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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보도] 연금 개혁 논쟁. 개혁과 난제로 본 국민연금 35년.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인터뷰 “연금 문제, 진영논리 개입해선 안 된다”

by 원시 2022. 2. 15.

보험료율은 24년째 그대로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ㆍ개혁과 난제로 본 국민연금 35년

국민연금은 올해로 시행 35년차를 맞았다. 선진국의 연금제도에 비하면 비교적 젊은 ‘청년’이지만 지나온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대표적 논쟁거리인 기금 고갈 우려만 보더라도 사실 근래에 대두된 것이 아니고 국민연금과는 오래전부터 ‘빛과 그림자’ 같은 관계였다. 국민연금이 가는 곳엔 적자, 기금 고갈 걱정이 늘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이런 우려를 덜고자 국민연금은 두 차례 제도개혁에 착수했고 5년마다 재정계산을 새로 하며 미래의 방향을 잡았다. 굵직한 변화를 중심으로 국민연금의 역사를 살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전 국민 연금’과 두 차례 개혁

국민연금 도입 이전에는 1973년 만든 국민복지연금법이 있었다. 이에 따라 1974년부터 국민복지연금제도를 시행하려 했으나, 1973년 10월 오일쇼크가 터지며 불발에 그쳤다. 그후 1986년 제5차 사회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국민복지연금법을 국민연금법으로 전면 개정하고 우리가 아는 국민연금이 1988년 첫발을 뗐다.

이후 국민연금은 점점 더 넓은 대상을 품으며 덩치를 키웠다. 이른바 ‘전 국민 연금’ 시대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국민연금 도입 당시 국민연금은 상시근로자 10인 이상 사업장(사업장가입)을 대상으로 했다. 이후 1992년 5인 이상 사업장, 1995년의 농어촌거주자(지역가입)에 이어 1999년 도시 자영업자로 범위를 넓혔다. 2006년엔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까지 포함했다. 이후 소득이 없어 연금 의무가입 대상이 아닌 전업주부나 27세 미만 학생의 임의가입까지 받기 시작하면서, 공무원 및 사립학교·일반교직원과 직업군인 등 ‘특수직역연금 가입자’를 제외하면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덩어리가 커진 만큼 조정이 불가피했다. 국민연금이 작동하는 구조, 즉 ‘몇살부터 받을 것이냐(수급개시연령)’와 ‘얼마를 받을 것인가(40년 가입을 기준으로 납부자의 생애평균소득 대비 수령 연금액을 의미하는 소득대체율 혹은 연금급여율)’를 어떤 형태로든 손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를 위해 1996년 국민연금제도개선기획단을 꾸렸고 김대중 정부가 1998년 1차 제도개혁에 나섰다.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수급개시연령을 기존 60세에서 2013년 61세, 2033년 65세로 단계적 상향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한마디로 ‘더 늦게 시작해 덜 받는’ 쪽으로의 개편이었다.

2003년 제1차 재정계산에서 보험료율(9%)과 소득대체율(60%)을 현행처럼 유지하면 2036년에 국민연금이 적자로 돌아선다는 전망이 나왔다. 적자 이후 기금 고갈 시점은 2047년으로 예측했다. 2003년 당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19명으로, 국민연금을 막 도입한 1988년(1.55명)에 비하면 완연한 하락세에 접어든 상태였다. 이 같은 전망을 바탕으로 보험료율(기준소득대비 보험료 납부액의 비중)을 높이고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즉 ‘더 내고 덜 받는’ 3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2007년 2차 연금개혁을 단행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후보 토론 때만 하더라도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하향해야 한다는 상대측 후보에게 “용돈 연금을 만들 것이냐”고 반박했지만, 취임 후 입장을 선회했다. 2003년 제1차 재정계산의 결과가 암담했기 때문이다. 2차 연금개혁은 ‘똑같이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소득대체율을 기존 60%에서 장기적으로는 40%까지 내리는 내용이 핵심이다. 2008년 50%로 하향하는 것을 시작으로 매년 0.5%p씩 인하해 2028년 40%로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2차 연금개혁 덕에 2008년 나온 제2차 재정계산에서 후대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국민연금 적자 전환 시점을 2036년에서 2044년으로, 기금 고갈 시점은 2047년에서 2060년으로 늦췄다. 제3차 재정계산(2013년) 또한 적자 전환 시점을 2044년, 기금 고갈 시점을 2060년으로 전망했다.

