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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이철희 장영자 사건 구속, 판결 언론보도. 1982. 08~1983

by 원시 2023. 2. 18.

 장영자 이철희 사건은 2007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에서 보여준 MBS CDs CDO 등 파생금융 상품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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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보도. 1982. 08.09 사건 일지

 

 

 

 

중앙일보 

 

공동품 거래로 치부 시작
중앙일보
입력 1982.05.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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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단자·증권·사채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장영자란 어떤 인물인가.
44년10월25일생, 금년 나이 38세. 전남 강진에서 지주 집안의 2남3녀중 둘째딸로 태어나 목포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문학에 심취한 그 지방의 지식인이었고 어머니는 독실한 천주교인이었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고등학교를 가톨릭 계통인 서울 K여고를 졸업했고 65년 모 여대교육과를 졸업한 인텔리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첫 남편인 김모씨와 중매 결혼했다. 남편 김씨는 사업관계로 남미를 여행 중 모기에 물려 건강을 상실해 이혼을 하게 되었다. 이때 장 여인은 세검동의 저택(1억원 상당)을 포함, 상당액의 위자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후 홍모씨(제강업)와 재혼한 장씨는 오래지않아 다시 이혼하게 되었고 이때도 5억여원의 위자료를 받았으며 이 돈이 오늘의 장씨가 금융·증권계를 뒤흔들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이다.
○…거액의 돈을 꿀리던 장 여인은 은행가에서도 극진히 모셔야할「예금 왕」으로 군림해 왔다.
장 여인이 금융가에 데뷔한 것은 작년 초 조흥은행 모 지점장에게 수십억원의 적금을 들 테니 적금증서를 만들어 오라는 전화를 하면서부터.
전화를 받은 지점장은 반신반의하면서 장 여인을 찾아갔으나 장 여인은 억대가 넘는 1회 불입금을 선뜻 내놓았다는 것.
숨은 실력자로 부상한 장 여인은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어느 기업사장을 통해 모 은행에 선뜻 50억원의 예금을 하기도 했다.
장 여인의 예금을 알선한 이기업체는 물론 이 은행에서 상당액의 대출을 받아갔다.
장 여인의 예금을 유치(?)한 지점장은 본점의 요직으로 발탁되기도 했으며 은행장이 이 지점장을 앞세우고 장 여인에게「문안인사」를 다녀오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씨는 주로 해외건설 업체를 대상으로 사채놀이를 했다.

 


해외건설 업체들은 수억 달러 내지 수십억 달러의 해외건설 수주를 하고 있는 만큼 자금난을 겪더라도 정부가 쉽사리 부도처리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데 착상한 것이다.
장씨가 돌린 어음을 받고 골탕을 멱은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그 중엔 사건이 미리 터져 화를 모면한 경우도 있다. 모 건설업체의 경우 장씨에게 넘기기로 하고 그 대금을 바로 문제가 되어 있는 모 기업의 어음으로 받기로 했던 것.
장씨 측은 모 건설업체 소유주에게 『내가 당신의 기업을 37억원에 인수하겠다. 인수 대금으로 모 기업의 어음 70억원을 줄 테니까 인수 대금을 제외한 잔액은 당신 회사의 어음으로 끊어달라』고 조건을 제시했다. 장씨의 제의를 받은 기업인은 응낙하고 4월30일 사인하기로 합의했다는 것.
만약 합의한대로 되었더라면 이 기업인은 부실어음 70억원을 받아 쥐고 대신 그가 갖고있던 건설업체를 잃을 뻔 한 것은 물론이고 약30억원의 빚마저 짊어질 뻔했다,
○…수백점의 골동품을 갖고 있던 장씨는 76년 신안 해저 유물을 여러 점 밀매한 혐의로 수사기관에 구속됐다 벌금을 물고 나왔다.
장씨가 불교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것은 79년 초겨울. 독실한 천주교 신자었던 장씨가 불교로 개종한 것은 어느 날 부처님의 인도를 받는 꿈을 꾸고 나서였다. 꿈 이야기를 들은 불교 신자인 언니가 적극 개종을 권유했고 장씨는 소장하고 있던 문화재급의 골돔품 용두관음묘차상을 서울 삼청동 칠보사에 봉안하기에 이르렀다.
장씨가 본격적으로 증권에 손을 대기 이전의 치부방법은 골동품 수집이었다.
칠보사 봉안식이 있고 한달 반만에 장씨는 이서옹 스님(전 조계총 총정·현 백양사 조실스님)으로부터「보각항」이란 불명(불명)을 받았고 이때부터「장 보각항 보살」로 거물 신도가 되었다.
특히 백양사 문중의 화주(화주)가 되어 불사(불사)가 있을 때마다 수천만윈 씩을 괘척했고 작년 봄 장성호 수륙 대재인 방생 법회 때는 사비 1억윈을 들여 이 행사를 치렀다. 버스 1백50대 대절비. 3만여 신도의 도시락까지 장씨가 맡았다는 것이다. 또 제주 관음사 산하 말사(말사) 에 동양최대 석불상 건립에도 3천여만원을 내놓았으며 국제 불교도 협의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국제불교 교류에도 앞장섰다. 이를 근거로 금년 봄엔 대만을 방문, 현지 불교단체와 자매결연을 했다.
지난해 6월에는 2억6천여만원을 들여 삼각산 정토사를 인수, 이름을 각진선원으로 고친 뒤 주식회사 형태의 사찰을 만들었다.
○…남을 사로잡는 화술과 뛰어난 미모로 지금도 20대로 보이는 장씨는 불교계를 바탕으로 일반 사교계에 뛰어들었고 80년 초 역시 불교신자였던 이철희씨를 만났다.
이 두 사람을 중매해준 사람은 서울 상도동 백운암의 장모 보살(작고) .
당시 이씨는 초로의 57세. 그때까지 호적상의 총각이었다. 주위에서는 그가 독신주의자였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이번 사건이 터지고 나자 글래머 여우였던 K모양·제일교포 여인 등과 동거까지 하는 등 다채로운 여성 편력을 갖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장씨는 외출할 때나 모임자리에나 갈 때나 한복만 입었고 화장을 하지 않는게 특징. 값 비싼 장신구도 걸치지 않는데다 깔끔한 화술, 단아한 자태로 항상 좌중을 압도했다는 것이다.
특히 부처님께 발원할 때는 내용도 훌륭한데다 목소리가 고와 주위사람들이 탄복하기 일쑤였고 어떤 신도들은 장씨의 발원 내용을 녹음해 애청할 정도였다.
○…그들이 결혼식을 올린 것은 지난 2월14일 서울 장충동 사파리 클럽에서였다.
S, K, L 등 국회의원 10여명과 C, M등 예비역 장성 등이 하객으로 나왔고 이서옹 스님이 주례를 맡았다.
특히 이 자리에는 3개 시중 은행장들이 한꺼번에 참석, 사채업자들에게 이씨 부부의 실력을 간접적으로 과시했다.
청담동 집은 싯가3억원 짜리로 벤츠2대를 굴리면서 이씨와 장씨가 각각 1대씩 소유, 주로 은행장 등 거물급 인사들을 만나러 갈 때 사용했고 평소엔 그라나다를 이용한다는 것.
검찰에 압수된 백만 달러는 장롱속에 아무렇게나 들어 있었고 금괴3백60kg(싯가 43억여원)·다이어먼드·귀금속·골동품·서화 등 값진 귀중품만 수십억원 어치가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용도불명어음 77억 원|검찰, 행방 찾기에 고심"|이철희-장영자씨 부부 어음 어떻게 돌고 돌았나
중앙일보
입력 1982.05.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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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수사할 문제점은 남아 있다. 대화산업 이철희·장영자씨 부부 거액어음사기사건은 11일 검찰의 중간수사발표로 그 베일이 한 꺼풀 벗겨진 셈이다. 그러나 정치자금 설과 어마어마한 배경을 이용한 사채금융조작 설에서부터 경제공황의 위기로까지 표현됐던 파동이었던 만큼 검찰의 수사는 벗겨지지 않은 부분을 더 캐내야 할 것 같다. 즉 ▲사용처가 불분명한 77억 원의 행방 ▲장씨의 자금조성원천 ▲이씨 부부로부터 빌어 쓴 돈의 9배가 넘는 공영토건의 어음발행경위 ▲미화 60만 달러의 매입과정과 용도 ▲금융동원의 비용으로 나간 87억 원의 내용 ▲문턱 높은 은행의 장씨에 대한 저자세 ▲담보어음(견질 어음)을 유통시키게 된 근본원인 ▲남편 이씨의 구체적 영향력 행사 등 이 문제점이다.

<어음거래>
이 가운데 가장 큰 의문점을 안고 있는 부분이 공영토건과 장씨와의 어음거래부분.
검찰발표에 따르면 공영 측이 장씨로부터 빌어 쓴 실 채무 액은 l백69억 원이다.
그러나 회사가 장씨에게 발행한 어음은 1천4백68억 원으로 빌은 돈의 무려 9배에 가까운 어음을 더 끊어주었다.
기업이 사재를 쓸 경우 실 채무 액의 2배(담보어음 포함) 까지 어음을 발행하는 것은 관례로 되어 있으나 이처럼 9배나 되는 어음을 끊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영이 해외공사 수주 고나 경영수지 면에서 착실한 회사였고 회사채가 어느 건설회사보다 인기가 있었다는 점에서 무모할 점도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장씨의 사채를 쓸 정도로 자금압박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진단이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초과 발행된 1천2백99억 원이 다른 부분에 소모되었거나 장씨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할만큼 그의 존재를 공영 측이 높이 평가했다는 풀이를 하고 있다.

<외화출처>
이씨 부부가 국내에 갖고 있던 외화는 미화 60만 달러(20만 달러 추가적발)와 일화 8백만엔 등 모두 4억5천여 만원.
지난 7일 검찰이 이씨 부부를 외환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할 때의 발표대로라면 서울 남대문 암달러시장에서 10여 회에 걸쳐 이들 외화를 구입했다. 우리나라 암달러시장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실정에 비춰 최소한 한 번에 6만 달러 이상의 고액권 달러를 10여 차례 계속적·반복적으로 사들이는 것을 일선 수사기관이 새까맣게 몰랐느냐 하는 점이다. 그 소지목적과 동기 또한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검찰은 아직 외화소지 부분에 대해 충분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국민들의 관심은 장씨의 엄청난 사기행각으로 보아 언젠가는 해외 도피할 자금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자금조성>
장씨의 최초 순수개인자산은 50억 원설(본인 주장)과 20억 원설(검찰인정액수)의 양론이 있다.
검찰발표대로 20억 원의 자산 설을 인정한다 해도 일반인들에겐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첫 번째 남편 김 모씨와 이혼할 때 받은 1억 원과 78년 두 번째 남편인 홍 모씨(K제강대표)와 이혼 때 받은 위자료 등 항간에 떠도는 5억 원 조성까지는 인정한다 해도 나머지 15억 원 정도를 여자혼자서 어떻게 모았느냐 하는 점이다.
장씨는 홍씨와 사는 동안 증권투자로 많은 재미를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오늘날 이와 같은 「사채지진」의 시발이 된 20억 원의 자금조성과정이 분명히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80년 증권계 등장 이전의 장씨 행적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

<커미션>
이씨 부부는 사채시장 등을 동원, 1천억 원이 넘는 현찰을 시중에, 은행에 예치시키면서 87억 원을 예금유치비용으로 썼다. 1천만원의 예금을 할 때마다 전주에게 50만원씩의 커미션을 주었다는 게 검찰 측 수사결과 내용이다.
문제는 이 어마어마한 돈을 예치한 예금주는 누구며 몇 명의 예금주에게 최고 얼마까지의 커미션을 주었고 그 전주는 어떤 인물들인가 하는 것이 궁금증이다. 50만원씩 주었을 경우 1년6개월 동안 1만7천4백 명의 전주를 끌어 들였고 그동안 1천7백40억 원이란 천문학적 돈을 동원했다는 계산이다.
장씨로부터 커미션을 받고 예금을 함으로써 은행으로 하여금 장씨를「귀한 손님」으로 모시게끔 한 대전주가 누구인지 전혀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큰 물주는 장씨가 부도처리 될 줄 뻔히 알면서도 담보어음을 할인한 사실과도 연계되어 밝혀져야 한다.
즉 장씨가 증권투자에서 받은 손실(검찰발표 3백77억 원)을 보충하기 위해 담보어음을 유통시켰고 중권투자의 손실은 사채시장의「더 큰손」이 장씨의 투자증권의「뒤통수를 쳤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퍼지고 있다.
결국 지하금융이라는 맥락에서는 그「더 큰손」도 언젠가는 장씨와 같은 경제질서 파괴의 원흉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검찰수사는 이번 기회에 대 전주들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들이다.

<은행의 처사>
은행문턱이 높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장씨는 조흥은행으로 부 터 3백50억 원을, 그것도 대부분 무담보로 융자받았다.
공영토건에 대해서는 무제한으로 어음용지를 내주도록 은행장에게 전화로 요구했고 그대로 실행되었다.
은행관계자들은 그들의 생리상 자금동원 능력이나 예금실적 정도 가지고 한 여자에게 몇백 억 원의 돈을 무담보 융자한다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는 이야기다.
검찰은 발표문에서『이규광씨 와의 관계과시 등으로』은행장 등을 사귀어 특혜를 받았다고 밝혔다.
다시 말하면「관계 과시」만으로 은행장들은 장씨에게 약했다는 설명이지만 납득이 안 간다.

