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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의 내일은 올까
김지환 기자입력 : 2022.02.13 10:29
태안화력 1·2호기 운영 중단 땐 비정규직 누군가는 그만둬야
한국서부발전 태안석탄화력발전소 전경 /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 전체대표자회의 제공
2016년 9월부터 한국서부발전 태안석탄화력발전소 2차 하청업체에서 전기 분야 정비를 맡고 있는 김영훈씨(29)는 소속 업체가 벌써 3번이나 바뀌었다. 담당하는 업무와 상주하는 사무실은 그대로인데 작업복에 적힌 업체명만 달라졌다. 한국서부발전으로부터 경상정비 도급을 받은 공기업 한전KPS가 대개 1년 단위로 입찰공고를 내고 재하도급 업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은 승계되지만 업체가 바뀌는 탓에 늘 ‘신입사원’이다. 호봉 상승이나 직급도 없고 ‘제로베이스’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2단계 도급 과정을 거치면서 인건비 ‘중간착취’가 발생해 원청·1차 하청업체에 비해 임금 수준도 낮다. 김씨는 “숙련도가 높아지면 임금도 올라야 하는데 늘 제자리걸음”이라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2차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건뿐 아니라 정부의 에너지전환 과정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해도 발전사 정규직은 전원 재배치하지만 가장 ‘약한 고리’인 2차 하청노동자들은 벌써부터 일자리를 잃고 있다. 특히 2차 하청업체들은 노동조합이 잘 조직돼 있지 않은데다 지역 기반의 소규모 업체들이 많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과정에서 목소리를 외부에 알리는 일조차 쉽지 않다.
“내일모레 우린 없어지겠구나.” 김씨는 최근 동료들과 가끔 이런 농담을 주고받는다. 태안화력발전소 폐쇄 시점이 불과 몇년 남지 않아서다.
정부는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라 2020년 현재 60기인 석탄화력발전소를 2034년까지 30기로 줄이고, 이중 24기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태안화력발전소는 2025년까지 1·2호기, 2028년까지 3호기, 2029년까지 4호기 운영을 중단한다. 올해 말 확정하는 10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선 폐쇄 일정을 더 앞당길 가능성도 있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당초 26.3%에서 40%로 상향 조정했기 때문이다.
석탄화력발전소 내부 모습 /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 전체대표자회의 제공
■발전소 폐쇄는 ‘사망선고’
김씨는 탈석탄 정책에 따른 고용불안을 호소했다. “동료들은 머지않아 눈 앞에 펼쳐질 현실이어서 많이 불안해하고 있다. 에너지전환은 전 세계적 흐름이기 때문에 거스를 수도 없다.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에서 일하면서 사회를 위해 기여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런 대책도 없이 밖으로 내몰리는 느낌이다.”
다른 2차 하청업체에서 기계 분야 정비를 맡고 있는 최동식씨(36) 역시 막막한 심정이다. “잘린다고 생각하니 ‘어디 가서 뭐 먹고 살지’라는 고민이 든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하다. 특히 태안은 발전소를 빼면 주로 관광업, 농·어업이라 일자리가 많지 않다.”
송상표 공공운수노조 금화PSC지부장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시한부 선고’에 비유했다. “하청노동자들은 2025년까지 3년밖에 더 살 수 없다는 사망선고를 받아놓고 일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시간은 흘러가는데 고용보장 대책은 없다.” 금화PSC는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를 발전소로부터 도급받는 1차 하청업체다.
2025년 1·2호기를 폐쇄하면 2차 하청노동자들 사이에서 ‘오징어게임’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씨가 속해 있는 업체는 크게 3팀으로 나뉘어 있다. 1~4호기는 1팀(6명), 7~8호기는 2팀(3명), 9~10호기는 3팀(5명)이 맡고 있다. 1·2호기 운영을 중단하면 당장 14명 중 나가야 할 사람을 정해야 한다. 김씨는 “14명은 서로 한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 말 업체 변경 과정에서도 예전보다 도급비가 낮게 책정돼 한명이 나가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월급이 깎여도 같이 가자’고 이야기가 돼서 14명 모두 계속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대’의 정신이 이처럼 살아 있지만 1·2호기를 폐쇄하면 누군가는 짐을 쌀 수밖에 없다.
