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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론스타 분쟁, 당시 금융 정책 당국의 오류.

by 원시 2022. 5. 8.

론스타 보도. 자료.

 

론스타가 청구한 46억7950만달러(약 5조9000억원)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한국 정부는 왜 론스타가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이라는 쟁점을 제기하지 않았는지 

 

10년 끈 ‘론스타 분쟁’ 판정 임박…결말은?

김지환 기자
입력 : 2022.05.08 09:51

중재판정부, 조만간 ‘절차종료선언’
이르면 9월 전 판정문 발송

2006년 3월 30일 당시 검찰이 압수수색을 실시한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 빌딩 내부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론스타 국제중재 판정 결과가 나올 시기가 임박했다.”(법무부 고위 관계자)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2012년 초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을 매각했다. 9년 만에 투자한 돈의 2배가 넘는 4조7000억원가량을 차익으로 챙기고 한국 시장을 떠났다.

 

한국 정부와 론스타의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론스타는 2012년 11월 “한국 정부가 벨기에·룩셈부르크와 체결한 투자보장협정(BIT)을 위반했다”며 투자자·국가 간 중재(ISDS)를 청구했다. 구체적인 ISDS 청구인은 론스타가 벨기에(7개)와 룩셈부르크(1개)에 설립한 8개의 페이퍼컴퍼니다. ISDS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의 법령·정책으로 재산상 피해를 입은 경우 국제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중재에 회부한 지 10년이 흐른 올해 드디어 결론이 나온다. 법무부 내에선 이르면 9월 이전에 판정문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비밀유지를 중시하는 ISDS의 ‘폐쇄성’ 때문에 양측이 10년간 구체적으로 어떤 공방을 주고받았는지 잘 드러나 있지는 않다. 중재 초기엔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액 규모가 얼마인지조차 정부가 정확히 밝히지 않았을 정도였다.

 

주간경향은 한국 정부가 2014년 3월, 론스타가 2013년 10월과 2014년 10월 중재판정부에 제출한 서면자료 중 일부를 최근 입수했다.

 

이를 통해 론스타가 청구한 46억7950만달러(약 5조9000억원)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한국 정부는 왜 론스타가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이라는 쟁점을 제기하지 않았는지 등을 제한적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정부가 2014년 3월 중재판정부에 제출한 서면 중 일부.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액의 구성이 세가지로 정리돼 있다.

한국 정부가 2014년 3월 중재판정부에 제출한 서면 중 일부. “금융당국은 관련법상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라는 결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그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는 대목이 포함돼 있다.

■론스타 청구액 구성 살펴보니

론스타는 2013년 10월 중재판정부에 낸 1차 서면에서 한국 정부가 43억7680만달러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구액은 크게 세가지 쟁점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쟁점은 금융당국의 외환은행 매각 승인 지연이다.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는 2007년 9월 HSBC와 계약을 체결하고 외환은행 지분 51%를 60억달러가량에 팔기로 했다. 하지만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영향으로 이 거래가 깨졌다. 이후 론스타는 2010년 하나금융지주와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외환은행을 43억달러가량에 매각하기로 했다. 재협상 끝에 2012년 35억달러가량을 받고 외환은행을 매각했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외국자본의 ‘먹튀’를 막아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 사회적 여론을 의식해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두차례에 걸쳐 부당하게 지연한 탓에 15억7600만달러가량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쟁점은 국세청의 론스타에 대한 과세가 정당했는지 여부다. 론스타는 국세청이 한국·벨기에 이중과세방지협정에 따른 면세 혜택을 주지 않는 등 부당하고 자의적인 과세를 해 7억6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세 번째 쟁점은 손해액 산정과 관련된 쟁점이다. 론스타는 향후 승소해 손해배상금을 받을 경우 한국·벨기에가 이에 대한 세금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미래의 세금까지 손해배상금 액수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론스타가 계산한 추가 세금은 20억4260만달러다. 론스타는 2014년 10월 2차 서면에선 총 청구액을 46억7950만달러로 올려잡았다. 환율 계산에 오류가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국제중재 전문가들은 론스타가 청구한 46억7950만달러가 ‘뻥튀기’에 가깝다고 본다. 우선 HSBC에 제때 팔지 못해 발생했다는 손해, 하나금융에 당초 계약한 대금보다 낮게 팔아 발생했다는 손해가 모두 인정될 가능성이 낮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론스타가 주식을 HSBC에도 팔고, 하나금융에도 팔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결국 손해는 어느 하나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2건 모두에서 발생했다고 하는 건 모순”이라고 말했다.

과세 부분 역시 론스타가 당초 청구한 금액은 현재로선 의미가 없어졌다. 론스타는 국내 법원에 과세 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7건 제기했다. 한국 정부가 일부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론스타는 이미 일부 금액은 돌려받은 상태다. 정부는 “양측은 2018년 중재판정부에 세금 환급 사실을 알려 이미 환급한 조세에 대해선 이중으로 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도록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낼 세금까지 계산한 부분도 온전히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부는 “판정금에 대한 미래의 세금 부과는 아직 발생한 것이 아니다. 또 발생할지 여부도 불분명하다. 이러한 손해액 산정 방식은 법적 근거 및 인정 선례가 없다”고 밝혔다.

