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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언론보도. 사법농단 양승태 대법원장 1차 재판 - 양승태에 놀아난 법원. 1심 재판 - 세계 신기록, 1심 종결하는데 5년 걸리고, 277회 재판 열림.

by 원시 2024. 1. 28.

속칭 법기술자(법꾸라지) 양승태가 법원을 농락했다. 1심을 끝내는데 5년 걸리고, 277회 재판을 열었다. 세금 낭비이다. 

피해자들은 존재하고, 가해자를 밝히지 못하는 기소와 재판이 되고 있다. 

양승태의 얼굴을 기억하라.

 

 

언론보도 

 

jtbc, 한겨레, 중앙일보 등.

 

 

6년간 나라 흔든 ‘사법농단’에 실체 없었다? 그 책임 누가 지나? [양승태 무죄]

 


박준규 기자  입력 2024.01.27 04:30 3면 26  15
[당시 수사의 시작을 복기해 보니]

 


김명수 "형사처벌" 언급하며 檢에 그린라이트
윤석열의 중앙지검, 전광석화처럼 수사 착수
문재인 "의혹 반드시 규명" 검찰에 힘 실어줘


재판거래의혹 과 관련 긴급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8년 6월 1일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가 진행될 경우 모든 인적·물적 조사자료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공할 것이며, 사법행정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2018년 6월 15일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
2018년 6월 15일, 판사 블랙리스트와 법관 사찰 의혹으로 법원 내부가 들끓고 있던 때.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전임 양승태 사법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에 협조할 것임을 약속했다. 사법부 수장의 이 발언은 검찰에 ‘그린라이트’를 켜 주며 대법원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동훈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가 2019년 2월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구속기소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수사 선봉에 선 서울중앙지검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6월 18일, 윤석열 검사장이 이끄는 서울중앙지검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를 최정예 부서인 특수1부에 배당하고, 대법원을 상대로 한 초유의 수사에 전격 착수한다. 이 수사의 실무 책임자가 바로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를 지휘하던 한동훈 3차장검사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관련자 자택과 대법원 압수수색에 착수했고, 급기야 그해 11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이듬해 1월엔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직 사법부 수장(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하며 대어를 낚는 데 성공했다.

이 수사는 오롯이 서울중앙지검의 자의적 선택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할까. 전후 상황을 따져 보면 그렇게 보긴 어렵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수사가 한창이던 그해 9월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사법농단’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 그는 “지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며 “의혹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에 큰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8년 9월 13일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에 힘 실어준 청와대와 민주당
여당인 민주당도 이에 동조했다. 이해찬 당시 대표는 양 전 대법원장의 행위를 “이런 짓”이라고 질책하며, 검찰 수사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국정조사와 법관 탄핵 등을 언급하며 전방위적 압박에 나서기도 했다.

결국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는 대법원장이 신호를 주고 청와대·여당이 밀어주면서 검찰이 총대를 메고 끌고간, 행정·입법·사법부의 합작품이었던 셈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결심공판에서 최후 진술 기회를 얻어 "사법부에 대한 정치세력의 엄혹한 공격이 이 사건의 배경이고, 검찰이 수사라는 명목으로 그 첨병 역할을 한 것"이라고 호소한 이유다.

그러나 이 사건을 5년 가까이 들여다본 1심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의 47개 혐의 중 단 하나도 유죄로 인정하지 않았다. 양 전 대법원장과 두 대법관이 재판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없었고, 설령 권한이 있었더라도 검찰의 혐의 입증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 직권남용이 인정되는 재판 개입과 법관 불이익 행위 등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주도했을 뿐 양 전 대법원장 등의 공모는 없었다고 봤다. 이날 판결 소식을 접한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검찰 수사를 받은 법관 대부분이 모욕감을 느꼈을 만큼 수사가 무리했다"며 "끼워맞추기식 기소의 말로"라고 평가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혐의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법원의 봐주기가 문제일까?

 


물론 이번 판결은 1심인 만큼 2·3심에서 다른 판단을 받을 여지는 분명히 있다. 박근혜 정부 인사들에게 직권남용 유죄를 줬던 법원이 대법원 수뇌부와 고위법관들에게 유독 깐깐한 '직권남용 성립 기준'을 들이대며, 거의 모든 사건을 무죄로 판단하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최초로 폭로했던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재판 개입 사실은 인정된다면서 무죄라면 재판거래 피해자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라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수족들은 귀신의 지시를 받은 것이냐"고 재판부를 질타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불거질 당시 목소리를 높였던 한 지방법원의 판사도 "실제 문건이 대법원 재판 결과 등에 반영된 것에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장(박병대·고영한)의 지시나 개입이 전혀 없었다는 건데 이게 가능한가"라며 "직권남용이 있었는데 공모가 없었다는 판단은 이해가 어렵다"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ssangkkal@hankookilbo.com

 


‘사법농단 폭로’ 이탄희 “재판개입 인정 뒤 무죄? 피해자 어디로 가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무죄 판결에
“대법원장 수족들, 귀신지시 받았나” 페북글

 


기자류석우
수정 2024-01-27 21:50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의 시작점이 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1심 무죄 선고를 두고 “양승태 대법원장 수족들은 귀신의 지시를 받은 것이냐”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지난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확한 건 판결문을 읽어보고 말해야겠다”면서도 “재판개입 사실은 인정된다면서 무죄라면, 재판거래 피해자(강제 징용 피해자, KTX 승무원, 세월호 가족들과 언론인 등)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고 썼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은 ‘박근혜 청와대’ 요청에 따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과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등 재판에 개입했다는 ‘재판거래’ 등의 혐의로 2019년 2월 재판에 넘겨졌다. 약 5년간 이어진 재판 끝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재판장 이종민)는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공소사실에 대한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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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태는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2011년 9월~2017년 9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하고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사건이다. 2017년 2월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하던 이 의원(당시 판사)이 양 전 대법원장에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견제하라는 지시에 사직서를 내면서 이 사건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후 2018년 6월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당시 수사팀장이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였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전·현직 판사 14명을 기소했다. 이중 6명이 무죄를 확정받았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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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탄희

정확한 건 판결문을 읽어보고 말해야겠지만, 재판개입사실은 인정된다면서 무죄라면 재판거래 피해자들(강제징용피해자, KTX승무원, 세월호가족들과 언론인 등)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합니까?
양승태 대법원장 수족들은 귀신의
지시를 받은 것입니까?

