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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생태-기후정치

경향 3. 육지보다 10년 앞선 제주의 전기차 시대…내연차도 늘어 탄소중립 더 멀어졌다

by 원시 2022. 1. 15.

제주도.

 

육지보다 10년 앞선 제주의 전기차 시대…내연차도 늘어 탄소중립 더 멀어졌다

박미라·박은하 기자
입력 : 2022.01.13 06:00 수정 : 2022.01.13 15:26

전기차 충전기, 돌하르방보다 많다는데

태양광 패널과 전기차 충전기가 설치된 제주시 일도이동 모로왓 제2공영주차장에서 전기트럭이 충전을 하고 있다. 제주는 2012년 ‘탄소배출 없는 섬(CFI)’ 정책을 시행한 이후 지난해 11월 말까지 전기차는 총 2만5381대가 보급됐고, 전기차 충전기는 1만9496대가 설치됐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돌하르방보다 더 흔한 전기차 충전기 ‘2만대’

“제주도가 ‘탄소배출 없는 섬(CFI·Carbon Free Island)’ 정책을 선언한 이듬해인 2013년이었어요. 도가 도민 대상으로 전기차를 보급한다는 소식에 고민 없이 공모에 참여했어요. 그때만 해도 경쟁이 너무 치열해 추첨에서 떨어지고 말았죠.”

맞벌이 부부인 강지훈씨(42)는 당시 아이 양육을 위해 처가가 있는 제주시 외곽으로 이사해 직장과의 거리가 크게 멀어졌다. 강씨의 한 해 평균 주행거리는 2만5000~2만7000㎞. 제주에서도 자동차를 많이 운행하는 편에 속했다. 미국의 이란 제재 여파로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던 때였다. “승용차 기름값만 한 달에 50만원 안팎이었으니 무시할 수 없었죠. 이럴 때 도에서 전국 최초로 민간을 대상으로 전기차를 보급한다고 하자 관심이 대단했어요.” 이전까지 전기차는 공공기관의 주정차 단속용 차량으로만 쓰이고 있었다.

강씨는 이듬해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에 재응모해 선정됐다. 당시만 해도 보조금이 2300만원에 달해 2100만원만 부담하면 전기차를 살 수 있었고, 700만원 상당의 가정용 충전기 설치비도 지원됐다. 2019년 초까지 제주도가 운영하는 공영충전기는 요금도 무료였다. “제주도청 주차장 충전기 앞은 언제나 공짜로 충전하려고 몰려든 차들로 북적거렸죠. ‘충전 다 됐는데, 왜 차 안 빼냐’ ‘내 충전 순서다’ 등 싸움도 잦았어요.”

전기차 비중 6.3%로 전국서 최고
과잉 전력 충전 땐 ‘포인트’ 지급도

‘해·바람 충전’ 등 인프라 개선에도
보조금 낮아지고 차 가격 오르면서
전기차는 제주에서도 여전히 소수

제주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보이는 성산읍 오조리의 한 식당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기가 자리하고 있다. 제주에는 관공서와 숙박시설, 식당, 관광지 등에 전기차 충전기가 2만대 가까이 설치돼있다. 강윤중 기자

제주의 전기차 시대는 육지보다 10년 먼저 찾아왔다. 제주는 2012년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자립을 위한 ‘탄소배출 없는 섬’ 계획을 수립, 2030년까지 전체 등록 자동차의 75%를 전기차로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30년부터는 신규 내연기관차는 등록을 받지 않겠다고도 했다.

제주는 2013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민간에 전기차 160대를 보급한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2000~7000대의 전기차를 보급했다. 전기차 보급은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더불어 ‘탄소배출 없는 제주’를 만들어 낼 핵심 기둥이었으며, 도민 입장에서 가장 피부에 와닿는 변화였다.

어느덧 제주의 도로에서 ‘하늘색’ 번호판을 단 전기차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개인주택과 상가, 관광지, 관공서 등 곳곳에 보급된 1만9496대의 전기차 충전기는 지역 상징물인 돌하르방보다 더 자주 눈에 띈다.

