는 공시지가 자체가 매우 낮은 수준이다. 받은 보상금으로 다른 곳에 다시 터전을 마련해 생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이유다.
3기 신도시만 따져도 계획 면적의 90% 이상이 그린벨트다. 남양주 왕숙지구는 889만㎡ 중 856만㎡(96.3%), 왕숙2지구는 239만㎡ 중 217만㎡(90.5%)가 그린벨트다. 인천 계양지구(96.8%)도 대동소이하다. 부천 대장지구는 계획 면적의 100%가 그린벨트다. 토지수용 대상이 대부분 농민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인천 계양구에 사는 홍양숙(53)씨는 "보상가가 낮은 개발제한구역을 이용해 공공택지를 만드니 개발이익이 커지는 것"이라며 "50년간 침해당한 우리 재산권으로 남의 배만 불리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동네 장순영(59)씨도 "수십 년간 그린벨트였지만 그래도 농사는 짓게 해줘서 고맙게 여겼다"며 "부동산의 '부'자도 모르고 평생 농사만 지어온 사람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부터 시행사까지... 개발 소식에 몰려드는 하이에나들
지난달 21일 장순영씨가 인천 계양구에 있는 자신의 밭에 심은 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이승엽 기자
토지보상금이 고스란히 주민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내년까지 3기 신도시에서만 약 32조 원의 보상금이 풀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주민들은 이 돈을 노린 '하이에나'들의 표적이 된다.
가장 먼저 이득을 보는 건 개발 정보를 정부 발표 이전 입수해 토지를 매입한 부동산 투자자, 외지인들이다. 상속받은 인천 계양구의 전답을 5년 전 처분했다는 A(42)씨는 "그린벨트니까 주변에 비해 4분의 1 가격이어도 싼값에 팔 수밖에 없는데, 시세보다 조금 높은 평당 80만 원을 주겠다고 해 팔았다"면서 "보상가가 150만 원이 넘게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공공택지 개발계획이 발표되면 가장 먼저 주민들에게 접근하는 건 변호사와 세무사라고 한다. 국토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의 수용재결과 이의재결을 거쳐 법원 행정소송까지 진행될 경우 변호사 수임료가 수백만 원에 이른다. 토지소유권이 형제들에게 분산돼 있는 등 소유 관계가 복잡해 가족 간 송사와 상속, 증여 과정에서 나오는 수입도 상당하다. 수사가 진행 중인 성남 대장동 개발처럼 아예 변호사 출신이 직접 사업에 뛰어들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분양대행사 임원은 "시골 노인들은 변호사 명함만 보여주면 믿고 맡기는 경우가 많다"며 "일부 법무법인들은 감정평가 시 의견서를 부실 작성해 일부러 수용재결까지 끌고가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달 25일 오후 경기 과천시 선바위역 인근에 대토시행사들의 홍보 플래카드가 게시돼 있다. 이승엽 기자
대토보상권을 노린 시행사들의 불법 행위도 횡행한다. 대토보상제는 공공택지에서 토지수용 시 현금 대신 새 개발지의 땅을 지급하는 제도다. 정부는 지난해 토지보상법 개정을 통해 대토보상권 전매를 금지했지만, 시행사들은 법망의 허점을 이용한다. 토지보상 전 처분신탁을 통해 소유권을 넘겨받거나 '생활안정자금' 명목으로 보상금을 선지급해 개발예정지역의 목 좋은 땅을 선점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수수료로 보상금의 최대 10%를 떼기도 한다. 모두 편법 양도행위로 불법이지만 국토부와 LH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3기 신도시 중 현재 대토시행사들의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과천이다.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지하철 4호선 선바위역 인근에는 시행사들의 투자설명회 안내 플래카드 수십 개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과천시에 사는 김모(65)씨는 "3기 신도시 발표 후 대토시행사들에서 전화만 수십 통이 왔다"면서 "수천억이 굴러가는 돈놀이판에서 주민들은 돈 잃어주는 호구"라고 한탄했다.
임차농들도 낮은 농업손실보상금에 한숨
지난달 23일 경기 군포시 대야미동의 논에서 심홍보씨가 벼를 수확하고 있다. 이승엽 기자
토지수용으로 피해를 보는 건 임차농들도 마찬가지다. 현행 토지보상법은 농업인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농업손실보상금을 지급하는데, 경기도의 경우 3.3㎡당 1만2,000원 수준이다.
과천시에서 10년 가까이 화훼농사를 한 B(47)씨는 "작물별로 소득이 다 다른데 재배 작물을 고려하지 않고 보상금을 정한다"면서 "보상금액이 너무 적어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군포시 대야미동에 사는 심홍보씨의 경우도 임차농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년째 종친회 소유의 논을 경작해온 심씨는 낮에는 논농사를, 아침저녁엔 유치원 통학버스를 운행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심씨는 "투기했던 LH 직원들은 땅 하나를 여러 필지로 쪼개서 분양권을 여러 개 받아 이익을 챙기고, 우리같이 아무것도 모르고 한평생 농사만 지은 사람들만 손해를 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강봉 하남교산 공공택지지구 주민대책위원장은 "정부나 LH가 토지수용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주민들과의 원활한 소통과 협의가 아니라 보상을 빨리 끝내고 공사를 시작하는 것"이라며 "낮은 보상가도 문제지만 법이란 무기로 주민들을 국민 취급도 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가 분노를 더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102515180002702
‘도박이냐, 투자냐’ 시행사의 세계
대장동 사태에 개발이익 환수 공감대...남은 건 디테일 [시행사의 세계]
입력
2021.11.03 19:30
김지섭 기자
<하>개발이익 주인은 누구인가
편집자주
성남 대장동 특혜개발 의혹으로 부동산 시행사업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한국일보는 합법과 불법을 줄타기하며 한탕 수익을 추구하는 시행사의 실태와 대안을 3회에 걸쳐 살펴봅니다.