<77억 원의 행방>
지금까지 사용처가 밝혀지지 않은 77억 원의 행방에 대해 사회의 눈은 집중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 부부가 초과 발행어음유통 이외에 증권투자와 사채놀이에서 취득했다는 2백억 원 상당의 재산현황이 분명치 않은데 의아심을 품고 있다.
시중에서는 이들 부부가 미국캘리포니아주 이외에 알래스카 등에 투자한 사업이 있다는 소문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소득의 재투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소위 이들 부부가 「번 돈」의 행방과 77억 원의 정체를 검찰은 명쾌히 밝혀야 한다는 주장들이다. <고정웅 기자>

 

3개 은서 천71억 대출
중앙일보
입력 1982.05.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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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장영자 부부는 조은·상은·대구은행으로부터 무려 1천71억 원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은행감독원이 14일 국회재무위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장영자씨는 직접 대출을 6백86억 원, 일신제강과 공영토건 명의로 3백85억 원을 대출 받았는데 직접 대출 받은 6백86억 원은 성읍 목장에서 40억 원(상은), 경주 유드 호스텔 6백46억 원(대구 은)이다.
경주 유드 호스텔은 장씨가 모 기업으로부터 21억 원에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번 일신제강 부도와 공영토건 법정관리로 인한 금융기관의 손실은 무려 1천3백56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일신제강 부도로 인한 금융기관손실은 모두 9백74억 원인데 상은의 5백17억 원이 가장 많고 다음 외환은 1백13억 원, 단자회사 2백48억 원, 조흥은행 48억 원 등이다.
공영토건 법정관리로 인한 이자손실은 모두 3백82억 원이며 상은의 1백17억 원이 가장 많고 다음 단자회사 2백26억 원, 조흥은 39억 원 등이다.
은행감독원은 이번 공영·일신 등 6개 기업체에 대한 금융기관 총 여신은 9천3백93억 원인데 담보는 2천2백62억 원으로서 담보부족은 모두 7천1백31억 원이라고 밝혔다.

 

 

 

 

차입 4,593억, 담보 81억 공영|차입 2,691억, 담보 857억 일신
중앙일보
입력 1982.05.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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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자 여인과 관련된 2천6백24억 원(6개 업체)의 어음은 발행에서 상환까지의 거래기간이 2월26일∼9월17일 사이로 되어 있으며 공영은 모두 4천5백93억 원, 일신이 2천6백91억 원의 금융채무를 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공영은 4월말 현재 장 여인이 사용한 1천4백68억 원외에 3천l백91억 원의 금융부채를 지고 있는데 담보는 81억 원에 불과, 4천5백12억 원의 담보부족을 나타내고 있다.
일신은 장 여인 어음 5백9억 원을 합쳐 모두 2천6백91억 원의 금융 부채를 지고 있으며, 담보부족이 l천8백34억 원이나 된다.
이러한 사실은 13일 재무위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밝혀졌다.
이밖에 장 여인과 관련된 나머지 4개 기업은 ▲대양금속 2백19억 원(담보부족 1백8억 원) ▲라이프주택 2천1백80억 원(담보부족 1천8백8억 원) ▲삼익주택 l천7백86억 원(담보부족 l천2백22억 원) ▲해태제과 1천2백17억 원(담보부족 9백40억 원)씩 각각 금융부채를 지고 있다.
이들 4개 기업에 대해서는 주거래은행에서 지원, 장 여인 사건 때문에 부도를 내는 일은 없도록 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정부는 부도로 처리된 공영·일신에 대해선 이철희·장영자의 개인재산과 일신의 배길훈 사장·주창균 회장, 공영의 변강우 사장 및 배우자·직계 존비 속의 재산을 전부 색출해서 채무상환에 충당하기로 했으며 채무상환은 소액채권자에게 유리하게 배분하기로 했다.
종업원 대책으로 일신은 새 기업주가 결정될 때까지 주거래은행에서 공장을 관리, 공장을 존속시키기로 하고 공영의 해외건설도 차질 없이 수행해 나가도록 했다.

<공영·일신 부채내역 표 4면>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경제"
중앙일보
입력 1982.05.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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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자 여인의 사채파동의 파장은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 이 사건으로 손해를 입는 자, 또 이익을 보는 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장 여인 사건의 충격파는 너무도 크고 깊다.
이익을 본 사람이 극소수인데 반해 손해를 입은 쪽은 광범하다. 따지고 보면 국민 모두가 피해자가 됐다.
이익을 봤다면 장 여인과 밀착됐거나 그 배후의 몇몇 사람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손해를 본 것은 국민경제이고 국민전체다.
장 여인의 사채파동에 직접 관련된 기업(6개)은 제의해 놓는다 하더라도 우선 장 여인과 이철희씨가 돌린 어음을 잡고 있는 선의의 피해자가 수천 여 명 있다(정확한 숫자는 아직 누구도 모른다).
이들은 어음을 받고 물품을 납품했거나 돈을 꾸어 준 사람도 있다. 공영토건과 일신제강이 부도났으니(공영은 법정관리가 됐지만 일단 부도처리 됐다) 어음을 갖고 있는 수많은 채권자들은 그 돈을 받기가 어렵게 됐다.
상당기간 지불이 유예되거나 일신의 경우는 자칫하면 거의 못 받는 사태가 될지도 모른다.
둘째는 운행과 단자회사 등 금융기관의 손실이다.
현재까지 조흥은행이 60억 원, 단자회사들이 30억 원 어치의 어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피해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일신과 공영에 대해 대출해 준 막대한 자금을 완전히 회수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은행장의 사임과 간부들의 문책인사도 은행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정신적 손실이 될 것이다. 셋째는 정부의 손해다. 정부는 관련 다른 기업의 부도를 막기 위해 우선 1천억 원의 긴급자금을 공급하기로 했으나 그것으로 둑이 막혀질지 의문이다.
2개 기업의 부도와 관련업체의 부실화로 세수에 적지 않은 차질을 빚을 것이다.
지원한 자금에 대한 회수도 쉬운 일은 아니다.
넷째는 국민, 즉 국민경제의 피해다.
이번 사건을 보는 국민의 분노와 허탈감은 형언이 어렵다.
한자리수 물가안정을 하겠다고 하며 생활급도 힘겨운 봉급의 인상억제를 감수했는데 2천여 억 원의 돈을 여자가 굴렸다.
돈에 대한 국민의 생각이 어떻게 되겠는가.
특히 3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불황에 이번 사건은 설상가상의 타격을 주었다.
사채시장·단자시장이 얼어붙고 자금거래가 위축돼 부도위기에 물리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의 자금난은 매우 심각하다.
이렇게 엄청난 일을 저질러 놓은 것이다. 제로섬이 아니라 엄청난 마이너스 게임을 장 여인이 벌인 것이다. <이제훈 기자>

 

 

공영부도 공표 12일간 은폐
중앙일보
입력 1982.05.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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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감독원과 상업은행이 장영자 여인 사채어음사건에 관련된 공영토건의 부도처리를 고의적으로 지연시키고 부도사실을 부인함으로써 이 회사주식에 대한 선의의 투자자에게는 피해를 주었고 공영토건 관계자·계열기업 및 기관투자자에게는 부당한 이득을 준 사실이 13일 국회 재무위에서 문제됐다.
이수종 의원(의정)은 은행감독원이 공영토건어음에 관해 4월29일 부도처리를 해 놓고도 이를 바로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고 12일 후인 5월11일에 밝힘으로써 그간에 공영토건 관계자들 및 그 계열기업인 동해생명과 기관투자자들은 공영토건 보유주식을 모두 처분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배수곤 은행감독원장은 공영토건어음을 4월29일에 부도처리하고 대외적 공표는 5월11일에 했다고 확인했다.
박봉환 증권감독원장은 부도처리과정에 관한 답변에서『4월30일 증권가에 공영토건 부도 설이 크게 유 포되어 증권거래소는 일시 공영토건 주식거래를 중단시킨 후 주거래은행인 상은 광화문지점에 그 사실 여부를 문의한 결과 광화문지점은「부도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으며 공영토건 측도「해외건설수주가 6천5백억 원에 이르고 은행에 2백40억 원이 예금돼 있어 부도 설은 전혀 근거 없다는 회답을 해 왔다」고 말하고 그래서 공영토건의 공시담당상무가 이날 하오3시 그 같은 사실을 직접 공시토록 하고 그것을 토대로 거래를 재개시켰다』고 밝혔다.
박 증권감독원장은『그러나 부도 설이 꾸준히 유 포되어 2회에 걸쳐 공영토건 매매거래에 유의해 달라는 요지의 방송을 했고 5월11일 공영토건의 법정관리 신청이 확인돼 매매정지 조치를 했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이런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고 답변한 나웅배 재무장관은 14일 회의에서 『공영토건 주식거래에 관한 증권거래소의 방문내용은 사실이다』면서『방송내용 중 해외건설수주액 6천5백억 원은 사실이나 은행에 2백40억 원을 예치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증권거래법에 따라 제재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증권감독원장은 4월30일부터 5월10일 사이에 증권거래소를 통해 거래된 공영토건 주식은 총4백3만주로 금액은 18억5천만원에 달한다고 밝히고『공영토건의 방계회사인 동해생명을 통해 거래가 이루어 졌는 지의 여부는 현재 실 거래자에 대해 증권감독원과 증권거래소가 합동으로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박 증권감독원장은『주식거래가 가명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많아 실 거래자의 파악이 어렵다』면서 실 거래자를 최대한 파악해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청담동에 금싸라기 땅 9만평|이철희·장령자 부부의 "부동산 일부"
중앙일보
입력 1982.05.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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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장영자 부부의 부동산 목록 일부가 밝혀졌다.
관계기관이 집계한 바로는 이씨 부부가 소유한 부동산가운데 은행에 근저당한 서울 청담동자택과 서울 평창동 각진비원·경기도 남양주 별장 등 서울·부산일대에 분산된 땅만도 모두 9만3백1평에 건물넓이만도 1천1백60평인 것으로 13일 밝혀졌다.
이들 땅·건물 등은 모두 조흥은행 우도·덕수 두 지점에 공동담보물로 근저당 설정됐는데 근저당설정금액은 70억 원이었다.
근저당한 이씨 부부의 부동산은 ▲임야 7만4천2백66평 ▲대지 7천1백98평 ▲건물 11동 1천1백60평 ▲잡종 지 7천8백6평 ▲밭 7백34평 ▲논 2백97평으로 나타났다.
이씨 부부는 이들 부동산을 3백52억 원의 어음을 초과 발행했던 일신제강이 조흥은행에서 지난해 10월23일과 11월6일 두 차례에 걸쳐 융자를 받도록 하는데 담보물로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부동산 공동담보물로 근저당 설정된 것 만이기 때문에 이외에도 상당량의 부동산이 전국 곳곳에 산재돼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담보에 제공한 이들 부동산의 일부는 장씨의 오빠 장상률씨와 이철희씨 공동소유로 되어 있었다.
부동산 목록은 별표와 같다.

 

 

장 여인 첫 남편 곧 구속 (김수철 53: 대아금속 사장) 
중앙일보
입력 1982.05.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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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 중앙 수사부는 14일 이철희·장영자씨 부부에 이어 장씨의 첫 남편 김수철씨(53·대아금속 사장)를 사기 등 혐의로 구속할 방침이다.
검찰에 따르면 장씨는 전 공영토건 사장 변강우씨와 친구사이로 맨 처음 장씨가 이 회사와 거래를 시작할 때 알선을 했으며 그 뒤 공영의 자금사정 등 회사약점을 탐지, 장씨에게 알려 실 채무액보다 많은 견질 어음을 받아내도록 했으며 장씨의 어음 할인 과정에서 사기 수법을 교사한 혐의다.
또 김씨는 이씨 부부의 재산중 사용처가 불분명한 77억원 중 상당액을 빼돌려 은닉시켜준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65년 장씨와 결혼, 12년간 살다 77년 합의 이혼했으며 증권가의 중계인 역을 하고있다.
검찰은 또 사채업자들의 수사에서 최근 김씨가 거액의 자기앞 수표를 갖고 다니며 하루에 1억원씩 사용처가 분명치 않게 소비했다는 진술에 따라 이 돈의 출처를 추궁하고 있다.
김수철씨가 장영자 여인을 만난 것은 65년 봄. 모 기관원으로 일선에서 솜씨를 발휘하고 있을 때였다.
친지의 소개로 S여대를 갓 졸업한 장 여인을 만난 김씨는 미모와 능숙한 화술에 반해 곧 청혼, 같은 해 가을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이들은 결혼신고를 4년 후인 69년에 했으며 76년 별거할 때까지 서울 숭인동·홍지동·신영동 등에 옮겨 살았다.
결혼 다음해 장녀(16), 5년 후인 70년에 장남(12)을 낳았다.
김씨가 해외 근무를 끝내고 귀국한 75년부터 부부사이가 벌어졌으며 별거생활을 하다 77년5월 합의 이혼했다.

 