보험료율 조정이란 ‘역린’

연금개혁은 출산율 저하와 고령사회 진입이라는 피할 수 없는 미래에 대응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수급개시 연령을 높이고 소득대체율은 낮추는 방향(‘더 늦게, 더 적게’)이 일반 국민에겐 ‘손해’로 다가갔기에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4~2005년쯤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진 ‘국민연금 8대 비밀’이나 ‘안티 국민연금’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이전보다 국민연금을 못 받는다는 데 따른 불만 표출이었다.

중요한 점은 두 차례 연금개혁 모두 ‘얼마를 낼 것인가’, 즉 보험료율을 건드리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얼마를 내느냐’는 ‘언제부터 받느냐’, ‘얼마를 받느냐’와 더불어 국민연금을 이루는 세 기둥이나 번번이 손질을 비껴갔다. 뻔히 예상되는 반발을 감안할 때 보험료율 개혁이란 정부로선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역린(逆鱗·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로, 건드려선 안 되는 약점을 비유)이나 마찬가지여서다. 그 탓에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1988년 3%로 시작해 1993년 6%, 1998년 9%로 오른 이래 24년째 9%에서 변하지 않고 있다. 선진국 대비 확연히 낮은 수준이다. 일본은 보험료율을 2003년 13.6%에서 2017년 18.3%로 인상했고, 독일은 18.7%, 미국은 12.4%를 낸다(2018년 기준).

문재인 정부도 보험료율 문제를 피했다. 보건복지부가 2018년 발표한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바탕으로 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은 현행유지를 포함해 소득대체율을 45~50%로, 보험료율을 12~13% 수준으로 올리는 방안 등 4가지 안을 제출했지만, 하나도 채택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보험료율 인상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반려했다.

이제 다시 5년이 지나 내년이면 제5차 재정계산을 발표한다. 그사이 출산율은 1.05명(2017년)에서 0.84명(2020년)으로 더 떨어졌다. 국민연금제도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운 인구 구조로의 진입이다. 더구나 지난해 말 통계청은 코로나19로 결혼과 출산이 줄어들며 2025년 출산율이 0.52명으로까지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2025년은 다음 정부 임기가 한창인 시점이기도 하거니와,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상으로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도달하는 해다. 3년 뒤에는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란 얘기다. 차기 정부 앞에 연금개혁이라는 역린을 지혜롭게 풀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가 도사리고 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인터뷰 “연금 문제, 진영논리 개입해선 안 된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국민연금 개혁은 진영·이념과 상관없이 제대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에게 국민연금의 미래에 관해 묻자 이러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5년마다 시행하는 국민연금재정추계에서 1~4차(2002~2018년)에 걸쳐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국민연금 전문가다. 한국연금학회장도 겸하고 있어 지난해 말 여야 대선후보들의 국민연금 공약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연금의 재정안정을 중시하는 전문가로 꼽힌다.

사진 윤석명 연구위원 제공 
사진 윤석명 연구위원 제공



35년 역사의 국민연금이 중대기로에 섰다. 국민연금은 20년 뒤면 적자로 돌아선다. 출산율이 워낙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어 그 시점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그 뒤로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대선과 올해부터 논의를 시작할 5차 재정추계를 앞두고, 국민연금이 ‘가야 할 길’을 짚어보고자 윤석명 연구위원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1월 26일 오후 줌 화상회의로 만났다. 그는 “다음 세대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조속한 연금개혁이 필요하며,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선 정부가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차기 정부는 정치중립적인 전문가를 중심으로 연금개혁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달 사이 국민연금 문제가 많이 나왔다. ‘1990년생부터 국민연금 못 받는다’는 보도자료가 나와 주목받기도 했다.

“MZ세대가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연금 문제가 수면 아래에 있다가, 근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지난해 12월부터 논의가 꽤 이뤄졌다. 한국연금학회가 대선후보 연금 공약 토론회를 열었고, 진보·보수 할 것 없이 언론에서도 문제의식이 터져나오던 참이었다.”

-국민연금은 어떤 상태인가.

“연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구 변수다. 연금을 얼마나 오랫동안 받는가(평균수명)와 누가 이들을 부양할 것인가(합계출산율·15~49세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와 연결된다. 한국은 평균수명과 더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노인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출산율은 OECD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유엔인구기금·2020년). 연금 재정이 굉장히 나빠지고 있다.”

