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책비교/노동

쿠팡 새벽 노동 체험기.한겨레 기자 보도.

by 원시 2025. 12. 18.

쿠팡의 동력
이재훈 기자

2025.12.18. 오전 10:28

[쿠팡 지옥도 체험기][만리재에서]
2025년 11월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에서 한겨레21 류석우 기자가 쿠팡 주간배송을 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이하 쿠팡)는 편리한 직장이다. 압도적 택배 물량을 확보하고 있어서 당장 벌이가 필요한 사람들이 언제나 일할 수 있다. 임금도 바로 지급된다. 숙련 기술이 필요한 일이 아니어서 진입장벽도 낮다. 24시간 배송을 하니 시간을 선택해 다른 일과 병행할 수도 있다. 안정된 일자리가 점점 줄고, 하루에 수백 명의 자영업자가 폐업하며, 불황으로 임금체불이 넘쳐나는 시대에 이 편리함은 노동자에게 큰 이점이 된다.

쿠팡은 좋은 직장이 아니다. 쿠팡이 배송을 위탁한 대리점과 계약하는 퀵플렉서가 택배 하나를 배송하고 받는 수수료는 2025년 평균 729.8원이다. 2024년보다 45.2원 줄었다. 반면 퀵플렉서가 배송하는 물량은 2024년 하루 평균 359건에서 2025년 388건으로 늘었다. 물가는 급등하는데 퀵플렉서의 노동 대가는 줄여놓았으니, 같은 돈을 벌려면 더 많은 물건을 더 빨리 배송해야 한다.

쿠팡 퀵플렉서의 82%가 휴가를 맘대로 내지 못한다. 2025년 11월10일 제주에서 새벽배송을 하다 사고로 숨진 오승용씨가 그랬다. 아버지 장례를 치른 직후 이틀 휴가를 요청했다가 거부당한 뒤 하루 쉬고 배송하다 일어난 사고였다. 오씨는 하루 평균 11시간30분, 주 평균 69시간을 일했다. 대리점 관리자에게 휴가를 요청했다가 “안 됩니다. 원하시는 대로 하시려면 다른 곳으로 이직하셔야 될 것 같네요”라는 답을 받고 곧바로 사과한 기록이 공개되기도 했다.

2025년 4월13일 고 오승용씨가 휴무를 요청했지만, 대리점 관리자는 “원하대로 하려면 다른 곳으로 이직하라”며 이를 거부했다. 유가족 제공


이런 상황이니 산업재해율이 높지 않을 수 없다. 이 회사의 2024년 산재율은 2.2%다. 국내 전체 산재율(0.67%)보다 3배 이상 높았다. 건설업(1.65%)과 운수업(1.21%) 등 산재 다발 업종보다도 높다. 2025년에만 벌써 8명의 쿠팡 배송·물류센터 노동자가 숨졌다.

그래도 쿠팡은 책임지지 않는다. 대리점끼리 무한경쟁을 시켜놓고 배송 실적이 미진한 대리점은 깨끗이 제거(클렌징)하면 된다. 신선식품 배송 마감 시간을 무조건 저녁 8시로 정해놓고 퀵플렉서가 이 시간을 지키지 않을 경우 역시 대리점을 제거하면 된다. 그러면 퀵플렉서의 일자리도 제거된다. 이런 구조에서 어느덧 배송노동자들은 분류와 반품 노동까지 떠맡고 있다. 주간배송에도 심야배송 못지않은 다회전 배송이 횡행하는 까닭이다. 게다가 한 배송지에 여러 개의 물건이 가면 ‘합포장’을 해서 이를 한 건으로 만들고, 단가도 한 건만 지급한다. ‘합포장’으로 생기는 고객 불만은 당연히 퀵플렉서의 몫이다.

쿠팡은 그러면서도 모든 배송노동자를 감시하고 실수를 문책하며 배송이 느린 노동자를 압박하고 빠른 노동자에게는 추가 업무를 할당하는 ‘고강도·초효율·실시간 통제 시스템’을 운용한다. 이곳이 노동자들에게 지옥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여전히 쿠팡의 편리함을 찾아 몰려드는 대체 노동자들이 언제든 심야배송이나 다회전 배송을 ‘선택’하고 자기 몸을 극한으로 몰아붙여서, 쿠팡은 거뜬할 수 있다. 쿠팡의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고 노동자의 안전과 권리를 요구하는 ‘시민’이 아니라 빠른 배송과 싼 가격을 중시하며 오늘도 앱을 여는 ‘소비자’가 있어서, 쿠팡은 건재할 수 있다. 그 거뜬함과 건재함이 지옥을 유지하는 동력이다.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10시간 쉬지 않고 계단 뛰었다… 죽음의 새벽배송 “쓰러지기 전까진 ‘그때’를 모른다”
쿠팡 심야-주간 14일 택배노동 일기
심야 3회전·마감 압박…더 빨리 더 많이 배송하게 하는 ‘심야배송’ 체념의 현장
류석우기자구독
등록 2025-12-05 15:07 수정 2025-12-18 10:26
2025년 11월13일 서울 송파구에서 심야배송을 하는 한겨레21 류석우 기자가 휴대전화로 배송지와 물품 등을 확인하며 뛰어가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2025년 11월13일 서울 송파구에서 심야배송을 하는 한겨레21 류석우 기자가 휴대전화로 배송지와 물품 등을 확인하며 뛰어가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왔다. 오른발목 안쪽 근육에서 전기에 감전된 듯 찌릿한 감각이 올라왔다. 곧 시큰거리는 통증이 시작됐다. ‘고작 5일 일했을 뿐인데 벌써…’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몸은 이미 망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땅에서 50㎝ 정도 높이에 있는 1t 트럭 조수석에서 차가 멈출 때마다 튀어나가듯 점프해 오른발로 바닥을 디디는 동작을 닷새 동안 수백 번 반복했기 때문이다. 몸은 더는 버틸 수 없을 때가 돼서야 통증이라는 신호를 준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쿠팡 심야배송 5일차, 발목이 고장 났다.