민간사업자가 천문학적인 수익을 얻어 개발이익 환수 여론에 불을 당긴 경기 성남시 판교대장지구. 연합뉴스
경기 성남시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은 민간사업자가 조 단위 수익을 창출하는 부동산 개발의 이면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 과정에 민관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 있었고, 공공의 탈을 쓴 토지수용과 분양가상한제 미적용으로 막대한 개발이익이 가능했다는 맹점을 드러냈다.
상식을 초월하는 개발이익을 방지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민관 합동 개발 때는 공공이 토지수용, 인허가 등 사업 진행 과정에서 가장 큰 리스크를 해결하기 때문에 민간의 과도한 개발이익을 환수해 서민 주거 안정 등 공적으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이미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택지개발사업과 관련한 일부 과도한 민간이익에 대해 개발이익 환수 관련 제도들을 면밀히 점검해 개선할 부분을 짚어 보겠다"고 말했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도 이튿날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과도한 개발이익을 공적으로 환수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과도한 개발이익 환수에 대한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된 상황이다. 남은 건 민간의 개발이익을 어느 선에서 제한하느냐다.
민간 수익 상한율 6%? 10%?
‘제2 대장동’ 막을 개발이익 환수 발의 법안. 그래픽=송정근 기자
3일 정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대책은 공공이 참여한 도시개발사업 시 민간사업자의 수익 상한을 정하고, 조성된 토지는 공공택지로 간주해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의무화하는 방안 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개발이익 환수제도 개선안은 최근 국회에서 쏟아져 나온 '대장동 방지법'을 참고할 가능성이 크다. 개선안에는 여야가 이견이 없는 민간 수익 상한(이윤율)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도시개발법'에는 민관이 함께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할 때 민간의 수익 상한이 없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4일 공공시행자 이외의 사업자 지분을 50% 미만으로 하고, 민간 이윤율을 총사업비의 10% 이내로 제한하는 도시개발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앞서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도 공공시행자 외 사업자 지분 50% 미만, 민간 이윤율을 총사업비의 6% 이내로 한정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간 이윤율을 제한하는 방향은 일치하는데, 디테일에서는 차이가 있다. 10%는 진성준 의원이 통계청 경제총조사 자료를 참고한 수치다. 부동산·임대업의 영업이익률은 2010년 조사 때 8.4%, 2015년에는 11%를 기록했다. 이헌승 의원이 제시한 6%는 신도시 개발 때 적용했던 택지개발촉진법의 민간수익 상한 규정을 따른 것이다.
민간의 개발부담금 부담률도 상향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현행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은 택지나 산업단지 등을 개발해 지가 상승분을 초과하는 이익을 거두면 그중 20~25%를 개발부담금으로 내게 한다. 이 법이 제정된 1989년에는 부담률이 개발이익의 50%에 달했지만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현재 수준으로 낮아졌다.
진성준 의원은 다시 개발부담금 부담률을 50~60%로 높이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박상혁 의원도 부담률을 45~50%로 상향하고 환수한 개발이익을 △서민의 주거 안정 △주거환경 개선 △공공시설 설치 등에 사용하는 '공공환원 원칙'을 추가한 개정안을 냈다.
또한 공공이 절반 이상 지분을 가진 택지는 공공택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헌승 의원은 민관 합동으로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이 조성한 토지는 공공택지로 간주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는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도시개발법에서는 SPC가 조성한 토지를 민간택지로 분류해 분양가상한제 적용이 안 된다. 대장동 개발사업도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지 않아 시행사인 화천대유자산관리가 막대한 분양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신중한 정부, 개발사업 위축 우려
홍 부총리와 노 장관의 최근 발언에 비춰 볼 때 개발이익 환수제도 개선은 기정사실이다. 다만 정부는 아직 수사기관의 대장동 특혜 의혹 수사가 진행 중이라 조심스러운 입장이고, 시장에서 발생할 부작용도 복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민간의 이윤을 특정 비율로 고정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업 구조에 따라 위험 부담과 출자비율,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책임 등이 모두 다른데 상한율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게 비합리적이라는 얘기다. 한 시행사 대표는 "개발사업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리스크가 너무 크고, 실패에 따른 책임까지 떠안아야 하는데 수익 상한선을 두는 것은 지나치다"면서 "같은 논리라면 휴대폰 등 다른 제품이나 사업들도 원가를 공개하고 이익의 상한선을 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도시개발법이 민간의 참여로 원활한 택지 공급을 위해 만든 법인 만큼 이익을 과도하게 제한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노 장관도 "민간의 참여와 자율성을 촉진한다는 도시개발법의 취지는 유지하되, 개발이익 환수를 어느 정도 수준까지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서울시를 제외한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낮아 민간이 함께 하지 않고서는 스스로 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이윤율을 제한하면 개발이 위축돼 주택 공급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민간이익을 환수하겠다는 정부의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조금 더 시간을 두더라도 업계 입장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110314140004606
‘도박이냐, 투자냐’ 시행사의 세계
공공 환수가 장땡? "개발이익 규모부터 정확히 공개해야" [시행사의 세계]
2021.11.0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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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원 기자
<하>개발이익 주인은 누구인가
편집자주
성남 대장동 특혜개발 의혹으로 부동산 시행사업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한국일보는 합법과 불법을 줄타기하며 한탕 수익을 추구하는 시행사의 실태와 대안을 3회에 걸쳐 살펴봅니다.
