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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여성

엄혜진. 정의당의 페미니즘 오류. 몇 가지 토론주제들.

by 원시 2022. 8. 3.

노동, 마르크스의 문제의식, 페미니즘 이 모든 것들이 추구하는 것은 '해방된 인간'의 다양한 모습, 높은 수준의 인간의 행복일 것이다. 우리의 어떤 다양한 측면들이 정치적으로 발현되었는가? 

 

1. 내가 한 가지 발견한 점은, 1997년 IMF 긴축독재 이후, 한국의 '성, 젠더'가 얼마나 '상품화' 논리에 종속되어 버렸는가이다. 일상 곳곳에서도 여성의 '몸'에 대한 해석이 단순화되고, 개인의 자아 실현 공간으로서 '여자의 몸', 사회 공동체의 재생산 주체로서 '공적인 몸'에 대한 의미를 '정치화' 시켜내지 못했다.

 

2. 또한 여성 주제는 국제적이다. 한국 도시 공간에서, 농촌과 같은 일터에서, 해외 이주 여성 노동자들이 깻잎, 고추, 오이, 미나리, 딸기를 생산하고, 사적 서비스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여성과 노동은 분리불가하고, 국제연대 역시 중요하다. 

 

3. 페미니즘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 정치 실천들이 왜 몇 가지 소재에 제약되어 버렸는가? 이에 대한 주체적 반성이 필요하다. 이론적 실천적 깊이와 폭의 문제이기도 하다. 

제 1세대~ 4세대까지 페미니즘 운동사에서 이미 수차례 거론되었던, 페미니즘의 의미와 심층 과제들에 대해서 반성이 부족한 상태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우리들의 미숙함과 지적 실천적 게으름 역시 반성해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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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혜진 주장과 진단. 정의당 페미니즘 문제점. 

 

1. 전체 문제 의식.

 

민주당식 페미니즘과 구별없어. 이슈파이팅 소재로 전락한 페미니즘.

성폭력 이슈에 갇혀버렸다.

논거 사례.김원정 지적 “성희롱, 성폭력에 한정됨”

 

2. 정의당 자체 반성점.

 

류호정-장혜영식 페미니즘이 페미니즘 주제를 제한해버렸고, 대중들이 그들의 페미니즘을 정의당의 페미니즘으로 인식하도록 정의당이 방기해버렸다.

 

심상정 여성정책 1호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확대’ – 토론없이, 공약생산의 ‘외주화’에 치중한 심상정.

 

3. 노동과 페미니즘의 융합 주장. 두 패러다임 모두 위기에 봉착. 이론적 토대가 별로 없다.

(*이론적 토대란 무엇인가? 노동과 젠더 이론적 토대)

 

4. 김종철 대표 사건 처리 과정 미숙한 점. 논쟁 중인 '피해자 중심주의' 개념의 오용과 잘못된 적용.

 

현실적인 문제점. 성폭력 이슈의 과잉 정치화.

김원정 발제 김종철 사건 언급, 제명 결정 처리과정과 이후 후속조치 비판. ‘성폭력 대응역량을 후퇴시켰다’고 주장. -> 엄혜진 그 이유 “당 외부 전문가에 의존한 채” 당내 풍부한 논의 없어 생긴 일.

문제점. 장혜영의 ‘피해자 중심주의’ 과도한 해석, 쟁점임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 못해.

2차 가해자라는 확대해석 경직성 문제. 당원들의 궁금증 해결못해. (피해자의 입장 번복에 따라 당의 결정 사항이 변해버려)

 

피해자 중심주의 개념이 나오게 된 배경.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찌든 남자 여자 공통점. 그러나 지금은? 피해자가 느낀 감정을 언제든지 환기시켜 성폭력 피해로 구성할 수 있다는 식 사고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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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의 페미니즘,
어디서 잘못됐고 어떻게 바꿔야 하나
[인터뷰] 엄혜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By 유하라    2022년 08월 02일 04:25 오후


페미니즘에 관한 가시화된 논쟁은 ‘메갈리아’, ‘미투’, ‘젠더 갈등’, ‘이대남·이대녀’ 등의 키워드로 호명되며 수년간 계속됐다. 지난 대선에선 후보들의 당락을 결정할 정도로 주요한 이슈였지만 결과는 허탈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성가족부 폐지 로드맵을 마련하라 지시하고, 더불어민주당에선 대선에서 20대 여성의 표를 끌어온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직에서 내려온 후, 더 이상 페미니즘에 관한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더 심각한 건 페미니즘 정치를 표방했던 정의당 내에서 ‘페미 때문에 망했다’, ‘노동 안하고 페미해서 망했다’는 평가가 나왔다는 점이다. 거대양당보다 훨씬 오랜 기간 페미니즘에 대해 논의해온 진보정당에서 나온 의외의 평가였다. 당 차원에서 이뤄진 평가 토론회 등에선 ‘정의당이 페미니즘 정치를 하긴 했냐’는 지적이 나왔다. 소위 ‘안티페미 정치인’과 설전은 벌였지만 페미니스트 국회의원으로서, 페미니즘 정당을 표방하는 정당으로서 어떤 유의미한 의정활동을 벌여왔고 당의 페미니즘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다는 뜻이다.