-쌓아둔 돈, 적립금으로 재정을 충당하면 된다는 견해도 있다. 약 920조원(2021)이 있으니 고갈 걱정은 과하다는 주장이다. 한국만큼 적립금을 쌓아둔 나라가 없다고도 한다.

“국민연금은 확정급여, 즉 정확히 얼마를 주기로 약속한 제도이다 보니 이미 그렇게 국민에게 약속한 액수가 2021년 9월 기준으로 2500조원이 넘는다. 실제로 920조원을 쌓아뒀더라도 1500조원 넘게 부족한 상태다. 그걸 두고 920조원이 있으니 다른 나라에 비해 재정적으로 좋은 상황이라고 하면 안 된다. 정치인들이 이 적립금에 관한 내용을 악용하고 있어서 국민연금 논의가 굉장히 어려워졌다. 2500조원이 필요한데 920조원만 가지고 있으면서 충분하다고 하면 되겠나. 독일, 스웨덴 같은 나라는 연금 역사가 100년 안팎으로 성숙 단계다. 고조부 시절부터 연금을 주고받아온 경험이 쌓였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35년밖에 안 됐다. 아직 베이비붐 세대(좁게 잡을 경우 1955~1963년생·약 730만명)가 전부 연금 수급을 시작한 게 아니어서 연금지급액이 크지 않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하는 2030년쯤 되면 곪아온 문제가 터질 것이다. 그 시점이 되면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이미 빚을 많이 졌다.”

-연금개혁이 시급하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개혁하지 않고 보낸 세월은 흘러간 강물처럼 되돌릴 수 없다. 이미 노동시장에서 퇴직한 사람들한테는 보험료를 더 걷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연금개혁을 빨리하자는 것의 의미는 현재 노동시장에 있는 이들이 연금수급자가 되기 전에, 아직 보험료를 낼 수 있을 때 더 걷자는 것이다. 20년 전에 보험료를 올렸더라면 그만큼 더 걷을 수 있었을 텐데, ‘나중에 세금을 걷어서 주면 된다’, ‘적립금 있으니 문제없다’는 얘기를 하면서 많은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정부가 2018년 발표한 4차 재정계산을 보면 국민연금은 2042년 ‘적자 전환’, 2057년 ‘소진’이다.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15~16년 사이에 적립금이 없어지는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때 없어지는 게 단순히 (기존에 쌓아둔) 1788조원뿐만 아니라 그 기금으로 나오는 투자 수익과 (납부자보다 수급자가 많아지면서) 매년 가입자들이 내는 보험료도 다 없어진다는 점이다. 이를 감안해 계산을 해봤는데, 대략 2500조원 이상이 불과 15~16년 사이에 사라진다.”

-기금을 다 쓰고 나면 그때그때 걷는 보험료에다 세금을 더해 연금을 지급하면 된다는 주장은 어떻게 보나.

“세금 투입으로 메꿔야 할 게 국민연금뿐만이 아니다. 이미 국가부채가 발생하고 있는 공무원연금, 군인연금과 건강보험 적자도 세금으로 때워야 한다. 그 세금은 도대체 누가 다 내나. 우리나라 경제활동 인구 중 약 40%가 소득세를 안 낸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19년 자료를 보면 국민연금 기금 소진 이후 (후세대가 국민연금 유지를 위해 내야 하는) 보험료율은 2080년 소득의 34%까지 올라간다(현재는 9%). 다음 사람들에게 다 걷으려는 이런 사회에서 젊은이들이 살려고 하겠나.”

-4차 재정계산 중 ‘기본안’을 보면 출산율을 2017년 기준 1.2명, 2030년 1.32명, 2060년 1.38명으로 예상해 적용했다. 기본안보다 출산율이 악화될 것을 가정한 ‘저출산 대안’ 역시 2017년 1.14명, 2030년 1.07명, 2060년 1.12명으로 적용했다. 실제로는 2019년 0.92명, 2020년은 0.84명으로 더 떨어졌다.

“답답한 것은 일본은 5년마다 하는 재정계산에 더해 중간에도 한 번씩 추계를 한다. 지금 출산율 급락과 코로나19 때문에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지 않나. 이런 엄청난 변화가 있으면 최소한 책임 있는 정부라면 5년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기존 계산에 인구 가정의 변화만 새로 적용하면 되는데 안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안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내년에 나올 5차 재정계산에선 4차 때보다 전망이 악화되리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겠다.