지난달 15일 경기 성남시청에서 대장동 원주민들과 대화에 나섰던 심종진 화천대유자산관리 대표가 원주민들의 항의를 받으며 자리를 떠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민간사업자의 과도한 개발이익을 막는 '대장동 방지법'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지만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은 "현실과 괴리된 성긴 입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획일적인 이익률 제한은 개별 사업의 특성을 담아내지 못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애당초 민간이 벌어들이는 개발이익이 정확히 얼마인지조차 알려지지 않는 한계도 있다. 개발이익 환수 논의와 함께 원주민에 대한 보상 체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공 환수' 취지 옳지만, 획일적 제한은 실효성 떨어지고 꼼수 우려도
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민간의 과도한 개발이익을 막는 입법 방향에 대해서는 대다수 전문가들이 공감을 표한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대장동 논란은 도시개발사업에서 특정 계층에게 개발이익이 쏠리는 문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의 물꼬를 텄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박유석 대전과기대 금융부동산행정학과 교수는 "기존의 이익 환수 장치가 불충분한 사업에 대해서는 공공이 이익을 더 가져가는 방안을 고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민간 도시개발사업의 이윤율을 10%나 6% 등 동일 비율로 제한하는 대책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게 학계와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사업 규모와 조건, 시기에 따라 개발이익은 천양지차로 변할 수 있어서다. 이명훈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같은 개발이라도 사업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이익 상한선을 씌워 놓으면 특히나 주택 공급 활성화가 필요한 현 시점에 민간 참여 동기를 꺾을 수 있다"고 짚었다.
민간사업자의 수익 구조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허점을 악용해 '비용 부풀리기' 등 이익 상한선을 무력화하는 꼼수가 생길 우려도 있다. 대장동 사업에서도 지난해 9월 성남시의회가 특수목적법인(SPC) '성남의뜰'에 추정이익 자료를 요구했으나 "공개 대상이 아니고 사업협약상 비밀유지 규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사업자가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려고 사업비를 과다 계상하거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치적을 내세우기 위해 이익 규모를 주물러도 검증이 어려운 셈이다.
공공 환수 강화 전제는 개발이익의 투명한 공개...원주민 보상도 필요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은 공공의 이익 환수 장치 마련에 앞서 투명한 개발이익 공개가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국장은 "대장동 개발도 성남시는 사업비가 1조5,000억 원이라고 주장하지만 어떤 근거인지 검증이 안 되고 있다"면서 "국민의 알권리와 주거 안정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민간사업자의 영업비밀 보호보다 투명한 개발이익 공개가 우선"이라고 꼬집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도 "민간시행자에 대한 회계감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그것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안전장치가 있을 때 이익 상한선의 실효성이 보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사업으로 생활기반을 상실하는 원주민을 위해 토지수용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예림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시세를 기준으로 평가해 보상하는 미국, 영국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과거 낮은 단가로 수용하던 방식이 이어져 개인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일중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 수용의 무분별한 남용은 부의 불균형과 '탈도덕화(demoralization)' 현상 등 사회적 부작용을 유발한다"며 "정당한 절차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전면적인 법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도박이냐, 투자냐’ 시행사의 세계
50년 넘게 반복되는 토지수용 비극...승자는 언제나 공공 [시행사의 세계]
2021.11.03 11:00
이승엽 기자
<중>개발의 그늘, 토지수용과 원주민
'정당한 보상'에 개발 이익은 배제
편집자주
성남 대장동 특혜개발 의혹으로 부동산 시행사업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한국일보는 합법과 불법을 줄타기하며 한탕 수익을 추구하는 시행사의 실태와 대안을 3회에 걸쳐 살펴봅니다.
지난 9월 24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대장지구 개발 현장. 대장동 개발은 성남도시공사가 특수목적법인 성남의뜰 지분을 50% 이상 소유해 토지 강제수용이 가능했다. 뉴스1
공공의 이익을 위한 개인의 재산권 제한은 수십 년간 반복되는 해묵은 갈등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이익'과 개인의 권리가 충돌하지만 승자는 언제나 공공이다. 법에 토지 강제수용이 규정된 이상 개인으로서는 땅을 내주지 않을 방법이 없다.