“진짜, 진짜 너무 힘든데 괜찮아요?”
2025년 11월10일부터 22일까지 기자는 쿠팡 택배노동 보조기사로 일했다. 11월10일 밤부터 16일 아침까지 6일 동안은 서울 송파구에서 심야배송을 하고, 하루 쉰 뒤 11월17일부터 22일까지 6일 동안은 강남구 에서 주간배송을 했다.

광고
현장에 직접 뛰어든 까닭은, 최근 쿠팡 등에서 심야노동을 하던 택배기사들이 잇따라 숨지는 사고가 벌어지면서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이 ‘0~5시 초심야 배송 제한’과 ‘주간 2교대제’를 제안한 뒤 ‘새벽배송 금지 논란’이 거세게 일었기 때문이다. 2025년 9월 더불어민주당과 국토교통부, 쿠팡 등 택배업계와 노조·시민단체가 함께 꾸린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도 심야배송 보편화로 인한 택배기사의 안전과 건강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이에 기자는 최소 일주일씩 심야배송과 주간배송을 직접 해보며 현장의 노동 실태를 파악하는 것과 동시에, 직업환경전문의인 김현주 이화여대목동병원 교수의 조언을 받아 24시간 활동혈압계와 수면을 기록하는 액티그래프, 체온을 측정하는 바이탈링 등을 착용하고 신체 변화와 수면 질 등의 건강상태를 수치로 확인해보기로 했다.

첫날인 11월10일 저녁 8시30분께, 장지동 동남권 물류단지 안에 있는 송파○캠프 앞에 도착해 쿠팡 심야배송 기사 김호준(43·가명)과 만났다. 쿠팡 배송 5년차라는 김호준은 깡마른 체격이었다. 검은색 운동화를 신고 트레이닝복 바지와 기능성 티셔츠를 입었는데, 티셔츠 위에 자세 교정 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다. 택배 물품을 들어 올리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자꾸 등이 굽는 것 같아 자세 교정 조끼를 입었다고 했다. 김호준은 지난 2년 동안 송파구 ○○○라우트(배송구역)에서 심야배송을 해온 퀵플렉서다. 퀵플렉서는 쿠팡 소속이 아니라 쿠팡이 배송 업무를 위탁한 대리점과 계약한다. 쿠팡이 제시하는 구역을 배정받아 쿠팡으로 접수된 택배 물품을 배송하는 노동자인데, 형식상으로는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개인사업자였다. 전국에 김호준과 같은 쿠팡 퀵플렉서가 2만여 명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쿠팡 배송 물량의 대부분을 맡는다. 김호준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기자에게 물었다. “진짜, 진짜 너무 힘든데 괜찮아요?”

짧은 인사를 나눈 뒤 김호준의 트럭을 타고 지하에 있는 송파○캠프로 내려갔다. 2만㎡ 정도 되는 캠프를 둘러보니, 10t 트럭이 주기적으로 택배 물품이 쌓인 롤테이너(바구니 모양의 운반차)를 캠프 중앙으로 운반하고 있었다. 그러면 쿠팡의 물류·배송 전문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직원 서너 명이 롤테이너를 트럭에서 땅으로 내린 뒤 지역별로 1차 분류를 해둔다. 이후 택배기사들이 자신의 트럭 앞으로 이 롤테이너를 끌고 가 배송 물품을 분류하는 시스템이다.

롤테이너 하나에 기사 2명이 배송하는 지역의 물품이 섞여 있다. 한 개의 라우트는 보통 A·B·C·D 구역으로 나뉘는데, 기사 2명이 구역을 2개씩 담당한다. 김호준이 능숙하게 자신이 맡은 C와 D 구역 물품을 분류했다. 기자도 옆에서 운송장에 C와 D가 적힌 물품을 빼냈다. 여러 번 반복한 이 작업에 1시간 정도 소요됐다. 첫 번째 롤테이너 분류 작업이 다 끝났을 때, A와 B 구역을 담당하는 택배기사가 출근했다. 그를 보는 김호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기자가 A·B 구역 택배기사에게 물품을 가져다주려고 하자, 김호준이 짜증 섞인 어조로 “우리가 그것까지 가져다줄 필요는 없다”며 제지했다. “늘 늦게 와요. 결국 일찍 오는 사람만 일을 더 하게 되잖아요. 감정이 쌓일 수밖에 없어요.”