 

 

5년 걸린 1심 277차례 재판…‘법 기술자’ 지연전략에 끌려다닌 법원
1심 선고 시간만 4시간 넘겨
기자이정규
수정 2024-01-26 20:16

 

등록 2024-01-26 18:16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 재판은 재판 진행부터 선고까지 모든 장면이 이례적이었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을 기소한지 1810일(약 4년11개월)만에야 나온 1심 선고는 판결문을 읽어내리는데만 4시간 넘게 소요됐다. 재판부는 선고 도중 휴정을 하는 등 법정에서 보기 힘든 장면들이 연출되기도 했다.

양 전 대법관 1심 선고는 이날 오후 2시께 서울중앙지법 358호 법정에서 형사합의35-1부(재판장 이종민) 심리로 진행됐다. 법정으로 들어선 재판장은 약 40㎝ 두께의 서류를 법대 위에 올려뒀고 방청석에선 탄성이 흘러나왔다. 100석에 달하는 방청석은 변호인단과 취재진, 방청객으로 가득찼다. 방청석엔 재판 개입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됐다가 ‘직무상 권한이 없으니 이를 남용할 수도 없다’는 논리로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도 자리해 재판을 지켜봤다.

이날 재판부는 판결에 앞서 판결에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장시간 선고’를 예고했다. 재판장인 이종민 부장판사는 “공소장이 300여페이지에 달한다. 따라서 판결 이유 설명만 상당히 많은 시간이 예상된다”며 “공고사실 요지설명이 간략하게 이뤄질텐데 이런 방식으로 선고를 진행해도 오늘 일과 중에 마쳐질 지 미지수다. 요지를 설명하는 도중 휴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양해 바란다”고 말했다.


“공모를 인정하기 어렵다” “양승태가 관여했다고 보기 어렵다” “직권남용을 인정하기 어렵다” “증명이 없다”

재판장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판결 요지를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갔다. 대부분의 내용은 검찰이 기소한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마스크를 쓴 채 피고인석에 앉은 양 전 대법원장은 두 눈을 감고 있어가 허공을 응시했다. 2시간 가까이 판결문을 읽어내리던 재판부는 오후 4시10분께 잠시 휴정시간을 가졌다. 휴정 시간 도안 양 전 대법원장은 법정 안에서 변호인과 대화하며 눈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선고 4시간을 넘긴 오후 6시20분께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도입 등 법원 위상 강화 및 이익 도모를 위해 각종 재판에 부당 개입, 사법행정을 비판한 법관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인사상 불이익 준 혐의 등 총 47개 범죄사실로 2019년 2월11일 구속 기소됐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공전자기록위작 및 행사,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의 죄명이 적용됐다.

검찰 기소 이후엔 1심 선고까지 공판기일만 277차례 열려 재판지연의 대표적 사례라는 비판을 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 조서와 증거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증거 부동의) 134명(중복 포함)의 증인을 불러 신문해야 했고, 재판부 변경에 양 전 대법원장 쪽이 ‘원칙적인 공판갱신 절차’를 주장해 재판은 더욱 길어졌다. 2021년 2월 법원 정기인사로 재판부가 교체되자 양 전 대법원장 쪽은 증인 녹취파일을 하나하나 재생해 공판갱신 절차를 밟았고 여기에만 7개월이 소요됐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법 기술자의 재판 지연 전략’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수십만 쪽에 이르는 검찰 수사 기록 역시 재판 지연의 원인이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기네스북급 재판"…양승태 1심, 김명수 임기 내도 못 끝낼 판 [280번의 재판,잊혀진 정의]②
중앙일보

업데이트 2023.06.13 21:14


문현경 기자 
오효정 기자 
김정연 기자 
이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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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번의 재판, 잊혀진 정의②


사법부는 중증 동맥경화를 앓고 있다. 재판 지연에 분통을 터뜨리는 당사자들의 모습은 법원의 익숙한 풍경이다. 특히 1심 마비 증세는 심각한 수준이다. 2017년 사법농단 의혹이 제기된 이후 이어진 대법원장 구속과 판사 14명 기소라는 초유의 사태를 딛고 등장한 김명수 코트가 대법원장에 집중된 행정권력을 해체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인사상 '당근과 채찍'을 포기하자 법관사회에 들어선 수평적 문화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박탈과 동전의 양면을 이뤘다. 그 사이 ‘무엇이 사법농단인가’를 가리기 위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1심 재판은 4년 넘는 기간 동안 280차례(13일 기준) 열렸다. 평가의 부재 속에 시행착오가 누적되면서 사법부는 표류 중이다. 3개월 뒤 대법원장이 바뀐다.



'사법농단' 사태 이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이 재판이 시작될 때만 해도 ‘세기의 재판’이 될 거란 평가가 있었다. 실체진실·소송경제·적법절차 원칙이 아주 조화롭게 조율돼 법학도에게도 본보기가 될 재판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재판 과정에서 소송 지연을 초래하는 피고인들의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들이 있었다.”

지난 7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266번째 공판. “2018년 수사에 참여하고 다른 검찰청으로 전보된 지 4년 지나도록 진행 중”인 재판에 나온 호승진 부부장검사가 재판 지연의 책임을 양 전 대법원장 등에게 돌렸다.

지난 2019년 2월 검찰이 헌정 사상 최초로 전직 대법원장을 구속기소해 시작된 이 재판은 법조계에서 “기네스북 도전감”(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이란 말을 듣고 있다. 이 재판은 지난 9일 한 차례 더 열려 공판기일만 267번을 채웠고 재판 쟁점을 정리하기 위한 공판준비기일을 포함하면 280번 열렸다. 형사합의부 사건 1심 평균 공판 횟수는 3.72번(2022 사법연감), 박근혜 전 대통령 1심도 116번에 그쳤다.