2일 법조계와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토지수용 근거는 헌법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1987년 전부개정돼 이듬해 시행된 헌법 제23조 3항은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1980년대 택지개발촉진법·2000년대 도시개발법...토지수용의 역사
토지 강제수용 근거. 그래픽=송정근 기자
토지수용이 가능한 세부적인 공익사업들은 1962년 제정된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을 근거로 한다. 토지보상법 4조에 따르면 국방·군사시설이나 철도, 항만을 비롯해 학교와 박물관 등의 사업에 있어 토지를 수용할 수 있다. 현존하는 다수의 도로나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SOC)은 이 조항에 근거해 해당 지역에서 수용한 토지 위에 건설됐다.
이외에도 '국제경기대회지원법', '관광진흥법', '태권도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 '지방소도읍 육성 지원법' 등 무려 93개 특별법을 통해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토지수용이 가능하다. 뉴타운사업의 기반이 된 '도시환경정비법'도 93개 특별법 중 하나다.
택지개발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토지수용은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과 '도시개발법', '공공주택특별법'에 근거가 있다. 1980년 제정된 택촉법은 산업화 이후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한 공공 주도의 대규모 택지 개발을 가능케 했다. 주택공급정책은 ①충분히 많은 물량의 주택을 ②빠른 시간 안에 ③수요자가 접근가능한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 관건이다. 토지수용제도는 개발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비용을 경감시키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
민간개발 활성화...대장동에서 맹점 드러나
공공주택지구 전국연대 대책협의회 관계자들이 지난 9월 30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대장지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토지강제수용 철폐와 토지보상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개발에 대한 시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1기 신도시 등 국가가 주도해온 대규모 택지개발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면서 개발 권한을 민간이나 지방자치단체에 넘겨 소규모 택지를 필요에 따라 개발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은 것이다.
도심 내 노후지역의 재개발·재건축 필요성이 증가한 것도 이런 변화와 맞물려 있다. 이에 2005년부터 시·군 단위 도시기본계획 승인 권한이 지자체로 대폭 이양되기 시작했다. 이어 2007년 도시개발법이 개정되면서 민간도시개발 활성화를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문제는 일부 민간업자들이 도시개발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공공이란 탈을 쓰고 막대한 개발이익을 사유화하는 것이다. 현행 도시개발법은 공공이 지분의 절반 이상을 소유한 특수목적법인(SPC)에도 토지수용권을 부여해 헐값에 토지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성남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 부산 해운대 엘시티 사태가 도시개발법의 맹점을 악용한 대표적 사례다.
정작 토지를 빼앗긴 주민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다. 대장동 개발 때 토지수용제도가 불공정하다는 점이 부각돼 보상제도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개발이익을 일정 부분 토지주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개발이익을 배제한 손실보상액 산정이 정당보상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단이다. 2009년 헌법재판소는 토지보상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공익사업 시행으로 땅값이 올라 생기는 개발이익은 토지 소유자의 노력이나 자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므로 형평의 관념에 비춰볼 때 토지 소유자에게 당연히 귀속돼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며 재판관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도박이냐, 투자냐’ 시행사의 세계
결국 시장님 마음? 인허가 불확실성이 부른 유착의 유혹 [시행사의 세계]
입력
2021.11.02 13:00
최다원 기자
인허가 심의기준 높이고
뇌물 수수 처벌 강화해도
지자체 자율권 무시할 수 없어
편집자주
성남 대장동 특혜개발 의혹으로 부동산 시행사업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한국일보는 합법과 불법을 줄타기하며 한탕 수익을 추구하는 시행사의 실태와 대안을 3회에 걸쳐 살펴봅니다.
성남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연합뉴스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계기로 "대규모 개발사업의 심의와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인허가권자의 자율권을 보장하는 지방자치제도의 특성상 '규제 일변도'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폐쇄적인 공무원 사회가 비리를 묵인하고 반복하게 만드는 원인이란 지적도 나온다.
'김영란법' 등 개발사업 부패 차단 노력도 있었지만
개발사업 부패 방지를 위한 법·규정 정비 현황. 그래픽=김문중 기자
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개발사업의 부패 방지를 위한 사회적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3년 마련된 '지방도시계획위원회 운영 가이드라인'이 대표적이다. 지방도시계획위원회는 공무원 개개인을 대신해 도시계획을 심의 및 자문하는 전문 기구다. 앞서 2002년 오포 개발 사업 때 위원회에 속한 교수 세 명이 건설업체의 인허가 편의를 봐준 대가로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는 등 심의 기준을 구체화할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다.