광고
 

롤테이너(대형 끌개)에 가득 담긴 배송 예정 물품들. 같은 라우트(배송 지역)를 담당하는 택배기사들이 다시 이 물품을 분류해 각자의 트럭에 적재한다. 류석우 기자
롤테이너(대형 끌개)에 가득 담긴 배송 예정 물품들. 같은 라우트(배송 지역)를 담당하는 택배기사들이 다시 이 물품을 분류해 각자의 트럭에 적재한다. 류석우 기자


배송 구역 440개 건물 모두 ‘쿠팡’ 이용
김호준과 기자가 ‘타는’(기사들은 배송 구역을 맡는 걸 ‘탄다’고 표현했다) ○○○라우트는 캠프에서 약 5㎞ 거리에 있었다. 이 라우트는 100% 지번으로 구성돼 있다. 배송지가 빌라나 일반주택 등이어서 도로명주소로만 찾을 수 있는 곳을 ‘지번으로 구성’됐다고 표현한다. 아파트가 없다는 얘기다. 김호준은 세 군데 정도 동반 배송을 하며 요령을 일러줬다. 그 뒤부터는 쌩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기자도 홀로 배송에 나섰다. 배송 물품을 받아들고 필로티 구조의 빌라 공동현관을 향해 달렸다. 그러면서 눈을 부지런히 움직여 빌라에 쓰인 번지수와 배송 물품 번지수를 확인했다. 그 뒤론 공동현관문 비밀번호가 필요했다. 쿠팡 택배기사들이 이용하는 ‘쿠팡 플렉스’ 앱을 켜고 이 주소지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확인하는 순간, 몸이 균형을 잃고 기우뚱했다. 벽을 짚으려 했지만, 이미 두 손은 물품과 휴대전화로 여유가 없었다. 깽깽이걸음으로 겨우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은 뒤, 발을 건 장애물을 보니 빌라 입구 주차장 뒷바퀴 턱이었다. 골목길의 가로등 불빛은 빌라 안쪽까지 비추지 못했다. 빌라 센서등이 켜지는 속도는 두 짐을 들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뛰는 기자의 달리기 속도보다 느렸다.

광고
그러나 김호준의 속도는 고장 난 센서등도,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주차턱도 줄이지 못했다. 그는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죄다 외우고 있었다. 심지어 도어록이 고장 난 빌라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김호준은 정말 날다람쥐처럼 빌라와 주택을 여기저기 오갔다. 김호준이 타는 라우트에 건물은 440개 정도 됐다. 그는 모든 건물에 다 가봤다고 했다. 쿠팡을 이용하지 않는 가구는 있어도, 쿠팡 물품이 한 개도 배송되지 않는 건물은 없었다.

불행히도 이 구역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이 20~25%에 불과했다. 7층 건물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도 있었다. 계단을 연달아 몇 번 오르자, 최저 4도까지 떨어진 초겨울 날씨에도 금세 땀이 났다. 배송 시작 10분 만에 입고 있던 패딩을 벗었는데, 그래도 반팔 티셔츠와 기능성 운동복 바지는 곧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렇게 첫 배송 1회전이 진행된 2시간30분 동안, 기자는 44가구에 53개 물품을 배송했다. 김호준이 배송한 수량의 절반 정도였다. 1회전이란 캠프에서 한 번 물량을 적재해 배송을 완료하고, 다시 캠프로 복귀하기까지의 한 사이클을 일컫는다. 이날 기자는 김호준과 함께 3회전 배송으로 모두 280가구 432개 물품을 배송했다. 그렇게 일을 마치니 아침 6시30분이 됐다. 일하는 10시간 동안 기자는 편도 5분 걸리는 캠프 이동 시간에만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김호준은 단 1분도 쉬지 않았다.

 

2025년 11월13일 서울 송파구에서 류석우 기자가 한 다세대주택에서 회수한 프레시백을 들고나오고 있다. 이 주택의 공동현관문 외부 센서등은 반응이 늦어,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 문턱 등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2025년 11월13일 서울 송파구에서 류석우 기자가 한 다세대주택에서 회수한 프레시백을 들고나오고 있다. 이 주택의 공동현관문 외부 센서등은 반응이 늦어,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 문턱 등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배송 마감 미준수로 계약해지 압박 여전
쿠팡은 택배사 가운데 유일하게 다회전 배송을 한다. 심야는 3회전, 주간은 2회전이다. 하루를 여러 번 나눠 일정 시간까지 들어온 물품만 먼저 분류해 캠프로 보내는 시스템이다. 쿠팡 입장에선 더 빠르고 더 많이 배송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택배기사들의 노동강도는 급격히 늘어난다. 하루에 똑같은 집에 많게는 세 차례나 배송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1회전과 2회전 때는 싣고 나온 물품을 다 배송하지 못해도 시간에 맞춰 캠프로 복귀해야 한다. 그러나 3회전은 뒤가 없다. 아침 7시까지 1회전과 2회전에서 처리하지 못한 물량과 새로 받은 물량까지 모두 다 배송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피디디(PDD·Promised Delivery Date, 배송 마감 시간) 미준수로 대리점 평가가 낮아진다. 쿠팡은 PDD를 포함해 10개 항목을 두고 일정 기준에 미달하면 바로 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의 ‘클렌징 제도’를 운영해왔다. 이 제도가 노동강도를 급격히 높이면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국회가 나섰고, 쿠팡은 2024년부터 이 제도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송파○캠프 택배기사 이동 경로 
송파○캠프 택배기사 이동 경로 


현장에서는 제도의 이름만 사라졌을 뿐 여전히 마감 등에 대한 압박이 존재하고 있었다. 쿠팡은 에스엘에이(SLA·대리점 평가)라는 제도를 통해 대리점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한겨레21이 대리점 대표만 접속할 수 있는 앱 ‘어드민’에 접속해보니 상단화면에 ‘위탁 조정 가능성이 높은 라우트’ 개수가 표시됐다. 마감 시간을 어기거나 수행률(배정된 물량 대비 실제 배송 건수) 등이 낮으면 언제든 대리점을 갈아치울 수 있다는 경고다. 김호준 같은 택배기사들이 단 1분도 쉬지 못하는 까닭이다. 송관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이 쿠팡 퀵플렉서 679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뒤 2025년 10월 발표한 결과를 보면, 심야배송 택배기사의 평균 휴게시간은 22분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선 10분도 쉬기 어려워 보였다.

