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민중 집단적 의지 형성과 조직 (2)
그람시의 고민은 이탈리아에서 어떻게 민족-민중의 집단적 의지를 형성하고 조직화할 것인가였다. 그람시는 이 역할을 이탈리아 공산당 PCI 가 해야 한다고 봤고, 이탈리아 근대사에서 결핍된 자코뱅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봤다.
프랑스 혁명에서 빌어온 자코뱅 노선이란, 20세기 초반 이탈리아에서 농민들을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 하에 묶어두고 동시에 모든 종류의 경제주의, 생디컬리즘, 자생(자발)주의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 민족-인민(민중) 집단적 정치의지야말로 이태리 국가의 기초라는 게 그람시의 생각이다.그람시가 이 민민(민족-민중)의지를 강조한 배경에는, 유럽의 국제정치가 있다.
1815년에서 1870년 이 시기는 유럽의 보수세력과 지배계급들이 유럽 전역의 자코뱅 세력들을 필사적으로 깨부수고 탄압하려고 했다. 그람시를 이러한 보수적 정치 지형을 ‘국제적 수동적 균형체제’라고 불렀는데, 이 체제 하에서 지배계급들은 경제적 기업의 권력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람시는 이러한 국내외 정치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지식인들이 민민(민족-민중/인민) 정치의지를 발현하는데 공헌해야 한다고 보고, 이탈리아 자코뱅 세력들 (근대 군주= 정당)이 지적 도덕적 개혁 조직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지적 도덕적 개혁이 경제-사회적 개혁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게 그람시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경제 사회의 개혁(변혁) 역시 지적 도덕적 개혁을 수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람시가 근대 군주로서 ‘정당(자코뱅)’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민족-민중 집합적 정치 의지 형성과 조직화를 그 정당의 책무로 설정한 배경은 무엇인가? 그의 리소르지멘토(이태리 통일운동)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그것은 당시 이탈리아 노동자 계급의 상황, 그 고향 사르디니아 남부 농민과 투린과 같은 북부 산업 노동자 관계, 지역 갈등, 사르디니아 민족주의 문제, 반동적인 지주 계급, 위계서열 권위주의 문화가 강한 이탈리아 생활세계 등과 연결되어 있다.
1906년 남부 사르디니아 농민들의 '독립운동'은 북부에서 파견된 군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당하고, 반대로 북부 투린 지방 노동자들을 탄압하는데는 남부 사르디니아 군대가 동원되었다. 이러한 복잡한 정치 상황, 특히 노동자 계급의식의 성장이 더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그람시의 대안은 민족-민중 집합적 의지 형성과 조직화였고, 그 주체로 정당를 설정했다.
원시 .December 31, 2014 at 6:46am ·
민족-민중 집단적 의지 형성과 조직화 (1) 문제 중요성
1987년 대통령 선거 이후, 노태우가 합법적으로 당선되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1980년 광주 학살자와 1212 군사반란 범죄자였지만, 1987년 대선을 통해서 노태우는 ‘합법성’을 취득하고, 도덕적 ‘정당성’은 결여되었지만 6공화국이라는 정치적 ‘정당성’의 운신의 폭을 넓힐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당시 소위 민민(민족민중)세력은 정치적 도덕적 정당성 모두 결여한 전두환 5공화국과 노태우 6공화국 동일성과 차이을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정치 투쟁을 이끌어 나갈 것인가? 다시 말하면, 전두환 5공화국의 ‘폭력과 강압’,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는 없지만 유사-파시즘 요소가 가미된 그러나 5공의 무지막지한 ‘폭력과 강압’이 아닌 ‘법적 질서 (김기춘 검사/법무장관)’ 강조와 이데올로기 투쟁을 결합한 노태우 6공화국의 차이을 어떻게 해명하고 이에 대응할 것인가? 이게 큰 문제였다.
80년대 그람시에 대한 개설서들이 몇 권 번역되어 한국에 소개되었다.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위 문제들을 푸는데 어느정도 실마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나는 보았다.
당시 내 생각을 간단히 요약하면, 노태우 6공화국이 87년 합법적인 대선을 통해 당선되었지만, 정치적 도덕적 정당성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 담론 (여론전)을 잘 수행하면서 그 6공 체제의 약점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운동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중앙집중적 데모 위주가 아니라, 각 학과로 정치,계급 투쟁의 깃발이 이동해야 해야 한다. 이 둘은 병존,공존도 해야 하지만, 공간의 이동, 방점의 이동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운동적 차원에서 외국어, 국제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서
전 개인적으로 우리 당원들이 운동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외국어들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영어 뿐만 아니라 아시아 언어들도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1991년~1992년 경 서울 구로공단에서 아시아 (인도, 필리핀, 네팔, 방글라데시, 중국 등) 이주 노동자들을 만나고 나서부터입니다.