제주의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지난해 11월 말 기준 2만5381대. 전체 차량 대비 전기차 비중은 6.3%로 전국 평균(0.9%)을 크게 상회하며 전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높다. 지난 10년 전기차 보급을 통해 제주가 먼저 경험한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카본 프리 아일랜드’에는 얼마나 가깝게 다가섰을까.

바람 부는 날엔 충전하러 가자

‘해와 바람으로 충전하는 시간 안내해드립니다. 플러스DR(수요반응) 시간: 12월7일 11:00~15:00(4시간), 혜택: 1kWh당 100G포인트, 참여에 따른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지난달 6일 오후 고성민씨(53)의 휴대전화에 한 통의 알림이 도착했다. 다음날 해당 시간에 전기차 충전을 하면 전기 사용량에 따라 포인트를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스카이블루라는 앱을 설치해 서비스를 신청하면 알림이 와요. 공지된 시간에 맞춰 지정 충전기에서 충전하면 kWh당 포인트를 적립받죠.”

제주에서는 최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크게 늘어나 전력수요를 넘어설 때가 있다. 이럴 때 알림이 온다. 전력 과잉공급이 예상되는 시간대에 특정 충전기에서 전기차 충전으로 전력 사용량을 늘리고 이용자들은 보상을 받는 식이다. 전력당국은 재생에너지 과다생산으로 인한 전력망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고, 전기차 충전자는 제주 지역화폐인 ‘탐나는전’ 등으로 전환해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햇빛과 바람의 양에 따라 들쭉날쭉한 신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을 조절하는 일종의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전기차 배터리가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전기차 충전기 플러스DR 시범사업’은 지난해 9월30일 제주도와 한국전력공사, (주)그리드위즈가 협약을 맺고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작했다. 이런 형식의 사업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집밥(집에서 충전)’ 서비스도 자주 이용해요.” 집밥 서비스는 미리 고지된 전기사용량이 많은 특정 시간대에 개인용 충전기를 사용해 평균 사용량보다 충전량을 줄이면 줄인 만큼 포인트로 보상을 받는 제도다. 고씨는 플러스DR에 집밥 서비스까지 참여하다 보니 벌써 4만5600여포인트를 적립했다. 고씨는 DR과 집밥 서비스를 통해 수요와 공급에 맞춰 전력사용 요금이 달라지는 신재생에너지 체계를 자연스레 익히고 있었다.

대구에 살던 황도희씨(40)는 2016년 제주를 여행하다 전기 렌터카를 접하고, 본인의 내연차량을 전기차로 바꿨다. 이후 2019년 제주로 이주해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집에 살게 되자 차량 유지비는 더욱 저렴해졌다. “성능, 유지비 다 만족해요. 친환경 실천을 한다는 뿌듯함도 덤으로 따라옵니다.”

그는 최근 회사 차량 1대도 전기차로 바꿨다. 황씨에게 전기차는 이동식 배터리로도 활용하는 ‘이동 수단 이상’이다. “드론을 이용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전기차 배터리로 외부 전기제품에 전원을 공급하는 기능(V2L·Vehicle to Load)이 매우 유용해요. 800만~1000만원 되는 드론 배터리를 별도로 구매해 무겁게 들고 다닐 필요 없이 전기차에서 드론을 충전하면 되거든요. 나머지 2대의 회사 차량도 곧 전기차로 교체할 겁니다.”

가속 붙지 않는 전기차 보급

‘전기차 마니아’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여전히 제주에서 전기차는 소수다. 제주도는 지난해까지 목표한 전기차 보급 대수(4만4244대)를 채우지 못했다. 보조금은 낮아진 반면 차 가격은 오르면서 보급 속도가 더뎌졌다.

1회 충전에 따른 주행거리가 크게 늘었으나 충전에 대한 부담감도 여전하다. 전기차의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기도 한다.