“골든타임을 다 날려버렸으니…. 예를 들면 지금은 적이 눈앞에까지 쳐들어왔는데 ‘괜찮다’고 외치며 다리를 끊고 도망쳐버린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출산율을 비롯한 여러 변수도 훨씬 안 좋아졌다. 보험료를 걷어 운영하는 사회보험 성격의 연금제도로선 5년 전에 비해 더 어려운 상태로 진입한 셈이다. 4차 재정계산 자체도 낙관적 시선을 반영한 건데, (현재로선) 좋아질 만한 부분이 별로 없어보인다.”

-국민연금 ‘팩트’를 제대로 알리자는 얘기를 계속 강조하고 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는 일이다. 연금 문제는 진영논리가 개입해서도 안 되고 이념적 제물이 돼서도 안 된다. 연금마저 진영논리에 휩쓸리다 보니 사실이 사실대로 드러나지 않는 구조다. 4차 재정계산 때 회의록이 있을 것 아닌가. 그 회의록을 실명으로 다 공개해야 한다. 지금은 비실명화한 요약문만 제공해 누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게 해버렸다. 일본은 후생연금(한국으로 치면 국민연금) 홈페이지에 중요 회의의 회의록 전문을 올려둔다. 공개하지 않으면 왜곡이 발생하고, 팩트와 다른 이야기를 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꾼다.”

-한국은 24년간 보험료율을 9%로 유지했다. 보험료율 인상 문제를 피해온 만큼 앞으로 올린다면 너무 크게 오르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24년 동안 못 올렸다는 건, 아주 극단적인 예를 들어 서구로 치면 한 80년 정도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우리 경제가 그만큼 압축적으로 성장했고 인구 고령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2003년 열린 재정안정위원회에서 보험료 인상을 주장했더니 전문가 집단 내에서도 격렬한 반대가 나왔다. ‘경제 사정이 안 좋다는 이유로 지금 보험료를 안 올리면 나중에는 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결과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동안정장치를 도입해 출산율이 떨어지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면 자동적으로 연금을 조정하게끔 만든 국가들이 있다. 우리처럼 보험료 좀 올릴까, 급여 좀 깎을까 싸울 필요가 없다. 국민연금 개혁의 강도를 더 높여야 그런 나라와 비슷하게나마 갈까 말까 한 상황이다.”

-보험료는 매달 바로바로 빠져나가는 돈이기 때문에 올리면 반발이 심할 것 같다. 실제로 2018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대국민 인식조사를 보면 연금개혁 필요성에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더 내는 것엔 반대가 높았다.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정부와 전문가가 괜히 있나. 2007년 노무현 정부의 연금개혁이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정부가 사회구성원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 ‘원래는 이렇게 운영할 게 아니었는데 사회적으로 꼬였다, 다른 나라는 이미 진통 거치면서 바꿨다, 국민연금을 그냥 놔두면 기다리는 건 우리 사회의 총체적 붕괴밖에 없다’고 설명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그런 역할을 많이 했다. 지금은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설문조사 등을 하니 대답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다. 현 정부에 뼈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국민연금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제다. 국가의 운명이 걸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자신이 없다면 공론화라도 해야 한다. 부담스럽다고 이게 회피할 사안인가. 그러라고 180석 의석을 몰아준 것 아닌가.”

-노무현 정부의 연금개혁 당시에도 반발이 컸다. 그때 정부가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깎으면서 내민 당근이 기초연금 도입이었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 70%를 대상으로 매달 3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이런 기초연금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급 기준이 대상자의 소득과 자산을 폭넓게 포함해야지, 무조건 어떤 연령에 도달했다고 해서 주는 나라는 거의 없다. 한국의 노인 빈곤 문제는 절대빈곤에 노출된 노인들이 핵심이다. 70%에게 월 30만원을 준다고 이들의 빈곤이 나아질 것인가. 보편성을 포기하고 취약계층 위주로 선별해 그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최적화해 돈을 쓰자는 게 내 주장이었다. 빈곤에 노출된 하위 30%를 대상으로 ‘필요한 분들에게 최소한의 빈곤에서 벗어날 정도로는 보장하겠다’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무조건 반대한 게 아니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법에 지급 보장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나.