기자가 심야배송을 한 6일 동안 일하는 시간만 계산했을 때 하루 평균 2만 보를 걸은 것으로 측정됐다. 보통 배송지 바로 앞까지 트럭을 타고 갔기 때문에 걸음수의 대부분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측정된다. 배송지는 지하 2층부터 지상 7층까지 다양했는데, 가장 많이 달린 날에는 300층을 넘게 오르내렸다. 123층인 롯데월드타워를 두 번 왕복해도 남는 정도다. 그렇게 뛰어다니자 1년 정도 한 달에 한두 번 러닝할 때 신은 게 전부였던 운동화의 왼쪽 앞코와 엄지발가락 쪽이 6일 만에 뜯어졌다. 김호준은 한 달 반에 한 번씩 운동화를 바꾼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거리 곳곳엔 택배기사들의 운동화 가죽과 고무 부스러기가 떠돌고 있다.

김호준에게 “식사는 언제쯤 하느냐”고 물었다. “밥 먹을 시간 없죠. 배송 시간도 모자라는데요. 이렇게 안 쉬고 하다보면 금방 (아침) 7시 돼요.” 대신 트럭을 운전하면서 김호준은 바나나를 먹었다. 그는 1년에 바나나만 1천 개 정도 먹는다고 했다. “바나나가 열량이 높고 한번에 먹을 수 있으니까요. 이거라도 먹고 안 먹고 차이가 많이 나요. 3회전 가면 정말 힘이 없어서 (계단을) 못 올라가거든요.”

김호준의 트럭엔 물과 음료, 바나나가 담긴 작은 아이스박스가 있었다. 그 옆으로는 포도당 캔디와 초코파이, 당분이 높은 과자들이 어지러이 돌아다녔다. 김호준은 물을 마시지 않았다. 운전석 옆 음료거치대엔 늘 네모갑 커피우유가 꽂혀 있었다. 트럭에 음식을 보관하는 건 택배기사라면 특별하지 않은 일이다. 주간에 함께 일한 문지훈(46·가명)도 과자와 샌드위치, 빵이 가득 담긴 가방을 뒀다. 주간배송 기사 진선우(37·가명)의 트럭엔 잘못 배송해 본인이 값을 치른 김이 나뒹굴고 있었다.

 

쿠팡 심야배송 기사인 김호준씨의 트럭. 바나나와 커피, 이온음료와 각종 과자가 보인다. 김호준씨는 배송 중에 바나나를 주로 먹는다. 류석우 기자
쿠팡 심야배송 기사인 김호준씨의 트럭. 바나나와 커피, 이온음료와 각종 과자가 보인다. 김호준씨는 배송 중에 바나나를 주로 먹는다. 류석우 기자


프레시백 정리하다 팔꿈치 ‘위험’
찌이익, 찍. 퍽, 퍽.

1회전 배송을 마치고 캠프에 돌아오니 곳곳에서 비슷한 소리가 시간차를 두고 울렸다. 쿠팡이 신선식품 배송 서비스에 사용하는 다회용 보랭 가방인 프레시백의 찍찍이를 떼는 소리다. 기자도 장갑을 벗고 찍찍이를 떼어내다가 손가락 끝 피부가 벗겨졌다. 그만큼 찍찍이 접착력이 강했다. 김호준은 허리와 두 팔, 상체 전부를 활용해 순간적으로 힘을 주며 찍찍이를 뜯고 프레시백을 펼쳤다. 기자가 그 행동을 어색하게 따라하자 그가 한마디 했다. “이거 하다가 팔꿈치 다친 분들 많아요. 조심하세요.”

그렇게 프레시백 50개를 정리하는 데 30분이 걸렸다. 프레시백 안에는 아이스팩 외에 가정에서 버린 쓰레기도 많았다. 기사들은 상자 2개를 옆에 두고 아이스팩과 쓰레기를 나눠 담은 뒤, 쓰레기 상자는 수거장에 갖다버렸다. 주간배송 때는 이 작업에 더해 회수해온 반품에 스티커를 붙이고 분류하는 일까지 해야 한다. 프레시백 정리가 끝나면 다시 배송 물품을 분류해 싣는다.

“아이 씨, 너무하네.”

2회전 물량을 싣던 김호준이 휴대전화를 보다 소리쳤다. 3회전 예상 물량이 생각보다 많이 나온 것이다. “물량이 이렇게 나오면 안 돼요.”

1회전 예상 물량은 밤 9시께, 2회전은 밤 11시~11시30분께, 3회전은 새벽 1시~1시30분께 나온다. 이 예상 물량을 보고 대략 다음 회전의 물량 개수를 짐작해 동선과 시간을 배분한다. 말은 ‘예상 물량’이지만, 실제 물량은 늘 예상을 배신했다. 심야배송 기사들이 가장 꺼리는 건 마지막 3회전에 물량이 몰리는 상황이다. 아침 7시 마감을 맞추려면 정말 미친 듯이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물량 비율이 좋게 나왔어요. 5 대 3 대 2가 적당하거든요. (3회전에 하루의 절반 정도 물량이 배정된) 이런 날은 망한 날이에요.”