전·현직 판사 중 사법농단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이들이 100명이 넘고, 증인석에 불려온 이들도 66명이다. 2017년 불거진 뒤 사법부 전체를 헤집어놨다는 평가를 받는 이 재판은 아직 끝을 맺지 못한 채 진행 중이다. 그 사이 법조계에선 “세기의 재판 지연”(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형사소송법 교과서 그 자체”(대형 로펌 변호사)라는 헛웃음이 나오는 일이 됐다. 형사소송법과 대법원 예규 등에 나오는 원칙과 절차가 모두 구현되는 이 재판은 '지연 전략' 선례가 돼 다른 재판에도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내가 아는 것이 사실인가…왜곡된 기억과의 사투

 


 1심만 4년을 넘기면서 법적 다툼의 대상이 되는 행위들은 발생 시점으로부터 길게는 11년, 짧게는 5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양 전 대법원장 재직기간(2011년 9월~2017년 9월) 동안 법원행정처에서 일어난 일의 존부와 당부당을 따지는 재판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법정에선 증인과 피고인들이 흐릿해져 가는 자신의 기억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다.

지난해 3월 증인으로 나온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행정처 근무한 지 만 7년, 검찰 조사받은 지 3년 지나 기억이 많이 희미해졌다”고 말했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지난 2020년 5월 증인신문으로 나와, 1년 전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재판에서 한 말에 대해서도 “그때 기억이 맞는지 지금 기억이 맞는지 장담하지 못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때 진술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기억력의 문제에선 등장 인물들의 연령도 무시 못 할 변수다. 피고인인 양 전 대법원장은 75세, 고영한 전 대법관은 68세, 박병대 전 대법관은 65세다. 기억 안 난다는 증인들의 얘기는 전부 증거에서 배제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증인이 기억을 못해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 진술 신빙성을 법정에서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조서 증거능력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지난달 31일,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는 거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왼쪽부터)과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이 지난 2020년 3월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직권남용 혐의 등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왼쪽부터)과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이 지난 2020년 3월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직권남용 혐의 등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럭 기소’ 별명…“수사·기소 전반이 무리수” 
 증인이나 피고인으로 법정에 불려온 전·현직 법관들은 지연 원인으로 ‘트럭 기소’를 꼽는다. 수사 기록이 너무 많아 다 옮기려면 트럭이 필요할 정도라는 의미다. 검찰이 자잘한 의혹들까지 망라해 기소하다 보니 기록이 방대해졌고, 하나하나 따지려니 장기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4년간 재판을 받으며 딱 두 번 입을 열었는데, 첫 공판에서의 ‘트럭 기소’ 비판이 그 첫 번째였다.

“80명 넘는 검사가 8개월 수사 끝에 300페이지 넘는 공소장을 창작했다. 18만 쪽에 이른다는 수사 기록의 100분의 1도 보지 못했는데, 여러 사람의 진술 조서나 피의자신문조서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추측성 진술로 뒤덮여 있었다. 검사의 독촉에 못 이겨 유도신문에 영합한 진술이 대부분이다.” (양 전 대법원장, 2019년 5월 첫 공판에서)

재판에 나온 증인만 99명이다. 대부분 양 전 대법원장 기소 전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이들이지만,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이때 작성된 조서를 증거로 채택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아 결국 증인석에 서야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지난 7일 공판에서 “공판준비 때부터 우리는 증인 수 줄이려고, 검찰 조서 중 재전문·의견 진술 제외해 주면 (증인으로 부르지 않고 조서를 증거로 쓰는 것에) 동의하겠다고 했는데 검찰이 거부했다. 이미 증언 마친 증인을 검사가 다시 신청해 소송이 지연된 바도 있고, 우리가 동의한 증거에 대해서도 검찰에서 조사가 필요하다고 해 17기일에 걸쳐 4개월 넘게 진행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호 검사의 피고인 책임론에 맞대응한 것이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증인으로 나온 전·현직 판사 중 일부도 검찰 탓에 힘을 실었다. “검찰에서 질문 하나 통과하는데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조서에 진술 취지와 다르게 기재된 내용도 있다(조병구 전 법원행정처 공보관)” “검찰 조사 당시 회유하려는 말을 들었다. 논의하지 않은 것도 연결하려 해서 너무 놀랐고 억지라고 생각했다(정지영 전 윤리감사실 심의관)” 등이다. 재판 초기부터 방청한 양 전 대법원장의 연수원 동기(2기) 한부환 전 법무부 차관은 “검찰이 말도 안 되는 것까지 끌어모아 기소하니 재판이 길어진다”며 혀를 끌끌 찼다.

검찰 “이런 피고인을 봤나”
 양 전 대법원장이 마지막으로 입을 연 건 2019년 7월이다. 증인신문이 오후 11시를 넘어가자 “머리가 아파 견딜 수 없다”며 자신에게 “퇴정명령을 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검찰이 “양해를 구하는 것을 넘어 퇴정명령까지 해달라는 피고인을 본 적이 없다”(박주성 검사)고 받아치며 신경전이 벌어졌다.

검찰은 누구보다 법을 잘 아는 피고인들이 아무도 감히 실현하려 들지 못했던 형사소송법상의 원칙들을 고집한 게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이라고 본다. 한 검찰 관계자는 “재판 초반에는 증거 속성을 일일이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태클을 걸었다”고 말했다. 7일 호 검사도 “갱신과정도 소송지연의 목적으로 활용된 듯한 느낌”이라며 지난 2021년 4월의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법원 인사이동으로 재판부 판사들이 바뀌자, 피고인들은 그간 심리 내용을 확인하는 갱신 과정을 ‘법대로’ 할 것을 요구했다. 대부분의 재판에선 판사들이 공판 기록들을 판사실에서 보기로 하고 넘어가는 ‘간이 갱신’이 이뤄지지만 대법관 출신의 세 피고인은 모두 “증인신문 녹취서는 보조적인 것이고 원칙대로 증거 조사를 다시 하려면 원칙적으로 이전 증인신문 녹음파일을 법정에서 틀어야 한다” 했다. 이전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는 다른 법원으로 떠났지만 그의 목소리는 6개월간 중앙지법에서 재방송됐다.

