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깨진 창문 효과"의 교훈은 한국 속담, '호미(적은 도구)로 막을 것을 가래(큰 도구)로 막는다'는 것과 동일하다.이 속담 뜻은, 적은 문제를 초기에 해결하지 못해서, 나중에 일이 더 커져 더 큰 비용과 에너지가 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도시범죄학에서 나온 "깨진 창문 효과"도 위 속담과 동일한 교훈을 준다.
1982년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의 논문에서, "깨진 창문 효과"의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1) 한 동네 건물에 유리창이 하나 깨졌는데, 그걸 고치지 않고 방치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막지 않았다]
2)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이 건물의 유리창들을 하나 둘 점점 더 많이 깨뜨린다, 혹은 깨진다.
내가 유리창을 깨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구나라는 '신호'를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이고, 돈을 들여 유리창을 수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가 동네에 퍼지게 되었다.
3) 마침내 건물 유리창 대부분이 박살나 있게 된다. 사람들이 그냥 재미로 혹은 남들이 깨니까 나도 한번씩 건물 유리창을 깨부수게 되었다.
2. "깨진 창문"과 한국의 위성정당
1) 정치적 교훈. "깨진 하나의 유리창"의 나비 효과. 2020년 4월 총선에 적용된 선거규칙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그러나 민주당,국민의힘(자유한국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준연동형'을 무효화시켜버렸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한 개의 유리창을 깨뜨렸다. 그 이후 '아무도 깨진 창문을 고치지 않았다."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깨진 유리창을 복구하겠다고, 즉 위성정당을 창당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국회에서 과반수가 넘어도 이를 위성정당금지법을 제정하지 않았다.
2) 2024년 4월 총선 국민의힘 뿐만 아니라, 민주당, 이의 위성정당들 조국혁신당, 사회민주당,기본소득당,진보당이 동네 건물 유리창을 더 깨뜨리기 시작했다. '준연동형 선거법' 을 돌보지 않고,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3) 어느새 한국 민주주의와 총선 선거법은 1987년 6공화국 시절보다 더 퇴락해 너덜너덜해졌다. 이 당 저 당이 그냥 국회의원직 1명당 4년 40억을 버는 재미로, 혹은 국민의힘이 위반하니까 다들 규칙위반을 해,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그렇게 국민의힘, 민주당과 위성정당들이 1987년 체제 민주주의를 '탁' 하고 치니, '억'하고 죽어버렸다. 1970~80년에는 '실존'이 '본질' 보다 중요하고, 21세기에는 '국회의원직 연봉'이 '민주주의 규칙과 정신'보다 더 값어치있게 되었다.

3. 1987년 6월 항쟁과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기억과 존중도 사라졌다.
버려진 차량 위에서 노는 아이들 (위 사진 설명) 아무도 돌보지 않은 차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아무도 고치지 않은 '위성정당'은 87년 민주주의 체제의 부품들을 노략질 해가는 정당들의 현금인출기가 되었다. 저 아이들이 딱히 범죄의식을 가져서 차를 짓밟고 노는 것은 아니고, 자기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규범의 일탈인지 아닌지도 구분을 못한다. '누군가가 이미 때려부순 빈 차가 잘 차려져 있었고' '우리는 그 빈차를 장난감으로 놀이터로 간주했을 뿐이다'
위성정당을 만들고 가담했던 정당들은 1987년 6월 항쟁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 바가 아니다. 6공화국 헌법과 그 이후에 개정된 '비례대표제도'는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은 박종철과 6월의 이한열의 투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국민의힘이 먼저 위성정당을 만들어 이 어렵게 만든 민주주의 부품을 떼어다가 팔아 먹으니, 민주당도 그 위성정당들도 '우리만 손해다' 앞다퉈 부품을 떼어다가 내다 팔았다.
위성정당을 만든 자들은 고도의 전략가, 김대중-김종필 정치 9단도 따라올 수 없는 '개리먼더링' 고안자들인 셈이다. 그러나 역사의 장강에서는 그들은 저 상처받은 차량 위에서 뛰어노는 철부지 어린이들 뿐이다.