“연금제도가 지속불가능하게 된 건 국가가 운영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지급 보장을 명문화해서 못을 박아 놓으면 그 이후로 연금개혁이나 연금을 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논의를 아예 막아버릴 수 있다. ‘지급이 보장되는데 뭐하러 개혁하냐’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독일에 지급 보장 규정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 독일도 일본도 명문 규정이 없다. (신뢰 회복을 위해선) 지급 보장 명문화보다 재정안정화를 위한 장치 도입이 우선이다.”

-현 정부의 국민연금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다른 나라는 연금제도를 가급적 탈정치화했다. (적립금 규모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보다 내재된 문제가 한둘이 아니고 파괴력 있는 여러 이슈가 서로 얽혀 있는 중요 사안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우리는 이미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번 정부는 팩트를 숨기면서 논의했다. 글로벌 트렌드에서 굉장히 동떨어진 시각을 가진 소수의 전문가가 연금개편 논의를 주도하다 보니 국제사회에서도 웃음거리가 될 만한 안을 가지고 허송세월하면서 귀중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역대 정부 중 연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최악의 정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 정부의 역할과 과제는 뭐라고 보나.

“차기 정부는 정치중립적인 전문가들을 모아 최소한 국민연금 문제가 처한 상황을 왜곡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보고서를 만들면 좋겠다. 그 보고서를 바탕으로 정치권과 언론, 시민단체가 개편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공적 연금을 둘러싼 전체적인 사회보장 방안을 공론화하고 팩트를 가감없이 들춰내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연금개혁이 1~2년 늦어지더라도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본받을 만한 다른 나라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우선적으로 살펴야 한다. 국민연금의 개혁만큼은 진영이나 이념과 상관없이 정말 제대로 하기를 바란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2022.-2.14.

 

국민연금 목에 누가 ‘개혁 방울’ 달까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국민연금은 어렵다. 수십년 뒤 미래를 산술적으로 전망하기도 난해하지만, 가야 할 방향을 사회적으로 논의하는 일은 훨씬 더 힘들다. 최근 ‘1990년생부터 국민연금 못 받는다’란 보도자료(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가 나와 화제를 낳았다. 내용 자체는 새롭지 않다. 구체적으로 특정 세대, 특정 연도 출생자를 콕 집어 소환하는 바람에 여론 환기에 성공했다. 이들이 그 자료에 반응한 건 ‘불안감’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정확히 어떤 상태일까. 합계출산율 하락과 고령화라는 ‘정해진 미래’는 전망을 어둡게 한다. 적자 전환과 기금 고갈이라는 우울한 전망과 맞닥뜨린 우리 사회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걸까. 어떤 방향으로든 논의를 전개하려면 반박 불가능한 사실을 추려 최소한의 합의를 이뤄야 한다. 대선과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앞둔 현시점에서 국민연금 개혁의 현재와 미래를 짚었다.

사진 / 정지윤 기자 
사진 / 정지윤 기자



국민연금의 현재 좌표는 ‘국민연금은 2042년 적자를 내기 시작해 2057년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 재정건전성 도모를 위해 정부가 5년마다 실시하는 재정계산 결과를 한줄로 요약하면 이와 같다. 가장 최근에 나온 2018년 제4차 재정계산을 보면, 적자 발생과 기금 고갈 시점은 제3차 재정계산(2013년)보다 각각 2년, 3년 앞당겨졌다. 합계출산율(15~49세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기존 예상보다 가파르게 떨어지고 고령화가 빨라진 점이 영향을 미쳤다. 내년에 나올 5차 재정계산에서는 전망이 더 안 좋아질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4차 재정계산에서 출산율을 2017년 기준 1.2명, 2030년 1.32명, 2060년 1.38명으로 예상해 적용했는데, 5년 사이 출산율은 1.05명(2017년)에서 0.84명(2020년)으로 떨어졌다. 코로나19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통계청은 코로나19로 결혼과 출산이 줄어 2025년 출산율이 0.52명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지역가입자의 소득 규모도 더 줄어들 게 뻔하다. 이러한 악조건을 안고 올해 중순부터 위원회를 꾸려 국민연금의 미래를 논의할 예정이다.