 검찰은 이런 식의 재생 갱신에 “재판 지연 의도”가 있다 의심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 이상원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이 추구하는 직접주의 원칙을 그나마 덜 훼손시키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공판 갱신은 최근 다른 재판에서도 유행이다. 지난 2월 재판부가 교체된 대장동 재판에서도 2개월간 같은 방식으로 갱신절차를 밟았다. 이 변호사가 법원 전반에 좋은 선례가 됐다는 증거라는 취지에서 대장동 재판을 언급하자 호 검사는 “피고인과 증인(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모두 고위직을 지내신 분들인데 (현직에) 계실 땐 왜 그 직접주의 원칙을 구현하지 않으셨느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선 전직 대법원장이라 가능한 요청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평범한 사건에선 재판 지연으로 인한 시간과 비용 때문에라도 요청하기 어렵다”며 “만약 요청해도 판사에게서 ‘법대로 하자는 거죠’라는 반응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농단' 사태 이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사법농단' 사태 이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의혹으로 이어진 지연…논란의 재판부 교체
 재판 지연의 핵심 원인이 된 공판 갱신의 판은 2021년 2월 깔렸다. 2019년 2월 기소 후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을 맡았던 형사35부의 첫 재판장 박남천 부장판사가 결심에 이르지 못한 채 정기 인사로 법원을 떠나면서다. 6개월의 갱신 절차를 거쳤지만 사건 파악에 애로를 겪던 후임 재판부는 지난 2월 말부터 약 3개월간 쟁점 정리 기일을 열었다.

'2~3년 주기 순환근무'는 관행이지만 박 부장판사의 전보는 여러 혐의가 양 전 대법원장과 겹치던 이민걸 전 기조실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임종헌 전 차장 재판을 맡았던 형사36부 윤종섭 부장판사가 유임돼 6년간(2016년 2월~2022년 2월) 근무한 예외와 대비를 이뤘다. 사법농단 처리와 관련해 “연루자 단죄” 목소리를 냈다는 윤 부장판사가 연장 근무 기간에 이 전 기조실장과 이 전 상임위원의 일부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자 법원 안팎에선 “윤 부장판사 연임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유죄를 원한다는 의미”라는 해석이 난무했다. 임 전 차장 재판은 두 차례 재판부 기피 신청과 기각 과정에서 늘어졌다. 재판 지연이 결국 법원 내 물밑 갈등으로 이어진 셈이다.

한 지법 부장판사는 “재판부를 꼭 판사 3명으로 꾸리란 법은 없다”며 “방대한 공소사실을 신속·충실하게 심리할 수 있도록 큰 재판부를 꾸리고, 인사이동을 최소화한 상태로 재판을 마무리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증인으로 출석했던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제 피고인·증인·판사·검사 모두 기억과 이해관계가 뒤죽박죽돼 재판이 미궁에 빠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양승태·박병대·고영한 재판 열 토막

2019년 1월 23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정사상 최초’의 전직 대법원장 구속기소가 ‘헌정사상 최다’ 재판까지 예정한 것은 아니었다. 검찰은 2019년까지만 해도 “이런 식으로 하다간 2021년에나 선고가 가능하겠다” 했고 서울고등법원 판사들은 2021년 인사에서 ‘형사부에 가면 혹시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을 맡게 될까’를 생각했다고 한다. 4년간 재판이 어떻게 진행돼 온 것일까.

1기: 마음 급한 재판 준비 (2019년 3월~5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형사합의부를 증설해 사법농단 사건을 받고, 적시처리주요사건으로 지정했다. 공판 절차 준비에만 두 달이 걸렸다. 박남천 부장판사의 재판 지휘엔 “우리는 52시간 적용 안 되지 않느냐” “이러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 등 재촉이 섞였다. 재판부는 검찰의 요구(3회)보다 적고 피고인들의 요구(1회)보다 많은 주 2회 재판을 결정했다.

2기: 의욕의 야간재판 (2019년 5월~8월)

‘문건 노다지’인 임종헌 전 차장 USB의 증거능력을 재판부가 인정하기까지 검찰과 변호사들은 석 달간 다퉜다. 증인신문이 시작되자 구치소 저녁 식사 시간을 훌쩍 넘겨 재판이 이어지는 날이 많았다.

3기: 장기전 준비 (2019년 8월~2019년 12월)  

구속 기간(1심 최대 6개월) 내 선고가 요원해 보이자 재판부가 직권 보석 결정을 내렸다.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사법농단 수사를 지휘했던 윤석열은 검찰총장 취임 후 첫 지시로 ‘특별공판팀’을 만들었다. 검찰은 주 4회 재판을 요청했지만 “검찰이 증인신문을 길게 하니 재판이 길어지는 것”이라 생각한 변호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석으로 석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9년 7월 22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주거 및 통신제한, 보증금 납입을 조건으로 직권보석을 결정했다. 뉴스1
보석으로 석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9년 7월 22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주거 및 통신제한, 보증금 납입을 조건으로 직권보석을 결정했다. 뉴스1

4기: 코로나 속 본격 재판 돌입 (2020년 1월~7월)

양 전 대법원장 폐 절제 수술과 코로나19 확산으로 두 달간 한 차례밖에 재판을 열지 못했다. 3월부터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시작으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주요 증인 신문이 이뤄졌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5기: 차례차례 증인신문 (2020년 7월~2021년 1월)

공소사실 파트별로 증인을 부르기 시작했다.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 관련 파트에선 윤병세 전 장관을 비롯해 차관·국장·과장 등 외교부 사람들과 전범 기업 대리를 맡았던 김앤장 변호사들을, 통진당 관련 파트에선 김종필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해당 사건을 맡았던 지방법원 재판장들을 불렀다. 두 번째 해넘이 후엔 ‘판사 블랙리스트’로 대두하는 특정 연구회 탄압·인사 불이익 등 파트를 시작했다.

