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장화식 (투기 자본 감시 센터 운영위원장: 2004년 외환카드 해고: <법률사무소 김앤장> 저자)



4조 4059억원 먹튀 투기 자본 론스타 총정리 (1) 


 2011.11.20 19:02:11

[당원이라디오]https://www.newjinbo.org/xe/2599183


인터뷰 날짜: 11월 18일 오후 8시  

진행: 원시



 

2004년 당시는 미 월스트리트 금융기법을 선진 금융기법이라 찬양!

 

질:  장화식 의원장님이시죠. 여기는 진보신당에 평당원들이 진행하고 있는 <당원이라디오>입니다.  지금 사무금융연맹 부위원장님이시죠?

 

장화식 (이하 장) 네 사무금융연맹의 부위원장이기도 하고요 또 투기자본감시센터라는 시민단체에서는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질 - 우선 소개를 먼저 좀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장화식님께서는 법률사무소 김앤장 책으로 잘 알려져있는데요. 어떻게 해서 맨 먼저 론스타 먹튀 자본, 투쟁에 뛰어들게 되었습니까?

 

장: 제가 2004년 2월달에 해고를 당했는데요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났는데 그 직장이 외환카드였습니다. 외환카드는 외환은행의 자회사인데요 2003년도에 외환은행 주인이 론스타로 바꿔었죠. 그래서 2004년도에 외환은행과 외환카드를 합병했는데요 그 당시 합병에 반대하고 직원들 절반 이상을 짜르겠다는거에 반대해서 싸움을 하다 해고가 됐죠. 해고되고 나서 이제 론스타는 어떤 조직이길래 한국 은행을 인수하고 해고시킬 때 문자메시지로 통보를 했거든요

 

질 -  그랬군요 (잘 안들려서 그 때가)  2003년에요?

장:  2004년도에요.  그래서 저를 해고시킨 론스타라는 자본이, 이 펀드가 어떤 펀드고 또 대체 정체불명의 펀드에는 누가 있는지 이게 뭐하는 집단인지, 어떻게 구성이 됐는지 알고 싶어서,  제가 투쟁을 시작한거죠

 

질- 사실 IMF 당시 상황이, 당시만 해도 미국 월스트리트가 파산하지 않은 시절이기 때문에, 사실 선진 금융기법의 이데올로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것 같은데요? 어땠습니까 분위기가?

 

장: 그렇죠 당시엔 월가의 돈 버는 것이 선진기법이다 이렇게 찬양을 받던 시절이고요. 한국에서는 관료들이 관료 공무원 생활을 해가지고 뭐 그냥 우리도 론스타처럼 그렇게 돈을 벌어야 된다. 그런 선망이 되건 시기였구요. 그 당시에 KDB 론스타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이게 뭐냐면 KDB 가 산업은행이거든요. 한국의 제일 국정은행인 산업은행이 론스타 푼다고 50대50으로 만들었던 거죠.

  

지난 8년간 론스타 투기자본과 투쟁, 올해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보는 감회 새롭다

 

질- 최근 벌써 2개월 됐습니다 월스트리트점령 시위가 있은지...2개월 동안 연속적으로 시위가 있었다는건 6~70년대 이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상황인데, 장화식님도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장: 금융자본의 형태는 선진기법이 아니라 99% 를 터는 사기다 이런 분노로 시위가 열리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찬양했던 미국 시스템이 미국에서부터 문제 일으키니까, 한국 사람 입장에선 한편으론 신선하고, 또 한편으론 8년 동안 우리가 줄기차게 문제 제기했던게 옳았구나 감회가 들고요. 기분이 좋습니다. 요새. ( 웃음 )

  


질- 사실 7년, 2004년부터 7년이란 말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흰머리도 많이 늘으셨을 것 같아요. (웃음)

 

장: 허허허허 저 혼자였다면 할 수 없었겠죠.  당시에 뭐랄까 문제의식이 있는 학자나 변호사나 이런 사람들이 과연 이런 미국식 금융시스템 사모펀드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 이게 타당한가?  이게 정말 좋은 일인가 ?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거죠.

