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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죽음과 섹스 - 1990년대 중반 어둠의 터널 속에서

by 원시 2016. 10. 12.

죽음과 섹스


◎ 2002/4/10(수) 16:09

  

사실, 80년 이후, 그리고 89년 세계 정치권의 변동 이후

[현실 사회주의 붕괴와 계몽주의 사조에 대한 회의],

포스트 모더니즘이 서유럽이나 북아메리카에서 유행할 때를

같이 해서, 우리들 정신세계에 각인될 수 있는 개념들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죽음이고,또다른 하나는, 섹스입니다.


그냥, 상징적인 단어들이지만, 10대의 사춘기를 대학입시에,

20대 초반의 열정을 '정치'라는 한정된 주제에 몰입했던

우리들에게, 아마 '죽음'과 '섹스'라는 단어들은 30대에도

40대에도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주제일 것입니다.


(*물론 영악하게도, 죽음과 섹스 이 두 단어들을 잘 이용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그냥 죽음과 섹스는 문화적 코드가 아니라, 역시 심리-정치-경제-사회

적인 것이죠.)


제가 말한 이런 이야기들을 고려한다면, 신문지상에서 '386'을

다루는 방식이 얼마나 피상적인가, 얼마나 '정치' 그것도 좁은

정치에 갇혀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90년대, 2000년대

학번과의 단절을 정치적으로 기획하고 있다는 사실도.


죽음이 상징하는, 그 패배주의, 상처, 공허함, 돌아오지 않는 화살,

의미상실, 기억의 손실, 온갖 회의, 희끄무레함과 회색, 도피, 

관계의 단절, 열림과 폐색, 회전과 공전, 헛바퀴질, 의식과 무의식의 마지막 교차.



섹스가 상징하는, 그 아찔함, 고통, 또다른 허무, 갈증과 파괴, 부드러움,

나에게로 집중, 또다른 자아, 또다른 관계의 단절, 오감의 기억들, 편집,

훔쳐보기, 색다른 시도, 게이, 레스비언, 공개와 까발김, 허탈, 내 자동차,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것들은 영화에나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90년 이후의 우리들의, 아니

적어도 나의 자화상일 것입니다. 우리는 국제사회의 고립된 섬이었습니다.

서구나 다른 국가들이 겪은 80년 경험을, 소위 운동권은 10년 안에 다

겪어야 하는, 아찔한 회전기구 위에 있었던 것입니다. 


사회로 다시 사회로, 자기들이 부정했던 사회로 그런 사회로 다시

진입하는 과정, 아마 다들 아찔했으니까. 저만의 경험은 아닐테지요.

어쩌면 제 자신이 부끄러울 때도 있지요. 


그런데요, 이런 이야기들 하자면, 참 너무 개인적이라서 그럴까요.

사실 돈 버는 이야기, 그거 참 재미있는데,

돈하고 '자본'과는 다른 개념이잖아요. 

자기가 일해서 어떻게 돈을 버는지, 그런 이야기들,

어쩌면 하루 일과중에서 가장 많이 투하하는 이야기들이

빠지니까. 카페나 술집에 가면, 다 돈 버는 이야기, 여자 이야기,

남편 이야기 한다고 하는데......




(쓰러져 있는 레닌 동상위에 한 여인이 걸터앉아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


우리들 하는 일이 변했으면, 변한 대로, 사는 게, 자연의 이치인데,

이치대로 하는 것이 '진실성'을 수반하는 것인데.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의 너무 무겁고, 그 이유는, 정치를

너무 좁은 의미로 사용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해요.


운동은 아픔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움직이고 만드는 전차이지요.

그 아픔은 미래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알 때, 그 아픔이 발견되고요.


발견하는 것이 없을 때, 아픔을 공유할 것이 없을 때, 그 전차는

멈추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픔이 없을 때, 혁명가였던 사람들도, 운동권이었던 사람들도,

다 배부른 정치꾼으로, 아니면 고급 브랜드를 즐기는 어설픈

히피로 끝나는 것이 역사적 현실이었습니다.


죽음은 정신의 아픔이고,

섹스는 육체의 아픔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직도 젊기 때문이고, 생명이 끝이 다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겠지요.







 (오시마 나기사 Oshima Nagisa 감독 1976년. In the realm of the sen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