(4)견질 어음과 가등기의 함정
중앙일보
입력 1982.05.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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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시장은 비정하다. 그러나 때로는 사채업자들의 교묘한 함정에 빠져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찮다.
이번 장영자 여인 사건의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가 어깨서 뿌리가 깊고 이름이 널리 알려진 내노라는 대기업들이 한 여인의 손바닥에 놀아났느냐 하는 점이다.
파동에 휘말린 업체들-일신제강·공영토건·라이프주택·삼익주택·해태·태양금속-어느 하나 만만한 기업이 없으며 특히 이중 2개 업체는 우리 나라 기업사에도 기록될 만큼 역사를 가진 회사들이다.
그 기업에는 자금담당 이사, 부장 등 사채를 늘 취급하는 전문가들이 많을텐데도 어째서 기업은 실제 빌어 쓴 돈의 몇배에 해당하는 견질 어음(담보조의 어음)을 내 주었으며, 심지어는 돈도 받지 않고 l백억원에 가까운 어음부터 주었을까?
설사 장 여인이 견질로만 받아놓고 들리지는 않겠다고 약속했다지만, 그 어음이 은행창구에 제시되면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그들이었기에 이러한 의문은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에 휘말린 어느 기업주의 속사정을 들어보자.
장씨 부부의 사채 융통제의를 받은 이 기업주는 마침 돈이 아쉬운 때라 믿을만한(?) 경로를 통해 이들 부부의 신원조회와 신용조사를 의뢰했다.
이들의 화려한 경력은 물론 이규광씨의 인척이라는 배경과 함께 수백억원의 돈을 굴리고있는 사람이라는『믿을 수 있는 정보』가 전달됐다.
이 기업주는 장씨 부부가 자금난에 쪼들리는『우리 회사의 속사정도 잘 꿰뚫고 있다』는 것 등을 종합, 돈을 쓰기로 했다.
50억원으로 출발한 거래는 조건도 좋았고 처음 몇 개월 동안은 약속대로 착착 결제됐다.
장씨 부부를 믿게된 이 기업주는 조건이 좋은(연리20%에 2년 거치 3년 분할로 당시 은행보다 금리나 기간 등에서 더 유리했다)사채를 더 많이 쓰기로 했다.
역시 몇 개월 동안은 약속이 잘 지켜졌다.
그러나 얼마 후 이들 부부는 견질 어음을 요구했다.
이들 부부는『나중에라도 자금 출처를 조사 당하면 곤란하니, 당신들의 견질 어음을 은행에 담보로 넣고 은행에서 돈을 꺼내야 내 돈(사채)의 출처를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고 했다.
이 기업은 어떤 의미에서는 타당성이 있기에 그러면 견질 어음에 해당하는 만큼의 상대적 댓가를 요구했다.
이들 부부는 견질 어음에 해당하는 만큼의『주식 보관증』을 써 추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견질 어음을 받은 이후 갖가지 이유를 붙여 더 많은 견질 어음을 요구했고, 당초 은행에 담보로 잡히겠다는 약속과는 달리 사채시장에 내다 팔았다.
뒤늦게 이 기업이 견질 어음과 주식 보관증을 교환할 것을 제의했으나 장씨 부부는『괴롭히면 받아놓은 어음을 일시에 몽땅 돌려 부도를 내겠다』고 윽박질렀다. 비록 적자에 허덕였지만 사업에 대한 집념과 검소한 사생활로 재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기업인이었지만 이제 그는「한낱 기업을 망친 부실기업인」으로 전락했을 뿐이다.
그가 『기업이 돈을 벌 때는 기업 이윤의 사회환수라고 외치던 당국과 여론이었는데 이제 기업이 망하려는 판에 어찌 기업인의 탓으로만 돌려야하느냐』고 호소하지만 대답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77년에 도산한 식품업체인 S산업의 도산도 비정한 사채업자들의 생리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당시 식품업계의 정상을 겨루던 S산업의 창업주 김씨는 건강도 악화되고 자금도 다소 달려 76년10월 S산업의 돈줄을 담당했던 C씨를 대표이사로 영입, 경영권을 맡겼다.
C씨는 경영권을 말자 창업주인 김씨 계열을 퇴임시키면서 김씨와의 불화를 빚었다.
김씨가 경영권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가 77년6월 승소판정을 받았으나 C씨는 사채시장에서 끌어오는 돈줄을 끊었다.
김씨는 결국 77년10월, 경영권을 다시 돌려받은지 4개월만에 사채공세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사채업자들이 마음만 먹고 연합전선을 전개하면 기업은 순식간에 앙상한 잔해만 남는다.
과거의 천우사·고려제지·천도제과 등이 그 예다.
기업들은 사채를 안쓸 수 없지만 항상 화약을 지고있는 셈이다.
그동안 소위 건실한 기업(?)이 갑자기 흔들거리거나 부실기업 파동이 날 때마다 그 밑바닥엔 사채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서민들과 일부 중소기업을 올리는 것은 가등기의 함정이다.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고리 대금을 하는 사채업자들이 즐겨 이용하는 것이 바로 가등기.
서울 종로 뒷골목, 동대문 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이들은 신문에『급전대출, 2번 저당도 가』등의 광고를 내고 영업을 하고 있다.
급전을 구해야하는 서민들이 이들 고리대금 브로커들의 주 대상이다.
이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이 부동산 가등기.
돈을 꾸어주면서 서민들의 부동산을 전주명의로 가등기하고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약정된 기일 안에 돈을 갚지 않으면 가등기권자 앞으로 명의를 이전해도 좋다는 이른바 화해 조서를 꾸미고 공증까지 받는다.
대출 기간은 3개월이 관례. 이때 일부 악덕 브로커들은 원하는 기간만큼 돈을 연장해줄 수 있다는 얘기를 하지만 그동안 이 말을 믿다가 재산을 날린 사례가 많다.
3개월 만기가 돼 기일 연장을 하려고 브로커를 찾아가면『전주가 급한 일이 생겼기 때문에 연장이 어렵다』고 튼다.
만약 돈을 빈 서민이 다행히 돈이 일찍 마련돼 사채를 미리 갚으려해도「약정기간」을 이유로 그럴 수도 없다.
그러나 일부 악독한 브로커들은 약정기간이 되면 아예 자리를 피하거나 사무실을 옮기기도 한다.
돈을 빈 서민이 돈을 갚으려고 찾아다녀도 브로커나 전주들은 이미 자리를 감추었고 본의 아니게 약정기한을 어기게되고 가등기했던 부동산도 날려버리게 된다.
한때는 이같이 계획적인 사기방법으로 담보로 잡았던 부동산을 상습적으로 사취해온 일당이 구속된 예도 있다.
이럴 때는 갚을 돈을 법원에 공탁하고 가등기 말소절차를 밟으면 되지만 착하기만 한 서민들은 이를 모르고 당하기가 십상이다. <박병석 기자>

 

전담수사관 백여 명…단일사건 최대 규모 사채파동
중앙일보
입력 1982.05.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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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을 다룬 검찰의 수사방법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초진이 늦었다』고 말한다. 이는 화재발생 때 소방차의 출동에 비유한 말이다.
뒤늦게 검찰은 대검검찰연구관·서울지검 특수 부·남부지청·대검 3, 4과를 투입했지만 처음부터 사건이 내포하고 있는 다양성으로 보아 진작에 파트별 수사 팀을 구성했어야 했다는 자체반성도 없지 않다. 이 엄청난 사건을 단 l개 수사 팀(중앙수사부 제2과)에 전담시켰다는 것은 큰 오판이었다.
현재 투입된 수사진은 이종남 대검중앙수사 부장을 총괄팀장으로 부장검사 3명 등 검사 15명, 전담수사관 1백여 명 등 5·16후 단일사건으로 최대규모다.
검찰이 밝히고 있는 수사의 초점은 이들의 배후세력과 은닉재산의 규모. 이밖에 ▲대출경위 ▲외화도피 ▲최초의 재산축적과정 ▲관련 어음규모 ▲사취수법 ▲탈세액 등 분야별로 전담반 형식으로 수사가 펼쳐지고 있다.
그동안 소환된 사람은 줄잡아 2백여 명. 이 중에는 임재수 전 조흥 은행장, 공덕종 전 상업은행장을 비롯해 조흥은행의 신영철 전무 등 두 은행간부 20여명과 일신제강의 주창균 회장, 태양금속 한은영 사장 등 관련기업 경영진 10여명, 사채업자 소씨의 전 남편 2명과 친정가족 등 이 포함되어 있다.
진전이 없이 지지부진하던 수사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12일 하오부터였다.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묵비권을 행사하던 부인 장씨는 수사관이 보는 앞에서 남편 이씨에게 『이제 모든 것을 다 털어놓자. 얼마간 징역을 살지 모르지만 출옥 후 당신의 연금으로 살아가면 되지 않느냐』고 설득하더라는 것.
이번 사건과 관련되어 압수된 장부는 장씨의 메모가 적힌 낡은 달력 l개와 돈 부대 1개 분량의 은행서류, 양팔에 끼고 다닐 정도의 기업체 경리장부 등 이 고작이었다.
요즘 검찰에서는 너 나 할 것 없이「몸조심」「입 조심」「귀 조심」등「3대 조심」을 안명보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느낌.
저질연탄사건 이후 신경질적으로 보안유지에 주력해 온 검찰은 사상 유례없는 메거톤 급 사건이 터지자 수사실무진은 물론 그 언저리의 인사들까지도 이·장 부부사건에 관해서는 철저히 함구.
3대 조심이란 업무에 관련된 사람 이외에는 되도록 사람 만나는 걸 피하는 게「몸조심」, 알든 모르든 간에 사건 관계는 한 마디도 발설하지 앓는 게「입 조심」, 궁금하고 답답해도 구태여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게「귀 조심」이라는 해석들.
그러나 한편에선 지나치게 보안을 강조하다 보면 조직이 경직되어 중의가 모아지지 않고 검찰의 진의가 오도될 우려가 없지도 않다고 걱정.
이·장 부부 거액 어음사기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검찰이 보름이상 철야작업을 하고 있는 데도 그동안「강 건너 불 보기」로 뒷짐을 지고 있던 법원이 공영토건의 회사정리신청이 접수되자 크게 긴장.
더구나 회사정리 신청은 성질상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완전보안이 유지되어야 하는데도 접수 나흘만인 11일 신문에 보도되자 서울민사지법 간부들은 이를 부인하느라 한때 진땀.
정기승 민사법원장은 끝까지『나는 모르는 일로 수석부장판사의 전결사항』이라고 미루었고, 안우만 수석부장은『접수가 안됐다』고 시종 부인하면서『회사정리신청사건은 결정이 날 때까지 보도를 않는 것이 정도』라며 언론중재위원장답게 설명.
법원실무자들은 하급직원의 실수로 회사정리신청사건의 접수가 확인되고 곧바로 보도되자『외부에는 법원에서 확인했다고 하지 말고 회사에서 확인했다』고 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국제관광공사는 공사소유인 경주 조선호텔 등을 인수할 예정으로 있는 라이프주택이 장영자 여인에게 4백25억 원의 견질 어음을 발행, 곤란한 처지에 빠지자 예정대로 호텔을 인수할 것인지를 확인하느라 부산.
라이프주택은 관광공사가 소유하고 있는 경주조선호텔 주식지분을 53억 원에, 경주보문단지골프장 주식을 73억 원, 해운대비치호텔 주식을 3억4천만원에 인수키로 하고 지난달 24일 가계약까지 체결한 상태.
관광공사 관계자는 라이프주택이 매입대금의 10%를 계약금으로 지불했기 때문에 어려운 처지인대 호텔 등을 예정대로 인수하겠다는 태도를 보여 일단은 안심이 되지만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노동부는 이·장 부부의 거액어음사기사건에 휘말린 회사가 6개 사에 이르자 이들 기업의 도산으로 인한 종업원들의 실업사태를 종업원들 못지 않게 우려.
노동부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직후 피해회사 종업원들의 체임현황조사에 나선 결과 어수선한 가운데도 종업원들이 대부분 정상출근, 동요 없이 근무하는 것을 보고 일단은 마음을 놓았다고-.
이 관계자는 게다가 일부 직원들이 사표를 내고 회사에 퇴직금지급을 요구하는 예도 있었지만 많은 동료들로부터 핀잔만 받았다며『회사가 어려울수록 노사협조가 잘되는 법』이라고 큰소리.
서울시는 거액어음사기사건의 화가 지하철공사에까지 미치지 않을까「벙어리 냉가슴」을 앓던 중 별다른 피해가 없다는 판단이 서자 안도의 한숨.
서울시의 이 같은 우려는 어음사기사건의 회오리에 휘말린 회사 중 지하철 2,3,4호선 공사를 맡고 있는 공영·삼익·라이프 등 3개 건설회사가 과거 서울시의 토목공사를 맡았다가 도산, 큰 피해만 안겨 준 제세 산업과 신진기업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
그러나 지하철공사 참여회사에 대해 2개의 다른 회사가 각각 보증을 서도록 안전판을 마련해 둔 데다 지난해 2억5천만원과 7억5천 만원 짜리 토목공사를 맡았던 공영토건이 부도직전에 있다는 정보를 이미 지난 3월 입수, 공사비 지불을 미루어 와 서울시의 피해는 걱정할 것이 못된다고 결론. <고정웅·권일 기자>

 

 

장 여인에 수사관이 코피 권하자 "전남편에게도 한잔 주세요"|구속중인 이철희-장영자 부부 처음 카메라 앞에
중앙일보
입력 1982.05.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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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장 잠적"긴장>
두 은행장에 대한 환문 조사가 시작된 것은 본 국회재무위에 이들이 출석하기 전날인 5월13일 밤부터.
검찰은 이미 은행지점장 중역들의 조사과정에서 두 은행장의 배임혐의를 밝혀 내고 구속키로 결정한 뒤로 날 자를 재무위가 끝난 다음으로 하느냐, 먼저 하느냐를 놓고 고심하던 때였다.
신병확보를 위해 수사관들이 두 행장 집을 덮쳤을 때 공 행장은 집에 있었으나 임 행장은 부인과 함께 이날 아침 집을 나간 후 연락이 끊겨 잠적한 것으로 보고되는 바람에 초긴장상태였다는 것.
공상은행장을 먼저 연행할 경우 이를 임 조흥 은행장이 알게 되면 영원히 숨어 버릴 우려가 있어 검찰은 임 행장을 찾을 때까지 공 행장의 연행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밤 수사 팀은 세브란스병원에 피신 입원중인 임 행장을 찾아내 신병확보에 성공, 임상조사를 끝냈고 공 행장은 14일 새벽 마포 남경호텔로 불러내 1차 조사를 했다는 것.
검찰의 1차 조사 때는『국회에 나가 뭐라 답변하겠느냐』는 등 허술한 심문으로 이들을 안심시키고 이 때부터 수사관 2명씩을 따라 붙여 신명확보에 만전을 기하도록 했다.
<처음엔 경찰서 수사>
이·장 부부를 구속한 경찰은 처음 며칠간은 보안유지를 내세워 이들을 치안본부 특수대로 불러내 조사했다.
그러나 내부의견이 가뜩이나 국민들의 의혹이 많은데 하필이면 경찰관서로 데려가 조사할게 뭐냐는 쪽으로 기울자 심문장소를 주간에는 교도소, 야간에는 검찰청으로 정했다는 것.
특히 검찰청에 이들을 데려올 때에는 매일 밤9시∼9시30분 사이에 대법원 옆에 있는 법원후문을 통해 법원구치 감으로 데려가 지하통로를 이용, 15층 조사 실까지 이송하는 등 보안에 철저한 신경을 쓰기도 했다.

<사실 밝혀지면 눈물>
장 여인은 자신의 진술이 틀린 것이 밝혀질 때마다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려 수사관들은 『장 여인이 대질에서 울면 믿을 만한 진술』로 받아들였다.
수사관들에 따르면 장 여인이 진술한 어음의 할인액수가 사채업자들의 말과 엄청나게 차이가 많아 검찰은 15일 밤 구속된 사채업자인 전영채씨(35·삼부토건 자금부장)의 수감을 하루 늦추며 대질시켰다는 것.
장 여인은 기록장부가 일체 없고 전씨는 거래장부가 있어 전씨 장부를 토대로 하나하나 따졌고 장 여인은 결국『전 부장이 그럴 수가 있느냐』고 울며 전씨의 주장이 맞 다고 시인했다는 것이다.