국민연금의 핵심 키워드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다. 이 둘을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연금개혁의 뜨거운 화두다. 보험료율은 기준소득대비 보험료 납부액의 비중이다. 쉽게 말해 가입자가 ‘내는 돈’으로, 현재 9%다. 직장가입자들은 사용자와 반반씩 부담한다. 소득대체율(연금급여율)은 ‘받는 돈’이다. 40년 가입을 기준으로 납부자의 생애평균소득 대비 수령 연금액을 뜻한다. 현재 40%지만, 대체로 실제 가입기간은 40년에 못 미치기 때문에 ‘실질’ 소득대체율은 이보다 더 떨어진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12월 이 두 요소에 관한 네가지 대안을 내놨다. 현행유지안(소득대체율 40%, 보험료율 9%)이 첫 번째다. 두 번째 안은 국민연금을 그대로 유지하며 기초연금을 2022년부터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리는 내용이다. 3안은 소득대체율을 40→45%로 올리고 보험료율도 2031년까지 9→12%로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이다. 4안은 소득대체율을 40→50%로, 보험료율을 9→13%로 올린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기존과 비교해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이다. 어느 안도 채택하지 않았다. 대통령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에 ‘국민연금 개혁과 노후소득보장 특별위원회’를 꾸렸지만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연금개혁의 무산이었다.

세대 간 정의를 위해 국민연금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의제가 ‘세대’다. 특정 시점을 놓고 봤을 때 납부하는 세대와 받는 세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세대 간 부양’을 전제로 하는 국민연금의 성격상 인구의 급속한 노령화는 갈등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노년부양비(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부양할 고령인구)는 2020년 21.8에서 2040년 60.5, 2070년 100.6으로 증가한다. 이대로 가면 젊은이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순간도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와 맞물려 국민연금의 수익비(가입자가 가입 기간 납부한 보험료 총액의 현재가치 대비 생애 기간 받게 되는 연금급여 총액의 현재가치)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낸 것 대비 받는 것의 비율인데 국민연금에 빨리 가입한 세대일수록 더 높게 추산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월 227만원을 받는 평균소득자가 30년 동안 국민연금을 납부했을 때 수익비는 1945년생은 3.75배, 1975년생은 2.7배, 2015년생은 2.47배로 나타났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통상학과 교수는 “(수익비가 1배 넘는다는 건) 누군가 대신 부담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최고소득을 받는 가입자의 수익비도 1보다 높게 나온다. 소득이 높건 낮건 국민연금 수급자들이 모두 다음 세대에 부담을 넘기고 있다는 뜻”이라며 “수익비가 1배에 근접하도록 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익비와 부양비의 불균형은 국민연금의 위기를 앞당기는 결과로 이어진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2030년부턴 10년 뒤 적자라는 게 다 알려질 것 아닌가. 그때 과연 신규가입자가 국민연금을 납부하려 할까”라고 했다. 그는 “그때 가서 그들이 ‘우리가 결정한 것도 아니다. 이건 불공정한 계약’이라고 하면 앞 세대가 할 말이 하나도 없다. 기금 소진 이전에 적자로 진입할 때가 1차 위기”라고 말했다. “고령화는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국민연금의 수지불균형만큼은 현세대가 결정할 수 있다. 세대 간에 정의로운 방식으로 연금을 설계해야 한다”고도 했다. ‘특정 세대는 받기만(내기만) 한다’는 식의 인식 또한 경계대상이다. 국민연금의 근본적인 취지를 해치고 세대갈등을 키울 수 있어서다. 오건호 정책위원장은 “후세대는 나와 갈등관계가 아니라 바로 나의 자녀와 손주들이다. 객관적 정보를 공유하면 개혁은 오히려 쉬워지리라 본다”고 밝혔다.

 