사실 당시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구로공단 한국 노동자들의 임금은 낮은 경우, 시급이 아니라 일당(하루 8시간 기준)이 5900원~6800원 하는 공장도 있었기 때문에, 장시간 저임금 노동자의 노동 3권 찾기가 중요한 정치적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 30일 일하고 무조건 (flat rate) 30만원을 받는 아시아 이주 노동자들이 서울까지 온 것입니다. 필리핀 노동자들이 말하길, 이 돈은 자기 나라 임금의 3~5배 가량 된다고 했습니다. ‘국제 연대를 위해서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를 해야 한다는 건 중요한 정치적 실천이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든 것입니다.
2011년 한진 중공업 크레인 85호에서 300일 넘게 농성한 김진숙님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한진 중공업은 필리핀 수빅만에 전 세계에서 3~4위 정도하는 대규모 조선소를 건설해서, 소위 자본의 지리적 이동을 단행했습니다. 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에 비해 필리핀 수빅만 노동자 임금은 6분의 1~ 5분의 1이라고 합니다. 필리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 문제로 투쟁도 했습니다.
이제는 조선소 노동자 권리 문제도 한국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아시아 노동자들까지 고려하고 그들과 같이 연대해야만 우리의 정치적 과제, 노동해방을 쟁취할 수 있습니다.아시아 노동자들 (이주건 해외건)과 연대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포함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서로 교류해야 합니다.또한 한국 문제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북한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나라 말들도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 정당의 존재 이유는, 한 국가를 경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Yongsun Ryu 1억 인민의 베트남어에 함 도전해 볼 생각이ㅎㅎ
원시December 30, 2014 at 12:30pm · 먼나라 사람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큰 설득력은 생길 것 같지 않지만....그람시 Antonio Gramsci 를 언급할 때, "나는 지적 능력이 있기 때문에 비관적이지만, (삶에 대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낙관적이다" 라는 말을 주로 하는데, 실제로 그의 핵심어는 "민족-민중의 정치적 결단과 집단적 의지"이다.
한국 진보정당 메모: - 재편이 아니라 <해체와 재건>이다
- 해체와 재건 문제는 노동당만의 과제가 아니라, 모든 진보정당들과 단체들의 책무이다.
- 각 정당에 <진보정당간 신뢰 회복과 ‘아래로부터 통합’을 위한 위원회>가 설치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 당들이 포괄하지 못한 사람들도 참여가 가능하다.
2012년 총선 이후, 2014년 6-4 지방선거 결과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재편이라는 용어는 약하다. 민중의 요구, 즉 굳이 안토니오 그람시의 핵심어인 “민족-민중의 집단적 의지 (a national-popular collective will)"이라는 단어가 유의미하다면, 이 민중의 집단적 의지는 4개 정당(통진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의 내부 입장이 어떠하건간에)의 해체와 재건를 요구하고 있다.
각 정당의 수뇌부들은 이 민중의 집단적 의지에 기초해서 과거의 오류들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반성문을 제출해야 한다. 각 정당들의 차이와 불신을 깨부수라는 게 민중의 정치적 결단이자 표현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김상철의 “100% 민중정치” 대 “10% 유권자” 정치 대립도 큰 의미도 없어진다. 지금은 오히려 각 정당 내부의 자그마한 기득권이라도 다 내려놓는 게 일의 순서이다.
노동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치적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적은 차이들을 최소화하고 녹여낼 수 있는 정치력이 필요하다.WonYong Yi 그람시의 핵심어라면 이탈리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영어로 표현되거나, 한국어(한자어)로 표현되는 거랑 차이 있을까요? 굳이 그런데도 그람시의 핵심어라면서 영어로 풀어 준 건, 영어의 권위로 글을 주장하려는 의도를 보여주는 거 같은 심리가 아닐까요?