강지훈씨는 지난해 중고로 디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추가로 구매했다. 전기차 가격과 충전 부담 때문이었다. “기존 전기차는 아이 통학용으로 아내에게 넘겼어요. 마침 일 때문에 트렁크가 넉넉한 차량이 필요했거든요. 전기차는 예전과 달리 보조금은 줄고 차 가격은 올라 선뜻 구매할 엄두가 안 났어요. 몇십분에서 몇시간까지 번번이 충전하는 것도 사실 번거로운 일이거든요.”

지난해 제주도에서 지원한 전기차 보조금은 1250만원(국비 800만원+도비 450만원)으로, 강씨가 첫 전기차를 구매했던 2014년에 비해 절반으로 떨어졌다. 제주도 관계자는 “올해 전기차 보조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지난해보다 더 낮아질 것”이라며 “보급 초기에 비해 전기차 수요는 늘고 예산은 한정된 만큼 보조금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언제까지 보조금에 의존해 전기차를 보급할 수만도 없다”고 했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망고 농사를 짓는 전병진씨(55)는 농업용 1t트럭과 승용차를 전기차로 바꾸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2018년 보조금을 받아 승용차를 교체하려고 문의했으나 6개월에서 길게는 1년씩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도 가야 해 승용차가 필요하거든요.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경유차로 바꿨습니다. 일단 샀으니 10년은 이 차를 타겠죠.”

전씨는 지난해에는 전기트럭 교체를 시도했으나 역시 1년 넘게 대기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전기차 배터리 수급이나 원자재 공급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서 사고 싶다고 바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전기 화물차는 최근 승용차에 비해 보조금 지원이 많아 농촌지역의 수요가 더욱 몰리고 있다.

강한영 제주전기차이용자협회 회장은 “전기차는 생계 활동으로 주행거리가 긴 이들에게 더욱 필요한데 최근 인기 있는 차들은 4000만원 이상 자부담해야 하고, 차종도 다양하지 않다”며 “전기차가 서민에게는 부담스러운 고급차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도청 내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소가 설치돼 있다. 제주에서는 전기차와 전기차 충전기를 이용한 각종 시범사업이 추진 중이다. 강윤중 기자

전기차 늘었지만 내연차는 ‘더’ 늘어

“차로 20분이면 가던 곳인데 언제부터인가 40분, 길게는 1시간까지 걸리는 거예요. 출퇴근 시간이 너무 길어졌다며 직장 근처로 이사하는 직원들도 나오기 시작했어요. 제주에서도 교통체증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줄은 몰랐네요.” 서울에 살다 2014년 제주로 이주한 이재훈씨(43)가 말했다.

탄소배출 없는 섬 정책 추진 10년, 공교롭게도 제주의 도로는 더욱 혼잡해졌고 주차난은 가중됐다. 제주를 달리는 자동차 수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1년 25만7154대에서 2021년 40만2416대(제주에 등록됐지만 다른 지역에서 운행하는 역외 세입 차량 제외)로 10년 사이 56.4% 증가했다. 전기차가 2만5000여대 늘어나는 동안 내연기관 차는 그의 5배가량인 12만대 급증했다.

제주도는 인구 유입이 늘다보니 불가피하게 차량 증가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단순히 인구가 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해 제주 지역의 1인당 차량 보유 대수는 0.595대로 전국 평균(0.481대)을 뛰어넘는다. 가구당 차량 보유 대수 역시 1.310대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다른 지역에 비해 제주도민이 차량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인데, 제주지역 특성상 자동차 없이 이동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제주는 제주시와 서귀포시 도심을 벗어나면 마을이 띄엄띄엄 있는 농어촌이 대부분이다. 제주도는 버스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2017년 버스우선차로 신설과 준공영제 시행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대대적인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실시했다. 대중교통 이용 만족도는 올라갔지만 수송 분담률 개선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제주의 버스 수송분담률은 대중교통 개편 이후에도 14%대에 머무르고 있다.