<링게르 맞으며 진술>
접견금지조치 속에 서울구치소 여자 독방에 수감된 장 여인은 쉴 새 없는 심문에도 잘 견뎌 수사 팀의 걱정을 덜어 줬다.
이 사건의 핵심인물인 장 여인이 쓰러질 경우「큰일」이 나기 때문에 수사 팀은 링게르주사를 놓아주는 등 건강유지에도 세심한 배려.
장 여인은 무척 대담한 성격인 듯 사식을 남김없이 먹어 치워 경제사범으로는 의외라고 교도관들이 혀를 내두르기도.
장 여인은 구속 당시 갖고 있던 20만원을 구치소에 영치 시켜 놓고 끼니때마다 8백원 짜리 백반을 주문해 먹고 있다.
남편 이씨도 28만원을 영 치 해 놓고 사식을 먹고 있으나 장 여인보다는 식사를 못하고 남기는 일이 많다고 교도관들이 걱정.
한편 서울구치소 측은 이번 사건관련자를 모두 독방에 수용해 놓고는 교도관들에게 이들의 꾐에 빠지지 않도록 특별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남편 호칭 "이 장군">
장영자 여인은 15일 아침 수사관들이 코피를 권하자『김수철씨에게도 한잔 전해 달라』고 부탁해 수사관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김수철씨는 장 여인의 첫 남편으로 바로 옆방에 있는 현 남편 이철희씨가 아닌 김씨를 들먹일 줄은 수사관들이 미처 몰랐던 것.
이씨는 수사도중 부인 장 여인을 시종일관『집사람』이라고 지칭했으나 장 여인은 거의 이씨를 지침하지 않고 때때로『이 장군』이라고 불렀다. 장 여인은 최근까지 김수철씨를 계속 만났고 두 사람 사이에서 낳은 남매도 자주 만나는 등 다정하게 지냈다는 것이 밝혀지자 수사관들은『그렇게 다정한 사람들이 왜 이혼했는지 아리송하다』는 표정들.

<은행엔 한 번 나타나>
장 여인은 두 은행을 농락했으나 은행에는 딱 한번 나타났던 것으로 전해졌다.
장 여인은 지난해 11월 조흥은행 행장 실에 잠시 들른 적이 있으나 당시만 해도 장 여인의 실력(?)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터라 관계자들은 특별히 기억할 만한 것이 없다고만 말했다.
장 여인의 일은 주로 장 여인의 비서 격인 김용남씨를 통해 임 전 행장 실에서 진행됐기 때문에 관계자들도 전혀 내용을 몰랐다.
한편 장 여인이 검찰에 붙잡히던 날 임 행장 부부가 장 여인 집에 갔었던 것은 그 날이 마침 임 행장부부의 결혼기념일로 부부가 저녁을 같이 한 후 담보문제 등 이 걱정돼 찾아갔다고.
조흥은행 관계자들은 임 행장 부부가 같이 간 것은『남자(임 행장)가 여자(장 여인)를 만나러 갈 때 부인을 동반하는 것이 관례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맞춤법 거의 안 맞아>
장 여인은 글씨를 제법 잘 쓰는 편이었지만 이철희씨는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못 쓰는 데다 맞춤법마저 엉망이었다. (장 여인은 16일 자술서를 쓰는 과정에서 예쁜 글씨체로 또박또박 잘 썼음) 이씨는「국민학교 1학년」정도 수준의 글씨인데다 받침도 거의 틀려 수사관들이 혀를 찰 정도였다는 것.

<"누가 변호인" 관심>
이·장 부부를 포함해 17일까지 구속된 사람들은 기소될 경우 모두 단독 판사심리 사건으로 과연 합의부 사건이 될 만한 혐의내용이 앞으로 추가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변호사들 간의 큰 관심거리.
일반적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대규모사건은 대부분 합의부사건으로 사건이 클수록「유명」한 변호사들이 변호인으로 선임되어 왔으나 이번 사건은 규모는 엄청나지만 모두 단독사건으로 구속된 피의자들 숫자도 많지만 모두 돈이 많은 경제사범들이라 소장변호사들까지 크게 구미가 당기는 눈치들.
한 변호사는 장 여인의 탈세부분이 추가되지 않는다면 단독사건이 될 것이 틀림없다며 지금까지 단독사건사상 가장 관심이 쏠리는 큰 사건일 것이라고 말하고『누가 변호인에 선임됐느냐』고 궁금해했다.

<스님들 발길 줄이어>
각종 불사에 깊숙이 간여해 온 장 여인은 사찰에 자금지원 약속을 남발, 장 여인 집엔 승려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경기도광릉의 봉선사 주지 김월운 스님은 지난 80년 여름 장 여인으로부터『봉선사 청풍루(신도회관)건립공사를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신영동 집으로 찾아갔으나 장 여인이 다른 손님들(대부분 스님)을 가리키며『돈 달라고 찾아오는 손님이 저렇게 많다』며 귀찮다는 표정을 보여 그대로 돌아왔다는 것.
장 여인은 화장품을 살 때도 「큰손」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한번 구입 때 20여 만원 어치를 사며 3만∼4만원의 거스름돈은 챙기지도 않았다고 신영동 집 이웃주민들은 말했다.

<장 여인 둘째 오빠는 집 없이 전세방 돌아>
장 여인의 아버지 장병준씨(67)의 등기상 소유재산은 서울 정릉동252의44 양옥집(75년 7월 구입, 대지 58평·건평 21평)과 구기동 35의11 3층 양옥집(79년 9월 구입, 대지 1백12평·건평 70평)등으로 장씨가 정릉동 집을 구입하기 전까지는 전세 집을 전전했다.
장씨는 80년 9월 현재 살고 있는 신영동 집(대지 1백여 평)으로 이사했는데 이 집의 명의는 딸 장영자 여인 앞으로 돼 있다.
정릉동 집에는 현재 장씨의 동생 북원씨(57)가족이 살고 있으며 구기동 집은 장씨의 조카 1명이 빈집을 지키며 시험준비를 하고 있다.
신영동 집에는 장씨 부부와 사망한 둘째아들의 자녀 3명, 셋째아들 진혁씨(40)의 아들 1명이 함께 살고 있다.
장씨의 큰아들 상률씨(47)의 밝혀진 재산은 서울여의도동 삼부아파트 6동 167호의 28평형 아파트와 서울 청담동71 일대의 대지(이철희씨와 공동소유) 1천4백60평.
상률씨는 78년 12월 삼부아파트를 구입한 뒤 80년 9월 부인 윤묘향씨(42)와 이혼, 장씨만 구기동 집으로 옮기고 아파트엔 현재 전처인 윤씨와 자녀 3명이 살고 있다.
진 혁씨는 현재까지 자기 집이 없어 전세 집을 전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 여인 골동품 80%가 "가짜"
중앙일보
입력 1982.05.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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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2천만원을 홋가한다는 이당의 미인도, 5천만원 짜리 고려청자, 운보·각제·남농의 산수화, 청담·서옹 등 서승들의 글씨….
1백여 평의 널따란 정원이 지하실과 참고에서 쏟아져 나온 1천여 점의 서화·골동품으로 비좁았다.
17일 하오 l시 30분. 서울 청담동 58블록 2 이철희-장영자씨의 집에서 실시된 재산감정·압수집행 광경은 마치 문화재 발굴현장을 방불케 했다.

<전문가20명 동원>
서울지검 박주선 검사의 지휘로 매매위탁기관인 상업은행 관계자와 경찰이 입회한 가운데 한국고미술협회 전문감정사 20여명이 동원돼 실시한 감정에서 베일에 싸였던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서화·도자기 등의 골동 수장품이 처음으로 전모를 드러냈다.
그러나 1천여 점의 수장품 가운데 80%는 가짜로 밝혀져 「2천억원의 여자」장 여인의 미술에 대한 안목은 역시 허영뿐이었음이 드러났다.

<3분의 1만 소장>
이날 감정에서 확인된 장 여인 수장품은 도자기·불상 7백여 점, 서화 3백여 점 등 모두 1천여 점.
장 여인은 이 1천여 점의 수집품 가운데 3분의 2인 7백여 점을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전 H 은행장 한모씨(61) 집에 맡겨두고 나머지 3분의 1만 청담동 자택에 수장하고 있었다.
검찰은 한모씨 집에 보관된 7백여 점을 일단 청담동 장 여인 집으로 옮긴 다음 자기골동·서화 등으로 구분, 감점을 실시했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것은 1억 2천만원을 홋가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당 김은호 화백의 미인도. 가로1m·세로2m 의 이 그림은 감정결과 가짜로 밝혀졌다. 평가액은 20만원. 감정사들은 진짜라도 3천 5백만원 정도이며, 1억 2천만원은 과장된 것이라고 밝혔다.
도자기류에서는 2백여 점의 이른바「신안유물」이 쏟아져 나왔으나 역시 거의 전부가 가짜.
그 중에도 2억원을 홋가 한다고 알려진 청자관음불상은 교묘히 모조한 홍콩제로 확인돼 감정사들을 실소케 했다. 만일 진짜라면 1억 5천만원은 받을 수 있는 명품이라는 것.

<최고 5천만원 짜리>
장 여인은 78년 가짜 충무공 혈죽도 사건으로 망신을 당한 뒤 어느 정도 고미술에 소양을 쌓은 듯 80년 이후 구입한 물건은 대부분 진품이었고 값도 싸게 사들였다고 감정사들은 전했다. 현대아파트 한모 은행장 집에 보관시켰던 것은 90%가 가짜인 반면 자기 집에 보관한 것은 90%가 진짜여서 장 여인이 안목을 얻은 뒤 소장품을 정리한 인상.
진품 중 최고감정가격은 5천만원 짜리 고려청자 매병. 높이 35㎝의 이 청자 병은 일본에서 구입한 것으로 추정됐다. 다음은 4천만원으로 평가된 이조백자당초문병.

<최하 5백원짜리도>
당초 50억원 이상으로 알려진 장 여인 소장품의 총 평가액은5억∼6억원으로 밝혀져 빈 껍데기의 인상.
1천여 점 가운데는 최하 5백원 감정가가 나온 모조품까지 다수 섞여 있어 감정사들은 『골동품장의 명예에 관계된 일』이라고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장 여인 소장품 가운데 이처럼 가짜가 많은 것은 78년 충무공 혈죽도를 속아 구입할 때 골동품상 박모씨에게서 가게 진열품 전체를 통째로 사버린 탓이라는 뒷얘기도 전해졌다.

<상은 창고로 옮겨>
감정이 끝난 소장품들은 일일이 사진을 찍고 목록을 작성한 다음 17일 하오 10시쯤 상업은행 소속 서울 8다 2596호 2t 트럭에 실려 3차례에 걸쳐 상업은행 본점 지하창고로 옮겨졌다.
한편 장 여인에게 절을 뺏긴 전 정토사주지 설산 스님은 지난 4월 20일쯤 장 여인에게 돈을 빌기 위해 5백여년 전 명나라 선덕 연간에 만들어진 놋쇠향로를 맡겼는데 돈을 못 빌고 이번 압수에 자신의 놋쇠향로가 쓸려 들어가지 않았는가 모르겠다고 문의전화를 해 오기도 했다. <한천수·허남진 기자>

"처제가 큰일 낼 것만 같았다"|구속까지 하게 된 파란만장의 이규광 스토리
중앙일보
입력 1982.05.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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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을 벗은「보이지 않는 손」-.
2천억 원을 집어삼킨 장영자 여인의 형부로 어음사기 극의 비호세력으로 떠오른 이규광씨(57).
이규동씨(대한노인 회 회장)의 친동생이기도 한 그의 주변에는 권력의 언저리에 날아드는 불나비들이 항상 서성거렸다.
이씨는 3형제 중 막내로 두 형도 군 출신.
본적은 경북 성주군 수륜면 남수리1840.
해방 후 잠시 경찰에 투신했다가 47년 육사 3기로 임관했다.
제주도폭동사건 때 진압부대요원으로 출동한바 있으며 이때 공적을 인정받아 헌병병과가 신설되면서 제주도지역 헌병 대장으로 임명돼 줄곧 헌법으로 있었다.
초급장교시절 과묵하고 강직한데다 맺고 끊는 면이 엄격해 헌병직책을 모범적으로 수행했다는 것. 이 때문에 진급도 비교적 빨라 헌법학교장·헌병사령부 부사령관·육군헌병 감·제2훈련소강·부군단장 등을 지냈다. 5·16후 61년 7월 육군준장으로 예편한 이씨는 63년 3윌「박임항 장군 반혁명음모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국토건설 단 보좌관직을 맡고 있다가 박임항·정진씨(예비역 대령)등과 주모자로 몰려 1심에서 사형을 구형 받기도 했다.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 2년만에 풀려났다.
교도소 안에서는 교도소 측의 특별배려로 반혁명 동지들과 식사를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다. 옥바라지는 주로 둘째형인 이규성씨가 맡아 했다.
이씨는 공직근무기간 미달 등의 이유로 연금대상에서 제외돼 준장으로 예편됐으면서도 연금혜택을 받지 못해 생활이 더욱 어려웠다는 것.
이씨는 10·26후 80년 5월 광업진흥공사 사장이 되기까지 일정한 직업을 가질 수 없었고 불우한 시절에 처제 장 여인이 이씨의 가계를 도와 형부와 처제의 통상적인 인척관계라 기 보다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로 주변에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그의 처지는 그가 68년 10월부터 80년 10월까지 12년 동안 1년에 한번 꼴로 꼬박 12번씩이나 이사하는 등 10·26 전까지만 해도 집 한 간 없이 지내 온 것으로 알 수 있다.
이씨는 75년 9월 부인 장성희씨(당시 43세)와 함께 국유지불하와 관련, 동부지청에 변호사법 위반으로 입건되기도 했다.
이씨 부부는 같은 해 9월 입건돼 이씨는 기소유예처분, 부인 장씨는 정식 기소돼 징역 1년 6월·추징금 3천3백 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때 추징금을 처제인 장·김수철 부부가 물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의 부인(장성희·50·장영자 언니)과는 재혼으로 자녀는 모두 4남.
먼저 부인과의 사이에 2남이 있으나 미국 등지로 이민 갔고 현재 서울에는 장씨와의 사이의 소생인 K대 1년 생 아들(18)이 있다.
이씨는 부인 장씨가 살림을 꾸려 왔기 때문에「내 주장」에 눌려 살았다는 것이 주위사람들의 얘기.
실제로 장씨가 지난 4월17일부터 5월8일까지 전북 남원의 암자(S수도원)에 단식 수도하러 머무를 때 서울에서 저명인사(?)의 부인들이 이 암자에 몰려들었으며 지난 2월 아들이 뉴욕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때 재계거물급인사들이 단체로 출국했다는 설도 있다.
10년 이상 자기 집이 없던 이씨는 지난해 11월27일 서울 방배동801의10 대지 1백40평·건평 1백 평 짜리 호화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지역은 이번에 재산세고액납부 3위를 기록한 S주택C회장 집을 비롯해 D그룹 K회장 집 등 이 있는 고급주택가로 이씨의 집 역시 시가 3억 원을 호가하는 호화주택.
이씨는 이 집을 81년 12월1일자로 김금옥씨로부터 사들여 그 해 12월27일자로 담보로 잡힌 듯 등기부상에는 D그룹회장 이종각씨(서울 동숭동199의8) 앞으로 가등기 돼 있다.
이씨는 82년 1기분 건물분 재산세로 45만4천9백42원을 납부한 것으로 돼 있다.
이씨는 이 호화주택에 입주해 살기 전에 서울 한남동726의111 힐 사이드 빌리지 B동3호 60평 짜리 아파트에 전세 2천만원에 살았으며 이번 사건이 터지자 방배동 주택에서 다시 아파트로 옮겼다.
이 아파트는 2층으로 아래층은 거실·부엌·화장실이고, 위층은 침실 4개·목욕탕 2개 등으로 꾸며져 있다.
월 관리비는 평균 5백 달러(35만원)선.
고려개발에 따르면 이씨는 80년 9월『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일반인이 오기 힘든 조용한 곳에 있고 싶으니 힐 사이드 빌리지를 빌려 달라』고 부탁해 전세입주를 했다는 것.
이씨는 이번 사건이 터진 후 사표를 내기 위해 동자부장관과 만난 자리에서『처제가 이 사람 저 사람 붙어 놀아나 골치를 많이 썩혔다』며 『계엄이 내려진 80년에 잡아넣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는 것.
이씨는 자신이 81년 사정기관에 이미 처제의 비위사실을 알렸으며 재빨리 손을 쓰지 못한 것이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게 됐다고 탄식했다는 뒷소문이다.
80년 5월12일 제6대 광업진흥공사 사장에 취임한 이씨는 13일 사임함으로써 꼭 2년1일만에 그만둔 셈.
광업진흥공사 자체가 정책결정기관이 아니고 집행기관 성격이므로 사장 그 자체도 지금까지 골치 아픈 문제로 머리를 썩히거나 많은 사람들을 접촉하지 않고 그저 적당히 지내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으나 이씨는 달랐다는 평.
『배경 있는 거물 사장』또는『밀어내기 식 업무스타일』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달리 광업진흥공사가 상당히 활기를 띠었다는 것.