December 30, 2014 원시 WonYong Yi/ 아 저번에도 좋은 문제제기를 해주셔서 (싱크탱크 주제), 제가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가졌는데요, 어떤 방구동구 당원들은 그 의미를 모르고 논쟁적 측면만 강조하던데, 전 오히려 WonYong Yi님의 문제제기가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1) 이탈리아어는 una volontà collettiva nazionale popolare 뽀뽀라레 /입니다.
2) 나머지 질문들에 대해서는, 책상위에 있는 책이 영어책과 이탈리어책인데요, 영어책은 번역책입니다, 무슨 권위가 아니라, 그 번역책을 먼저 보고 한글로 번역해서 쓴 것입니다.
나경채 흠...고민해 보겠습니다
김세규 파괴하라 그라고 창조하라~^^
원시
December 30, 2014 at 8:56am ·
온라인 글쓰기를 뒤돌아보면서, 2014년 12월 30일,
정치와 스포츠는 다르지만, 적은 승리라도 자주 경험해야만 팀워크가 생깁니다. 적은 승리를 체험하고 성과를 나눠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사람들과는 공자를 논해도, 정도전을 논해도, 마르크스를 말해도, <지붕뚫고 하이킥 2>의 정치적 기획을 언급해도, 항우의 역발산 기세보다 더 깊은 결의를 논해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메모: 한국 진보정당 손실에 대해서. 어떤 측면에서 당비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말,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제가 하건 다른 분이 하건, 듣던 간에, 같이 도모해서 성공한 경험이 없으면, 마음에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2004년 이후 진보정당이 지속적으로 내리 하강국면을 걸었습니다. 당원들의 집단적 지혜의 분출을 돕는 지도부의 철학, 정치기획, 실천력이 시대의 요청에 못 미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패배의식을 안고 흩어져 버리는가를 보아왔습니다.
진보정당 1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도 1만, 3만, 5만, 10만 당원 개개인의 인생을 고려하면 더더욱 큰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진보정당 수뇌부들의 오류로 인해서 생긴 손실액은 대략 5천억원 정도 됩니다. 3000억원은 제도권에서 잃어버린 물질적 재산(국민의 세금)이고, 2000억원은 무형적 재산 손실액입니다.
많은 이들이, 돈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내 꿈과 의지를 펼칠 수 있다고 말입니다. 당비가 인상되면 좋겠다고 하고요, 그 순수한 마음들입니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교육받은 동안, 남들에게 봉사하면서 살아라고 배운 적이 없습니다.
진보정당은 남들에게 봉사하는 게 자기 인생이 되라고 하는 것이고, 남들 앞에 서는 ‘지도부’, 즉 타인을 주인공으로 만들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지도부’가 되는 것이 우파 보수세력과 다른 좌파 인생 철학일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좌파란 타인의 인생 시간을 내 인생 시간 속에 차지하는 비중과 비율을 넓히는 것입니다. 우리 일이 다른 사람들 인생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원시 전광철 Yong Hwa Kim 님이 3000억원이 어떻게 나온 금액이냐고 묻질 않으시고^^ 민주노동당 때부터 경험으로 인해서, 심정적으로 동의하나 보군요? 서너가지 항목들이 있습니다. 한국 정치 특수성 (미국캐나다, 유럽과 다른)에 맞는 진보정당 성장 전략을 잘못 수립했기 때문입니다. 수뇌부 자체가 그런 개념들도 부족했고...1) 항목으로 지방의회를 보면 2002년 11석, 2006년 81석, 2010년 (민노+진보신당) 164석, 2014년 55...
원시 나경채 무등산 촌사람이 서울 공기 안좋은데 와가지고 머리카락 다 없어지고 있잖아요? 윤약은 욕은 하더라도 머리카락 약은 좀 제공하고...그러시오. 지방의회 선거 떨어져가지고 업자 신세에나...짠하다 짠해~~~~
원시 Sunghee Yun/님, 언급한 주제들에 대해서는, 짧게라도 제 생각을 드리겠습니다. 윤약님이야 평당원이고 직딩 당원의 표본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피부로 느끼는, 어떤 시간 길이 속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역사적으로 규정된 문제들이 있어 보입니다.