이 외에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도 비리 관행 개선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한 시행사 대표는 "김영란법 이후 공공연한 뇌물 전달은 거의 없어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복잡한 인허가, 결국 공무원 판단 또는 지자체장의 '철학'대로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보다 심의 기준을 더욱 강화해 인허가권자와의 유착 여지를 없애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판단한다. 여러 관계 부처의 협의를 거쳐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인허가 행정은 규제 내용이나 수준을 정형화하기 어려워 공무원이나 도시계획위원들이 나름의 잣대로 판단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자체별로 도시개발 정책이 다른 점도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기 어려운 한계다. 한 부동산 전문 교수는 "지역별로 도시에 대한 구상과 목표가 제각각이라 환경 보호를 우선하는 지역에서는 심의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인허가를 더 까다롭게 할 수 있고, 다른 곳에서는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은밀히 이뤄지는 부정청탁 특성상 로비 적발이 어려운 점도 문제를 키운다. 올해 6월 학술지 '지방행정연구'에 게재된 '지방자치단체 인허가 업무에서의 부패 유형과 특성분석' 논문은 이런 점을 드러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중심으로 분석한 해당 논문에 따르면, 지방 공무원 인허가 부패 사건은 잘못을 밝히는 데에 어려움이 많고 공무원 스스로도 잘못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폐쇄적인 공직 사회에서 뒷돈이 묵인되는 환경적 이유다.
이렇다 보니 지자체의 인허가 비리와 관련한 연구조차 쉽지 않다는 게 행정 연구가들의 고백이다. 도시계획 관련 지방행정 연구를 오래 해 온 한 연구원은 "대장동 사업과 같은 민관합동개발에서 업체와 지자체 간 '뽀찌(뇌물)'가 오가는 정황은 파다하다"면서도 "행정 연구는 발주처가 주로 '관'이기 때문에 지자체에 부정적인 연구가 이뤄지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한번 터지면 평생 먹고 산다" 투자-도박 경계 오가는 사람들 [시행사의 세계]
입력
2021.11.01 22:00
김지섭 기자
부동산 개발 시행사의 민낯
편집자주
성남 대장동 특혜개발 의혹으로 부동산 시행사업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한국일보는 합법과 불법을 줄타기하며 한탕 수익을 추구하는 시행사의 실태와 대안을 3회에 걸쳐 살펴봅니다.
개발이 진행 중인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일대. 이 사업에 참여한 화천대유자산관리는 막대한 수익을 올려 검경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 서재훈 기자
#. 부동산 개발로 잔뼈가 굵은 이모씨는 2018년 수도권 한 도심에 상가를 올리는 '시행업 게임'에 참가했다. 깔린 판돈은 700억 원 규모. 최종 미션까지 성공 시 손에 쥐는 상금은 판돈의 10% 정도였다. 대신 개발자금 조달은 참여자 몫이었다. 자기 돈이든, 대출이든, 사채를 쓰든 영혼까지 끌어모아야 했다.
돈을 딸 확률보다 잃을 가능성이 10배, 아니 100배는 컸다. 땅 매입부터, 인허가, 분양까지 불확실성투성이고 중간에 어느 하나라도 틀어지면 바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임. 영화 ‘타짜’의 대사처럼 쫄리면 죽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씨는 도심 입지와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작은 건물 4개를 통째로 허물고 큼지막한 메디컬 건물을 올리겠다는 구상을 구체화했다. 병원에 주차할 공간이 없어 불편하다는 주민들의 니즈를 파고 들었다.
역시나 암초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땅 매입 때 "못 나간다"며 버티는 상가 임차인과 협상하느라 진땀을 뺐고, 기존 건물 철거 전 다른 지역에서 붕괴사고가 일어나 지자체의 인허가가 까다로워졌다.
우여곡절 끝에 모든 난관을 통과한 이씨는 3년 만에 준공과 분양을 마쳤다. 총 투입 자금은 550억 원, 매출액은 약 700억 원이다. 차액 중 절반을 세금으로 내고도 순수익으로 75억 원을 챙겼다. "평생 하나만 성공해도 충분히 먹고산다"는 시행업계 속설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화천대유자산관리가 자본금의 수천 배에 이르는 개발이익을 챙긴 게 알려지며 시행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사업이 잘되면 상상도 못할 '돈잔치'를 벌일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시행사는 부동산 개발업체, 흔히 디벨로퍼(Developer)라고 한다. 디벨로퍼는 부동산 상품 기획부터 자금 조달, 인허가, 분양까지 사업의 전 과정을 책임진다.
시행사의 개발사업은 크게 △토지 매입 △인허가 △분양의 3단계로 이뤄진다. 예측 불가능한 수많은 변수를 뚫고 사업을 마치면 막대한 이익이 쏟아진다. 반면 단 하나라도 틀어지면 실패로 직결돼 흔히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한다. 하이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종종 부적절한 행위가 수반돼 대장동 개발이나 부산 엘씨티 사업처럼 후폭풍이 크게 일기도 한다. '성공하면 디벨로퍼, 실패하면 사기꾼'의 경계를 오가는 시행사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한번 터지면 100억~200억" 멈출 수 없는 실패의 유혹
부동산 개발사업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그래픽=김문중 기자
1일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한 시행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통상 아파트를 지어 100% 분양까지 마치면 총 매출의 10%를 수익금으로 가져간다. 매출이 2,000억 원이면 시행사 순이익은 200억 원인 셈이다. A시행사 대표는 "토지만 갖고 있으면 평생 거지처럼 살아도 언젠가 한번 기회는 온다"며 "한 번만 터져도 100억~200억 원은 기본이니 일단 발을 들이면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운 좋게 사업을 잘 끝내 '돈벼락'을 맞으면 평생을 수익금으로 먹고살 수 있다. 그런데 일단 성공을 맛보면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계속 판을 벌린다. B시행사 대표는 "서울 도심에서 대형 빌딩으로 엄청난 수익을 낸 사람이 있는데, 거기서 만족을 못하고 관광지에 리조트 사업을 펼치다 벌어들인 돈을 다 까먹었다"고 전했다.
