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출마선언문 소감1 (재해석 + 부적절 제목)
원시
http://dg.kdlp.org/295389
2007.03.10 17:22:43
135
심상정언니 출마선언문을 읽고서 드는 생각들
지금은 솔직이 정파를 떠나서 민주노동당 자체를 살려야 하는 시급하고 다급한 상황에 있다고 판단해서, 대선 후보들의 정치내용들에 대해서 생산적인 토의를 위해 몇가지 적는다.
1. 전태일 정신 재해석해야
전태일 묘소 방문시 젊은 나이에 병마로 먼저 사망한 심상정 언니의 두 동료들 이야기는 가슴아픈 사연이었다. 그분들은 당시 국회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심상정 자료집을 다 읽지 않았지만 기사에 나온 것으로는 경제대안들을 많이 내세운 것 같다. 그렇다면, 전태일 정신을 언급할 때도, 전태일님이 스스로 만든 회사설립계획 (노동자들의, 노동자들을 위한 회사창립)안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전태일님이 위대한 이유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찾아서 실천했다는 것이니까. 자칫하면 전태일열사 언급은 관성적이고 노동운동가에 대한 판에 박힌 권위에 의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성장하는 만큼, 전태일, 그리고 80년 광주, 87년 6월 항쟁 등을 재해석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2. 제목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민주주의 시대)은 민주노동당에서 내거는 정치적 구호로 부적절하다고 본다.
심상정 언니의 정책내용에 이미 나왔듯이,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큰 질병은,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빼앗긴 정도가 아니라, 얘들도 “아파트 30평에 사냐? 45평이냐”고 묻는 판에, 노동소득 = 행복의 필수적인 객관적인 조건이라는 믿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노동소득에 대한 냉소가 한국사회의 가장 큰 질병이고, 한국자본주의의 도덕적 해이현상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민주주의, 이 제목은, 그 내용은 이해할만 하나, 구호로는 부적절하다.
첫번째, 가난 자체가 정치적 목적이 될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도 당사자들을 위한 민주주의는 희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두번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민주주의는, 고전적으로 플라톤 [공화국]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등에서 등장하는 민주주의 개념이다. 못배우고 가난한 다수 대중들이 아테네 정치를 좌지우지한다는 의미이고, 특히 부자들 재산들을 빼앗아 자기들에게 나눠주는 대중인기 정치인들을 선출한다는 아주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귀족주의적이며 보수적인 플라톤, 아리토텔레스의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가 현재 관점에서 올바르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아마 영리한 보수주의나 사유재산제를 옹호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이 정치적 구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민주주의가 가지는 함의에 대해서 아주 쉽게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손석희도 심상정 후보가 사유재산제 재-분배정책을 어느정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물어본 적이 있다. (노동소득이 아닌) 자산 재분배 문제는 아주 세밀하게 다루지 않으면 우파로부터 역공세가 펼쳐진다.
세번째, 최장집교수의 민주주의 담론 때문인가? 왜 민주노동당에서 자꾸 [민주주의] 라는 말을 남용하는가? 그 이유가 불분명하다. 차라리 개념을 쓸 바에는, 참여-복지-평등-사회 민주주의 이런 용어들을 직접 쓰는 게 낫다.
관료주의와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별해서 참여민주주의, 교육/건강을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복지민주주의, 인종, 성, 학력, 지역 차별을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평등민주주의, 해외투기자본과 재벌의 횡포를 조장하는 시장을 통제하고 규제한다는 의미에서 사회민주주의 등으로 대체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최장집 교수나 아담쉐보르스키가 현재 어떠한 정치적 철학에 근거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최근 최장집교수의 글들은 주로, 민주주의 공고화 이론 (consolidation of democracy)에 근거하고 있다. 최장집교수의 이론적 근거는 로버트 달(Robert Dahl )의 복수, 혹은 다원 민주주의, 폴리아키 (Polyarchy 여럿 + 정치체제)에 있다는 게 엿보인다.
폴리아키는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성인들 그룹들이 선거라는 제도공간을 통해서 서로 경쟁해서 다수결로 당선되는 정치체제가 바로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로 본다.