 

그래서 영국과 미국식으로 주류들의 이익만을 위한 금융 시스템이 좋은가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한국에서 97년 외환 위기 이후에 급격하게 금융도 구조조정되고 직원들도 해고되고 비정규직도 늘어나고 신용불량자도 늘어났잖아요. 그런 시점에 조금 전 말씀드렸던 변호사나 학자나 시민단체 있는 사람들이나 저같은 노동자들이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이 생겨가지고, 그래서 2004년 8월달에 투기자본감시센터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었죠. 시민단체로 묶어지면서 사람들이 힘이 생긴거죠.  그래서 시민단체를 통해서 문제 제기했고 또 그것을 국회에 가서 공문화시켰고, 언론 인터뷰나 기구를 통해가지고 퍼트리면서 아 이게 문제가 있었구나!  이런 인식이 들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거죠.

 

질- 투기자본감시센터 이야기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우선 궁금합니다 누가 어떻게 주체가 되어서 처음 만들게 됐는지 누가 좀 공헌자입니까?

 

장: 그 당시에 사회적 반성이 있는 시기여서 누구 한 사람의 작품이라기보다도 지금 이끌고 있는 분들, 허영구 대표 계시고 이대순 변호사도 계시고, 이찬근 교수, 정종남 국장, 홍성준 국장 등, 이런 분들이 모여서 시작한거죠 또 외환은행 노동자였던 김기준도 모셨고요. 그런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정말 어떻게 보면 기적처럼 모인거죠 깃발 꽂고 모이자고 한게 아니라, 얘기하다 보니까 맞아 이게 문제야 당신도 그런 고민하고 있었어? 나도 이런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럼 우리 같이 의기투합해서 만들어서 해보자 그래서 만든게 투기자본감시센터죠

 

97년 제일은행 눈물의 비디오와 달리,외환은행 노조의 투쟁했다. 그 이유는?


질- 비교가 좀 되는게 김득의 님이랑도 잠깐 얘기나눴는데, 97년 IMF 때는 제일은행 노조원들이 눈물을 흘리는 비디오가 굉장히 가슴 아팠잖습니까? 그런데 외환은행, 외환카드, 장화식님 비롯해서... 좀 굴종이나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투쟁을 하게 됐습니다 굉장히 변화가 생긴거예요 몇년 사이에, 그게 왜 가능했습니까?

 

장: 97년도에 그 때는 좀 뭐랄까 여러가지가 있겠죠. 나는 떠나가지만은 여러분이 지켜달라 이런 문제가 자기가 잘못해서인 것처럼 자기 희생하면 후배는 잘 살 수 있는 것처럼 이렇게 좀 안이하게 생각했죠. 그런 체념하는 분위기였는데 몇년 동안 있어보니까, 이건 그렇게 사람을 짤라내고, 막상 쫓겨나서 사회 나와보니까 특별히 기술도 없잖아요.

 

구멍가게 하다 다 망하고 이러다 보니까 나 하나 체념해서 되는 문제도 아니고, 이렇게 들어오는 자본이 우리를 위해서 들어오는 착한 자본이 아니라, 말 그대로 수익을 쫓아서, 피도 눈물도 없이 들어와서,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사람도 짜르고, 조직도 짜르고, 법도 무시하고, 이렇게 하는거다. 이거 “우리가 당신들 맘대로 하세요” 이런 건 바보같은 짓이다 이런게 생긴거죠.

 

질- 참 그래도 그게 97년부터 2004년 사이에 생긴 굉장히 중요한 변화 측면이고, 아까 월가를 점령하라! 소회를 물어본 것도 그런 맥락에서, 지금 7년간의 투쟁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현실에서도 좀 드러난다. 어떻게 보면 뉴욕과 지금 서울의 장화식님과 연결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게 다 연결이 되어있는거 아닙니까?  그게 다 확인된 현 시점이잖아요.