4. (보충) 그런데 '위성정당'이 왜 잘못인가? 한국 총선 제도는 불완전하지만, 뉴질랜드와 독일의 비례대표제도처럼 '지역-비례 혼합 제도'이다. 이 제도 하에서는 한 정당이 지역구와 비례에 모두 후보를 등록하고, 투표용지에 '하나'의 정당 이름만 등록해야 한다.
조국혁신당도 위성정당의 변종이다.왜냐하면 조국혁신당은 지역구에 후보를 의도적으로 불출마시키고, 비례만 후보를 등록시켜, 유권자들에게 '지역은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이라는 선거전술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호미가 아니라, 이제는 '가래'를 써야 할 때이다.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의 논문 "깨진 창문(유리창)"에 나온 이야기의 맥락.
배경 : 미국 동네 안전 문제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경찰의 순찰이나 해당 주민들과의 협조 체제가 범죄율을 줄이는데 효과적이다. 이런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1982년 윌슨과 켈링의 논문이 나오게 됨. 제임스 윌슨이나 조지 켈링이 정치적으로 좌파나 진보적인 관점에서 쓴 글이 아님.
지역주민들의 두려움(공포)의 진짜 원인들이 무엇이냐?
경찰들이 지역순찰을 하는 것이 지역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는가?
이에 대한 회의론자들이 있다. 어느정도 맞다.
그러나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는 외부 관찰자들이,대도시에 퍼져있는 공포심 중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이 ‘실제’ 범죄의 공포로부터 비롯된 것인가를 안다고 가정해서는 안되고, 얼마나 많은 부분이 거리가 무질서하다는 것에 대한 인지, 즉 불쾌감과 걱정을 유발하는 대면이나 조우의 원천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발생하는 지를 섣불리 안다고 가정해서는 안된다.
뉴악(Newark)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 행동과 인터뷰 내용들을 평가해보자면, 명백히 공공 질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그들이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경찰이 도와줄 때, 그들은 안도감을 느낀다.
두번째, 지역공동체 차원에서, 무질서와 범죄 이 둘은 뗄래야 뗄 수 없이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데, 연속적인 전개과정 형식 [발달 순서]을 띠고 있다. 사회 심리학자들과 경찰들이 다음과 같은 것을 주로 동의한다. 만약 한 건물에 유리창 한 개가 깨져 있고, 수리가 되지 않은 채 방치된다면, 나머지 다른 유리창들도 곧 깨질 것이다. 이것은 좋은 동네도 가난한 동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창문 깨기’ 행태가 반드시 대규모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지역에는 창문을 깨부수려고 작정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기도 하고, 반면 다른 지역에는 창문을 아끼는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의 깨진 창문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따라서 더 많은 창문을 깨도 전혀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신호를 뜻하게 된다. (창문깨기는 항상 재밌는 일이 되었다)
1969년 스탠포드 대학 심리학자, 필립 짐바도가 ‘깨진 창문 이론’을 검증하는 어떤 실험들을 했다. 짐바도가 번호판 없는 자동차를 덮개가 열린 채로 두 동네에 방치했다. 한 대는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 거리, 똑 같은 차량 다른 한 대는 브롱스 거리에 방치했다.
1) 브롱스 동네에 버려진 차.
10분 안에 “노략질”이 벌어졌다. 맨 먼저 한 가족 (엄마, 아빠, 아들)이 버려진 차의 라디에이터와 배터리를 훔쳐갔다. 그 다음 24 시간 안에 조금이라도 쓸모있는 차 부품들은 싹 다 사라졌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차를 때려부수기 시작했다. 차 유리창을 깨부수고, 부품들을 뜯어내고, 좌석의 천,패딩,용수철도 떼어내었다. 동네 아이들은 차를 놀이터로 이용했다. 성인 ‘노략질자들’은 옷도 잘 차려입고, 겉보기에는 단정한 백인들이었다.
2) 팔로 알토 동네에 버려진 차.
팔로 알토에 세워 둔 차는 1주일 이상 고스란히 그대로 있었다. 그러자 필립 짐바도가 슬레지 망치로 차 일부를 깨부셔버렸다. 그러자 곧바로 지나가던 사람들이 합세를 했고, 몇 시간 안에 그 차를 뒤집어 놓고 완전히 부셔버렸다. 이 동네에서도 그 노략질을 행한 자들도 대부분 존경받을만한 백인들이었다.