“정의당은 페미니즘 정치 때문에 망했을까?” “정의당은 페미니즘 정치를 한 걸까?” “정의당의 페미니즘 무엇일까?” “정의당의 페미니즘은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레디앙>은 정의당의 페미니즘 정치를 둘러싼 상반된 평가들 속에서 나온 이런 질문들을 갖고 엄혜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를 만났다.


서울대 인권센터와 여성연구소 학술 포럼 사진(사진=서울대)
페미니즘의 정치도구화
“페미니즘을 이슈파이팅 도구로만 활용”

유하라 <레디앙> 기자 : 최근 몇 년간 젠더 갈등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었고,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페미니즘은 주요한 이슈로 다뤄졌다. 비교적 긴 시간 논쟁의 대상이었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 같은 것들이 체감되지는 않는다. 페미니즘이 정치권의 구호로서만 존재하고 단순히 소비되기만 한 것은 아닌지.

엄혜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가 사람들에게 삶의 방식을 기민하게 변화하도록 요구해왔지만, 남성과 여성의 관계 변화가 중심축이 된 것은 1990년대 말부터 나타난 중대한 현상이다. 신자유주의 체제 전환 과정에서 요구된 재분배 문제, 성별 분업의 해체, 돌봄의 위기. 이 모든 것들은 젠더관계 변화의 중요한 역동이었고 근원적으로 뒤흔들었다.

젠더관계가 긴장국면으로 가고 있었던 것은 중대한 사실이고, 가장 큰 문제는 그 변화에 대해 어떤 정치세력이 진지하게 응해왔느냐, 하는 점이다.

정치권은 젠더 관련 자기 의제를 확고히 추진하고 이에 대해 평가 받고… 이런 수준의 의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페미니즘 정치를 하기 위해선 현실의 남성과 여성의 축적된 경험들을 확인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석해나가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정치권은 그런 것들을 하지 않는다. 이슈파이팅의 도구로만 사용하니 남녀 갈등 프레임이 생겨나고, 정치권 내 페미니스트 세력들은 백래시에 대한 즉자적인 대응에만 연연하게 됐다. 악순환이다.

진보정당인 정의당마저도 페미니즘을 이슈파이팅 의제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못한 것 같다. 페미니즘 정치를 했다고 말하지만, 정의당 부설 정책연구소에 젠더 전문가가 한 명이라도 있었는지, 젠더관계의 구조적 변동을 어떤 식으로 대면할 것인지 제대로 된 논의를 한 적이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유하라 : 여성가족부 존폐 논란은 대선 중 최대 페미니즘 이슈였던 것 같다.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 ‘폐지’ 답변이 더 많았는데, 여성가족부를 중심으로 추진된 성평등 정책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지 않겠나.

엄혜진 : 여가부가 자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은 있다. 다만 취약한 기반의 문제를 이해하더라도, 여가부가 추진해야 하는 핵심 의제인 ‘젠더 주류화’를 어떤 방식으로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구상이 제대로 서지 않았고 실현되지 않은 점은 분명히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선 페미니즘 세력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젠더 의제는 다른 의제들과 결부해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중심적인 페미니즘 세력들이 민주당 정부와의 거버넌스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니, 민주당과는 다른 정치를 폭넓고 두껍게 만들어오지 못한 것도 있다고 본다.

정의당의 페미니즘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견제하며 나아가야 하는데,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의당에는 민주당과 다른 정의당의 페미니즘이 따로 있어야 한다. 어떻게 다른 세력인데 같은 페미니즘을 얘기할 수 있겠나. 그런 점에서 정의당 페미니스트도 스스로가 페미니즘을 도구화하는 데에 동참한 한 축이라고 생각한다.

정의당은 페미니즘 정치를 했나
“성폭력 이슈만으로 페미니즘 전반에 대한 역량 확인 받고 싶어 해”

유하라 : 정의당 페미니즘 활동과 관련해 정의당 노선평가위원회 주최 간담회에서 김원정 센터장은 “당내 성희롱, 성폭력 대응에만 치우쳐 있다”고 지적했다.

엄혜진 : 성폭력이라는 이슈 하나만으로, 그것도 허술한 의제화로, 페미니즘 전반에 대한 역량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게 무슨 페미니즘인가?