6일 동안 3회전에 배정된 물량은 최대 150개까지 차이가 났다. 가장 빨리 배송이 끝난 날은 새벽 4시40분, 가장 늦게 끝난 게 아침 6시30분이었다. 물량이 많으면 택배기사들의 급여도 늘어나지만, 대다수 기사는 3회전에 물량이 몰리는 걸 반기지 않았다. 유독 3회전에 물량이 몰린 날에는 택배기사들로부터 “하, 이거 맞아?” “쿠팡 ××들” 같은 한숨과 푸념, 욕설이 쏟아졌다. 그러나 택배기사들이 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그들은 쿠팡이 배정한 대로 무조건 배송을 마쳐야 했다. 그래야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해보니 쿠팡이 만든 거대한 압박 시스템이 달리기를 멈추는 기자를 밖으로 밀어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사들과 함께 달리고, 또 달려야 했던 이유다.

 

류석우 기자가 서울 장지동의 쿠팡 송파○캠프에서 회수한 프레시백을 정리하고 있다. 프레시백 안의 아이스팩과 쓰레기를 정리하는 일도 쿠팡 택배기사의 몫이다. 류석우 기자
류석우 기자가 서울 장지동의 쿠팡 송파○캠프에서 회수한 프레시백을 정리하고 있다. 프레시백 안의 아이스팩과 쓰레기를 정리하는 일도 쿠팡 택배기사의 몫이다. 류석우 기자


‘쉬지 않는 노동’ 먹고 점점 자라는 통증
6일 동안 하루 평균 약 380개 물량이 배정됐다. 기자는 하루 평균 129가구에 139개의 물품을 배송했다. 프레시백은 평균 30개 회수했다. 노동시간은 평균 9시간. 김호준은 평소 350~400개 물량을 홀로 소화한다. 김호준이 감당하는 물량은 심야배송 기사들 평균을 웃돈다. 앞서 언급한 송관철 연구위원의 실태조사에서 심야배송 기사들은 하루 평균 9.7시간 동안 일하며 351개 물품을 배송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간배송 기사들은 하루 평균 11.6시간 동안 일하며 399개 물품을 배송했다.

그동안 몸은 여러 차례 위험신호를 보냈다. 우선 발목 통증이 점차 심해졌다. 트럭에서 뛰어내리는 자세가 잘못됐나 싶어 김호준에게 통증 얘기를 꺼냈는데, 그때(5일차)야 알게됐다. 그는 왼쪽 무릎에 3개, 오른쪽 무릎에 1개의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등에도 통증이 왔다. 처음에는 결리더니 점점 더 통증 강도가 심해졌다. 결국 자세가 문제가 아니라, 쉬지 못하고 뛰어다니며 반복적으로 짐을 들고 내리는 노동 자체가 문제였다. 통증은 ‘쉬지 않는 활동’을 양분 삼아 점점 자랐다.

졸음운전 위기도 찾아왔다. 첫날 심야배송을 마친 뒤 땀이 식지도 않은 상태에서 퇴근하기 위해 차를 몰고 올림픽대로에 올랐는데, 도로에는 출근하는 차들로 가득했다. 혼잡한 도로위 천천히 움직이는 차 안에서 땀이 식고 근육이 풀어지면서 눈꺼풀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정신을 겨우 부여잡고 창문을 내린 뒤 퇴근길 40분 내내 소리 내어 노래를 불렀다. 에너지음료 두 캔도 연달아 들이켰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이번엔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 밥을 먹고 은행까지 다녀온 뒤에야 잠들 수 있었다. 오전 11시였다. 몸의 리듬이 모두 망가졌다. 이틀차부터는 차를 두고 출근해야 했다.

왜 퀵플레서 기사 혈압 모른 척할까
심야배송 사흘차에 접어들자, 새벽 3~4시 사이에 두통이 찾아왔다. 첫 이틀 동안은 머리가 멍한 느낌이었는데, 사흘차부터는 머리를 끈으로 조이는 듯한 통증이 생겼다. 그런 두통이 찾아오면 직전의 대화나 생각도 금방 잊는 경우가 많았다.

주간배송으로 넘어와 배송 10일차 정도가 되면서, 심각하게 배송일을 중단해야 하나 생각하게 됐다. 두통이 점점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헬멧이 조여오는 것처럼 온 머리에 두통이 심해졌다. 숨은 잘 쉬어지는데도 숨이 막히는 것처럼 답답했다. 주간에 함께 근무한 택배기사 문지훈은 그런 기자에게 소염진통제를 건넸다. 그걸 먹으니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그렇게 이틀을 더 버텼다.

정확한 두통의 원인은 알기 어렵지만, 24시간 혈압계로 측정한 데이터는 심야배송을 하는 동안 혈압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사람은 잠잘 때 보통 혈압이 10~20%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그러면서 깨어 있는 동안 열심히 일한 심혈관계가 긴장 상태를 풀고 회복된다. 그런데 기자가 심야배송 4일차와 주간배송 4일차에 24시간 혈압을 측정해봤더니, 주간배송을 하고 밤에 잠잘 때는 평균 17% 정도 혈압이 떨어졌는데, 심야배송을 하고 잠잘 때는 혈압이 13%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혈압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으면 심장과 혈관이 충분히 회복되지 못하면서 심근경색이나 심뇌혈관 합병증 위험이 높아진다. (자세한 측정 결과는 ‘심야배송 7일, 신체 변화 측정했더니… 수면·혈압 등 온갖 데이터에 경보음’ 기사 참조)

“이 새끼들 다 알면서 일부러 안 하는 거야.”