‘돌보지 않는’ 재산은 사람들의 노략질 혹은 재미를 위한 만만한 먹이감이 된다. 여기에 가담한 사람들을 보면, 평소에는 그런 짓을 할 꿈도 꾸지 않을 법한 사람들, 스스로도 법을 잘 준수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브롱스 동네의 특성, 즉 동네의 익명성, 그리고 차량이 방치되거나, 물건 절도와 파손이 빈번했고,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라는 과거 경험 때문에, ‘노략질(반달리즘)’은 팔로 알토 동네보다 훨씬 더 빨리 진행되었다. 이에 비해 팔로 알토 동네 사람들은 남의 사유재산은 보호되어야 하고, 장난질은 비싼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러나 상호 존중의식과 시민의 의무감이라는 공동체의 장벽들이 낮아지는 순간 , 노략질(반달리즘)은 어느 곳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신호로 간주되는 행동들이 그 공동체의 장벽들을 허무는 것이다.
(번역 nj 원시)
호미.

가래. (농기구)

A determined skeptic might acknowledge that a skilled foot-patrol officer can maintain order but still insist that this sort of "order" has little to do with the real sources of community fear -- that is, with violent crime. To a degree, that is true. But two things must be borne in mind.
First, outside observers should not assume that they know how much of the anxiety now endemic in many big-city neighborhoods stems from a fear of "real" crime and how much from a sense that the street is disorderly, a source of distasteful worrisome encounters. The people of Newark, to judge from their behavior and their remarks to interviewers, apparently assign a high value to public order, and feel relieved and reassured when the police help them maintain that order.
Second, at the community level, disorder and crime are usually inextricably linked, in a kind of
developmental sequence. Social psychologists and police officers tend to agree that if a window in a building is broken and is left unrepaired, all the rest of the windows will soon be broken. This is as true in nice neighborhoods as in run-down ones. Window-breaking does not necessarily occur on a large scale because some areas are inhabited by determined window-breakers whereas others are populated by window-lovers; rather, one unrepaired broken window is a signal that no one cares, and so breaking more windows costs nothing. (It has always been fun.)
Philip Zimbardo, a Stanford psychologist, reported in 1969 on some experiments testing the
broken-window theory.
He arranged to have an automobile without license plates parked with its hood up on a street in the Bronx and a comparable automobile on a street in Palo Alto, California.
The car in the Bronx was attacked by "vandals" within ten minutes of its "abandonment." The first to arrive were a family -- father, mother, and young son -- who removed the radiator and battery. Within twenty-four hours, virtually everything of value had been removed. Then random destruction began -- windows were smashed, parts torn off, upholstery ripped. Children began to use the car as a playground. Most of the adult "vandals" were well dressed, apparently clean-cut whites.
The car in Palo Alto sat untouched for more than a week. Then Zimbardo smashed part of it with a sledgehammer. Soon, passersby were joining in. Within a few hours, the car had been turned upside down and utterly destroyed. Again, the 'vandals" appeared to be primarily respectable whites.
Untended property becomes fair game for people out for fun or plunder, and even for people who ordinarily would not dream of doing such things and who probably consider themselves law-abiding.
Because of the nature of community life in the Bronx -- its anonymity, the frequency with which cars are abandoned and things are stolen or broken, the past experience of "no one caring" -- vandalism begins much more quickly than it does in staid Palo Alto, where people have come to believe that private possessions are cared for, and that mischievous behavior is costly.
But vandalism can occur anywhere once communal barriers -- the sense of mutual regard and the obligations of civility -- are lowered by actions that seem to signal that "no one cares."
The police and neighborhood safety
BROKEN WINDOWS,by JAMES Q. WILSON AND GEORGE L. KELLING
James Q. Wilson is Shattuck Professor of Government at Harvard and author of
Thinking About Crime.
George L. Kelling, formerly director of the evaluation
field staff of the Police foundation, is currently a research fellow at the John F
Kennedy School of Government Harv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