나경채 ㅎㅎ저에겐 아직 12가닥도 더 남아있습니다. 걱정해 주시니 눙무리;;;
원시 나경채/ 제가 괜히 아는 척 하고 소환한 이유는...별 것은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많은 당원들에게 "욕"을 공개적으로 많이 드시는 게, 굉장히 미래 자산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차피 그 누군가 들어야 할 역사적 과제이자 (업보는 너무 문학적인 단어이고), 책무같습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원시December 28, 2014 at 10:55pm · Edited ·
한국 정치 메모: 국내 뉴스 보다가, 정동영 인터뷰 건은, 구체적인 행보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한국 진보정당이나 좌파들은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 이유는 1) 정동영의 점진적 좌측 행보가 지난 2~3년간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있었다는 것이고,
2) 한국 제도권 정당사에서 민주당 liberalist 에서 좌측으로 이동한 사례는 많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나름대로 예의주시하고, 대화와 토론을 제안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3) 아주 단순하게 평면적으로 비교할 것은 절대 아니지만, 독일 좌파당이 "지역기반 (동독 PDS 민사당) 중부 독일당"에서 전국구 정당으로 가는 길목에서, 2007년 사민당 우경화를 비판하고 탈당한 오스카 라퐁텐 역할이 컸습니다. 오스카 라퐁텐의 좌파당 합류의 긍정적 시너지 효과에 대해서 진보신당 시절 토론 몇 차례 한 적이 있는데...
4) 캐나다는 한국 정당 구조와 정확히 일치하는데, 유럽 사민당에 해당하는 신민주당 (NDP) 당수 밥-래 Bob Rae가, 1990-1995년 사이, 2차 대전 이후 거의 보수당 독주였던 캐나다에서 제일 큰 온타리오 주에서 최초로 신민주당 출신 주-지사까지 역임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밥-래가 신민주당을 탈당, 자유당(liberalist Party)에 입당하게 됩니다. 이것은 정동영 행보와 반대 사례입니다. 이런 경우는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고, DJ 386 수혈론은 한국에서 대표적인 사례였으니까 굳이 따로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 해외 사례는 역사적 배경과 권력관계가 한국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귤화위지 하지 않기 바랍니다.
한가지 정동영씨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은, 8년 계획 정도는 발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떳다방" 정당이 아니라, 뿌리가 깊은 진보정당으로서 유의미하지 않나 싶습니다.등대정당은 대중정당도 캐치-올-파티도 아니다.
용어 설명: 캐치 올 파티 catch-all-party 란 무엇인가?
2000년 이후 민주노동당이건, 사회당이건, 진보신당이건, 노동당이건, 모두다 <대중적 진보정당>을 추구하고 있다. 이미 혁명전위적 정당도 아니고, 우리는 브라질 룰라 PT당도 아니고, 독일의 녹색당도 아니고, 김일성 'ㅌ ㄷ'동맹당도 아니고, 베트남 호치민 통일전선도 아니다. 참고할 뿐이지, 그대로 적용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미 한국도 오토 키르히하이머 (O.Kirchheimer) 가 말한 "the catch-all party 특정 부르조아, 노동자계급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정당이 아니라, 보다 넓은 유권자층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강 정책 정치활동을 하는 정당"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역사적으로 접근하자. 서유럽정당들이 2차 대전 이후에 "캐치 올 정당"으로 갔다고 해서, 우리도 그런 <대중정당>노선을 취하는 게 아니지만, 80년대 반파쇼 반제국주의 대중운동의 성과와 실패에 근거해서, 97년 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살벌하게 해고를 자유롭게 해버린 한국자본주의체제에 맞서는 <대중적 진보정당>운동을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신당 연대회의>는 이미 생태, 평등, 평화, 연대 등 4가지 정치적 가치 (이념으로 대별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런 단어가 아니라, 정치적 가치 value라는 캣치 올 정당 형식을 띠고 있다)를 표방했다. 800만에 가까운 노조도 없는 비-조직화한 (자유주의 시장질서에서도 보장받아야 할 노동조합 가입도 모르는, 안되는, 탄압받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진보신당 역시 비정규직 임금노동자라는 아주 다양하게 존재하는 단일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등대정당>을 의미하지 않는다.
헌법 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한국정치 여론조사:
(1) 대전-충청도, 부산-경남, 20대 여론 특징, 박근혜 지지도 오히려 더 하락했다. => 특징적 요소
(2) 반대로 '중도'라고 자임하는 층에서는 약간 상승,
(3) 대구-경북 등 보수 핵심 지역과 보수층은 박근혜 지지 집결 (강화 현상)
[질문]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의 차이 이유는 무엇일까?
자료출처: http://www.realmeter.net/ 리얼미터
원시
December 2, 2014 · Edited ·
이재영 실장과 대화를 올린 이유는 음성 때문이다. 글 이외에는 동영상이나 음성 파일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서이다.
