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4 08:38
암수술 후 투병 중인, 이재영 (정책위) - 건강하게 돌아오길 바랍니다.
이재영에 대한 단상
어제 [당원이라디오] 이장규 당원과 인터뷰 때 이야기를 잠시 나눴지만,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사회당은 경험이 없어서 언급부적절) 2000년부터 2004년 국회의석 10석 만들어지기 직전까지, 즉 2000년~2003년 10월까지가 가장 건강한 진보정당 운동시기였다. 국회의원이 만들어진 사실 자체가 운동을 갉아먹은 게 아니다. 국회의원이 만들어지고 난 이후, 게임규칙들을 몰랐던 것이다.
난 과거 민노당, 현재 진보신당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거의 모른다. 직접 만나본 적도 없다. 알고 모르고는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여튼, 이재영을 만난 것은 2002년 민노당 시절 12월 대선 정국이었다. 12월 1개월간 한국에 머문 적이 있다.
난 당시 2002년 서울시장 후보 이문옥 팬클럽, 깨끗한 손, (한국 인터넷 역사상 좌파 홈페이지로서 최초였다. 그리고 내 기억에도 진보누리 초기와 더불어 가장 건강했고 풍부했던 담론 공간이었다)에서 민주노동당 관련 정책,기획 글들을 쓰고 있었다.
이재영은 "그냥 당사나 한번 놀러오라고 했다." 약간 귀여운 산적 분위기의 김정진 (전 부대표)과 이재영은 여의도 불고기 집에서 고기를 사줬다. 속으로 '이게 뭔가 잘못 꼬이고 있다'는 직감은 들었다. 돈도 없는 가난한 정당, 당시 의석 0석인 정당 사람들에게 '불고기'를 얻어먹었으니, '앞으로 10년은 토해낼 일만 남았구나' 이런 불안감이 불고기를 씹으면서도 든 게 사실이었다.
김정진은 한술 더 떴다 "입당하시죠!"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입당을 권유한 유일한 사람이 김정진이다. ㅎㅎ. 이재영 정책실장. 내가 지금도 가장 뚜렷이 기억하는 그의 임무와 직책이었다.
그 불고기를 얻어 먹는 날, 민노당 권영길 대선 여의도 안가 아파트에서 하루밤 자고, 당사나 구경하라고 했다. 일이 점점 더 꼬이기 시작했다. 술 한잔 하고 온 이재영은 약간 취해서 "원시 글은 아...권후보가 잘 소화가 안되고..., 노총장(당시 노회찬 사무총장) 스타일에는 맞고~" 혀가 꼬부라지더니 옆방에서 잠들었다.
깨끗한 손에 글쓰면서 구상한 <좌파 프레시안> 기획을 전달했고, 같이 만들기로 했다. 다음날 이재영은 당사 지하에 있는 짜장면 집에서 장상환선생을 비롯한 정책실 연구원들을 소개해줬다. 한편으로는 반가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애잔했다. 그 악조건 속에서 한나라당-민주당과 겨루면서 진보정당 정책들을 만들고 있었다. 난 아직도 그 때 짜장면집에서 받은 김정진, 이재영을 비롯한 정책연구원 명함을 서랍에 두고 있다.
2004년 4월, 10석 의석이 생겼다. 이재영은 이메일로 "우리도 이제 의정지원단, 정책연구원 합쳐서 70~80명 가량 뽑을 수 있게 되었다"고 나름 자랑했다. 아니 자긍심의 표현이었다. 그의 기쁨은 실은 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중앙당에 꼭 "정책연구원들을 위한 도서관을 하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난 사실 2004년 10석 의석이 생기고, 정책연구원들이 5~7명 정도에서 20~30명 정도로 늘어나서, 인터넷 게시판에 더이상 글을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004년 4월 이후, 민노당내 최고위원 선거를 거치면서 당은 나락으로 빠졌다.
이재영 정책실장. 그의 별칭. 그는 전투로 치면 고참 상사이다. 그야말로 일만 일만 하는 일꾼이다. 진보신당에는 100원어치 일하고, 100000어치 일했다고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있다. 이재영 정책실장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정파적 시각에 따라 이재영 실장에 대한 판단이 다를 수 있겠지만, 민주노동당 자주파가 2006년 이재영실장을 타의반 자의반 사임시킨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잘못이다. 정견이 다르다고 해도, 공적이 있는 사람을 그렇게 쉽게 내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건 동업자 (스포츠도 라이벌이 있어야 흥행한다) 정신의 실종이었다. 이건 거꾸로도 마찬가지이다. 스포츠처럼 정파는 다르지만, 일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정해줘야 한다.