제주의 핵심 먹거리인 관광산업 역시 렌터카 위주로 돌아간다. 렌터카는 지난해 2만9800여대로, 10년 만에 갑절 가까이 늘었다. 최근엔 렌터카를 타고 내비게이션을 따라 시골 깊숙이 숨겨진 ‘인스타 핫플’을 찾아다니는 게 인기 있는 여행방식이 됐다. 제주도는 빠르게 늘어나는 렌터카의 수요관리를 위한 렌터카 총량제를 추진했으나 업계와의 소송에서 번번이 패소하면서 정책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온실가스가 줄어들 수 없는 구조다.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등 각종 차량들이 지난달 6일 퇴근시간 제주시 노형오거리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운행하고 있다. 최근 제주의 인구유입이 늘면서 차량도 함께 급증해 교통체증과 주차난이 심해지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더 늘어난 도로 위 탄소배출

전기차를 타고 ‘탄소배출 없는 섬’을 향해 달려온 지난 10년간 제주지역 도로 위의 탄소는 전혀 줄지 않았고 되레 늘어났다.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가 발표한 지역별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면 제주지역 도로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1년 107만4000t에서 2019년 146만8000t으로 37% 늘었다. ‘2030년 제주특별자치도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에서 예측한 2025년 도로수송 탄소배출량 전망치(146만2000t)도 뛰어넘었다.

김정도 탈핵·기후위기 제주행동 실행위원장은 “승용차 이용을 억제하거나 대중교통, 자전거, 보행 이동을 촉진하는 정책보다 도로 건설과 확장, 전기차 보급 확대와 같은 자동차 이용 중심 정책이 우선되면서 온실가스 감축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자동차 수요관리 없이 전기차 공급에만 치중하다보니 내연기관차에 전기차를 더한 ‘1+1’ 정책이 됐고, 교통과 환경문제를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삼나무를 벌채해 도로를 넓히는 비자림로 확장 공사 문제도 몇년째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제주가 전기차 보급에 앞장선 노력은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전문위원은 “제주도가 먼저 전기차 보급을 시작하고 기반을 닦아 놓은 것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한다”며 “자동차 수가 전체적으로 늘었지만 내연차 2대를 보유하던 가정이 전기차와 내연차 1대씩으로 재편했다면 그 역시 성과”라고 했다. 전기차 전환 초기 과정에서 각종 문제가 부각될 수 있지만 길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제주의 전기 렌터카도 체험해본 관광객들의 전기차 교체의 계기가 되는 등 전기차 대중화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만으론 탄소 감축 안 돼

‘전기차 보급’을 핵심으로 하는 탄소 중립 정책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정부는 2030년 수송 분야의 탄소배출량을 2018년 대비 37.8%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전기·수소차 450만대를 보급하고, 내연차 총 주행거리를 4.5% 줄이겠다고 밝혔다.

고속철도역과 중소도시를 연결하는 간선급행버스(BRT)·광역급행버스 확대, 환승센터 구축 등을 통한 대중교통수단 다양화 방안도 있다. 내연차 주행거리 감축을 위한 주차요금 개선, 단계적 차량 부제 시행, 공유 모빌리티 활성화 등이 제시됐다.

전기차 보급이 육지에서는 어떤 상황일까. 제주에서 처음 전기차 보급이 시작됐을 때 한 번 충전 시 주행거리는 200㎞ 수준이었다. 현재 기아 EV6롱레인지의 경우 주행거리가 475㎞이다. 해외에서는 주행거리 500~1000㎞ 차량도 나오고 있다. 올해부터 새 아파트는 총 주차면수의 5%, 이미 지어진 아파트는 2% 이상 규모로 전기차 충전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자동차업계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GM, 포드 등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2040년대까지 내연차 생산 중단계획을 밝힌 상태이다. 현대자동차·기아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전기차의 성능은 개선됐고 문턱은 낮아졌다. 하지만 전기차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부산시민 김정선씨(36)는 “골목길이 좁은 구도심 빌라나 오래된 아파트에서는 충전기를 설치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 신축아파트로 이사 가지 않는 한 전기차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세종에 사는 이진아씨(42)는 “자동차로 매일 출퇴근도 해야 하고, 아이도 어린이집에 데려다줘야 한다. 빨리 살 수 있는 차를 살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내연차(2467만9658대)는 44만8641대, 전기차(23만1443대)는 9만6481대 늘었다. 증가율은 전기차가 높지만 내연차가 절대적으로 많이 증가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2030년 국내 차량 대수는 2500만대로 전망되는데, 정부가 전기차 보급 목표(450만대)를 달성해도 80%는 내연차다.