 


이씨 자체는 5·16후 상당한 공백기간을 거쳐 공직을 맡았기 때문에 군 스타일은 가셨으나 밀의 군 출신 참모들이 군 특유의 방식으로 업무처리를 해 왔기 때문에 조직이 상당히 활성화되고 무언가 일을 해보겠다는 분위기였다.
이씨는 재임당시 지난 2월 삼척탄전지대에서 매장량 6천2백만t의 최대 양질 무연탄광 발견 등 업적도 많아 직원들은 상당히 호평을 하기도 했다.

 

장 여인 한달 생활비 3억 5천만원|1년2개월간 천억을 물 쓰듯
중앙일보
입력 1982.05.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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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장영자 부부의 호화사치 생활은 중동의 석유황족도 흉내내기 어려운 서민의 상상을 초월한 호사의 극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의 한달 평균 생활비와 접대비는 3억5천만원, 하루 평균 1천2백만원 꼴로 1년2개월 동안 49억원을 탕진한 것으로 수사결과 드러났다.
이규광씨에게 청탁명목으로 2억원, 딸 선물로 2캐러트 다이어 반지 구입비 2천만원, 첫 남편 김수철씨에게 생일선물로 5백만원 짜리 손목시계1개, 오빠 장상률·장진혁 등 친척에게 용돈·생활비 등으로 3억7천만원 등 매일 돈을 물 쓰듯 했다.
워커힐 별장 조경공사 등에만도 2억원을 들였고, 백양사 각진선원 지원자금 등 불사비용으로 6억1천만원을 썼다. 부산에 사는 백운학씨에게 1억5천만원, 자신의 호화결혼과 가구구입비로 1억원을 썼고 개인비서 2명과 경비원 4명의 인건비, 허영에 들떴던 해외여행 경비 등에 16억원을 소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괴·귀금속·골동품에 60억원을 들였고 외화도피 자금으로도 7억원을 들였다.
개인 재산으로 쓴 돈만도 ▲경주 유스호스텔 매입에 20억원 ▲워커힐 별장 매입에 5억원▲제주도 목장매입 31억원 ▲기타 부동산매입에 99억원을 각각 투입했다.
이 같은 탐욕과 사치, 허영의 밑천은 장 여인이 74년 첫 남편 김씨와 별거하면서 받은 2천만원 짜리 집과 위자료 2천만원을 비롯. 둘째 남편 홍 모씨와 헤어지며 받은 4억원과 이혼위자료 5천만원 등과 이철희씨의 8억원 상당의 재산을 굴린 20억원이 밑천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장영자완 성격안맞아 이혼|나쓰라고 4억준것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1982.07.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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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철피고인>
금수철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과 변호인 반대신문내용운 다음과같다.
-장영자와는 언제 결혼했나.
▲65년3월에 결혼, 75년4월에 이혼했으며 아들하나 딸 하나가 있다.
-장으로부터 돈받은 사실이 있는가.
▲78년에 1억5천만원, 79년에 1억5천만원, 81년에 1억원등 모두 4억원을 받았다.
-무슨 명목으로받았나.
▲아이들에게 집 사주고 양육비로 쓰라고 주었다.
-돈울 받으면 세금관계를 처리해야 된다는 사실을 아는가.
▲알고있다.그러나 처음엔 무의식적으로 받아 졌고 나중에야 세금을 내야 된다는것울을느꼈다.
-받은 돈은 모두 아이들에개 썼는가.
▲처음 1억5천만윈은 회사 증자에 쓰고 두 번째 돈부터 아이들을위해 썼다.
-피고인의 증여세 포탈액이 모두 3억천친2백만원인대 틀림이 없나.
▲틀림없다.
-김종무피고인을 아는가.
▲친구 소개로 79년 당시삼보증권 명동지점장으로있는 김씨를 알게 되어 친하게 지냈다.
-김피고인에게 어음을 할인해 준 사실이 있나.
▲81년11월22일 김씨가 갑자기 돈을 빌려달라며 2억원을 요구, 그 다음날 2억원을 주었다.
이자는 이야기를 안했는뎨 어음을 끊어 주며 5백만윈을 선이자로 주어 받았다.
-이자는 몇 차례나 받았나.
▲상환기일이되어도 한달한달 연기를 계속해와 5백만원씩 다섯차례 받았다.
-어음할인을 하려면 법에 따라 당국의 인가를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있나.
▲모르고 있다.
-피고인이 경영하던 대아금속이 사업부진으로 다른사람에게 판뒤 마땅한 사업이 없었던만큼 할인료를 받아 생활하려 했던게 아닌가.
▲그렇지 않다.
-경찰에서는 김종무와같이 어음할인을 요청해오는사람이 있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고 누구에게든지 돈을 빌려주었을 것이라고 진술했는데.
▲수사관이 그런 질문을해서 그대로 인정했다.
-매월 생활비는 얼만가.
▲1백만원이다.
<◇반대신운>
-장영자와 이혼한 이유는.
▲성격상 차이때문이다.
-공소장에는 4억원올받았는데 두번째 받은 돈이1억5천만윈인가, 아니면5천만원인가.
▲조사받는 과정에서 l억5친만윈으로 했다.
-피고인은 5천만원이라고 했는데 장이 1억5천만원울 주었다기에 그렇게하자고 인정해버린것이 아닌가.
▲조사받을때 그렇개 대답했다.
-장피고인이 돈을 줄 때 아이들을 위해서 지불하고 나머지는 애들 몫으로 나누어 주라고 한것인가, 아니면 피고인에게 준것인가.
▲나를 보고 돈을 줄리없다. 애들 2명에게 준것이다.
-두번째 돈운 무슨 용도로 누구에게 준것인가.
▲첫번째 돈으로 집을안사서 집을 사라는 돈이었고 애들앞으로 준것이다.
-마지막 1억원도 생활비로 준것인가.
▲아니다. 공영토건 이사장을 장영자에게 소개해준 사례비로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증여가 아니라 소득이아닌가.
▲그렇다.
-김종무와 과거에도 돈을 거래한 사실이있는가.
▲전히없다. 단 한번 뿐이다.

<변강우 피고인>
◇변강우피고인에대한 변호인 반대신문(금일두변호사)
-당시 공형토건의 자금사점이 중동의 쿠웨이트 공사실패로 적자가 컸는가.
▲결손은 있었으나 위기는 아니었다.
-이· 장부부의 자금지윈은 회사측의 요구인가.
▲이·장부부가 먼저 자청해왔다.
-이들 부부와 거래조건은?
▲금리는 연리22% 2년거치·3년분할상환으로 은행과 비슷했으나 담보가필요없고 많은 자금을 융통받을수있어 은행보다 유리했다.
-어음발행 당시 견질어용이란 말용 사용했나.
▲견질어음이란 말은 검찰에서 처음 들었고 당시에는 보관용 어음이라고말했다.
-이·장부부는 견질어음을 활용하겠다고 공영측에알려준 것으로 진술하고 있는데.
▲틀림없이 보관용이라고 했다.
-그들이 특수자금이라며 비밀로 해달라고 했고 특수신븐인것처럼 행동했는가.
▲그렇다. 성실한 기업을지원해주니 절대비밀을 생명으로 알고 써달라고 했다.
-금수철 피고인에게 2억원을 준사실이 있는가.
▲이철희피고인이 사례하라고 해서 주었다. 처음에는 기천만원 정도로 생각했으나 큰돈을 주라고 해서 2억원을 주었다.
-이철희피고인이 간첩 접선 방법처림 비밀스런 방법으로 만자자고 했는가?
▲인상이 그랬는줄 모르고 완절무결했다.
-이들 부부의 마력같은능력에 이끌린 것인가.
▲그렇게 표현할수 있겠다.
-이· 장부부와 짜고 회사에 손해를 낸것은 아닌가.
▲부실기업도 아니고 무엇이 답답해서 그렇게 했겠는가 속은 것이다.
-다른 회사도 이들부부와 거래했는데 공영토건만이 배임으로 재관받는것을어떻게 보는가.
▲법률적인 것은 잘모른다. 금액이 많으니 죄가많은 것으로 생각한다.

 

 

 

장영자 자술서
중앙일보
입력 1982.07.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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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사업동기>
79년12월 중순께 이철희 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철희 의 현직은 국회의원이었습니다.


당시 본인의 직업은 아무 것도 없었는데 77년7월14일 신안 앞바다 골동품취득혐의로 2년 동안 집행유예를 받았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노출활동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78년에는 불교계에 용두관세음보살 상 조성복원의 인연으로 투신, 단지 불사에만 전념했고 생활비용은 현금50억 원 상당이 단자회사에 있었기 때문에 풍족한 위치에서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철희 를 만나 모든 주위 가족들의 권유와 본인과 이철희의 진실한 인연이 닿아 80년 1월께 에 대흥사에서 가족들만 조촐히 모여 부처님 앞에서 맹세하고 5월 혼인 신고를 한 후 6월 청담동 자택을 준비해 동거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이철희는 유정회 가 해체되어 무직으로 있었으며 더구나 국회의원 생활을 했었기 때문에 정치 규제자로 낙인 찍혀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본인은 과거 74년도부터 증권에 투신하여 이재를 한 경험을 갖고있었고 여자이면서도 남다른 경제를 운영하여 현장 (시장)에서 현실적으로 재산을 모은 경험이 있었기에 ,

 

본인은 남편의 과거 국가기관에 종사하였을 때의 실력과 두뇌 등 여러 가지 남편의 저력과 능력이 사장되어 무위도식을 하게된 점이 무척 가슴 아팠고 본인남편 이철희 가 59세에 이르렀기에 이때를 무위도식으로 보낸다면 제2의 인생을 창조해 나아가기가 참으로 어려워지겠다는 판단이 들어 본인의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해 남편에게 기업을 일으켜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종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두뇌, 당신의 노력 같으면 충분히 훌륭한 기업인이 될 수 있다』고하며 과거의 모든 관직의 개념에서 벗어나 말년은 경제인 혹은 기업인으로서 보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주체성 있는 생활패턴이 된다고 강력히 본인이 요구를 하니 본인 남편 이철희 도 마음의 결심을 내린 듯 아직까지 전혀 경제에 대해서는 아는바 없고 단지 정부에만 종사해왔는데 이제부터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여 바람직한 기업인이 되어 보겠다고 결심을 굳히는데 이르렀습니다.

 


가장 급선무는 아직 젊고 유능하고 순수한 현장기업인들을 접촉함으로써 가장 빠르게 기업생리를 배우게되고 또 수익성을 배우기 위해서는 본인이 취급했던 증권분야를 배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 본인이 판단되어 무엇을, 어떻게, 어떠한 사람과 시도해볼 것이냐에 대해서 본인이 연구한 결과 앞으로 신장될 수 있는 유망한 업체를 선정하여 경제유대를 맺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판단되어 유망업종으로서는 등락과 이윤의 폭이 큰 건설업체로 해야하겠다고 생각하던 중 본인이 창건한 각 진선원 신도회장 이진선 으로 부터 불자인 라이프주택 조 회장을 소개받게 됐습니다.

 


또 김수철과 상의하던 중 공영토건 변상우 사장을 경영대학원 동기생이라고 소개받았습니다.

 


이철희 가 어음을 전달한 것은 처음 본인이 의도하던 바 유능한 기업을 자주 접촉하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현장감각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목적이 우선하였기에 이철희 가 맡아서 움직이기만 했을 뿐 모든 내용은 본인이 해주었습니다.