주간배송을 할 때 만난 옆 라우트 택배기사가 말했다. 그는 쿠팡에 직접 채용된 택배기사인 ‘쿠팡친구’(쿠친)로 일하다가 퀵플렉서로 전환한 기사다. 그는 심야노동이 혈압에 영향을 준다는 걸 알면서도 쿠팡이 퀵플렉서를 방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걔네가 혈압이 문제라는 걸 모르겠어? 쿠친 때는 회사에서 정기적으로 혈압을 체크해서 수치가 높으면 밤에 일 못하게 했다니까. 그렇게 다 하는데 뻔히 알면서 (퀵플렉서한테는) 안 하는 거잖아.”

실제 쿠팡CLS는 심야에 일하는 직원을 대상으로 특수건강진단을 하고 있다. 하지만 퀵플렉서는 쿠팡 소속 직원이 아니고 대리점 직원이기에 건강진단을 할 수 없다며 건강검진 비용 지원만 한다. 그러나 이 건강검진도 꺼리는 기사가 많다. 혹여나 쿠팡에서 건강 관련 정보를 수집해 재계약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불신 때문이다.

 

류석우 기자가 한 다세대주택에서 쿠팡 프레시백을 회수하고 있다. 프레시백은 배송 물품이 있는 곳에서 회수하면 건당 100원, 배송 물품 없이 단독으로 회수하면 건당 200원이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류석우 기자가 한 다세대주택에서 쿠팡 프레시백을 회수하고 있다. 프레시백은 배송 물품이 있는 곳에서 회수하면 건당 100원, 배송 물품 없이 단독으로 회수하면 건당 200원이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몸 상태는 쓰러질 때까지 몰라요”
택배기사들은 이렇게 위험한 심야배송을 왜 선택하는 걸까. 김호준은 “신경 쓸 게 하나도 없어서” 주간배송보다 심야배송을 선호한다고 했다. “주간은 진짜 헬이에요. 일단 주차를 못하고, 엘리베이터도 못 타요. 택배기사들이랑 마주치지 배달하는 분이랑 마주치지. 생각보다 고충이 많아요.”

또 다른 쿠팡 퀵플렉서 김진영(38·가명)은 “(엘리트 스포츠) 운동을 하는 딸과 청약받은 아파트에 들어가는 돈이 많아서 많이 벌어야 하기 때문에” 심야배송을 선호한다고 했다. “야간의 이점은 단가가 높다는 거예요. 어차피 하는 거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 하니까요. 딱 5년 예상하고 있어요. 그때까지만 쿠팡 택배가 호황을 유지해줬으면 좋겠어요.”

김정현(34·가명) 역시 “솔직히 단가 때문”이라고 했다. “주간배송이랑 물품 1개당 100~200원 차이 나요. 마감 시간을 늘리거나 프레시백 같은 업무를 개선하는 게 우선이지, 심야배송을 없애려고 하니까 문제죠.”

심야배송과 주간배송을 모두 거친 뒤 기사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심야배송의 장점은 높은 단가도 있지만 운전과 주차, 배송 등 전 과정에서 업무 스트레스도 적었다. 다만 그것은 기사들을 더 빨리 움직이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일하는 시간은 심야배송이 더 짧지만, 시간 대비 더 많은 물량을 배송하고 더 많이 움직이게 한다. 최대한의 효율로 노동강도를 극한으로 올려 최대한 많은 물량을 처리하는 것, 그것이 심야배송의 현실이다. 이 삶에 택배기사의 건강이나 개인의 사정이 들어갈 여백은 없다.

실제 심야배송을 하는 택배기사들은 모두 수면의 질이 나빴고, 건강 문제를 시한폭탄처럼 안고 있었다. 김호준은 “잠을 항상 한 번에 쭉 못 자고 꼭 중간에 한 번씩 깬다”고 했다. 김진영은 “최근 건강검진에서 혈압과 요산 수치가 높게 나왔다”고 했다. 김정현은 “체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한식 음식점을 운영하다 코로나19 때 폐업하고 2022년부터 심야배송을 하고 있는 박창수(44·가명) 역시 “잠은 4시간 정도만 자면 무조건 깨버려서 그게 많이 힘들다”며 “작년에 머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혈압이 높다고 나왔다. 뒷골이 땅기면서 욱신욱신 아팠다”고 말했다. 70㎏이었던 몸무게가 63㎏까지 빠진 박창수는 2024년 7월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현장 택배기사들은 사실상 체념 상태였다. “(심야노동에) 적응이란 건 없죠, 버틸 뿐. 그러다 어떤 일이 생기거나 계기가 있으면 (건강 악화가) 한번에 오겠죠.”(김호준) 주간배송 기사 진선우는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 (자기 몸 상태를) 잘 몰라요. 그러다 한순간에 오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쓰러질 때까지 모르는 거죠.”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쿠팡의 배송 시스템은 시나브로 기사들의 몸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이 시스템은 그래서 위험하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8484.html

 