이재영 대전세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30년까지 전기차 보급 목표를 달성해도 온실가스 감축 규모는 430만t 정도로, 도로 부분 탄소 감축 목표의 11.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자동차를 버릴 수 있을까

시민들의 자동차 보유 비율이 전국 최고 수준인 제주에서는 최근 승용차 이용을 줄이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손상훈 제주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10월 승용차를 이용하는 제주도민 201명에게 어떤 환경 변화가 있을 때 승용차 대신 버스를 이용할지를 물었다. 응답자들은 ‘정류장까지의 거리와 시간 단축, 대기시간과 통행시간의 단축’을 가장 높은 비중으로 꼽았다. 보행과 자전거 이용환경에 있어서는 ‘안전한 자전거 전용도로 추가 확보’ ‘밝고 오픈된 보행공간 확보’를 원했다. 편리하고 안전한 환경이 1순위로 꼽힌 셈이다.

시민들은 대체 교통수단이 활성화될 때뿐만 아니라 승용차 보유가 ‘불편’해질 때도 차를 포기하겠다고 답했다. 손 연구위원은 “월별 일정 요금을 지불하고 희망하는 교통수단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구독 서비스인 ‘마스(MaaS)’ 시행, 도시철도와 같은 신규 대중교통 수단이 시행될 때 등은 물론 주차요금이 부과되거나 증가될수록, 혼잡통행료나 환경세 부과 및 자동차 보유세가 증가할수록 기존 보유하는 승용차를 줄일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교통수단에 대한 풍부한 정보도 시민들을 대체 교통수단으로 가게 만들 확률을 높여준다.

손 연구위원은 “버스 노선에 대한 지식이 증가할수록 버스 이용 의향이 높게 나왔다”며 “대체 교통수단에 대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할 때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는 2015년 ‘스마트 트립 오스틴’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프로그램 홍보대사가 주민을 1 대 1로 만나 평소 가보고 싶은 곳과 출퇴근길, 등·하굣길 등에 대해 편리하게 다닐 방법을 알려주는 교통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6만명 넘게 참여해 자동차 이용을 줄인 데 기여한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다.

안재홍 제주녹색당 정책위원장은 “‘자동차 없는 사회가 과연 가능한지’ 등 어렵지만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만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쉼터·그늘 없는 거리를 걷고 구릉 많은 길을 자전거로 다니라는 등 어려운 조건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며 “차선을 줄여 걷기 좋은 도로를 만들고 자전거를 안전하게 타고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시구조를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강연주 강윤중 권도현 김한솔 박미라 박은하

■자동차 지옥 ‘노면전차’ 타고 탈출해 볼까

프랑스 제2의 도시 리옹의 트램 정거장 주변으로 시민들이 걸어다니고 있다. 리옹은 보행자, 대중교통, 자동차, 자전거가 균등하게 도로를 점유하는 방식으로 도시구조를 개편하기로 결정하고 2001년부터 트램을 도입했다. 대전세종연구원 제공


인구 줄며 밀도 낮아진 지방 도시
경제·환경 고려, 트램에 눈돌려
착공한 서울 위례선 비롯해
대전·부산·울산 등 설치 추진


“운전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 승용차를 이용해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이곳도 서울만큼 대중교통이 잘돼 있다면 굳이 차를 사지 않았겠죠. 하지만 차 없이 살려면 너무 불편해요.” 충북 청주시에 사는 반주영씨의 얘기다.