6기: 재판부 교체의 여파 (2021년 2월~10월)

121번 재판한 판사들이 떠났다. 새 재판부가 122번째 재판을 열기까지 2개월, 이후 재판절차 갱신을 마치기까지 약 7개월이 걸렸다. 기소한 지 2년이 넘어가니 검사들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기소 요지를 진술하면서 죄명을 잘못 말하거나 공소사실에 없는 내용을 말하기도 해 이종민 부장판사가 “많은 공소사실 요지를 간략하게 하다 보니 착오한 것 같다”고 정리해주는 해프닝도 있었다. 검찰은 6월 인사에서 특별공판팀을 해산했다.

7기: 증인신문 재개 (2021년 11월~2022년 5월)

다시 혐의 파트별로 증인을 부르기 시작했다. 법관 비위 은폐 의혹과 관련해 당사자인 문상배 변호사와 그의 사건 재판장, 윤리감사관실 판사들이 나왔고 공보관실 운영비 문제로 기재부·법원·감사원 공무원들이 나왔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8기: 다시, 또 (2022년 5월~2023년 2월)

“증거목록 정리를 위한 공판준비기일은 처음 해본다.(이종민 부장판사)” 끝을 향해가나 싶었는데 준비기일이 다시 열렸다. 증거를 하나씩 보며 “9010번 증거는 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마찬가지인가” “7402번은 동의로 바꾸겠다” 하는 식이다. 불렀던 증인도 다시 불렀다. 이규진 변호사는 이 재판에만 9번을 나왔다.

9기: 결심인 듯 결심 아닌 (2023년 2월~5월)

부를 증인이 ‘키맨’ 임종헌 전 차장밖에 남지 않자 이제는 쟁점별로 양측 의견을 듣기로 했다. 23개 쟁점에 대해 검찰과 변호인이 각각 의견서를 낸 뒤 법정에 나와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데 14주가 걸렸다.

10기: 키맨도 불렀다, 이제 끝나나 (2023년 6월~)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혐의 대부분 임 전 차장과 공모한 것이라 본다. 가장 중요한 증인인 만큼 재판부는 12기일에 걸쳐 임 전 차장 증인신문을 잡아뒀지만, 임 전 차장이 자신도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을 이유로 증언을 거부하자 4번만 부르기로 했다. 끝나면 결심에 들어갈 수 있지만, 검찰 증거 하나에 대한 포렌직과 피고인신문 여부가 남았다. 재판 당사자들은 그래도 올해 안엔 선고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1심만 3년째" 분통 터뜨린다…김명수 6년, 법원은 동맥경화 [280번의 재판, 잊혀진 정의]①
중앙일보
입력 2023.06.11 16:00

업데이트 2023.06.13 21:12


오효정 기자 
문현경 기자 
김정연 기자 
이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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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번의 재판, 잊혀진 정의①

사법부는 중증 동맥경화를 앓고 있다. 재판 지연에 분통을 터뜨리는 당사자들의 모습은 법원의 익숙한 풍경이다. 특히 1심 마비 증세는 심각한 수준이다. 2017년 사법농단 의혹이 제기된 이후 이어진 대법원장 구속과 판사 14명 기소라는 초유의 사태를 딛고 등장한 김명수 코트가 대법원장에 집중된 행정권력을 해체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인사상 '당근과 채찍'을 포기하자 법관사회에 들어선 수평적 문화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박탈과 동전의 양면을 이뤘다. 그 사이 ‘무엇이 사법농단인가’를 가리기 위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1심 재판은 4년 넘는 기간 동안 280차례(12일 기준) 열렸다. 평가의 부재 속에 시행착오가 누적되면서 사법부는 표류 중이다. 3개월 뒤 대법원장이 바뀐다.

2018년 9월 13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왼쪽 두 번째)이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화를 나누며 박수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9월 13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왼쪽 두 번째)이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화를 나누며 박수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해고 노동자 A씨는 2020년 가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1심 선고기일이 오는 11월로 잡혔다. 마지막 변론기일은 지난달 25일에 열렸다. 범죄 피해자 B씨도 경찰 수사를 문제 삼아 2019년 국가 배상을 청구했지만 1심 선고가 날 때까지 2년, 항소 후 첫 재판이 열릴 때까지 또 1년을 기다려야 했다. 서울 서초동의 한 중견 변호사는 “사건이 쌓여 있다는 이유로 선고 기일이 한없이 밀리는 일이 다반사”라며 “재판장이 기록을 제대로 안 봐 변론이 재개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심각한 동맥경화를 앓고 있다. 2017년 평균 9.8월 만에 처리되던 민사 합의부 1심 사건이 2021년에는 평균 12.3월 소요됐다. 2년 이상 걸리는 1심 사건은 2017년 2929건이었지만 2021년에는 4897건으로 치솟았다.(동일인에 의한 과다 소제기 제외, 2022 사법연감) 형사 재판도 마찬가지다. 2년 넘게 1심 결말을 보지 못한 피고인이 2022년에만 4781명이나 됐다. 2017년(1709명)에 비해 세 배 가까이로 늘어난 것이다. 소송촉진법에는 형사 사건은 ‘1심 기소 후 6개월 내’에 선고해야 한다’(제21조), 민사소송법에는 1심 선고는 ‘마지막 재판 이후 1개월 내에 해야 한다’는 규정(제207조)이 있지만 다른 세상 얘기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법원은 “사건은 늘고 판사는 부족하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은 2017년 소위 ‘사법농단’ 사건의 발생 이후 급격히 악화됐다. 그해 9월 등장한 ‘김명수 코트(court)’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휩싸였던 양승태 코트의 사법부 운영 체계를 수술대에 올린 결과다. 한 지법 부장판사는 “문제만 도려냈어야 했는데 모든 걸 다 없애버렸다”며 “인사제도 전반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데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6년이 채 안되는 새 법원의 인사 체계와 업무 문화는 180도 달라졌다. 법원의 현 주소를 진단하기 위해 전·현직 법관 30명을 만났다.