건강보험과 달리 국민연금은 납부하는 시점과 수령하는 시점의 간극이 크다. 연금재정을 두고 ‘40년 뒤 제대로 수령할 수 있을까’라는 불신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배경이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그동안 ‘경제적으로 어렵다’, ‘올리기 쉽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보험료율은 안 올리고 급여만 깎았다”며 “이제 더 이상 그 방향의 개혁은 안 될 것 같다. 적립금을 소진하지 않으려면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베이비붐 세대가 완전히 연금 수령 세대로 편입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보험료율 상승) 부담을 함께 지게끔 해야 한다. 그것이 MZ세대와의 상생을 도모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보험료율은 무척 예민한 뇌관이다. 보험료율은 1988년 3%로 시작해 1993년 6%, 1998년 9%로 오른 이래 24년째 바뀌지 않았다. 1998년과 2007년 두차례 연금개혁을 단행했지만 보험료율은 건드리지 않았다. 개혁 과정에서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1차 개혁), 40%(2차 개혁)로 깎은 것과 대비된다. 보험료는 당장 매달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돈이어서 상승 저항감이 만만치 않다. 보건복지부 설문조사(2018년)를 보면, 일반 국민은 현행 보험료가 부담된다는 응답(63.4%)이 가장 높았다. ‘더 내고 더 받기’(27.7%)나 ‘덜 내고 덜 받기’(19.8%)보다 ‘현 제도 유지’(47%)를 원했다.

한국의 보험료율은 독일(18.6%), 미국(12.4%), 일본(18.3%)에 비해서도 크게 낮다. 4차 재정계산에 따르면 현 수준의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려면 미래세대가 내야 할 보험료율은 적자로 돌아서는 2041년 15.6%, 기금이 소진되는 2057년 24.6%로 상승한다. 재정계산 최종연도인 2088년엔 28.8%까지 치솟는다. 받을 사람은 느는데 낼 사람은 줄어드는 사회의 필연적 귀결이다.

첫 단추부터 난항 국민연금 논의 지형을 들여다보면 전문가 집단 내에서도 ‘국민연금이 진짜 위기인가’를 둘러싸고 전제부터 의견이 엇갈린다. 이른바 ‘더 내는 구조로 가야 한다’는 주장의 핵심은 국민연금 재정이 이대로라면 도저히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 기반한다. 쌓아둔 적립금이 있다 한들 머지않아 고갈되고, 미래세대의 부담이 무척 커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이다. 기금 고갈의 우려가 지나치다는 쪽도 있다. 김연명 교수(중앙대 사회복지학부)가 대표적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에서 후보자 직속 신복지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연명 교수는 캠프 입장과 무관한 사적 견해임을 전제로 “2057년 기금 고갈은 실제로 일어날 일이 없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는 “2057년 노인인구(전체의 약 40%로 예상)에 지급해야 할 국민연금, 기초연금, 특수직역연금을 다 합쳐도 GDP 대비 7.5% 수준이다. 이미 유럽은 GDP 대비 10% 정도를 연금에 지출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지금처럼 지속성장하면 2060년 GDP 대비 10~11%를 연금에 지출하는 건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현재 GDP 대비 연금 지출이 2%대임을 고려하면 지출 폭이 외국에 비해 크고 빠르게 증가하리란 우려가 나온다. 김 교수는 “현재 보험료를 임금소득에만 부과하고 있으니 (노동인구가 줄면) 기금이 고갈된다고 가정하는데,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 임금소득만으로 보험료를 충당한다는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로봇세 등 새로운 재원을 동원하고, 일부 모자라는 부분은 보험료를 조금 올려 충당하면 충분히 부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견해가 연금학계에서 주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점은 김연명 교수가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사회수석을 지냈고 그 전후로도 연금재정에 대한 일관된 해석을 밝혀왔다는 사실이다. 이쪽에서 보기에 국민연금 문제에서 급한 건 실제 노후 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다.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소득대체율 인상을 공약한 것과도 궤를 같이한다.

최근 시민단체인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역시 ‘20대 대선 공적연금 요구안’을 발표해 소득대체율 인상과 지급 보장 명문화, 최소가입기간(10년) 보장을 위한 크레딧(실업·육아 등으로 인한 미납부 기간을 가입기간으로 인정해주는 제도) 확대를 촉구했다. 오종헌 사무국장은 “소득대체율을 여기서 더 내리면 국민연금은 더 이상 연금으로 기능하기 어렵다. 연금 액수가 최저생계급여조차 충족하지 못한다면 그게 오히려 후세대의 부담”이라고 했다. 김연명 교수 또한 “연금을 깎으면 노인의 내수가 줄어들어 경제에 더 치명적 영향을 주고 후세대의 기반을 무너뜨린다”며 “연금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적정수준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 세대가 연금을 많이 받으면 자녀 세대의 사적 부양 부담이 줄어들지 않나. 이런 것까지 고려해 세대 간 형평을 따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장이 팽팽하다. 양측 모두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정확한 정보’가 무엇인지 해석이 각기 다르고, 같은 통계와 해외 사례를 두고도 다른 주장을 펼친다. 여기에 국민연금 가입자단체, 보험료 일부를 부담하는 사용자단체들의 이해관계까지 얽히며 논의는 꼬인 실타래가 돼버렸다. 영국이 연금개혁을 하면서 최소한 “상태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도록” 한 것과 대비된다. 영국 연금개혁 정치를 다룬 책 <코끼리 쉽게 옮기기>(후마니타스)를 보면, 영국은 사실을 바탕으로 기초 보고서를 만들어 국민에게 “노후에 대한 막연한 생각에서 벗어나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를 제공했다. “연금위원회가 정확한 사실을 제공해 누구도 개혁의 필요성과 방향을 부정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 저자 김영순 교수(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의 분석이다. 이에 비춰보면 한국은 가장 첫 단계부터 난항에 직면했다.