이런 사례를 두고 업계에서는 '9대 1' 법칙을 얘기한다. 아홉 번을 성공해도 한 번에 망하는 사업이란 의미다. C시행사 임원은 "한 번 성공에 200억 원씩, 총 아홉 번에 걸쳐 1,800억 원을 벌었어도 다음 사업에서 2,000억 원이 손해나 바로 망하는 게 이 바닥 생리"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깐부"…토지 작업 영업 스킬
토지 매입은 첫 단추를 꿰는 아주 중요한 단계다. 입지와 수익성이 좋은 땅을 점 찍고 저렴한 가격에 확보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장동 개발처럼 공공기관이 토지를 감정가에 수용해주면 차려 놓은 밥상을 먹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민간 사업자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토지주는 '내 땅이 가장 좋은 땅'이라는 인식이 강해 보상금 협상 자체가 어렵다. 토지주들 사이에서 "누구는 얼마를 받았다"고 소문이 나면 골치 아파진다. 도로에 붙은 땅을 3.3㎡당(약 1평) 100만 원에 계약했는데 자투리 땅을 500만 원에 사야 할 수도 있다. 매입 과정이 길어져 '알박기'를 하는 업자가 나와도 곤란해진다.
그래서 시행사 관계자들은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람 대 사람이 하는 일이라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따르는 통장, 이장, 노인회장 등을 '깐부'(같은 편)로 만드는 게 핵심 전략이다. D시행사 임원은 "영향력 있는 토지주들을 영업사원으로 활용해 일정액을 수수료로 주기도 한다"며 "평생 농사만 지었던 60, 70대들은 영업사원으로 영입한 통장이 '계약하자'고 하면 따른다"고 말했다.
인간적 신뢰를 쌓기 위해 온갖 경조사를 따라다니며 직접 챙기기도 한다. E시행사 대표는 "마을 잔치가 있으면 잔치 음식 등을 해주면서 신뢰를 쌓는다"고 했다. 이들이 토지주와 형님, 동생이 되는 데는 최소 6개월, 길게는 2, 3년이 걸린다고 한다.
'기름칠'로 공무원 찬스…외국 시행사는 사업 못해
시각물_도시개발 사업절차
시행사와 지자체 공무원의 부적절한 관계는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현재는 부적절한 유착 관계가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과거에는 꼭 거쳐야 하는 단계로 여겨졌다. 인허가는 거쳐야 할 단계가 너무나 많은데, 인허가권자들을 움직일 수 있다면 불확실성을 대폭 낮출 수 있다. 전직 공무원 F씨는 "시청에서 건축 관련 부서만 주택과, 도시정비과, 환경과, 토목과, 건축과, 도시계획과, 상하수도과 등 족히 10개는 된다"며 "사업계획서를 내고 일일이 허가를 받으려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만약 다른 과에서 승인을 했어도 도시정비과에서 "아파트 높이가 문제가 있다"고 반려하면 사업을 못하게 되는 구조다. G시행사 임원은 "복잡한 인허가 단계를 볼 때 외국 회사들은 우리나라에서 절대 시행을 못한다"고 말했다.
지자체 인허가권은 수도권 외곽과 지방으로 갈수록 세다고 한다. 업계에 정통한 금융권 출신 H씨는 "나 때만 해도 지방은 인허가에 '기름칠'(로비)이 가장 많이 필요했다"며 "거래 단위가 크면 지자체장까지 가야 했다"고 귀띔했다.
I시행사 임원은 "2000년대 후반까지는 매일 유흥주점을 가고, 주말에는 골프 치고 그랬다"면서 "요즘은 거의 없어졌다고 하지만 아직 뒷돈을 주는 데는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화려한 피날레는 분양...과도한 수익 때는 타깃
토지 매입이 밥상을 차리는 테이블 세터라면, 인허가는 찬스를 해결하는 4번 타자다. 분양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사업의 마지막을 책임질 마무리 투수다. 건물까지 올린 상태에서 분양에 실패하면 부채에 깔려 죽는다고 한다. J시행사 임원은 "수지 분석표 안에 있는 수익구조는 페이퍼 머니일 뿐"이라며 "현실에서 돈이 되려면 100% 분양이 돼야 하는데, 분양이 안 되면 이건 수익이 아니라 아주 큰 마이너스"라고 설명했다.
분양 리스크는 잠재고객이 얼마나 많은가로 판단된다. 잠재고객은 신규 이주 수요자와 기존 노후 지역의 이주 수요자로 구분한다. 대장동에 '판교'가 붙는 것처럼 입지 프리미엄이 있다면 '완판'은 따 놓은 당상이다.