10월 중순께 증권부분 일이 꼬이기 시작하여 계산이 복잡해짐에 따라 이철희 는 경제를 잘 모르기 때문에, 또 어음운영의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시간도 단축하고 본인남편이 당신은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신경질을 내기 시작해 본인이직접 변상수 를 만나 일을 진행시켰습니다. (후략)


<사업실패의 원인>


1. 1981년10월부터 본인은 본인이 당초에 계획하고 목표하여 성취하려했던 주식투자에 대한 계획이 80%실패로 돌아섰음을 깊이 인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 실패를 인식하게된 동기는 다음 과 같습니다

 


본인은 본인의 남편이 작년6월에 롯데빌딩에 대화산업을 창업하여 운영하기 시작할 즈음부터 본인과 본인남편에 대한 신상의 소문이 증권가에 떠돌기 시작하였으며 90일 어음을 할인하여 주식을 매입했는데 팔아서 현금으로 결제해야할 시기만 되면 갖은 악의적인 소문이 나돌아 심리적으로나 행동 면에서나 상당히 위축을 느꼈으며 되도록 소문 때문에 쉬쉬해서 팔려고 하니 가격은 2백∼3백원정도 하락된 시세로 팔지 않으면 현금 수습이 안되어 공영·일신·라이프의 돌아오는 어음을 결제할 수 없게 되므로 본인이10억 원에 매입했었다 한다면 현금은 7억 원 을 받고 팔지 않을 수 없었던 점이 점점 더 전례를 남기어 상대편들은 이미 본인의 허점과 은행교환 결제는 주식을 팔지 않으면 될 수 없다는 약점을 간파하여 온갖 소문이 나돌고 주식은 파격적으로 싸지 않으면 살 사람이 없고 증권시장에서 하루 조금씩 팔아 가지고는 몇 십억 원씩 하루에 돌아오는 현금결제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본인은 급한 나머지 심지어는 완전반액의 시세로 팔아서 은행에 돌아오는 어음을 결제해 주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본인에게 어떤 남자와 여자가 전화를 해 증권가나 사채가 에 말 한마디만 퍼뜨려놓으면 당신들은 골로 간다는 등 당장 증권에서 손을 떼라는 등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0월부터는 본인을 내사하고 있다는 소문이 확 돌면서 실제로 본인의 거래처 (김종무)에 수사관 둘이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인은 당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본인은 거래나 장사와는 상관없이 위축되고 불안하여져 활동을 앞에서 못하고 뒤에서나 우물쭈물하니 기히 일으켜진 어음결제시일이 폭풍처럼 밀려오는 것을 막느라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본인은 현재 본인의 처지로서 해서는 안될 일을 벌여왔음을 통감하고 하루속히 최선을 다해 부도를 막고 보유주식전부를 어떠한 가격이라도 살 사람만 있으면 정리하여 증권과 사채에서 손을 떼고 결손 부분은 은행이나 단자회사를 통해서 장기적으로 빌어 그 다음단계를 처리해 나가겠다고 결심을 굳히고 11월부터 은행 및 단자회사에 예금조성을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10월 현재 본인의 결손 부분을 대충 인식한 것은 5백억 원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손실을 감안하더라도(본인의 작년 그때의 생각임) 엉뚱하고 해괴한 소문을 근절시켜야한다고 생각했었기에 본인의 남편과는 상의도 없이(또한 본인의 남편은 경제도 모르고 본인만 믿고 본인이 해달라는 부분만 본인부탁에 의해서 거래해준 것 뿐이오며 경제나 증권을 도무지 모르는 사람입니다)당초에 이익을 내겠다고 세웠던 목표와는 아랑곳없이 물건을 있는 대로 다 정리해서 라이프와 처음 일으켰던 관계를 청산하고, 청산내용으로서는 두 달 동안 6백억 원을 갚았습니다.
다음 번으로 경남을 청산하니 3∼4개월 동안 두 회사를 청산했고 공영토건의 돌아오는 어음을 결제하는데 결손의 부분이 한없이 불어나니 공영토건의 교환결제가 여의치 못하게 되어 어음 량을 확대하여 사채에서 할인하여 막아주고 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무모한 저의 행위로 인하여 끼치게된 누를 생각한다면 본인의 생명을 버려도 보상이 안된 다고 생각하오며 최선을 다하여 이익을 본 사람을 규명하여 기회와 약점을 이용하여 정상이 아닌 이익을 본 부분에 한하여서는 본인이 최선을 다하여 호소하여 환원 되도록 시도하고 싶사 오며 본인 및 본인의 남편 재산 일체는 이미 제출한 포기서 대로하겠습니다.
참으로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을 용서해 주시 오며 본인이 저질러놓은 일 이옵기에 단 며칠만이라도 본인이 피해액을 줄이는데 생명을 걸고 최선을 다하고 난 후에 어떠한 처벌이라도 감수하겠나이다.
1982년5월19일
진술인 장영자

 

 

장영자는 「변명」도 「큰 소리」로|이·장 사건 5회 공판 스케치
중앙일보
입력 1982.07.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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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나선 김상희 검사는 칼칼한 경상도 사투리로 『과연 장피고인이 지금 잘못을 뉘우치느냐』고 묻자 『통렬하게 뉘우치고 있다』고 서슴없이 대답.
김검사가 기다렸다는 듯 『뉘우치는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인데 웬 말이 그렇게 많으냐』고 일침을 놓은 뒤 『잠시라도 피해자를 생각해봤느냐. 이 자리에 함께 있는 사람도 피해자들인데 그렇게 말을 많이 하면 무슨 속죄가 되느냐』고 호통을 쳤다. 장피고인은 김검사를 똑바로 쳐다보며 『그럼 어떻게 해야하나요』하고 대들어 또 한번 방청객을 놀라게 했다.

 

 

장영자는 「변명」도 「큰 소리」로|이·장 사건 5회 공판 스케치
중앙일보
입력 1982.07.21 11:00

지면보기

○…21일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5회 공판은 「큰손」이 「눈물의 여왕」으로 변신, 『이 생명 다 바쳐』 판제하겠다는 헛 공약과 장피고인의 장광설이 검사의 호통과 대결을 한 볼만한(?) 한판이었다.
장피고인은 담당 문상익 변호사가 『사기가 안 된다는 남편 이철희 피고인의 진술에 동의하느냐』는 첫 질문에 『본인남편의 전 생애, 본인의 반 생애가 참혹하게 찢겨졌습니다. 뒤에 계신 분들(함께 구속된 피고인을 지칭)도 함께 찢겨진 셈입니다』며 뉘우치기는커녕 격한 목소리로 울먹이기 시작.
법정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한 가운데 장피고인은 계속해서 『반드시 저의 손으로 완전히 피해를 판제할 날이 올 것입니다.
저희는 잠정재력이 있습니다』를 절규(?), 방청석으로부터 염치없다는 핀잔을 받기도.
잠시 후 문변호사가 증권경력 10년에 돈도 많이 벌지 않았느냐고 묻자 장피고인은 『경험은 11년이나 완벽하지 못했다』고 울먹이면서 『내가 좀더 똑똑하고 완벽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자질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못내 아쉬운 표정.
장피고인은 또 『결과가 없는 경제는 해석하는데 따라 승복할 수밖에 없다』며 예의 경제론을 편 뒤 『어음 편취를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도와주고 싶었을 뿐 피해는 주고싶지 않았다』고 변명에 급급.a

 

 

이·장부부 어음사기사건 공판
중앙일보
입력 1982.07.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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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장영자피고인(문상연변호사)
▲이· 장부부의 이사건 범행으로 사회각계에 직접·간접으로 피해를 입힌데대해 피해자들에게 피고인을대신해 사과하며 피해를 보고도 같은 처지의 피고인이 되어 영어(영사)의 몸이된 여러분께 사과한다.
▲이·장부부의 공소사실4가지는 어음사기·업무상 배임· 외국환관리법위반·배임중재등이나 처음 2가지는 무죄라고 생각한다.
첫 부분 2가지는 변호인도 유죄로 생각하나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
▲어음사기는 이·장부부가 어음의 결제의사와 능력이 있었기때문에 개략적인 사기라고 볼수없다.
견질어음이 보관용이나 유통용이냐가 쟁점이나 피고인들간에 문서약정등 물증이 없고 진슬이 서로엇갈린다.
소액귄어음을 수백장식 발행해준 것이나 유통과정에서 발행회사가 게속 어음확인해준 것은 유통용이라고 봐야한다.
업무상배임부분믄 대화산업이1인희사이므르 이·장부부에게는 해당되지 앓는다.
이에관한 74년과 76년의 대법원 판례도 있다.
▲외환관리법 위반부분은유죄가 틀림없으나 나쁜범죄의 동기가 아니고 해외사업과 국제불교운동에 쓰기위했던 것이니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
▲배임증재부분은 임재수 피고인에게 대단히 죄송하다.
임피고인이 존경받는 학자이고 청빈한분으로 도와준다는 선의였으니 이해를 바란다.
▲이피고인은 그늘에서 일하는 정보기관에서 평생토록 애국을 해 훈장등이 79개이고 세번이나 부상을 당해 아직도 몸이 불편하다.
장피고인은 불심(불심)이 강한데다 미래의 꿈이 관음사건립, 불교아동병윈설립등 소박한 것이었다.
피해판제를 위해 모든 재산까지 포기했으니 관대한처분울 바란다.
<◇김제진피고인(장병철변호사)>
김피고인의 어음발행은 모두 이·장부부의 지시에따른 것이고 공무증거는 전혀엾다.
대화는 1인회사이고 김피고인은 고용사장일 뿐이니 배임죄는 성립될수 없다.
김피고인은 지시에 따라 백지어음을 이·장부부에게 전달했을뿐이므로 어음발행을 했다고 볼수없다.

<◇임재수피고인(이범렬변호사)>
일신과 공영토건은 재무구조가 악화된 것은 사실이나 은행이 대출을기 피할정도의부실기업은아니었다.
오늘날 우리현실에서 은행의 여신여부는 기업의 재무구조보다는 기업의 국가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에따라 이뤄지고있다.
따라서 일신과 공영은 마땅히 은행여신을 받을수 있는 것이다.
타자본의 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에서 특히 여신은 연체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이뤄지고 있다.
검사측이 여신절차에서 임피고인이 사전검토나 자금계힉성 검토를 하지않았다고하나 은행의 거액대출은신용 거래에의해 이뤄지는것이 또한 우리의현실이다.
또 대금회수 불능상태를안고 여신했더라도 현실적인 손해가 없는점등으르 배임죄는 성립된다고 볼수없다.
일신과 공형이 부도가난것을 막강한 정보기능을 갖고있는 정무기관도 파악하지못했는데 조흥은행이 이를 사전에 알아내지 못한것은 당연하다.
또한 이번 사건이 나기전까지는 공개기업의 경우 무제한적으로 어음을 발행할수있는 것이었기때문에 임피고인이 부정대출을 했다고 볼수없다.

<◇공덕종피고인(이재저변호사)>
현재의 수사기술상 혐의자에게 잠을 안재우는 것은 대표적인 고문의 한방법이므로 공피고인의 자백은 고문에 의한것으르 봐야한다.
피고인은 검찰이 관련피고인들의 진술과 같이 자백하지 않으면 가족과 은행직원을 불러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위협하는등 불안한 심리상태에서 수사의 확대를 막겠다는 생각으르 모든것을 포기한체 자백한 것이다.
따라서 검찰 자백의 임의성은 부인되어야 하며 인정할 증거도 없다.
배임수재죄역시 금전을 받은것만으로는 성립되지앉고 부정한 청탁을 요건으르 하는데 공피고인은 부정한청탁을 받고 돈을받은것이아니므르 죄가 성립되지않는다.
업무상배임 역시 영업행위로 이익을 낼수도 있고 손해를 볼수 있는것이당연해 구체적인 영업과 손실을 합해 전체적인 이익이 산출되는 것이다.
손해를 초래한 영업행위가 있었다고 해서 배임죄를 적용한다면 영업자체를 불가능하게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피고인의 정당한절차에따라 이루어진 영입행위가 손해를 본것은허용된 위험에 속하는 정당행위로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수없다.
때문에 무죄판결이 선고돼야 마땅하나 유죄로 인기된다 하더라도 그동안 은행가로서의 공헌과 고령등을 참작,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

<◇정강우피고인(김 일 두변호사)>
이 사건은 처음 장여인사건에서 이·장부부사건, 이철희 사건으로 그 이름이바뀌었다. 또 처음에는 이·장부부의 구속수사로 마무리된것 같더니 장의 전남편·형부까지로 확산되고 결국은 공영·일신의 기업인·은행원·사채업자로 확대됐다는 사실은 검찰이 국민의 여론에 못이겨 여론수사를했다는것을 의미한다.
공영토건은 장여인의 손아귀속에서 놀아난 노리개감 가운데 제일큰 노리개감이었는데도 구출되기는 커녕 같은 악한으르 취급되고 있0는 것도 여론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여인사건에 공영이 장과 짜고 주역노릇을 한바가 없는데도 큰불을 끄기위한희생제물로 도마위에 노여진 것이다.
이 사건이 아무리 정치적 배경을 갖고 었었고 국민의 의혹이 짙었다해도 재판부는 여론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될것이다.
「기업은 망해도 기억인은 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옛말이고 오늘낟의 기업인들은 경제발전을 위해 발버둥치고 있으며 지금은 기업이 망하면 기업인도 동시에 망한다.
그렇다면 공영토건 관련피고인들에대한 유·무죄의 정답은 저절로 나오게된다.

