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시민 사살명령자를 '전두환'으로 밝혀내는 일이 왜 중요한가? 1996년 전두환 노태우 재판에서도 '전두환'을 1980년 5월21일 도청앞 사살 명령자로 규정하지 않고, 재판부는 전두환 무기징역과 노태우 22년 형을 언도했다.
- 419 혁명 이후 시위대 발포책임자들 최인규,곽영주가 사형된 사례가 있다. 전두환-노태우 범죄조직이 '사살명령'을 극구 감추려는 이유가 바로 '사형'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 1960년 419 혁명 당시, 4월 23일 경무대 발포로 21명 사망하고, 전국적으로는 185명이 죽고, 1500명 넘게 부상을 입었다. 당시 내무부장관 최인규는 사형, 현 jtbc 사장 홍정도의 할아버지, 홍석현의 아버지, 이건희의 장인이었던, 당시 법무장관 홍진기도 사형을 언도받았다.
-홍진기는 1960년 6월 14일 발포 명령 책임자로 '살인죄'로 구속되었다.
- 1961년 12월 21일 최인규와 곽영주(경무대 경찰서장)은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러나 홍진기는 1963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는데, 그 사유는 위궤양으로 생명 위독이었고, 풀려나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1986년까지 살았다. 홍진기는 재조선 일본인을 위해 만든 경성제대 법대를 졸업하고 판사를 역임한 바도 있다. 홍진기가 사형선고를 받고도 곧 풀려난 이유는 박정희의 후원 때문이었다.
- 당시 육사를 다니던 전두환과 노태우도 '최인규 곽영주 홍진기' 사형 판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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