미루지 않고, 어떻게? 시점을 뒤로 늦출수록 부담은 더 커지는 것이 연금개혁의 특성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결론을 내지 않아 공은 차기 정부로 넘어갔다. 2023년 나올 5차 재정계산은 5년 전보다 나빠진 전망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라는 악재까지 더해졌다. 여전히 43.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은 노인빈곤율 또한 국민연금의 과제다.

국민연금 전망은 인구 추계를 볼 때 앞으로는 ‘지금처럼 내고 지금처럼 받는 것’은 어렵다는 쪽으로 대체로 수렴한다. 지금처럼 받거나 더 받고 싶거든 더 내라는 얘기다. 오건호 정책위원장은 “보험료를 인상하면 도시 지역가입자(약 400만명)가 가장 힘들어진다. 이들에 대한 정부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보험료율을 살짝 올리는 정도는 합의 없이도 할 수 있겠지만, 노후 보장 체계를 전반적으로 손봐서 정합성을 갖춘 제도를 만드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매번 소모적으로 논의되는 것을 방지할 방법으로는 자동안정장치가 거론된다. 자동안정장치는 평균수명과 가입자 대비 수급자의 부양 비율, 즉 인구구조의 변동에 보험료나 소득대체율을 자동 연동하는 제도다. OECD 36개국 중 19개 나라가 채택했다. 김원식 교수는 “이는 국민연금 재정에 대한 가입자의 불안을 줄이는 효과가 있고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정권 변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연금개혁위원회를 조직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자발적으로 연금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무지의 베일’이 필요해 모두를 위해 더 나은 결정을 할 순 없을까. 석재은 교수는 연금개혁 논의에서 ‘무지의 베일’을 제안했다. 무지의 베일은 20세기 윤리철학자 존 롤스가 소개한 개념으로, 베일을 덮어썼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결정을 내릴 때 자신을 둘러싼 이해관계, 어떤 것이 나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를 가리고 사고하는 상태를 뜻한다. 롤스는 이 무지의 베일을 통해 사회구성원이 공정한 사회정의를 채택하게 된다고 봤다. 어디까지나 윤리적 지향인 만큼 실재하진 않지만, 국민연금 논의에 뛰어든 주체들에게 교훈은 될 수 있다. 석재은 교수는 “연금개혁이란 세대 간 자원 배분의 계약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가진 자원을 어떻게 조합해서 배분을 최적화할지에 관한 대계, 큰 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지의 베일이 작동해야 하는 장은 결국 정치다. 정치를 통해 각종 이해관계가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가장 치열한 정치의 시간, 대선을 한달 앞둔 현시점에서 국민연금 개혁 문제는 수면 아래 놓여 있다. 2월 3일 저녁 열린 방송 3사 합동 초청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이재명·윤석열·안철수·심상정 후보는 국민연금 개혁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선에서 논의를 매듭지었다. 21대 국회에서도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개정을 다룬 법안은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흔히 연금개혁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비유한다. 보험료율 인상이나 소득대체율 인하처럼 국민정서를 거스르는 논의를 필연적으로 수반해서다. 정치인으로선 쉽게 총대를 메기 어려운 주제다. 오건호 정책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이 국민연금 재정심각성을 아직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방울을 달기 위해 갔다가 고양이한테 죽을 수 있다. 하지만 재정 상태를 제대로 설파하고 간다면 호랑이를 잡는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인정을 받을 것이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