청주시의 인구는 약 85만명이다. 수도권인 경기 성남시 인구(약 93만명)보다 적지만 면적은 청주(940.3㎢)가 성남(141.6㎢)보다 6배 이상 넓다. 청원군을 통합하고 청주 도심 외곽에 오송·오창 신도시를 개발해 면적이 넓어졌다. 새 아파트가 즐비한 신도시로 도심에 살던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도시의 밀도는 느슨해졌다. 밀도가 느슨한 도시에서 대중교통을 운영하려면 돈이 더 든다. 정부가 대중교통에 돈을 쓰는 일도, 시민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도 점점 더 비효율적인 일이 되고 만다. 지방 도시들이 빠진 ‘자동차 개미지옥’이다.

도시를 살리고 교통 부문의 탄소배출도 줄일 묘수로 트램(노면전차)이 떠오르고 있다. 서울 위례선이 2025년 개통을 목표로 착공했으며, 대전과 부산도 트램 설치를 확정짓고 노선, 차종 등을 논의하고 있다. 청주, 성남, 인천, 대구, 울산, 고양, 창원, 부천, 시흥, 구미 등도 트램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트램은 1960년대 지하철과 자동차에 밀려 세계 각지에서 퇴출됐지만 1990년대 이후 부활하고 있다. 지하철보다 건설비용이 저렴하고, 오염물질을 덜 배출하고, 바닥과 지면 높이가 비슷해 휠체어를 탄 사람이나 노약자들도 쉽게 탑승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세계대중교통협회(UITP)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 세계 389개 도시가 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트램 도입을 추진하는 국내 도시들이 롤모델로 곧잘 드는 도시는 프랑스의 리옹이다. 프랑스 제2 광역도시인 리옹의 인구는 150만명으로, 대도시답게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았다. 지하철 노선을 4개까지 늘렸지만 1986~1995년 자동차 대수는 38% 증가했다. 2001년 트램 2개 노선이 개통한 뒤로 변화가 찾아왔다. 자동차 대수는 2006~2015년 11% 감소했다. 자동차 없는 가구의 비율은 22%에서 29%로 늘었다. 1995~2015년 자동차의 수송분담률은 53%에서 44%로 떨어졌고, 대중교통 이용률은 13%에서 19%로 높아졌다.

이 같은 변화는 트램이 도시구조를 바꾼다는 목표를 갖고 계획적으로 설계돼 가능했다.

리옹은 1992년 교통계획을 수립하면서 시민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보행, 자전거, 대중교통, 자동차 간 균등한 공간분할을 원칙으로 하는 도시개조 계획에 찬성한다는 여론이 만들어졌다. 리옹의 트램 노선은 총 7개이다.

국내 도시들도 트램을 도입해 자동차를 줄일 수 있을까. 트램 도입 찬성 여론이 높아졌다는 점은 희망적인 부분이다. 자동차를 대중교통으로 어느 정도 대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전보다 높아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시민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트램을 추진하는 도시는 많지 않다. 오히려 정부가 밀어주는 신기술을 얼마나 빨리 채택하느냐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이 국가 연구·개발(R&D)사업으로 개발하고 있는 리튬이온배터리를 활용한 트램을 들여오려다 경제성과 안전성 문제가 불거진 부산, 대전이나 아직 미성숙한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는 수소트램 도입을 추진하는 울산이 대표적이다.

교통체계 전반에 대한 고민 없이 ‘신기술’에만 초점을 맞춰 트램을 들여오면 전기차, 수소차, 버스, 트램이 뒤섞여 총교통량만 많아지는 도시가 될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램을 통해 탄소감축을 이뤄내려면 단지 트램만 도입할 것이 아니라, 도시의 통합교통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잘 운영할 수 있는 민주적 운영체계까지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유자전거 체계를 활성화하고 자전거 전용도로도 대폭 늘려 트램 정거장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하고, 버스 노선과 트램 노선의 유기적인 연결성을 높이는 방안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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