우리의 경쟁자는 삼성경제연구소이고, 승소패배율 선동열 방어율을 자랑하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이다. 우리가 이들과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집권>을 거져 줘도, 뒤로 나자빠지게 되어 있다. 한국진보정당의 미드필더 일꾼 이재영의 임무는 아직도 남아있다. 삼성경제연구와 김앤장과의 한판 승부가 아직 남아있다.
(이재영과의 만남의 계기가 된, 이문옥 2002년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
이재영 (정책위 의장)의 현장 복귀를 바라면서.
2011.09.04 08:38
암수술 후 투병 중인, 이재영 (정책위) - 건강하게 돌아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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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 진보신당 현 정책위의장 (이하 존칭 생략), XX암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엊그제서야 겨우 전화통화를 했다. (개인 프라이버시 문제이지만, 이재영의 문제는 공적이고 우리 진보정당 운동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4월에 XX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암 4기면 생존율이 2~3%인데, 다행히 3기 말이었다고 한다.
전화한 날은 수술을 막 마치고 어머니집에서 휴식중이라고 했다. 농담을 했다. "7년마다 안식년 제도라고( 참여연대도 있는데), 지난 20여년 넘게 진보정당운동 했으니까, 한꺼번에 안식년 3년은 푹 쉬라는 하늘의 계시"로 생각하라고 말했다. 살만한 지 이재영도 웃었다. 다행이다. 이재영은 항암치료 받고 산에 등산만 한1년 다니겠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된다고 했다.
[당원이라디오] 인터뷰를 찾아보니, 6월 11일 http://bit.ly/pOSUpn
[당의 선택] 이재영 (정책위의장) - 인터뷰 전문 : 노회찬 전대표 당결정 따를 것.
이렇게 인터뷰를 길게 했다. 아니 그럼 내가 암환자에게 1시간이나 넘는 인터뷰를 강행했단 말인가? ' 야, 참..., 이 냥반 해도 너무 하네. ' 나같았으면 병 진단을 그렇게 받는 날로부터 모든 일을 중지하고 병치료에 들어갔을 것이다. 게시판을 뒤져보니, 4월 9일에도 이재영 정책위의장과 인터뷰를 한 차례 길게 했다.
http://bit.ly/poaDwZ (4월 9일) 이재영 정책위 [쟁점별 정리] / 민주노동당은 얼마나 변하고 있는가..
[당원이라디오] 인터뷰 할 때, 4월에도, 6월에도, 암이다. 아프다는 이야기를 그는 하지 않았다. 며칠 전 전화로는, 중앙당 당직자들에게는 알렸다고 한다. 해외에 있는 사람에게 알려서 뭐 해서 안 알렸다고 했다.
이재영의 XX암의 원인은 진보정당의 아픔의 결과이다. 지난 20여년 넘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온 것이고, 2011년에 그 누적된 암덩어리가 폭발한 것이다. 물론 이재영보다 더 큰 병, 더 심각한 아픔을 겪은 운동가들도 많을 것이다. 이재영의 암수술 소식을 며칠 전에 듣고, 지난 1년간 진보신당 내부 통합논의(민노당과의 재결합 여부)를 다시 뒤돌아 보게 된다.
진보정당운동은, 다른 측면에서는, 우리들, 당원들 스스로의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우리들이 맺는 인간관계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인맥관리와 이권몰아주기와 다르다는 것을, 달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권유하는 것이다. 1년 토론과정에서 상처의 골이 깊다고 했다. 독자-통합 논의틀 사안은 심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들 내부를 파열낼 만큼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노선차이로 당을 분리할 근거도 빈곤하다고 본다. 우리들의 세포까지 갉아먹고, 물어뜯고 상처를 내고, 스트레스를 서로 주고 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재영의 XX암의 원인과 독자-통합 논의와의 인과관계,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지난 20여년 넘게 책상 의자만 들고 이사다니면서 정당운동을 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술, 담배, 불규칙적인 식사, 운동부족, 정파간 대립, 인간적 배신, 스트레스, 이 모든 것들이 다 원인들일 것이다.
(2004년 4월 총선, 민주노동당이 10석 국회의원을 배출하자, 해외 투자 은행 관련자들이 민주노동당사를 방문했다. 네덜란드계 AMRO 투자 분석가 벤 러드, 이재영 등 정책실과 대화)
(모건스탠리 한국 담당자 박천웅씨, 민주노동당사 방문, 민주노동당 정책을 묻다)
2004년 4월 28일, 민주노동당사 네덜란드계 AMRO 투자 분석가 방문, 이재영 등과 대화 from 원시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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