채찍·당근 다 치운 자리에 채운 워라밸
 “사법행정이 재판의 지원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을 실천하겠다”(2017년 9월 26일 취임사)고 약속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기 내내 법관 인사에 대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의 권한을 덜어내고 위계서열적 조직 구조를 해체하는 일에 몰두했다.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폐지하고, 행정처 근무 판사 수를 최소화하고,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해 일선 법관들이 법원장 후보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법원장의 권한이던 사무분담(판사들이 어떤 재판을 담당할지 정하는 절차)을 각급 법원에 설치한 사무분담위원회의 몫으로 돌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고법원 도입을 통해 상고심 적체와 법관 인사 적체를 해소하려던 양승태 코트가 ‘강한 행정처’를 앞세워 주요 사건 재판 진행을 모니터하고 법원 내 비판 목소리를 잠재우려다 행정권 남용과 재판거래 의혹에 빠진 것에 대한 반편향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7년 9월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2017년 9월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갑자기 들어선 수평적 문화를 반기는 법관들도 있다. 한 지법 판사는 “법원장이나 수석부장은 마냥 무섭기만 한 존재였는데 눈치를 덜 보게 됐다”며 “젊은 판사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 지법 부장판사는 “예전과는 180도 달라졌다”며 “‘행정처에서 전화 온다’는 농담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수평적 문화는 재판 무한 지연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법관 발탁의 디딤돌이던 고등부장 승진을 위해 과로를 일삼던 문화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법관에게 당근과 채찍을 구사하던 법원장과 행정처의 권한이 사라지면서 이제 재판의 속도와 질은 판사 개인의 의지와 양심에 달린 문제가 됐다. 부장판사가 배석판사를 끼고 가르치는 도제식 문화 역시 옛 풍경이다. 한 지법 부장판사는 “우리 부장 승진시킨다는 마음으로 밤새 일하던 시절 이야기”라며 “그 때는 승진 포기하고 일을 안 하는 부장들이 무능해보였다”고 말했다.

요즘 시니어 판사들에게서 “배석들이 부장보다 기록을 꼼꼼하게 안 읽는 경우가 많다” “좀 가르쳐주려 해도 ‘왜 참견이냐’는 식이라 눈치가 보인다”는 말을 듣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예전에는 배석들과 일하는 합의부장이 인기였지만 요즘엔 단독 재판부에서 혼자 일하는 걸 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최근 화제가 된 ‘판결문 주3건 운동’, 즉 민사합의부 배석판사들이 주심 판결문을 한 주에 3건씩만 쓰기로 했다는 이야기는 사법부가 겪는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법원 내부에서는 “젊은 판사들이 ‘워라밸’만 챙긴다”는 주장과 “3건도 야근하면서 겨우 해낸다”는 반론이 강하게 충돌한다. ‘주3건 운동’의 발단은 2019년 수원지법이 TF를 꾸려 연구한 ‘업무적정선’(한 주에 3.8~5.2건)이었다. 당근과 채찍을 치운 빈 공간을 메울 새로운 시스템을 제시하는 걸 김 대법원장과 행정처가 주저하자 지방법원 차원에서 자구책을 낸 것이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은 판사를 성직자 같은 사람으로 보고 특별한 인사 시스템 없이도 법원이 잘 돌아갈 거라 생각한 것 같지만, 판사 개인의 사명감에 기댈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며 “이대로라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형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근 없는 채찍이라도…평정 실질화해야”
 다수 전·현직 법관들은 그렇다고 모든 것을 김명수 코트 이전으로 되돌리는 게 사법부 동맥경화의 해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고법 부장 승진제 부활이나 법원장 지명제 같은 관료제적 방식으로 회귀해 풀릴 문제는 아니다”라며 “10년 주기 재임용 심사를 엄격하게 하는 등 판사들에게 긴장감을 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고법 판사도 “현재는 근무평정 결과를 당사자에게도 잘 알려주지 않는다”며 “인사 평정 체계를 세부적·실질적으로 개편하고,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고 봤다.

 법조일원화 정책의 조정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사법시험 체제에선 ‘잘 뽑아서 가르친다’는 목표로 선배들이 후배 판사들을 길러왔지만 이젠 ‘다 자란 경력직’ 변호사들이 법복을 입고 있다. 경력 법조인들을 법관으로 선발하는 법조일원화 제도가 2013년부터 시행됐기 때문인데, 2025년부터는 법조경력 7년, 2029년 이후에는 10년 이상을 채워야 법관에 도전할 자격이 부여된다.

그러나 판사들은 “10년 경력을 쌓은 우수한 변호사들이 법원에 오겠느냐”고 반문한다. 외부 우수 인재에게 내보일 유인책이 마땅찮아 경력 법관 지원자는 감소 추세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변호사로 10년을 보냈다면 이미 훌륭하게 정착하고도 남을 연차인데, 급여가 크게 줄어드는 법원으로 오는 사람 중엔 ‘루저’나 ‘쉬러 오는 사람’이 여럿 끼어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고법판사는 “변호사로 오래 일했다고 판사에게 필요한 역량을 다 갖추는 건 아닌 만큼 경력 요건을 5년으로 유지하고 예비 판사 제도를 도입해 교육·평가 기간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식 시니어 판사 제도나 연금 제도 등도 ‘인재 유인책’으로 거론된다.

판사 뺀 사법행정도 부작용 속출
 행정처 근무가 ‘승진 코스’로 인정되는 불문율을 없애기 위해 추진한 행정처 비(非)법관화 대책도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양승태 코트 시절 30여 명에 달하던 행정처 파견 판사 수는 현재 10여명이다. 예전에는 임지 발령에 충분히 고려됐을 만한 사유들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다 지난해에는 황당한 인사 사고도 일어났다. 제주지법에서 근무하던 판사 2명이 광주고법 제주원외재판부로 발령이 나 1심에서 심리한 사건들을 2심에서 또 맡을 수도 있는 상황이 빚어지자 행정처는 부랴부랴 인사발령을 취소했다.