론스타는 2020년 11월 중재를 철회하는 조건으로 8억7000만달러를 달라는 ‘비공식 협상안’을 제시했다. 한국 정부는 “공식적 협상 제안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합의에 응하지 않았다. 다만 이 협상안은 론스타가 실제로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금액의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자료가 될 순 있다.

■‘론스타 산업자본’ 왜 쟁점 삼지 않았나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는 론스타를 둘러싼 의혹 중 가장 핵심 쟁점이었다. 은행법은 비금융 부문의 자산규모가 2조원 이상인 산업자본이 은행 주식을 4% 이상 가질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산업자본이 은행을 사금고화하는 걸 막기 위한 규정이다.

금융당국은 정기적으로 ‘은행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한다. 론스타의 경우 적격성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줄곧 받아왔다. 하지만 일본 내 골프장 운영회사(PGM) 등 론스타의 비금융계열회사 자산 합계가 2조원을 넘는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금융위원회는 2012년 1월 론스타가 하나금융에 외환은행 지분을 매각하는 것을 승인하면서 “론스타가 2010년 말 기준으로는 산업자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현시점에서 론스타를 산업자본으로 볼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이 론스타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다. 금융당국이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법원 판결도 나왔다. 서울중앙지법은 2012년 3월 외환은행 우리사주조합과 소액주주들이 “론스타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해달라”며 제기한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 “2005년부터 2010년까지는 론스타가 산업자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한국 정부가 2014년 3월 중재판정부에 제출한 서면을 보면 이 같은 정황이 더 뚜렷해진다. 해당 서면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금융당국은 관련법상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라는 결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그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아무튼 론스타의 비금융주력자 지위에 대한 심사는 외환은행 주식 인수 신청에 대한 심사나 승인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대목에 대해 “우리가 잘 해줬는데 중재까지 하는 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뉘앙스로 읽힌다”며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론스타를 잘 대해줬다고 이해하기보다는 한국의 룰이 고무줄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시민사회는 한국 정부가 국제중재에서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는 점을 부각시켜야 론스타 청구가 각하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산업자본인 론스타는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이 없었기 때문에 투자협정이 보호하는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정부는 시민사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론스타에 면죄부를 줬던 정부가 뒤늦게 론스타가 은행법을 위반했다고 중재판정부에 주장하면 ‘누워서 침뱉기’ 꼴이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한 전직 고위 관료를 보호 차원에서 산업자본 쟁점을 누락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정부는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금융위는 2020년 낸 보도설명자료에서 “론스타 ISDS 사건 초기였던 2013년 당시 검토한 결과, 이른바 ‘비금융주력자’ 항변을 제기할 경우 ISDS 사건에 불리한 측면이 있다는, 정부 법률 대리인의 전문적 법률 판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이 쟁점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향후 어떻게 진행되나

중재판정부는 조만간 양측에 ‘절차종료선언’을 통지할 예정이다. 절차종료선언 통지를 받은 시점에선 승패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중재판정부는 절차종료선언 이후 120일(최대 180일) 이내에 판정문을 발송한다. 이 판정문에 승패 여부, 한국 정부가 패했다면 얼마를 배상해야 하는지 등이 담긴다.

국제중재는 기본적으로 단심제로 운영된다. 다만 한국 정부와 론스타 간 국제중재를 관할하는 기관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규칙에는 판정에 대해 취소청구를 할 수 있는 규정이 있다. 관할권 문제, 심각한 절차적 하자, 당사자가 주장한 내용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문제 등의 사유가 있을 경우 판정문을 받은 뒤 120일 안에 판정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취소 청구는 항소심보다는 재심에 가깝기 때문에 결론이 뒤집히는 사례가 흔치는 않다. 한국 정부는 2018년 6월 이란 다야니 가문이 청구한 ISDS 사건에서 패한 뒤 취소를 청구했지만 영국 고등법원이 이듬해 이를 기각한 전례도 있다.

한창완 법무부 국제분쟁대응과장은 “론스타 건은 사안이 복잡하고 양측이 워낙 강하게 다퉜기 때문에 결론이 어떻게 나든 진 쪽에서 취소소송을 아주 진지하게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 때문에 판정문이 나오고 최종 결론이 나려면 2년가량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2012년 “120% 승소를 자신한다”고 했지만 판정문이 나오기 전까지 누구도 그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만약 한국 정부가 패할 경우 책임 있는 금융 관료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론스타가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한국 정부는 론스타를 포함해 7건의 ISDS에 대응하고 있다. 법무부는 국제중재 대응을 위한 조직 신설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한국 정부가 ISDS를 폐지하는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럽은 ISDS를 폐지하고 상설투자법원을 만들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노주희 법무법인 수륜아시아 변호사는 지난해 출간한 <ISDS, 넌 누구냐>에서 “한국이 ISDS로 인해 피해를 가장 많이 본 국가들을 설득해 양자 간 BIT, 자유무역협정(FTA)에서 ISDS 조항을 빼자고 제안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