유하라 : 선거 이후 정의당 내에선 ‘류호정·장혜영 페미니즘’이 선거 패배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엄혜진 : 몇 가지 페미니즘 이슈에 개입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 분들이 적극적으로 페미니즘 정치를 한 것은 아니지 않나? 이 분들이 무슨 페미니즘을 했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대중이 그런 식으로 정의당의 페미니즘을 이해하도록 당이 방기한 것이 진짜 문제 아닌가.

엄혜진 : 그것(두 의원이 이준석과의 페미니즘 설전 중 한 발언들)만 부각된다고 하는 게 그들 입장에선 분명히 억울한 측면도 있겠지만, 다른 게 없었던 것은 사실 아닌가. 다만 두 의원들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는 없다고 본다. 당이 그랬으니까.

유하라 : 이준석 대표가 소위 ‘이대남’을 등에 업고 안티페미를 몰아붙였고, 청년 여성 의원들로서는 여기에 대응해야만 하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두 의원의 그러한 활동이 선거를 망하게 했다는 평가는 동의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유하라 : ‘노동을 안 하고 페미만 해서 망했다’는 평가도 있다.

엄혜진 : …정의당이 페미니즘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을 안 한다니까요?

심상정 후보의 여성정책 1호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확대’였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확대가 1호 공약인 것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비전을 갖고 나온 것인지 이해가 안 갔다. 젠더 의제와 관련해 당내에서 깊이 있게, 지속적으로 논의하기보다는 공약 생산을 외주화해 온 패턴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싶다.

유하라 : 여성과 노동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도 강한 것 같다.

엄혜진 : 맞다. 그런데 페미니즘에서 여성노동은 핵심적이고 주요한 의제이다.

정의당은 계속 노동을 얘기해왔다. 문제는 변화하는 노동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페미니즘과 노동 모두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두 영역 모두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분석하고 고민해야 하는 게 있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새로운 정책을 내놔야 하는데, 이론적 토대가 별로 없기 때문에 진보정당이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어려운 면은 분명히 있다. 진보정당하기 참 어려운 시대인 건 맞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런 것들을 해야 한다. 쉽지 않은 길인 건 분명하지만 조금씩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한편으론 그런 활동들이 성폭력 이슈들을 과잉 정치화하지 않도록 견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유하라 : 당내 일부 의견그룹에선 ‘비페미 진보는 가능하다’이런 주장도 나오더라.

엄혜진 : 반페미든 비페미든 주장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 얘기를 좀 해줬으면 좋겠고, 반페미니즘하는 거면서 다른 운동 하는 것처럼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반페미니즘, 비페미니즘이 운동의 내용인가? 취약한 청년남성들이 있다고 하는데, 반페미까지 거론하면서 뽑아내기엔 너무 당연하고도 소박한 얘기 아닌가.


사진=경기도여성가족연구원
당대표 성폭력 사건 대응 둘러싼 논란들
“당 신뢰 기반 무너뜨리고 페미니즘 왜곡에 기여”

유하라 : 당대표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언론은 신속하고 엄정한 대응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당내에선 제명 결정까지의 처리 과정과 이후 후속 조치 등을 두고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다. 김원정 센터장도 김종철 사건을 언급하며 ‘성폭력 대응역량을 후퇴시키는 퇴행적인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엄헤진 : 젠더 의제를 해결할 방식이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 인력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 말고는 없는, 그 취약한 기반 때문에 벌어진 문제다. 당내에 풍부하게 젠더 관련한 진용들이 있었다면 일이 그렇게 처리됐겠나.

유하라 : 어떤 점이 문제이고, 어떻게 처리됐어야 한다고 보나.

엄혜진 : 성폭력 사건에 대한 규정과 처리 등 모든 결정을 피해자의 자기규정에 맞춰서 피해자에게 추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진 것부터 잘못이다. 사건을 정당으로 가져왔으면 그에 맞는 방식으로 처리가 됐어야 한다. 당이라는 기구를 통해 사건의 의미, 해결 절차 등에 대해 결정하고 합리적이고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당원들에게 그 결정을 추인 받았어야 한다.

피해자의 피해 호소 자체에만 의존해서 성추행이라고 판단할 수 없고, 성추행 내용을 자세하게 공표하지 않더라도 ‘어떠한 조건 속에서, 어떤 신체접촉이 있었고, 피해자가 어떠한 경험을 하게 한 성추행 사건이었다’ 등의 사건의 경위 정도는 당 차원에서 밝혔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피해자가 구성하는 게 아니라, 당이 자기 언어로 해야 하는 일들이다.

그런데 당은 당원들에게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고 당대표에게 제명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당원들이 어떠한 사실과 맥락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궁금함을 호소하는 것조차 2차 가해라고 했다. 이건 문제 아닌가. 진보정당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피해자 중심주의, 2차 가해 개념에 대한 반성적 평가도 전혀 들어 있지 않다.