지난 3월 이틀 동안 법원을 마비시킨 전산시스템 먹통 사태도 비법관화에서 원인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일로 일반직 전산정보관리국장이 최근 경질됐다. 일반 직원들에게선 “판사라면 잘랐겠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지만 판사들 사이에선 “판사가 맡았으면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판사들을 뺀 행정처를 채울 일반 직원들을 대거 차출하면서 일선 재판을 지원할 인력이 부족해졌다”고 말했다. 행정처 근무 경력이 있는 한 변호사는 “우수한 자원이 어려운 재판과 중요한 행정 업무를 맡게 해야 한다는 원론적 기준이 무너지면서 법원 운영이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며 “법원 내부의 좌우 갈등과 세대 갈등이 첨예해져 수습의 실마리를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원·부산회생법원 개원에 따른 데이터 이관 및 신설 작업이 지연돼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5일까지 전국 법원 전산시스템이 멈췄다. 사건검색·공고·판결서 인터넷 열람 등 법원 홈페이지 서비스, 전자소송 홈페이지 서비스가 중단됐다. 사진 대법원 홈페이지 캡처
수원·부산회생법원 개원에 따른 데이터 이관 및 신설 작업이 지연돼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5일까지 전국 법원 전산시스템이 멈췄다. 사건검색·공고·판결서 인터넷 열람 등 법원 홈페이지 서비스, 전자소송 홈페이지 서비스가 중단됐다. 사진 대법원 홈페이지 캡처

5년째 맴도는 토론 주제가 있다…“호랑이에게 목 꼭 던져야 했었나”

2019년 2월1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무상비밀누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연합뉴스
2019년 2월1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무상비밀누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연합뉴스

2019년 2월 구속기소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1심 재판만 4년 넘게 받고 있다. 9일까지 267번의 공판 기일, 13번의 공판 준비 기일이 열려 현재까지 '280번 재판'이라는 최다 기록을 세웠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주요 피고인들의 재판이 걸려 있는 상태에서 사법 신뢰 회복을 위한 제대로 된 발걸음을 떼기 힘들다. 일부 판사들은 시계를 5년 전으로 돌려 본다. 2018년 6월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며 빗장을 풀어준 순간이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대법원 내부 조사 기구를 통해서도 충분히 많은 문제가 드러났던 상황”이라며 “키를 검찰에 쥐어 줄 이유가 없었다”고 짚었다. 수사가 시작되면서 법원 자체 징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까지 형사 재판의 공소사실이 됐고, 사건 마무리 시점이 지나치게 지연됐다는 취지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무리한 기소로 대다수 판사들에게 무죄가 선고됐지만, 그 결과(무죄)로 화살을 맞는 건 또 법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고법 판사는 “먼지털기식 수사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어 법원을 떠난 이들이 많다”며 “앞으로 법원을 짊어지고 갈 이들이 ‘사법농단 연루자’라는 오명을 써 안타깝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전·현직 법관은 66명, 그중 33명이 법복을 벗었다.

당초 문제를 제기했던 판사들은 “수사는 막을 수 없는 수순이었다”고 한다. 한 고법판사는 “수사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이들은 당시 상황과 맥락을 떠올리지 못한 채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지법부장판사도 “강제동원 재상고 사건 재판 거래 의혹까지 터져 나오니 믿을 수가 없었다”며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 역시 법원 수사는 신중하게 접근하던 상황”"이라며 “법원이 스스로 냉정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을 법관들은 원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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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북급 재판"…양승태 1심, 김명수 임기 내도 못 끝낼 판 [280번의 재판,잊혀진 정의]②
엇갈린 증언, 상반된 해석...물음표 커지는 ‘사법 농단=직권남용’ [280번의 재판,잊혀진 정의]③
오효정·문현경·김정연·이병준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엇갈린 증언, 상반된 해석...물음표 커지는 ‘사법 농단=직권남용’ [280번의 재판,잊혀진 정의]③
중앙일보
입력 2023.06.13 16:00

업데이트 2023.06.17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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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경 기자 
오효정 기자 
이병준 기자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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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번의 재판, 잊혀진 정의③

사법부는 중증 동맥경화를 앓고 있다. 재판 지연에 분통을 터뜨리는 당사자들의 모습은 법원의 익숙한 풍경이다. 특히 1심 마비 증세는 심각한 수준이다. 2017년 사법농단 의혹이 제기된 이후 이어진 대법원장 구속과 판사 14명 기소라는 초유의 사태를 딛고 등장한 김명수 코트가 대법원장에 집중된 행정권력을 해체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인사상 '당근과 채찍'을 포기하자 법관사회에 들어선 수평적 문화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박탈과 동전의 양면을 이뤘다. 그 사이 ‘무엇이 사법농단인가’를 가리기 위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1심 재판은 4년 넘는 기간 동안 280차례(14일 기준) 열렸다. 평가의 부재 속에 시행착오가 누적되면서 사법부는 표류 중이다. 3개월 뒤 대법원장이 바뀐다.


“좀 더 나은 재판 시스템과 사법 환경을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 설령 법원답지 못하다고 보이는 검토나 대처가 있었다 하더라도 행정조직 업무 성격을 감안하면 묵묵히 소임을 다하려 했던 분들을 탓할 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 사법행정이 얼마나 선비처럼 고고해야 하는지 다각도 조망까지 바라진 않겠습니다만 검찰이 보는 것처럼 모든 사법행정이 법관들을 옥죄고 통제하려는 어두운 책략으로 물들어 있었는지 재판을 통해 최소한이라도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2019년 5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첫 공판 날, 박 전 대법관이 한 말이다. 검찰은 300페이지가 넘은 공소장을 통해 양 대법원장 재임기간(2011년 9월~2017년 9월) 동안 이들이 주역인 22가지의 사건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이하 직권남용)’라는 죄목을 달아 기소했다. 모두 당시 사법부의 지상과제였던 상고법원 도입 추진 도정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4년 넘게 280번 재판을 했지만, 어떤 것이 ‘좀 더 나은 재판 시스템과 사법 환경을 만들어보려 한 일’인지 어떤 것이 ‘어두운 책략으로 물든 일’인지에 대한 판단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향후 상고심까지 몇 년이 더 걸릴지 알 수 없는 3인방과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이민걸 전 기획조정실장 등 주변인물들에 대한 재판은 법원조직법상 사법행정의 총괄자인 대법원장과 그 보좌기관인 법원행정처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의 경계를 정하는 작업이다. 그 과정과 결과는 이미 같은 혐의(직권남용)로 고발된 김명수 대법원장의 운명에도, 신구·좌우 갈등 속에서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해야 할 차기 대법원장의 행동 양식과 활동 범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사건은 크게 사법행정권의 핵심인 인사권이 부적절하게 행사됐다는 의혹과 행정처가 개별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 두 갈래로 나뉜다. 전자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후자는 ‘재판 개입 의혹’이라고 불렸던 사건들이다.