시행사의 적정 수익 기준은 없지만 업계에서는 '10%의 법칙'이 통용된다. 사업 구상 때 최소한 10% 수익을 보고 하지 않으면 금융기관에서 사업 자금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수익이 기대치를 웃돌 때는 주변의 타깃이 되기 십상이다. 누가 봐도 추진하기 어려운 사업이라고 봤는데, 그게 성공하면 수사 기관에 찌른다는 것이다. E시행사 대표는 "검찰에 불려가 조사받고, 세무서가 탈세로 걸면 아무리 돈을 벌어도 상처뿐인 영광으로 끝난다"고 말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경기에만 2만개 넘는 '화천대유' 바글... "개발이익 크니, 갈 데 뻔하죠" [시행사의 세계]
입력
2021.11.02 04:30
김창훈 기자
['도박이냐, 투자냐' 시행사의 세계]
시행사 6만3000개, 5년간 2배 증가
사업성 높은 경기에 3분의 1 집중
편집자주
성남 대장동 특혜개발 의혹으로 부동산 시행사업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한국일보는 합법과 불법을 줄타기하며 한탕 수익을 추구하는 시행사의 실태와 대안을 3회에 걸쳐 살펴봅니다.
민간 사업자가 막대한 개발이익을 얻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에서 지난달 24일 개발사업이 진행 중이다. 뉴스1
"요 몇 년 사이 주택 공급이 부족해 시행사들은 분양 걱정을 덜었죠. 돈이 넘치니 개발이익이 큰 곳으로 달려갔는데, 어디겠습니까. 뻔하죠."
부동산개발의 지상 과제는 이익 극대화이고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인구에 기반한 수요가 받쳐줘야 한다. 이 같은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 경기도다. 지난해 말 기준 경기 지역에는 2만 개가 넘는 부동산개발 사업자(시행사)들이 바글거린다.
1일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분석한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말 전국에 2만9,914개였던 부동산개발업 등록 사업자는 지난해 말 6만3,066개로 5년간 2배 이상 증가했다. 2018년까지는 한 해에 수천 개씩 늘다가 집값이 급등한 2019년과 지난해에는 매년 1만 개 이상 추가됐다.
시도별 부동산개발업 등록 사업자 증가율. 그래픽=강준구 기자
시·도별로는 경기에 전체 사업자의 3분의 1인 2만0,950개가 집중돼 있다. 여기에 서울(1만954개)과 인천(3,339개)까지 합치면 수도권의 사업자(3만5,243개)가 전국 사업자의 55.6%를 차지한다. 2015년 서울(6,255개)과 경기(8,638개)의 사업자 수는 2,383개 차이였지만, 지난해에는 이 격차가 9,996개로 벌어졌다. 개발할 땅이 부족한 서울보다 경기 지역에 시행사들이 대거 몰린 영향이다.
시행사들이 벌어 들이는 수익은 정확히 집계되지 않는다. 사업자로 등록했어도 몇년 동안 사업 실적이 전무한 시행사들도 수두룩하다. 다만 국세청의 법인세 신고 현황을 통해 이들의 수익을 유추하는 건 가능하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지난해 법인세를 신고한 부동산개발업 법인은 2만6,646개였다. 이 법인들의 전체 수입금액은 69조357억 원이다. 여기서 각종 경비를 제외한 소득금액은 12조3,077억 원이고, 총 부담세액은 1조6,294억 원이다. 2016년과 비교하면 법인세 신고 법인수는 2배 늘었고, 수입금액과 소득금액은 각각 1.6배, 2.0배 증가했다.
한 시행사 임원은 "부동산 개발 규제가 갈수록 심해져 현재 사업 환경이 좋지는 않다"면서 "최근 도시형생활주택과 오피스텔 규제를 일부 푼다고 하니 다들 그쪽을 알아보는 것 같다"고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110116320005852
'인허가'에 돈·인맥 베팅한 20년, 굿모닝시티는 반복됐다[시행사의 세계]
입력
2021.11.02 10:00
최다원 기자
'비리 온상'으로 오명 쓴 20년 시행업 史
지자체 인허가가 사업 성패 결정하지만
절차 복잡·불확실, '뒷돈' 유혹에 취약한 구조
편집자주
성남 대장동 특혜개발 의혹으로 부동산 시행사업의 민낯이 드러났습니다. 한국일보는 합법과 불법을 줄타기하며 한탕 수익을 추구하는 시행사의 실태와 대안을 3회에 걸쳐 살펴봅니다.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이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화천대유자산관리 사무실에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뉴시스
국내에서 부동산개발사업에 특화된 시행사, 즉 디벨로퍼의 역사는 길지 않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거치며 대형 건설사들이 이전처럼 대규모 개발을 주도하기 어려워지자 그 틈을 비집고 성장했다.
20여 년에 불과한 기간 동안 시행사들은 수많은 '흑역사'를 써 왔다. 지방자치단체 말단 공무원부터 유력 정치인까지 수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시행사의 편의를 봐주고 뒷돈을 챙긴 혐의로 법정에 섰다.
한국일보가 만난 시행사 관계자들은 지금도 유착과 비리의 유혹이 여전하다고 털어놨다. 지자체가 쥔 '인허가권'을 사업에 유리하게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면 예나 지금이나 억 단위의 로비도 감수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은 낯선 일이 아니었다.