<span>심야배송 7일, 신체 변화 측정했더니… 수면·혈압 등 온갖 데이터에 경보음</span>

쿠팡 심야-주간 14일 배송노동 일기 심야배송 6일차 수면효율 68%로 ‘잠의 질’ 낮아… 야간 혈압 하강 폭 작아 수면 중 심혈관계 회복도 ‘위험’

h21.hani.co.kr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8485.html

 

10시간 쉬지 않고 계단 뛰었다… 죽음의 새벽배송 “쓰러지기 전까진 ‘그때’를 모른다”

쿠팡 심야-주간 14일 택배노동 일기심야 3회전·마감 압박…더 빨리 더 많이 배송하게 하는 ‘심야배송’ 체념의 현장

h21.hani.co.kr

 

 

표지이야기 쿠팡 지옥도 체험기 1592호
심야배송 7일, 신체 변화 측정했더니… 수면·혈압 등 온갖 데이터에 경보음
쿠팡 심야-주간 14일 배송노동 일기

 


심야배송 6일차 수면효율 68%로 ‘잠의 질’ 낮아… 야간 혈압 하강 폭 작아 수면 중 심혈관계 회복도 ‘위험’
류석우기자구독

 

박준용기자구독

 


등록 2025-12-05 14:45 수정 2025-12-18 10:25

 


류석우 기자가 신체 변화 측정을 위해 착용한 기기들. 손가락엔 반지형 ‘바이탈링’을, 손목엔 시계형 ‘액티그래프’를 착용했다. 24시간 활동혈압계의 커프는 팔에 착용했고, 단말기는 크로스백처럼 끈을 달아 어깨에 걸쳤다. 이종근 선임기자

 


류석우 기자가 신체 변화 측정을 위해 착용한 기기들. 손가락엔 반지형 ‘바이탈링’을, 손목엔 시계형 ‘액티그래프’를 착용했다. 24시간 활동혈압계의 커프는 팔에 착용했고, 단말기는 크로스백처럼 끈을 달아 어깨에 걸쳤다. 이종근 선임기자


 

새벽배송을 위해 연속으로 심야에 일하는 것은 몸에 어떤 영향을 줄까?

한겨레21 류석우 기자는 쿠팡 심야배송 노동이 몸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2025년 11월10일부터 22일까지 2주 동안 쿠팡 택배기사와 동일한 일정으로 일했다. 첫 주 6일은 밤 9시에 출근해 이튿날 아침 6~7시까지 심야배송을 했고, 하루 쉰 뒤 아침 7시30분부터 저녁 7~8시까지 주간배송 6일을 연속으로 경험했다. 류 기자는 신체 변화 측정을 위해 24시간 활동혈압계, 수면을 기록하는 액티그래프, 피부온도를 측정하는 바이탈링을 착용했다. 택배기사들은 업무 특성상 활동혈압계를 착용할 수 없어 수면 및 피부온도만 측정했다. 모든 생체 신호는 직업환경전문의 김현주 이화여대목동병원 교수의 조언을 받아 분석했다.


주간노동 전환하자 수면 안정성 빠르게 회복
2주간의 데이터가 보여준 심야노동과 주간노동의 수면 양상 차이는 컸다. 가장 먼저 드러난 차이는 수면의 질이었다. 수면 효율은 ‘누워 있던 시간 중 실제 잠든 비율’을 뜻하는데, 일반적으로 85% 이상이면 양호한 수면으로 본다. 기자의 심야배송 초반에 수면 효율은 80~84%로 시작했지만 4일차부터 74%, 5일차 72%, 6일차엔 68%까지 떨어졌다.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생활이 반복되자 수면의 연속성과 깊이가 눈에 띄게 무너졌다. 주간배송으로 전환하자 상황은 빠르게 달라졌다. 첫날 80%였던 수면 효율은 이틀째에 바로 87%로 회복됐고, 이후 하루(72%)를 제외하고 모두 안정적인 80%대를 유지했다.

수면 중 깨어 있는(뒤척인) 시간(WASO·Wake After Sleep Onset)과 뒤척인 횟수는 그 차이를 더 극명하게 보여준다. 심야배송 첫 6일 동안 기자의 WASO는 평균 90분, 수면 중 뒤척임 횟수는 18회였다. 잠이 들어도 1시간30분 가까이 뒤척이거나 깨어 있었다는 뜻이다. 반면 주간배송으로 전환한 뒤에는 WASO가 평균 55분, 뒤척임 횟수가 11회로 크게 줄었다. 심야노동이 수면의 연속성을 심하게 깨뜨리는데, 주간노동으로 전환만 해도 수면 안정성이 빠르게 회복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심야배송은 혈관과 심장에도 영향을 줬다. 정상적인 수면 중에는 낮보다 10~20% 혈압이 떨어지는 ‘야간 혈압 하강(dipping)’ 현상이 나타난다. 이 하강폭이 작으면 심혈관계가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것으로 본다. 기자가 심야배송을 시작하고 4~5일차(11월13~14일, 48시간 기준)의 수면 중 수축기 혈압은 약 13.4%, 평균 동맥압(동맥에서 순환하는 피의 압력)은 17.6% 하강했다. 이에 견줘 주간배송 4~5일차(11월20~21일, 48시간 기준)는 수면 중 수축기 혈압이 17.2%, 평균 동맥압이 19.9% 내려갔다. 김 교수는 “심야배송 뒤 수면에서 나타난 13%대 혈압 하강은 정상 범위 안이지만, 같은 사람이 주간배송을 할 때보다 회복이 덜 되는 상태로 해석할 수 있다”며 “주간배송 시기 수면 중 혈압 하강은 (심야배송 때보다) 전반적으로 더 뚜렷하고 깊어, 심야의 생리적 ‘휴식 모드’가 더 강하게 작동했다”고 설명했다. 몸은 자고 있어도, 혈관과 심장은 충분히 쉬지 못한다는 의미다.

