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해석하고 자신과 대화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다. '자기 마음대로'라는 것은 자기한테 유리할 대로, 혹은 자기가 보고 싶은 자신만을 선택적으로 해석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가 여기에서 발생한다. '자기 마음대로' 선택적 해석과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누가 판단하고 채점해 준단 말인가? 그 채점자 평가자도 자기 마음대로의 '나' 일 수 있기 때문에, 자기 반성이란 단어가 정말 풀기 힘든 숙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나가 아닌 '객관적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데, 1) 절대자 신을 끌어들인다, 그런데 이것도 난감하다, 니이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한 이후로, 진짜 신이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2) 결국 남들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그 타인, 절친 한 명, 혹은 수많은 다수 사람들의 경우도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그 평가 기준을 가지지 못한 '유한한 능력자'들이기 때문에, 남들에게 물어 보는 것도 한계를 지닌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온, 도덕이나 윤리, 혹은 철학이라고 하는 것에 의존해보면 어떻겠나?
자기 반성 문제와 그 평가를 주관적 '나'가 아닌, 조금더 객관적인 '사회의 기준'으로 돌린다면, 자기 반성 문제를 해결할 ㅜ수 있을 것인가?
3) 자기 반성의 문제는, 그 사회적 기준 (도덕, 윤리, 철학적 세계관 등)을 끌어들인다고 하더라도, 혹은 훌륭한 선생들의 가르침을 받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남는다. 왜냐하면 '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 사회적 기준과도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고, 실제 '나'와 이미 확립되어 있는 종교, 철학, 도덕과 윤리, 사회적 법 체계 사이에는 늘 '간극'과 '틈'이 있기 때문에, 자기 반성과 그 평가는 쉽지 않다.
4) 그래서 인생은 자기를 알기가 힘들고, 알지 못한다는 불가지론이 아니다,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자기를 아는 것 자체도 위대한 도전인 셈이다. 왜냐하면 중간에 대부분 포기하는 힘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5) 중간 해법은, 내 스스로가 중간 중간 '나의 반성 내용'과 그 반성에 대한 평가를 하되, 그 과정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취, 흔적, 사고와 표현의 발자국이라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절대자, 신, 어떤 종교, 또 사회적 기준, 도덕, 윤리, 법, 사회적 관행이나, 남의 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반성과 '반성의 평가' 잣대를 찾는 과정은, 바닷가 모래 사장에 모래로 성을 쌓고 노는 아이와 같이 보일 것이다. 아니 실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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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의 역설. 자아도취냐 진정한 자기 반영과 투영, 반성인가?
타인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가 중요하다.
Es ist nicht wichtig, wie andere dich sehen !
Es ist nur wichtig, wie du dich sieh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