<◇주창균피고인(김동환변호사)>
부도수표액 31억윈중 10억원 상당은 포항제철에 원자재의 선금조로 교부했으나 부도처리되어 원자재공급을 받지못했기 때문에 포항제철은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다.
또 7억윈 상당은 거래또는 지급보증에 대한 담보로 제공한것으로서 본건 부도사태가 발생되지 않는한 교환 제시될 이유가 없으며 나머지 어음 14억원은 모두 포항제철에서 매입한 윈자재 대금이다.
82넌4윌30일현재 일신제강의 당좌자산은 수출예정분 84억원을 포함, 2백95억원으로 이를 결제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결국 피곤인을 구속하고 기업에대한 금융지원을 갑자기 중단함으로써 당좌거래의 부도가가 강요된 것이다.
피고인는 필생의 노력으르 이룩한 기업이 파탄에이르러 염원이던 강철공업을 통한 국가에의 기여가무너진 것을 통탄하며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철강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국제경쟁력을 이룩하기위해 일신의 모든 시설과 기능이 유능한 기능인에의해 제생될것을 염원하고있다.
조극을 위해 일생을 바친 피그인에게 조국은 징역형을 선고할 것인가.
◇이철희=부족한점을보완하여 잘해보자는좋은뜻에서 출발한 것이지 결코사람을 속이거나 부당한줄알면서 허황된 꿈으로 가당치않은 일을 계획한 것은 아니다.
공영·일신·은행·업체들이 피해를 보았고 도산한업체도 몇개있는 것으로 아는데 죄송하기 짝이없다. 모든 재산은 압류됐다. 그러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관제할 기회를 주면 모든힘을 다할 생각이다.
작년 2,3월에 사업을시각해 10월까지는 계획대로 운영되었다. 라이프가 10년동안 협조키로했으나 작년가을에 청산을 요구해와 그곳에 많은 돈이 집중됐다.
공영에 많은 짐을 지우게된것도 그 때문이다. 사장이나 간부들이 모두 점챦은 분들인데 미안하다. 너무미안한 생각이 들어 올들어 일부는 처리했고 나머지는5월까지 처리할계획이었다.
건설업체를 인수하기로 했으나 개약전날 연행돼 하지못했다.
미국과 합작해 5년간의 작업량도 확보했었고 5억달러 장기저리 차관도 교섭중이었다.
3월부더는 골동품의일부도 처리키로 교섭중이었다.
5월까지는 공영과 일신·은행문제룰 처리할 계획이었으나. 연행되는 바람에 부도가났고 연쇄반응이일어났다. 아쉽고 마음이아프다.
은행장과 회장분들은 모두 훌륭하다. 기업운영의 동반자로 가고 싶었지만 도와주기는 커녕 도산까지 가게해 마음 아프다.
이 뒤에 앉운 다른 피고인들은 아무 죄도 없다.
자기 회사 발전을 위해 노력했고 임무에 최선을 다했을뿐이다. 비록 법을위반했을지몰라도 악의는 없었다.
이규광장군은 일생을 군에 바치고 국가·민족밖에모르는 분이다. 생활이 어려운 것같아 도와드리려고한것이 누가되어 죄송하다.
집사람은 직한 가정주부다. 남편에게 열심히 내조했을뿐 그 외엔 없다.
내조한 것이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됐으니 모든 죄는 나에게 돌려달라. 집사람은심장이 좋지않아 협심증과저혈압으로 고생한다. 관대한 처벌을 내려 집으로 돌려주기 바란다(이때 장피고인은 고개를숙이고 울먹였다) .
◇장영자=나이가40가까이되어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신 사람으로 부모님가슴에 못을 밖아 불효막심이다(목이메어 울먹이기시각). 국민으로서 국가에 누를 끼치고 시민경제를 혼란에 빠지게하고 피해자가많은데 이 많은 죄를 허망한 말로 속죄할 수 있겠는가 (격한 울음) 평생을통해 속죄하겠다.
존경하는 임재수행장등은20∼30년동안 국가에서 공들여 키운 기능인으로 추호의 죄도 없다. 윈천적인책임은 바로 나다.
대화산업 식솔들은 세상풍상 모르는 사람들이니 무죄로 방면해주어 앞길을 열어주기 바란다.
부부는 일심동체다. 저희는 어떤 경우도 잠정재력이 완벽하므로 피해판제할수 있다. 실제행동은 내가했고, 남편은 도의적 책임만 있으니 선처해주길 바란다. 저에게 모든 책임이있고 그 처벌은 당연히 달게 받겠다(계속 울먹이며 말하다 끝날때쯤에 또렷한 목소리로 발언).
◇이규광=말씀드릴주제는못되지만 제가지금부터말씀드리고 싶은것은 죄를가볍게 해달라는게 아니다.
나에게 있어온 거센바람을 해명하고 싶을뿐이다.
사건이 있은후 각 수사기관에서 나를 철두철미하게조사했으며 가족들은 물론가정부까지 조사했으나 추가기소가 없는것으로보아 더이상의 혐의는 없다.
나를 검은 그림자의 거물, 묵시적 배후로 그리고있는데 그같은 것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부모 형제는 냉수를 마셔도 나누어 마신다. 만약 이사건으로 부모나 가족이 서로 선물한 것 때문에 변호사를 찾아가는 일이 생길까봐 걱정이다.
사람은 무지·무능해서는안된다. 조직생활을 해오면서 부하들에게 이를 강조해왔었다.
고난을 받고 답답한 가슴을 움켜쥔채 처절한 마음으로 법정에서있는 나를보면 오해는없어질것이다.
무지는 자기자신으로부터 연유한다. 6·25때 공비토벌등으로 남이 가진 만큼많은 훈장도 갖고있고 자유당때에는 부패된 군을 숙청하는데 앞강서기도했다.
4·19때는 학생과 시민의 희생을 막기위해 M-1소총에 공포탄을 지급해 출동시켰으며 이대통령이 하야한 후 정치에 간여하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5·15초 군이 경치에서손을 떼고 돌아가라고 항변하다 반혁명으로 몰린적도 있는데 이같은 일은 남에게 의지해서 되는게아니고 신념에서 발단한것이다.
나는 후배나 손아래 사람에게 간판을 내세우고 위세를 부리며 특권을 부릴만큼 썩어빠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맹자삼락(맹자삼락)에 부모에게 효드하고 하늘 땅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고 천하의 영재를 가르치는 것이라했다.
10·26사태후 큰일을 하고있는 그분들이 잘할때는기쁘고 잘못하면 가슴아프게 느껴왔다..
이제 국민속에 깊숙이 파묻혀 예리한 국민이 되도록 연구할 생각이다.
◇임재수=오늘피고인석에는 내가몸담고 있던 조흥은행 간부 4명이 함께 앉아 있다. 이 사람들은 은행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능력도 있었다. 이사람들을 삘리 복귀시켜 은행과 가정을 위해 일할수있도록 해달라.
◇공덕종=오히려 일반인을 지도해야할 입장에있는 내가 이자리에 서게돼 송구스럽다.
검찰이 나에게 이랬다, 저랬다 말한다고 하나 나는 종교적 양심에따라 진술한 것이므로 그에 따른벌은 달게받겠다.오해없길바란다.
이사건의 배임문제에 대해 80년대의 신용사회로 가는 마당에 다른 금융인들이 소극적이 되지않을까 걱정된다. 현직에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일할수 있도록 이번기회에 선진국의 심사제도를 받아들이도록 했으면 좋겠다.
◇주창적=이번일로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정부당국에 누를 끼쳐 송구스럽다. 특히 많은 정업윈과국내외 거래처 여러분에게 충격과 어려움을 주어 면목이 없다.
일신제강을 해체·공매한다고 들리고 있으나 그회사는 국내수요에 공급하고도 2억달러 수출이 가능하다. 설비를 분해하지말고 한세트로 활용해주길 바란다. 빨리 우수한 경영자가나오길 바란다.
◇차주우=본의아니게 사회에물의를 일으키고 임직읜과 주주, 선의의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동업 건실업계에 대해서도 면목이 없다. 못난 사장을만나 이런 고초를 겪는 직원들에게도 미안하다. 기회가 있다면 건설업의 국내특성을 생각해 백의종군(백의종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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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장영자 사건 판결 요지. 1982. 08.08. 중앙일보

이·장 사건 판결문(요지)
중앙일보
입력 1982.08.08 11:00

지면보기

◇판결이유
이철희·장영자가 공영토건 주식회사가 중동의 쿠웨이트 건설공사에 실패하여 심한 자금압박을 받고 있음을 탐지하고, ①198l년 2월초 일자불상 12시경 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120 소재 도오뀨호텔24층 화식부에서 등 이철희가 상피고인 김수철의 소개로 위공영토건 주식회사의 사장인 강피고인 변강우를 만나 위회사에 사업자금을 대여해주고 등 담보조로 대여액의 2배수에 해당하는 액면의 약속어음을 교부 받으면 이를 견질단보로 보관하지 아니하고 사채업자들에게 할인하여 사용할 것을 기도하고 동인에게 『우리는 건실한 유망기업을 지원하는데 보람을 느끼고 있으며, 약500억원의 사업자금을 가지고 지원하고 있으니 자금걱정은 말고 사업에만 전담하라』고 전재한 후 자금의 대여조건에 관하여는『연리 22%, 2년거치, 2년분할 상환조건인데 특수자금이므로 절대 비밀로 하되 담보조로 2배 상당액의 어음을 발행해 주면 초과분의 어음에 대하여는 보관만 하고 있겠다』고 거짓말을 하여 이에 속은 위회사 변강우사강및 변태수 자금담당 상무이사로부태 같은달 26일 액면 도합금 70억원 상당의 은행도 약속어음을 교부 받은것을 비롯하여 같은 해 6월8일경 까지사이에 전후 5차에 컬쳐『별지1』기재와 같이 같은 방법으로 담보 조로 액면금 2백억원 상당의 은행도 약속어음 도합 6백장을 교부받아 이를 편취하고,-②1981년9월10일 서울강남구청담동2구역 58소재 피고인들의 김에서 당시 회사의 부도사태를 방치코자 고심하고 있던 위 변태수에게 『내가 회사어음을 회수할 자력이 없어 당신회사의 어음이 부도날 위험에 직면 하였으니 앞으로 1,2개월내에 돌아올 모든 어음에 상당한 액면을 추가로 발행 해주면 그것을 이용하여 유통시킨 어음을 책임지고 회수해 주겠다』고 거것말을 하여 이에 속은 동인으로부터 즉석에서 이미 유통된 어음의회수용 명목으로 그 회사 발행의 액면 금30억원상당 은행도 약속어음 3천만윈짜리 1백장을 교부받은 것을 비롯 하여 그 시점부터 1982년4월6일경까지 사이에 전후 7차에걸쳐 동회사명의의 액면 도합금 7백62억원 상당 은행도 약속어음 2천,
③1982년3월9일 하오2시경 위 피고인들의 집에서 일신제강주식회사가 그간 거액의 어음을 발행하여 자금난으로 동회사명의의 약속어음을 결제할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위 변태수 상무에게 일신제강발행의 액면금 20억원짜리 약속어음 5장 도합금 1백억원 상당의 어음을 내보이면서『이것은 지급기일에 틀림없이 결제될 어음이니 현찰로 생각하고 그 배액에 해당하는 공영토건 명의의 액면금 2백억원 상당의 약속어음을 발행해 달라』고 거짓말을 하여 이에속은 동인으로부터 즉석에서 그 어음과 교환 명목으로『별지3』기재와 같이 공영토건명의의 액면 도합금 2백억원 상당 은행도 약속어음 6백80장을 교부받아 이를 편취하고 1981년2월말 일자볼상 12시경 전합기재의도오뀨호텔 화식부에서 이철희는 일신제강주식회사가 경영부진으로 자금 사정이 긴박함을 기회로 위회사에 사업자금을 대여한후 담보조로 대여금의 2배에 해당하는 약속어음을 교부받아 이를 사채시장에서 할인하여 자금을 사용할 것을 기도하고 동회사 회장인 상피고인 주창균에게『철강산업은 한국의 중요 기간산업이므로 앞으로 일신재강에 투자하고 싶다. 자금사정이 어려우면 자금지원을 하겠다』고 제의, 동인이 자금지원을 요청하자『2백억원의 범위내에서 계속 공급할 수 있는데 조건은 연이율20%, 2년거치, 2년분할 상환이고 자금출처를 금융기관으로 가장하기 위하여 은행등에 담보로 제공할 필요가 있으니 어음을 차용액의 2배수로 발행해 달라』고 거깃말을 하여 회사 발행의 초과분 어음을 사채시장에 유통시키지 아니할 것으로 믿은 뒤 주창균 및 일신제강의 부사강인 상 피고인 배길동 으로부터 1981년3월18일11시경 롯데호텔 26층 호실 미상 방에서 담보조로 그 회사 발행의 15억원 상당 약속어음을 교부 받은것을 비롯하여 그 시점부터 같은해 6월11일경까지 사이에 전후 4차에 걸쳐 같은방법으로 동 담보조로 그회사 명의의 액면 도합금1백15억원 상당 은행도 약속어음 4백30장을 입부받아 이를 편취하고, 다, 1982년2월19일경 위피고인들의 집에서 그무렵 일신제강주식회사나 공영토건 주식회사가 1천5백원 이상의 약속어음을 남발한데다가 자금난등으로 동회사명의의 어음이 지급 기일에 결제가 불확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라이프주택의 재무담당 부사장 인금소의 홍종면에게『사업자금2백억원을 대여해 줄테니 그 댓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신제강 명의의 어음 및 공영토건명의의 어음을 라이프 어음과 서로 교환하자, 이들 일신제강 및 공영토건 어음은 지급기일에 틀림없이 결제될 것 이지만 시중에서 할인을 쉽게 하기위해서는 신용도가 높은 라이프명의의 어음이 우선 필요하다」고 거짓말을 하여 이에 속은 동인에게 그시점 금 20억원을 대여하고동인 으로부터 동액상당의 회사어음을 교부받는 한편, 즉석에서 피고인들이 소지하고 있던 일신제강 명의의 35억윈짜리 어음1매를 동인에게 교부하고 동인으로부터 라이프 명의의 액면 금2천만원짜리 어음10매 및 3천만원짜리 어음1백10매를 교부 받은것을 비롯하여 그시경부터 같은해 6월6일경까지 사이에 전후 7차에 걸쳐「별지5」기재와 같이 같은방법으로 동회사 명의의 액면 도합금2백35억원상당 은행도 약속어음 8백25매를 교부받아 이를 편취했다.
장영자
198l년6월일자불상경 서울명동골목에서 성명불상 암달러 상인으로부터 구입한 일화 8백만엔을 1982년4월29일까지 위피고인 이철희의 집 2층방에 은닉하여서 취득한 일화를10일이내에 정부기관 또는 금융기관에 매각하여야 할짐중의무를 위반하고, 피고인 이철희는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⑴,1981년 3월초순일자 불상경 위피고인의 집에서 비거주자인 일본인「스스끼 나오시」를 만나 동인이 피고인에게 일화를 빌려주면 피고인이 이에 상당하는 한화로 지급 위 약정에 따라 같은 해 5월하순일자불상경 위피고인의 집방에서 「스스끼나오치」로부터 동인이 같은해 3월23일 일화3백만엔을, 같은해 5월23일 일화2백만엔을 일본 후지은행 본점에「이찌가와·데쯔오」라는 가명으로 입금한 예금통장과 도장을 교부받아 일화5백만엔을 차용 함으로써 거주자와 비거주자간의 권채발생당사자가 되고, 1981년7월일자 불삼경 위 피고인의 집에서 비거주자인 스웨덴인「로쎌」을 만나 동인이 피고인에게 미화를빌려주면 피고인이 3년안에 변제하기로 약정하고 위 약정에 따라 같은해 8월 일자불상켱부더같은해 11월 일자불상경까지 3회에 쳐「로쎌」이 미화20만3천달러를 사실상 퍼고인의 예금구좌인 미국 얼라배마주 모빌은행의 림스법인구좌로 입금케하여「로셀」로부터 미화 20만3천달러를 차용 함으로써 거주자와 비거주자간의 채권발생 당사자가 됐다.
변강우 변태수등
1981년 2월 초순경 위 회사가 중동의 쿠웨이트 건설공사에 실패하여 심한 자금압박을 받고 있던중 상피고인 김수철을 통하여 거액의 회사자금을 융통해줄 수 있다는 상 피고인 이철희·장영자부부를 알게되어 동인들로부터 『회사운영자금으로 거액을 대여해주고 그 담보조로 2배수에 해당하는 위 회사의 약속어음를 발행 해 주면 그 초과분에 대하여는 유통에 들리지 않고 보관만 하겠다』는 말을 믿고 같은달 26일부터 같은 해 9월23일까지 사이에 회사운영자금으로 2백억원을 차용하고 4백억원 상당의 위 회사명의의 은행도 약속어음을 발행해주어 거래를 해오다가 동인들이 당초의 약속을 어기고 초과 발행된 약속어음 2백억원전부를 사채시장등지에 할인 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위와같이 이미 유통된 약속어음의 결용으로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또다시 약속어음을 편취해가는등로 1982년3월경에는 피고등 회사에서등 이철희부부에게 발행된 어음이 위 차용금 2백억원보다 4배나 더 많은 합계금 8백95억원에 달하여 회사가 부도직전에 이르렀다.


