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재영과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보수체제의 미끼가 된 노의원
왜 회고와 정리가 필요한가?
노회찬 (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이 국회의원이 된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현 한국 보수 정치 체제 ‘여의도 의회정치’가 던져준 미끼였다. 앞으로는? 아무도 모른다. 의회정치에 대한 회의적 발언인가? 아니, 그 반대이다. 노회찬 의원에 대한 비토인가? 아니다. 초점은 민주노동당이 그나마 진보정당사에서 유의미한 점수를 올리던 시절, 그 때는 바로 노회찬 사무총장 임기 기간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미국 자본주의 경영학 원칙들 중에 하나가 ‘사업 실패, 부도’도 경력에 속한다는 것이다. 실패의 원인들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고찰하지 않으면 제 2, 제 3, 제 4의 거품은 또 발생할 것이고, 산도 칼로 벤다던 항우의 호연지기는 허경영의 마술로 끝날 것이다.
2011년 9월 4일 진보신당 당대회 이후, 당 안팎에 묵시적으로 명시적으로 퍼진 ‘의회 정치’에 대한 반감, 대중적 정치가들에 대한 불신, 정치조직(정파)와 정당 자체에 대한 냉소주의 등은 극복되어야 한다.
좌파정당은 보수당보다 더 보수적으로 건설되어야 한다. 한국은 3-400만명이 죽고 다치는 한국전쟁(이념전쟁과 국제전쟁 동시 수행)을 경험한 나라이고, 유럽과 달리 이웃 나라 ‘좌파 정당’과 ‘좌파 정부’가 거의 없는 고립된 정치적 지형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단언적인 주장만 우선 제시한다)
그런데 지난 13년간 당들이 너무 많았고, 자주 바뀌었다. 대중적 진보정당으로서 ‘자격’이 없거나 1만년 민주당 꽁무니당 하겠다는 징조이다. 2% 의회해산 악법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13년의 실험과 실천이 왜 실패인가? 당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2004년 민노당 10석, 2007년 대선, 2008년 촛불정국, 2012년 총선과 대선 정국, 주어진 정치적 기회들을 다 날려버렸다. 야구로 치면 잔루 공화국이었다.
1. 개인적 결론이자 교훈이다. 창당 초기, 그리고 좌파가 대중적 진보정당으로서 한국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당 사무총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무총장이 ‘의원’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그런 단순 질문이 아니다. 하지만 2004년 4월 비례대표 8번으로 당선된, 노회찬 사무총장의 길은, 장기적인 당 성장 발전에서 볼 때, 오류였다고 본다. 적어도 미래 안목이 있는 정파나 연구소가 있었다면, 노회찬 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이 그 직위에서 보다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2. 사무총장의 역할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중요한 자리인가?
모든 조직에서 중요한 것은 ‘인사제도’이다. 서구 유럽과 미국-캐나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정치학 교과서 중에, 정치철학과 정치이론사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지도자론’이다. 이것은 공자, 맹자의 사상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19세기, 20세기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정당에서 내세운 ‘정당 이론’에서도 중요한 주제를 차지했다.
정치 정당 이념을 실천하고 수정하고 변경시키고 확대시키고 심화시킬 사람들을 찾아 내는, 속칭 ‘인재 사냥꾼 (헌터)’ 역할을 하는 게 사무총장이 할 일이다.
13년간 한국 진보정당, 좌파정당은 발전하지 못하고 퇴행적으로 후퇴했다. 정책은 ‘재분배 세금’ 정책 하나 문제제기해 놓은 다음, 그 다음 수많은 다른 주제들을 심화발전시키지 못했다. 민주당/새누리당과 차별되는 ‘당내 민주주의’와 ‘진성당원제’를 실천하지 못했다. 한국 자본주의를 극복하자는 당이, 연구소를 만들어서 한국/세계 자본주의 동학과 계급분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전혀 연구하지 않았다. 새로운 대안이 나올리 만무하다.
알면도 당하는 것이다. 뻔히 쳐다보면서도, 뭐든지 다 알 것 같으면서도 삼진당하는 것이다.
당에서 사무총장의 역할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자기 계파, 자기 선후배들 챙겨주고, 공정성과 객관성을 상실한 인사제도를 당에서 실천하게 되어 있다. 지난 13년간, 10만 명의 당원들을 모아놓고, 마치 1000명 모아놓은 당나라 군대로 만들어놓은 정치적 참변이 내부적으로 발생했다.
3. 역사에서 가정, 소용없다. 다 알면서도 미래의 과제를 위해서 다시 써본다.
(고) 이재영과 노회찬 전 사무총장이 한국사회 전체 노동운동 전체 좌파와 진보 대변하지 않는다. 이것도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지난 13년, 그 이전의 역사를 고려해 본다면, 상당히 비중있는 투수-포수 한 조였다.
2012년 그들은 헤어졌고, 이재영이 트레이드 되었는지, 노회찬이 트레이드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류현진 투수처럼 추신수처럼 10배, 100배 더 많은 현금을 받고 트레이드 되었다면 다 박수칠 일이지만, 우승 한번 못한 채 트레이드되었던 게 역사적 사실이다.
2003년 11월, 12월, 노회찬 전 사무총장이 비례대표 출마한다는 소식에, 반대 의사를 표명한 적이 있다. 어느 누군가는 ‘당 조직’의 미래를 위해서 기초공사를 다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냥 ‘당권’으로 모든 문제를 환원시켜서 노회찬 전 사무총장이 ‘당권’을 쥐고 있으라, 이렇게 조악하게 해석하지 말아달라.
지금도 당 안팎으로, 관악산도 북한산도 백두산도 한라산도 칼로 벨 수 있다는 항우의 호연지기 가진 분들 많다. 그러나 그 산들을 칼로 베놓고, 어디로 옮길 사람들은 있는지? 그 사람들은 어디서 찾아오고,어디에다 배치할 것인지? 사무총장이 할 일이라는 점 한번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4. 노회찬이 국회의원이 된 게 다 잘못이란 말인가?
안티-의회주의자들 노선은 찬성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13년, 진보좌파정당은 여의도 ‘국회’라는 공간이 가진 역사적인 파워, 지난 세계사 1688년 영국 의회의 출발에서, 한국만 해도 지난 60년간 의회라는 공간이 가진 그 보수성의 파워에 대해서 너무나 경시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고 이재영 실장이 별세하기 전, 노회찬 전 사무총장과 찍은 사진이 노회찬 틔위터에 있었다. 머리를 빡빡깎은 이재영과 노회찬은 같이 웃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뭐라 평가할 위치나 자격은 없다.
그러나 아쉽다. 마치 끝나버린 드라마처럼. 헤어질 때도 아닌데 헤어진 것에 대해서 눈물을 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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