그가 2011년 당시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통합을 반대하고 그것이 옳다 그르다 따지자는 것도 아니다. 3년 전과 지금은 상황도 다르기도 하고. 오히려 굳이 고-이재영의 정치적 의미를 찾자면,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2003년까지 한 정치 기획일 것이다. 정당이 갖춰야 할 필요 조건들이 무엇인가?
그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민주노동당이 성공해서 그 영광(?)을 기리기 위함도 아니고, 무슨 공자가 주나라를 꿈에도 그리워하면서 "극기 복례(현재 혼란한 정치제도를 극복하고 주나라 예법으로 돌아가자는 공자의 주된 정치적 슬로건)"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정당이 갖춰야 할 필수 조건들, 최소한의 형식적 조건들을 갖추는 정치 기획을 수립했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이다. 이건 꼭 고-이재영 정책실장만이 한 일은 아니지만, 그가 그 중심 실무자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3가지 형식적으로 반드시 갖춰야 할 정당 조건들:
1. 대중 조직들을 네트워크 했다. 고 이재영은 대중조직 민주노총의 지지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했다. 2014년 민노총의 한계가 있다고 한다면, 2가지를 수행해야 한다. 첫번째 2000년 민주노총에 상응하는 어느 대중조직이나 개인들을 포용하던가, 두번|째 민주노총에 적극 참여해서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그 구성원들의 신뢰를 획득하고,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닌 민주노총이나 대중조직들에 반대는 안티정치에 불과하다.
2. 새누리당, 민주당 정치인들과 전투 필드에서 겨룰 대중적 정치가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고-이재영은 대중적 정치가들을 끌어들였다. 지금은 평가가 엇갈린 권영길, 노회찬 등을 붙들어맸다. 2014년 12월, 신뢰 붕괴와 불신시대이다. 무슨 말을 한다고 해서 서로 믿겠는가? 비판도 감정적이고 자의적이고 자폐적인 경우가 많다. 상대방이 없는 대화가 많다. 하지만 정당을 하려면, 진보 유권자 민중들 앞에 내세울 (간접적 대의제를 넘어서 진정한 그들의 대표로) 정치가들을 키우지 않고, 다 영화감독, 국가대표 감독만 하거나, 선포식 아나운서만 해서는 곤란하다.
3. 역사적으로 서로 다른 통로를 통해 조직된 정치그룹들을 네트워크해야 한다. 2012년 통진당 사태이후, 불신은 시대코드가 되었다. 기타 조율이 비뚤어져서, 비틀즈 예스터데이 연주해도, 결과는 영암 아리랑이 연주되는 신뢰 오작동 기타가 진보정당들 현실이다. 그 반대로도 마찬가지이다.
2000년 이재영 등은 정견이 다른 조직들 부족 연맹체를 묶어서 정당을 만들었다. 장점은 문호 개방적 태도였다. 2014년, 정치조직들간의 불신을 극복하고, 문호 개방적 호방함이 필요하다.
정당은 자수성가식 중산층 가족과 다르다. 이질적 요소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융해하는 정치적 공적 능력이 요청된다. 나만 잘한다고 되는 자수성가, 녹색중심, 노동중심,여성해방중심, 평화중심 등 자기 기준만이 아니라 실천주체들의 서로 역사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향후 공동 실천 기획을 만들어 내는 게 정당 창조의 출발이다.
(보충) 위 3가지도 2004년 국회의원 10석이 생긴 이후, 변형을 겪게 되었다. 물론 부정적인 방향으로 퇴락했다. 특히 정치적 성과물을 분배하고 재투자하는 과정에서, 특권적 집중, 반칙, 게임규칙 게리맨더링, 대중들 수준에 뒤처지지는 현실감각, 무엇보다도 새로운 정치 철학 창조와 유포 실패...... 이런 이유들로, 오히려 위 3가지를 달성했던 이재영에게, 바로 그 성공요소들이 지녔던 정치적 한계로 인해서, 혹은 지난 10년간 그 한계들을 극복하려는 시도들이 좌절되거나 연기되어, 이재영의 아픔은 정치적으로도 신체 병으로까지 악화되었다고 본다.
그의 노력, 성공, 실패와 좌절, 그러나 적어도 그는 과제와 전망은 남기고 갔다. 현실은 2000년 출발점보다 더 어렵고 복잡해 보인다.
버스에서 잠시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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