(최장집 교수가 말한 한나라당으로 정권교체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보수언론에서 증폭시켰지만, 최장집 교수의 이론적 전제에는 선거를 통해서 게임을 치르고 승자가 정권을 잡는다는 게 민주주의의 요체라는 것이다.) 이러한 로버트 달의 민주주의 이론은 직접민주주의나 민주사회주의적 민주주의나, 인민의 의지=주권라는 고전적 공화주의와는 차이가 난다.
현재 한국사람들의 정치적 관심사에, 민주주의는 멀어져 있다. 그게 87년 체제 이후 한국에서 안착되고 있는 형식적 리버럴 민주주의 (formal and liberal democracy)에 대한 염증과 불신이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이명박 지지율 증가 현상은 반-민주주의, 정치나 민주주의 보다는, 가처분소득 (내 주머니에 돈이 쌓여야) 증대만이 모든 정치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노동당이 지난 6년간, 혹은 2년간, 민주노동당식 민주주의 개념을 만들어 왔는가? 당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민주주의 개념이 있는가? 대중들에게 각인된 도장으로서 민주주의 개념이 있는가? 전무는 아니지만, 안에서 새는 쪽박 바깥에서도 새게 되어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 개념을 사용할 때는 보다 더 주의깊은 판단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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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2007.03.10 18:13:38
철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민주주의'란 용어에 대한 원시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도 처음 본 순간부터 문제의식을 가졌죠.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같은 식으로 가난을 하나의 미덕으로 보는 입장이 아닌 한, 가난은 극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계속 환기시킬 때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뭐 그렇게 느낄 사람들이 일부라 할지라도 굳이 그 표현을 쓸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후의 과정부터는 좀더 긍정적이고 밝은 쪽으로 가도록 힘쓰는 게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에휴, 뭐 뾰족한 대안은 떠오르지 않네요....
답글
2007.03.10 18:24:08
원시
철이님에게/ 비판적으로 말해보자면, 조야한 민중주의적 정치표현이라고 봅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정치적 시민이고 주체이지 않습니까? 갑종근로소득세 내면 다 정치적 시민자격이 있거든요. 경제적으로 가난하다 집이 없다 이런 조건만 따져서, 복지혜택의 대상으로 간주해버리면 그것은 행정관료주의적 행태와 똑같습니다. 가급적 서민이라는 용어, 시혜적 대상으로 간주하는 단어들은 사용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대안은요, 땀흘려 일한 만큼 대접받는 사회. 갑종근로소득세 내는 사람이 주인되는 사회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요.
심상정님 연설문에서도, 대안경제 이야기하면서, 서민이 주인이 되는 경제를 만들어보겠다고 했으니까, 이 점을 더 살려야 한다고 봅니다.
답글
2007.03.10 18:27:04
철이
원시님/
그런데 사실 우리 당이 쟁점으로 삼을 내용은 어차피 가난, 불평등 이런 거가 될 수밖에 없죠. 이런 것들을 용어화하는 데 좀 밝고 희망적인 분위기로 가자는 게 제 이야기인데 그게 쉽지가 않죠.
님이 제시안 대안은 틀리지는 않았지만 계속 써왔던 것이고, 쌈박하게 대중의 의식을 끌어들일 만하지는 않습니다. 연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죠.
답글
2007.03.10 18:33:48
원시
철이님/능력이 되는한 연구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고 싶어하니까요. 평생 서민으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답글
2007.03.10 18:34:02
철이
노태우의 '보통사람들'이란 표현이 반권위(주의)를 긍정적이고도 대중들의 심리에 편안하게 다가갔다는 점에서 또한 시대의 흐름을 탔다는 점에서 칭찬해줄 만했죠.(전적으로 표현의 문제에서)
그후로 문민정부니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같은 식으로 흐름을 탔는데 이들도 모두 같은 맥락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 당장 '민중의 정부' 같은 식으로 할 수 없으니 좀 갑갑한 면이 있죠. 그나마 서민이란 말이 낳은데 이것도 그렇게 감각적이지는 않죠.
답글
2007.03.10 18:49:03
철이
'80%가 이 땅의 주인이다.'는 관점에서 출발하면 어떨까합니다. 이 나라 80%가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 등등 생각나는대로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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