직무 수행인가 직권 남용인가…“블랙리스트”vs“업무 문서”


 재판과정에서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의 전선은 공무원으로서 정상적 직무 수행의 선을 넘었느냐를 둘러싸고 펼쳐져 왔다. 행정처가 ‘물의 야기 법관’에 대한 사실관계를 별도로 수집·검토해 이에 따른 인사조치를 내렸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행정처가 ‘물의 야기 법관’에 대한 인사조치를 별도로 검토한 것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이전부터 해오던 일이지만,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들어서 의견 표명과 정당한 비판까지 ‘물의’로 치부해 불이익을 줬다고 본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해 부적절한 글 언론 기재’ ‘코트넷에 법원조직법 개정에 대해 부적절한 게시글’ 등을 이유로 ‘1순위 희망 임지 배제’ ‘지방 전보’같은 불이익을 준 건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남용한 것이란 것이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은 “부당한 이유로 조치 검토한 적 없었고, 인사에 있어 고려할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검토했던 것으로 기억하며, 대상 선정은 전적으로 실무자의 판단에 의했다”며 “이 같은 인사업무는 어느 조직에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인사업무 처리방식”이라고 주장한다(지난 5월 3일 261차 공판에서 변호인의 말).

피고인들은 행정처 인사실을 거친 증인들을 상대로 “물의야기 법관 선발해 불이익한 조치를 하는 게 원칙적으로 인사권의 합리적인 행사 범위에 속한다는 취지냐(고 전 대법관 변호인)”등의 질문을 던져 “실무자로서 그렇게 이해하고 업무를 수행했다(노재호 전 인사심의관)”는 답을 구했다(2019년 11월 증인신문).

‘너무 나빠 무죄’인가 직권 남용인가…‘재판 개입’과 ‘월권’ 사이


 재판 거래 의혹 사건에선 법리적 쟁점이 유·무죄를 가를 가능성이 크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일본 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압수수색해 얻은 ‘전합 회부의 근거+다른 대법관 설득의 무기로 외교부/법무부 의견서 필요(법원 동향)’ ‘외교부 장관→BH(청와대) 실장→외교안보ㆍ민정수석→법원행정처→대법원’ 등의 문건을 기소의 핵심 증거로 삼았다.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이 재상고심 재판에 개입해 박근혜 청와대가 원하는 대로 일본 기업 편을 들어주거나 최소한 선고를 지연하는 대가로 상고법원 도입 등을 얻어내려 했다고 본다.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은 지난달 31일 265차 공판에서 “대법원장을 비롯해 누구라도 판사 재판에 개입할 직무 권한이 없다는 건 확립된 판례”라며 “검찰은 헌법상 국민주권 원리라거나 사법행정이라는 큰 틀에서 광범위하게 일반적 직무 권한이 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직권남용의 법리상 남용이 인정되려면 피고인의 행위가 법률 등에 의해 부여된 구체적인 직무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4월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은 임성근 전 판사가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 시절 3건의 재판에 대해 “부당하거나 부적절한 재판관여행위”를 했다고 판단했지만, “일반적 직무권한의 범위를 넘는 월권행위에 관하여는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법률 등에 의해 직무권한이 부여돼 있어야 그 남용도 가능하다는 그간의 판례를 그대로 적용한 결과였다.

이 같은 흐름을 바라보는 검찰의 시선은 곱지 않다. 수사에 참여했던 한 부장 검사는 “법원은 재판 개입에 대해선 유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법관의 재판은 독립적이어야 하고 침해될 수 없다는 건 일종의 도그마기 때문에 어떻게든 무죄를 선고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편향으로 내달린 김명수, 난제 떠안은 차기 대법원장


 사법농단 수사와 재판이 5년에 걸쳐 진행되는 동안 법원은 달라졌다. 젊은 판사들도 말할 수 있는 수평적 문화와 함께 법관들의 격무도 줄었지만 그 대가로 재난 수준의 재판 지연과 판결 품질 저하 논란을 떠안았다. 사법농단 사태를 딛고 출범한 김명수 코트는 대법원장과 행정처, 그리고 그 권한을 위임받는 각급 법원장의 기능과 권한을 축소·해체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양승태 코트 이전부터 문제였던 만성 상고심 적체, 법원 내 인사 적체 등의 과제는 손대지 못했다. 양승태 행정처를 비판했던 김 대법원장조차 직권남용 혐의로 수 차례 고발당한 상황이다. 탄핵 위기에 처한 판사의 사표를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라며 받아주지 않은 것과 대법관 추천과정에서 측근을 통해 특정 후보를 “눈여겨보실 만 합니다”라고 한 것이 직권남용인지도 앞으로 밝혀야 한다.

공은 3개월 후 등장할 차기 대법원장에게로 넘어간다. 한 고등법원 판사는 “누가 와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인사제도 등 사법행정권이 발휘돼야 하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법관 독립이라는 가치 사이에 존재하는 기준선을 잡기가 너무나 어려워졌다”고 했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예전같으면 법원행정처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시스템 자체가 무너져 너무 먼 이야기가 돼 버렸다”고 했다.

또 다른 지법 부장판사는 “사법농단 이후 사법부는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며 “수평적 문화에 발맞춰 법원행정처를 폐지하는 수준으로 판을 새로 깔든지, 아니면 효율적인 관료제 구조로 회귀하면서도 법관 독립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찾든지, 둘 중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반면 양승태 코트와 김명수 코트를 지나며 사법부가 정반합의 발전 방향성을 찾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의견도 있다. “법원이 수직, 수평 문화의 부작용을 모두 경험했기 때문에 합리적인 선을 잘 찾아갈 수 있게 됐다”거나 “‘재판거래’ 의혹 등 사법농단 사태 자체가 하나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제시해둔 셈”이라는 등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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