유하라 : 당대표 성폭력 사건의 ‘2차 가해 신고센터’에 이어, 배복주 부대표가 강민진 청년정의당 전 대표가 제기한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서도 ‘당의 결정을 번복하고 재조사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 나오면서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논란이 컸다.

엄혜진 : (피해자의 입장 번복에 따라 당이 결정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당의 신뢰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는 일이고, 그런 행위들이 성폭력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을 왜곡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남성과 여성 간 확연하게 불균등한 권력 관계와 그것을 배타적으로 옹호해온 사회, 그런 여건 속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경험을 발화하는 것을 막고, 더 나아가 피해자의 경험 자체를 가부장적으로 재해석하는 것들에 맞서온 개념이다. 피해자의 경험을 가해자의 의도가 아니라, 피해자가 어떠한 피해 경험을 하고 있는지 존중하기 위한 개념이다.

법적으로도 피해자의 감정과 정서 그 자체만을 가지고 성폭력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런데 피해자 중심주의 개념을 피해자가 느낀 감정을 언제든지 환기시켜서 성폭력 피해로 구성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면, 우리 사회가 성폭력 문제를 어떤 식으로 규율할 수 있겠나.

성폭력 예방 교육과 백래시

유하라 :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면 ‘성폭력 예방교육을 강화하겠다’는 후속대책이 매번 나온다. 그런데도 왜 매번 성폭력 사건은 반복되나. 실효성이 없다고 봐야 하나?

엄혜진 : 교육은 매우 중요하지만, 일종의 토대 사업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특정한 국면에서 정치 사업으로서의 역할을 계속 부여 받고 있다. 이는 굉장한 오해와 불신을 불러일으키고 증폭하는 데만 기여한다.

유하라 : 당원교육 사업이 백래시만 불러온다는 뜻인가.

엄혜진 : 교육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자. “엊그제 교육 받았는데 뭘 또 받으라는 건가”, “범죄자가 나타날 때마다 내가 교육을 받아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지 않겠나. 그런 불만이 있어도 당 방침에 따라 교육을 들었는데 내용은 그동안 교육과 똑같다. 그럼 어떤 기분일 것 같나. 내가 생각해도 모욕적이다.

성폭력 예방 교육이 의무화된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사실상 우리나라밖에 없다. 교육의 설계 자체도 성폭력, 성매매, 가정폭력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구획돼있다. 잠재적 가해자 담론을 생성할 수밖에 없는 토대가 여기서 나온다. 그런데 그런 교육만 반복적으로 수행하다 보니, 사람들은 그런 게 페미니즘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을 배워야 하는 이론이나 사상이라는 것을 존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의 교육이다. 이런 교육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성폭력 예방 교육은 ‘시민교육’의 일환이다. 최소한 “우리 사회에서 젠더 기반 폭력이 많이 발생하는데 그 구조가 무엇인 것 같은지,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함께 제안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가해자가 많이 나타나고 있으니 한 사람이라도 개조해서 가해자를 줄이자” 이런 식으로 교육 대상자를 선제적으로 혼내는 접근이 여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정의당의 페미니즘
“모든 젠더 의제를 성폭력이라는 틀 안에 가두지 말아야”

유하라 : 정의당의 페미니즘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엄혜진 : 법과 제도를 만들더라도 여성 등 취약계층은 여전히 보호 받지 못하는 영역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모든 상황의 개인을 피해자로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바꿔야 한다.

우리 사회는 성적 관계에서 경험한 폭력, 긴장 등을 성폭력이라고 하지만, 어떤 경험들은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포획해주지 않는다. 물론 폭력이 아니라고 해서 문제가 아닌 건 아니다. 이런 것들을 성폭력이라는 틀에 가두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의미를 만들고 해석해서 어떻게 여성들의 위치를 변화시켜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가스라이팅은 여성 집단이 가진 취약성이라는 상징코드에 의해 벌어진다. 그렇다고 가스라이팅 자체를 모두 범죄화하고 여성을 피해자의 위치에만 두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유익한가. 그렇지 않다. 모든 젠더 관련 의제를 성폭력 범죄라는 굉장히 간략하고 간소화된 하나의 틀에 맞춰 풀려고 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피해자 자리를 차지했을 때만 피해 경험을 호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화돼있는 것들에 대해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해서 바꿔 나가야 하는 것 역시 과제다.

이런 것들을 해야 하는 조직이 정의당이라고 생각한다.

유하라 : 피해자가 아니면 이야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그런 구조를 바꾸는 데에 정의당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엄혜진 : 그렇다. 그런데 단지 여성 개개인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정치의 언어로 바꾸어 말하면 여성들의 정치역량을 강화하고 페미니즘 의제로 활약하는 영역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여성 스스로 자신들의 경험에 대한 의미와 언어를 바꿔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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