하청노동자들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놓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온도 차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 전체대표자회의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2만5440명이다. 이중 정규직이 1만3846명, 비정규직(청소·경비·시설 자회사, 경상정비, 연료·환경설비 운전)이 1만1594명이다.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의 내일은 올까
■정규직·비정규직 간 온도 차
발전소를 순차적으로 폐지하는 과정에서 정규직은 칼바람을 피해갔지만 하청업체 비정규직들은 구조조정을 피하지 못했다. 서천 1·2호기, 영동 1·2호기, 보령 1·2호기, 삼천포 1·2호기 등 이미 폐기한 석탄발전 8기에서 일하던 발전사 정규직 601명은 전원 재배치됐다. 하청업체 노동자들(667명)은 그러나 재배치 606명, 정년 22명, 감축 39명이었다. 지난해 12월 31일 폐쇄한 호남 1·2호기에선 12명, 올해 1월 31일 폐쇄한 울산 4~6호기에선 20명을 계약 해지했다. 이들은 모두 경상정비를 담당하던 2차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최씨는 “원청이나 공기업인 한전KPS 노동자들은 폐쇄에 신경을 덜 쓴다. 전국에 사업장이 있으니 다른 곳으로 가거나 같은 사업장 내 다른 파트로 옮겨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 기반 2차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저렇게 옮겨가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앞으로도 고용불안에서 계속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는 자회사나 2차 하청업체에서 인력 감축이 나타났지만 앞으로 폐쇄가 가속화·대규모화하면서 발전 공기업 정규직들의 고용보장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석탄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바로 ‘고용보장’이다. 김씨는 “석탄화력발전소가 사라져도 LNG,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에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그 분야로 전환해 일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충남 보령화력발전소에서 “누구도 일자리를 잃지 않고 새로운 시작에 함께할 수 있는 공정한 전환을 시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정부는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직무전환 교육, 재취업 지원 강화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하청노동자들은 “실효성이 없다”는 반응이다. 김씨는 “‘교육시켜 주겠다, 취업 알선해 주겠다’는 것뿐이지 고용보장이 아니지 않으냐”고 말했다. 최씨도 “평생 이 일을 하던 사람이 다른 분야나 지역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탄소중립 실현 과정에서 고용보장이 왜 중요할까. ‘일자리가 우선이냐, 환경이 우선이냐’는 그릇된 이분법을 해소하고, 노동자들의 탈석탄 전환 수용을 유도하려면 고용보장을 우선해야 한다. 특히 발전소 폐쇄는 노동자들의 책임이 아니다. 실직하는 노동자에게 국가가 책임을 지고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노동계를 중심으로 터져나오는 배경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민간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쪼개진 발전 공기업 5개사를 통합한 뒤 재생에너지 분야 비중을 늘려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화력발전소 노동자를 재생에너지 인력으로 우선 전환하면 된다”고 밝혔다. 노조는 또 석탄발전소 폐쇄와 재생에너지 발전소 설립 사이 시간적 간극을 해소하기 위한 ‘선고용-후교육’ 원칙 수립, 노동자가 일하는 곳이 다른 지역으로 바뀔 경우 이주대책 마련 등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는 지난해 10월 18일 경남 창원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당사 앞에서 발전소 폐쇄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공공운수노조 제공
공공운수노조와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는 지난해 10월 18일 경남 창원 더불어민주당 경남도당 당사 앞에서 발전소 폐쇄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공공운수노조 제공
■정의로운 전환 이루려면
이정희 연구위원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은 정부 대책이 별로 실효성이 없다고 생각해 알음알음 개인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며 “전직, 직업훈련 등을 더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석탄화력발전소는 현재 ‘정의로운 전환’의 최일선에 있는 산업이다.
여기서 어떻게 실질적 고용대책을 마련했는지가 자동차를 포함한 다른 산업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사회적 대화, 산별교섭 등 중층적 논의 테이블을 통해 유의미한 선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고용불안을 겪는 노동자들의 심리치료를 지원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한국남동발전 삼천포발전본부에서 일하던 30대 하청노동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노동자는 퇴근 뒤 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 공기업으로의 이직 준비를 했다고 한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4월 석탄화력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363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결과를 보면, 고용불안을 느끼는 노동자들의 비율이 무려 92.3%였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이루려면 이해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발전소 폐쇄로 줄어드는 인력을 위한 대책 마련 과정에서 노동계는 배제되고 있다. 송상표 금화PSC지부장은 “정의로운 전환에 ‘정의’는 없다”고 말했다.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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