 

장:  우리가 미국 예상도 못했고 또 미국에 있는 사람들 한국 땅에 이런 일에 대해서 모르고 있을 수도 있는데, 사회적 현상으로 보면 미국에서의 운동과 한국에서의 운동 미국에서의 반-월가 시위와 한국에서의 투기 자본에 대한 투쟁이 극적으로 만난거죠. 그래서 월가의 시스템을 가져와서 이익만 위하고 고액 배당하고, 금융기관을 하나의 이익 추구로 삼는 그러면서 전체 국민들을 금융의 피해자로 만드는 이런 문제점에 대해서 똑같이 느끼고 똑같이 나타나는거죠.

 

만약 한국에서 이런게 없었다면 미국에서 이런 일 일어나면 그냥 보고 있었을텐데 우리가 이런 일 해왔기 때문에 정말 함께 한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거죠.

 

 



질- 참 이게 미국 민중들 삶에 피해를 입혔던 투자 은행들과 헤지펀드, 투기 자본들, 또 한국에 은행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가했던 론스타와 일치가 되어가지고,

 

장: 따져보면 론스타 펀드, 론스타 펀드 이러는데, 론스타 펀드 투자자가 미국의 투자 은행이나 미국 연기금이나 이런거예요. 실제로 미국에서 투자 은행을 세워가지고 금융 이익을 취했던 자본이나 한국의 론스타나 본질은 같은거죠.

 

그런데 우리는 마치 미국의 투자 은행이나 미국의 리먼브라더스, 골드만삭스 이런 얘기하면 아 거긴 참 대단한 금융기관이고, 마치 선을 행하고 좋은 일하고 그리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금을 만들어내듯이,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게 아니라, 세계에 존재하는 부나 부가가치를 금융기구를 통해서 뺏은 거잖아요. 금융기관 스스로 부를 생산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런게 선명하게 드러난거죠

 

질- 이번에 이런 투쟁들이 사실 미국과 한국의 시위가 합류된게 드물죠 지금까지 과거에 이런 적은 많진 않았죠 반전 시위 이런 건 있었는데 자본에 대한 ...

 

장: 반전 시위도 부끄럽게도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시위가 없었던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반전 시위 꿈도 못 꿨죠. 베트남 가서 전쟁 박물관 가서 보면 부끄러운 모습들 있잖아요. 그랬는데 그 이후에 한국에서도 인권이나 전쟁이나 문제가 제기됐고 운동이 발달된거죠. 우리가 나름대로 노동자들이 조직화되고 또 교수나 이런 시민단체가 투쟁하다 보니까, 세계적인 조류가 예전엔 따라갔지만 지금은 함께 하는 정도가 된 것이고

 

질- (한국 사회운동이) 앞서나가는 것도 있죠

 

장: 예!  또 민주노총이나 투쟁하는거 보면, 부러워하는 것도 있고요

 

질- 주제를 한미 FTA 와 금융 서비스 시장 개방에 대해 옮겨보겠습니다. 어떤 점을 발견하셨습니까? 한미 FTA 문제에 대해

 

장: 한미 FTA 한가지 미진한 부분이 뭐냐하면, 마치 한국과 미국간의 이익의 균형만 맞추면 되는 것처럼 국가간의 이익 균형이 핵심인 것처럼 얘기하는 측면이 있거든요. 근데 실제로 한미 FTA 는 국가와 국가간 협정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내부에서 이익을 보는 쪽과 손해를 보는 쪽이 있는거죠.

 

질- 계급적 측면이 있죠

 

장: 쉽게 말하면 한국에서도 대기업, 핸드폰, 자동차, 금융 자본가들은 돈을 벌 수 있고, 그렇지만 그 금융을 이용하는 일반 시민, 농민, 서민, 어민, 노동자 이런 사람들은 피해를 보는 측면이 있는거죠. 그래서 국가간 이익 균형만 맞췄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라 그 내부에서 피해를 보는 계층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대책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거죠.

더군다나 금융 부분은 이런 얘기합니다 금융 부분은 별로 협상한게 없다.  절반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은 97년 이후에 이미 IMF 가 요구한 것 이상으로 우리가 확 개방했는데요, 미국이나 IMF 에서 이런 점을 개방해라 그러는데 우리가 아 화끈하게 해주겠다 이래가지고, 

 




제작 : 새로운 데모 연구회 http://cafe.daum.net/new-demo  

섭외 및 뉴스판 제작: 서미현, 이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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