굿모닝시티가 쏘아 올린 ‘민관 유착’, 더 대담하고 조직적으로
지난 2003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창열 굿모닝시티 회장이 증인석에 앉아 있다. 홍인기 기자
인허가와 관련된 시행사의 대규모 로비가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2001년 서울 동대문시장 '굿모닝시티 사건'이다. 부지 확보조차 안 된 대형 복합쇼핑몰을 분양부터 해 3,700억 원대의 피해를 입힌 사건 뒤에는 지역구 국회의원을 통한 인허가 로비가 있었다. 시행사 대표 윤창열씨가 정대철 당시 새천년민주당 의원을 통해 서울 중구청을 회유하려고 4억 원을 건넸으나 인허가를 앞당기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로비는 개발 영역을 가리지 않았다. 서울 양재동에 복합유통센터를 짓는 '파이시티 사업'에서도 시설 용도 변경 등 인허가 봐주기 명목으로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조정실장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이 수천만~수억 원을 챙긴 사실이 드러났다. 굿모닝시티 비리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인 2006년부터 2008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2016년 12월 27일 부산지검 수사관들이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의 배덕광 새누리당 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부산 해운대의 초고층 복합건물인 엘시티를 둘러싼 금품 비리 사건의 불똥은 청와대까지 튀었다. 2007~2010년 사업계획상 불가능한 주거시설을 허용하고 건축 높이 제한을 풀어주는 등 엘시티 사업에 대한 부산시청과 해운대구청의 이례적인 인허가가 줄줄이 이어지자 로비 의혹이 불거졌다. 검찰 수사 결과 엘시티PFV의 실소유주 이영복 회장이 배덕광 전 자유한국당 의원과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유력 인사를 상대로 대대적인 로비를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정관계 인허가 로비는 현재 진행형이다.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은 용인시장이었던 2014~2018년 용인 기흥구 일대 건설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시행사에 편의를 제공하고 뇌물을 받은 혐의로 1일 구속기소됐다.
시간이 곧 돈, 인허가 앞당기기에 혈안
2002년 '오포 개발'과 2011년 '제주 판타스틱 아트시티'도 인허가 비리로 도마에 오른 굵직한 개발사업이다. 이 밖에 이름이 붙지 않은 수많은 사업들이 인허가 관련 비리로 수사를 받았다.
시행사가 지자체의 인허가 단계에서 사업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공을 들이는 것 자체는 '순리'다. 최소한의 계약금으로 토지를 확보한 뒤 인허가를 거쳐 땅의 부가가치를 끌어올리는 게 시행업의 역할이자 수익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즉, 인허가가 사업 성패는 물론 사업의 시행 여부 자체를 결정 짓는다.
지난 2012년 복합유통단지 파이시티가 들어설 예정이었던 서울 서초구 양재동 옛 화물터미널 펜스에 인허가 비리를 비판하는 글이 씌어 있다. 배우한 기자
문제는 '인허가 리스크'가 사업 과정에서 한두 단계에 걸쳐 해소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도시개발사업을 기준으로 보면 구역지정에서부터 준공까지 시행사가 거쳐야 하는 인허가는 수십 개의 지자체 부서와 연관된다. 절차가 복잡하고 대상이 다양하니 담당 공무원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도 많아진다. 사업 기간을 단축해 제때 상품을 공급해야만 대출 이자와 미분양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시행사 입장에서는 뒷돈을 주고서라도 인허가를 앞당기려는 '유착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항소심 판결문에서도 업계의 이런 관행을 엿볼 수 있다. 김 전 차관에게 금품을 전달했다고 주장한 사업가 최모씨는 법정에서 "시행업 특성상 분양을 하나 끝내고 나면 인허가 과정에 무슨 문제가 있지 않았느냐 하는 의혹 때문에 특수부의 타깃이 된다"고 진술했다. 뇌물공여에 관한 최씨 진술의 신빙성은 파기환송심에서 다뤄지게 됐지만, 검찰의 타깃이 된다는 점에는 다수의 시행사 관계자들이 공감을 표했다.
정관계 인사 정보 수집은 기본, 땅 좁은 지방서는 더욱 심각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당 지역 정관계 인맥 파악은 기본 중 기본이다. 20년 넘게 시행사에 몸담고 있는 A씨는 "친분으로 인허가를 앞당길 수 있어 지역구 국회의원, 시장, 시의원까지 중·고등학교는 어디를 나왔고 친인척은 누구고 그 자녀들은 어디에 다니는지 등을 꼼꼼히 파악한다"면서 "만나서 밥이라도 먹으며 계속 접점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퇴직 공무원이 차린 업체를 통해 로비를 하는 것이 '꿀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 시행사 대표 B씨는 "인허가가 어려워도 전직 공무원이 연관된 회사를 통하면 전관예우로 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가 돈다"면서 "전직 공무원의 역할에 따라 로비 금액은 많게는 억 단위까지 올라 간다"고 했다.
개발사업을 둘러싼 '민관 유착'에 대한 고백은 공직 사회에서도 흘러나온다. 전직 공무원 C씨는 "수도권 외곽만 가도 공무원과 토지주가 같은 동네 사람이고 시의원과 전부 선후배 사이"라면서 "업자들이 몇 다리만 건너면 지자체 담당자를 만나기 쉬우니 저녁자리를 마련해 인허가 이야기도 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111011338000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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