주창균


1975년경부터 1982년4월일까지 일신제강(주) 대표이사로 근무하다가 같은달 13일부더 위회사의회장으로 근무하는 자이고, 

 

동 공덕종은 1979년5월경부터 1982년5월초순까지 한국상업은행장으로 근무하던자로서 위 은행에서의 대출여부의 결정, 대출채권의 보전, 회수등의 최고 결정 권자였던자,

 

동 배길훈은 1982년4월13일부터 위회사의 대표이사로근무하는 자인바,피고인 주창균은1979년5월31일 위회사에서 발행한 어음의 부도를 막기위한 자금1백50억여원을 급히 충당하여 회사 자금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조업률이 손익분기점(70%)이하인 50%에 불과하고 제품 판매부진으로 위회사의 주거래은행인 한국상업은행에대한 당시까지의 대출증액 1백98억여원중 38억여원 상당이 연체되면서부터 부도위험에 처하게되어 자금수요가 급증하게됨에 따라 위은행에 계속 대출신청을 하였으나 대출액이 고정된 담보를 초과한 한계액에 도달하고 위은행으로부터 위회사에 대해 C급에해당하는 부실업체로 기업평가를 받아부도위기에 직면하여 더 이상의 대출이 불가능하다고판단, 거래를 기피하고 자금의 대출을 거부당하자 l979년12월말경 서울 중구 남대문로1가 소재 한국상업은행장실에서 상피고인 공덕종에게 위회사에 대해 앞으로 위와같은 부도 위험성을 묵인하고 계속하여 자금지윈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하여 공덕종의 임무에 관한 부정한 청탁을 하고 그 교제비 명목으로 금1천만원(자기앞수표 1천만원권1매)을 교부한 것을 비롯하여 1982년1월4일까지 사이에 5회에 걸쳐 위와같은 명목으로 합계 금5천만원을 공여하고, 위회사가 1955년경부터 한국상업은행과 1981년경부터 한국의환은행 세종로지점과 각 수표계약을 체결하고 당좌거래를하여 오던중1979년5월31일 이후 전항과 같은 사유로 위회사의 자금사정이 극히 악화되어 수표금을 결제할 능력이 없었음에도 1982년 4월초 위 회사 사무실에서 포항제철(주)에 물품대금조로 액면 3억5천만윈, 발행일 같은해 5월4일,발행지 서울특별시, 지급지 한국상업은행 영업부로된 당좌 수표1매를 발행한 것으로 비롯하여 위 일시경 같은 장소에서 를 한국상업은행 영업부로 한 당좌수표 도합10매 액면 합계금 7억4천6백78만2천6백76원「별지13」기제 와같이지급지를 한국외환은행 세종로 지점으로한 당좌수표도 합26매 액면 합계금 43억9천5백42만7천3백50원을 발행하고도 예금 부족등으로 인하여 각 제시기일에 지급되지 아니하게 하고 교부받아 이를 수수했다.

 


공덕종


위회사가 전항과 같은 자금사정에 처해있어 더이상의 대출이 불가능하였음에도 동 주창균로부터 전항과같이 임무에 관한 부정한 청탁을 받고,1979년12윌 말경 위한국상업은행장실에서 동 주창균으로부터 금1천만원을 교부받은것을 비롯하여 1982년1월4일까지 5회에 걸쳐 합계 금5천만윈을 교부받아 이를 수수했다.

 


임재수


1981년11월23일 오후1시30분경 서울중구 소재 롯데호텔 일식집「벤케이」에서 조흥은행과 당좌거래중인 일신제강주식회사 및 공영토건주식회사에 대한 거액의 상업어음 보충 및 당좌대월은 동 회사등의 재무구조·거래실적 및 담보능력등에 비추어 그 횟수가 불가능 함에도 상피고인 장영자로부터 동회사 앞으로 대출을 윈활히 하여 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받으면서 그 사례금 명목으로 자기앞수표 100만원권 150매 합계 1억5천만원을 교부받았다.

 


이규광


1980년5월12일부터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으로 재직하다가 1982년5월12일의원면직된 자인바, 

 

1982년3월 초순 일자미상 상오7시경 서울막남동 소재 힐사이드 아파트 B동3호 피고인집에서 상피고인 이철희로부터 동인이 추진중인 사우디아라비아국의 상업은행 및 리야드은행과의 합자로 한 한·중동 합작은행 설립 인가를 받도록 재무부등 관계부처 공무원들에게 알선하여 달라는 청탁을 받고 

 

다시 같은달 중순 일자미상 20시경 위 피고인 집에서 동인으로부터 전화로 위와같은 내용의 청탁을 받은후, 같은달 하순 일자미상 20시경위 피고인 집에서 동인과 동인의 처 상피고인 장영자가 위와같은 알선청탁의 명목으로 제공하는 자기앞수표1억원을 교부받아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금품을 수수했다.


◇피고인들의주장에 대한 판단


공덕종


이건 사채차환 지급 보증은 정당한 절차에 따른 영업행위로서 정당행위이므로 피고인을 벌할수 없다고 주장하나, 이미 유죄부분에서 판시한 바와 같이 피고인의 행위는 은행장 으로서의 정당한 업무수행 행위라거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라고는 볼수 없으므로 위 주장은 이유없다.


곽경배


무역회사를 경영하는자로서 어음의할인을 업무로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하므로 살피건대,피고인에게 일정한 직없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피고인이 또 다른 사회적지위에 있어서 판시와 같이 계속, 반복적으로 어음의 할인을 영위하는 지위에 있었음을 부정할수 없으며 일만 피고인이 그와같은 지위에서 그러한 의사를 가지고 어음의 할인을 한 이상 그 행위의 상대방수, 거래횟수는 어음의 할인업무를 영위 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무죄부분


변형좌
피고인 변형좌에게 사기의 범의가 있었는가에 관하여 보건대, 동피고인은 검찰 및 법정에서 주식매수인들을 기망할 의사로써 허위내용의 방송을 한 것은 아니라고 진술하여 그 범위가 있었음을 부인하고 있는 바, 위에서 인정한 사실에서 본 바와 같이 변형좌는 1982년4월30일 허위내용의 방송을 하였고,

 

 주식매매는 그보다 110일후에 주로 이루어졌는데(5월10일때도 40만4천4백주)만일 변형좌가 허위방송 으로써 주식매수인을 기만하고 그들이 착오에 빠진것을 이용하고자 하였다면 주식매매 일자직전에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 이었을 것이고,굳이 10일의 간격을 등으로써 기만의 효과를 감소시킬 필요가 없으리라는 점에 비추어, 동해생명보험 주식회사가 10일후에 주식을 매도할 것을 피고인 변형좌가 미리 알고 동회사로하여금 이익을 취득케 하기위해 허위내용의 방송을 하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증인 변형우의 증언 일부만 으로는 동 피고인에게 기만의 의사가 있었음을 인정 하기에 부족하며, 그밖에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고, 또한 주식을 매수한 사람들이 위 피고인의 기만행위로 인하여 착오에 빠짐으로써 주식을 매수하게 되었는가에 관하여 보건데, 보통 주식투자자들은 그들 스스로가 가진 정보와 지식을 종합하여 내린 판단에 따라 투자여부를 결정하는 것이고 반드시 중권거래소의 시황방송이나 증권시장지에 게재된 내용에 의존하여 주식 매매여부를 결정한다고 볼 수 없음에 비추어 허위 표시가 있고 그후에 주식매매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주식을 매수한 사람들이 위 피고인의 허위표시에 기만 당하여 주식을 매수 하였다고 볼수 있다.

 


김수철
먼저 조세포탈로 인한 특점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위반에 관하여 본다.
피고인 김수철이 상피고인 장영자로부터 공소사실과 같은 일시에 같은 금액의 돈을 받고도 3개월 이내에 관할 세무서장에게 신고하지 아니하고, 증여세와 방위세를 납부하지 않은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조세범 처벌법 제9조는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로써 조세를 포탈한자를 처벌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 조항이 규정한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란, 조세의 부과·징수를 불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기 위하여 위계를 사용하거나 그밖에 적극적으로 부정한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단순히 세법상의 신고를 하지 않은것은 위 조항이 규제하고자하는 부정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 할 것인바, 피고인 김수철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세법상의 신고를 하지않은 사실만으로는 조세를 포탈 하였다고 볼 수 없고 그밖에 적극걱으로 부정 행위를 써 조세를 포탈한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공소사실중 조세포탈로 인한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부분은 공소사실의 범죄로 되지 않거나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다.

 


◇배상영령 신청에 대한 판단

 


피고인이철희·장영자에 대하여 공영토건 주식회사는 1천4백67억4천만윈의, 일신제강주식회사는 3백51억8천8백만윈의 배상명령을 각 신청하고 있다.


소송촉진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 제3항 제3호는 피고인의 배상책임의 유무또는 그범위가 명백하지 아니한 때에는 배상명령을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위배상 명령신청인들의 각 배상 신청금액은 모두 범죄사실에서 인정된사기 피해금액을 초과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배상명령 신청인들이 발행 하였다고 주장하는 어음들 중에는 먼저 발행된 어음의 결제용으로 발행되어 사용된 것이 포함되어 있는등의 사정으로 어느범위의 어음이 사기행위의 피해금액에 해당되는지를 확정할 방법이 없어, 배상책임의 범위가 명백하지 않으므로, 위조항에 따라 이 사건 배상명령 신청을 모두 각하 한다.

 

 

 

 

 

 

1982.10.11

 

 

"어음발행 사용목적 몰랐다"
중앙일보
입력 1982.10.17 11:00

지면보기

대화산업 김제진사장등 관련피고인들은 서울고법제2형사부(재판장 박만호부장판사)심리로열린 이철희·장영자부부어음사기사건항소심2회공판에서 변호인들의 신문을 통해 대화산업은 이·장부부 개인의 소유이며 어음발행이나 사용목적등을 전혀 믈랐다고 진술했다.
18일상오10시 대법정에서 열린 공관에서 김제진피고인은 대화의 총주식 2백10만주중 14명이 주주로 되어있고 이· 장부부소유는 전체의 45%에 불과하지만 다른 주주들은 사실상 이름만 빌려준것뿐이고 주식의1백%가 이·장부부 소유라고 진술했다.
또 장영자피고인은 장병철변호사의 신문에서 대화산업이 형식상으로는 14명의 주주명의로 되어있지만 사실상 자신과 이철희씨의 회사라고 답변했다.
장영자피고인은 이규광피고인에게 1억원을 준것은 『협력이 돼줬으면 좋겠다는 뜻이 있어서 가족사이라도 예외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때문』이라고 말하고 청탁을 위해 돈을 친동기간이 주고 받았다는 얘기는 민망하다며 은행설립문제가 없었더라도 돈을 줬을것이라고 진술했다.
장피고인은 이밖에 첫남편인 김수철피고인에게 세차례에 걸쳐 3억원을 준것은 사실이나 처음 두차례의 2억원은 자녀부양비로 준것이고 나머지 1억원은 공영토건의 일강우사장을 소개해준 댓가로 준것이었다고 진술했다.
이날공판에는 이규광피고인을 제외한 이·장부부와 대화산업 관련피고인, 사채업자등 피고인 18명이 출정했다.
이에앞서 장영자피고인을 선두로 상오9시40분 호송버스에서 내린 피고인들은 비교적 여유있고 건강한 모습이었으며 이철희피고인은 입가에 많은 웃음을 띠었고 사채업자 전영채피고인은 가족들을 향해 웃는얼굴올 보이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날 사실심리를 모두 끝내고 25일 증거조사를 마친후 결심을 하며 11월8일선고할예정이다.

 

 

공영토건 채무액 모두 5천8백억
중앙일보
입력 1982.10.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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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장영자어음사기사건으로 부도가 난 공영토건의 채무액은 모두 5천8백여억윈에 채권신고인은 4천8백53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채무액은 이·장사건직후 공영이 법정관리에 들어가 서울민사지법이 8월18일부터 지난18일까지 2개월간 채권신고를 받아 집계됐다.a

 

 

장영자 등 5명 상고 사채업자 5명 포기
중앙일보
입력 1982.11.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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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장영자 부부 어음사기사건과 관련, 항소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장영자(38·징역 15년), 변강우(47·징역 2년6월), 변태수(48·징역 2년6월), 임재수(51·징역 4년)피고인과 징역l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된 김동희 피고인(47)등 5명이 16일 상고장을 담당재판부인 서울고법 제2형사부에 냈다.
한편 징역 6월∼징역 8월씩의 실형이 선고된 사채업자 곽경배(35), 김종무(45), 전영채(36), 장동호(49), 김영철(35)피고인 등 5명은 상고포기 서를 냈다.

 

 

 

1983. 03. 08

 

 

 

 

 

 

1983.06 11. 장영자의 전 남편 김수철씨, 마포 세무서에 소송 제기.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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