 


2025년 11월13일 서울 송파구에서 류석우 기자가 배송 중 24시간 활동혈압계로 혈압을 측정하고 있다. 혈압은 30분마다 기기에서 신호가 울리면 그 자리에서 멈춰 1분 정도 안정을 취한 뒤 측정했다. 이종근 선임기자
2025년 11월13일 서울 송파구에서 류석우 기자가 배송 중 24시간 활동혈압계로 혈압을 측정하고 있다. 혈압은 30분마다 기기에서 신호가 울리면 그 자리에서 멈춰 1분 정도 안정을 취한 뒤 측정했다. 이종근 선임기자


 

류석우 기자가 신체 변화 측정을 위해 착용한 24시간 활동혈압계. 커프는 팔에 착용했고, 단말기는 크로스백처럼 끈을 달아 어깨에 걸쳤다. 이종근 선임기자
류석우 기자가 신체 변화 측정을 위해 착용한 24시간 활동혈압계. 커프는 팔에 착용했고, 단말기는 크로스백처럼 끈을 달아 어깨에 걸쳤다. 이종근 선임기자


피부온도가 말해준 ‘낮과 밤의 충돌’
우리 몸은 낮과 밤의 주기에 맞춰 일정한 리듬을 유지한다. 심부온도(인체 내부의 중심 온도)는 보통 새벽 3~5시에 가장 낮고, 늦은 오후에 가장 높다. 반대로 손목·손·발 등 말단 부위의 피부온도는 밤에 높고 낮에 낮아지는 등 심부온도와 반대로 움직인다. 바이탈링으로 측정된 피부온도는 이러한 생체리듬 변화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기자의 심야배송 5일차 피부온도의 최고점은 새벽이 아니라 오후 1시18분이었다. 김 교수는 “심야 활동과 수면 부족으로 생체시계가 뒤틀릴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형태”라고 설명했다. 고정 주간배송을 하는 쿠팡 기사 문지훈(46·가명)씨는 피부온도의 최고점이 자정~새벽 1시로 관찰돼, 기준 시점(새벽 3~5시)과 2시간 정도 차이 날 뿐 리듬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피부온도의 ‘진폭’도 리듬 변화에 힌트를 준다. 심야배송 기사 김호준(43·가명)씨의 경우 하루 평균 피부온도와 최고온도의 차이가 6.48℃로 크게 벌어진 반면, 문지훈씨는 2.02℃였다. 기자 역시 심야배송을 할 땐 2.44℃였는데, 주간배송 시기엔 1.69℃로 줄어들었다. 이는 심야노동이 체온 리듬을 흔들고, 주간노동이 리듬을 다시 좁혀준다는 흐름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이 ‘밤에 일하면 언젠가는 ‘밤형 리듬’으로 완전히 적응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결과는 정반대의 사실을 말한다. 김 교수는 “심야노동자는 대부분 낮에 활동하도록 짜여 있는 생체시계를 유지한 채 밤에 일하는 미적응 상태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외국의 연구도 장기간 심야노동자 중 완전히 ‘밤형’으로 적응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보고한다.

김 교수는 기자가 2주간 심야·주간 택배기사로 일하며 기록한 생체신호는 한 가지를 명확히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심야노동은 수면을 흔들고, 회복을 방해하며, 생체시계를 뒤틀어 장기적인 건강위험을 높인다. 반대로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기본 리듬만 회복해도 몸은 놀랄 정도로 빠르게 안정된다. 즉, ‘피곤하다’는 느낌 뒤에는 실제로 수면·혈압·체온·신경계가 모두 뒤틀린 몸의 기록이 있었던 셈이다.

 

 



“시간 압박 있는 심야노동, 역학조사 반드시 필요”
생체리듬의 혼란은 단순히 피곤함이나 집중력 저하에서 끝나지 않는다. 김 교수는 “수면 박탈과 리듬 교란이 반복되면 교감신경 항진, 만성염증 반응, 혈압·혈당 조절의 불안정이 겹치면서 심혈관질환과 대사질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 역시 심야 교대근무를 ‘인체 발암 가능 요인’(Group 2A)으로 분류한다. 장시간의 심야노동이 일부 암과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축적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겨레21의 실험 결과는 쿠팡의 심야배송 기사의 건강 악화가 이미 상당 부분 누적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번 실험에 도움을 준 전문가들은 심야배송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더 위험하다며, 장기적 관점에서의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전통 제조업과 달리 (쿠팡 심야배송은) 누적 효과 위험이 있기 때문에 곧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위험을 충분히 감지하지 못한 상태”라며 “정보가 충분하지 않고 독립계약자 신분이기 때문에 고위험 노동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개개인이 배송 작업으로 암에 걸렸다고 입증하기는 대단히 힘들지만, 경향성을 반드시 띨 것”이라며 “시간 압박이 있는 ‘의존형 노동’을 심야에 할 경우, 제대로 된 조사가 나오면 문제가 있을 거라고 본다. 역학조사가 반드시 필요하고, 원인 제공자(쿠팡)도 사전에 예방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8485.html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