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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힘껏 달리다 (2) Y를 업고 논둑길을 달리다

by 원시 2014. 9. 13.

힘껏, 전속력으로 달리다 (2) - Y를 업고 논둑길을 달리다. 내가 중 1, 초 6 정도 되었나? Y와 Z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비가 온 후였다. 고향 집에는 빨간 색으로 된 큰 물 양동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목욕용 대야)가 있었다. 어린 시절에 얘들 2명씩 넣어서 목욕시키던 대야다. 뜨거운 물이 들어오면 파닥파닥 놀라서 대야 바깥으로 나오기도 했던. 그 빨간 대야는 지붕에서 떨어지는 빗물받이로도 쓰였다. 빨간 기왓집 빨간 대야. 그것들은 고향 집을 상징하는 추억거리이다.


식당 방에서 혼자 시험지 정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Y가 울면서 들어왔다. 반바지에 셔츠 차림에 Y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같이 놀던 막내 Z도 얼굴이 허옇게 질려서 빨간 대야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Y형이 다쳤다고 말해줬다. 피가 정말 철철 흐르고 있었다. 정신이 확 나가 버렸다. 무엇인가로 동생 팔을 묶고, 업었다. 뒷집 찬희네 탱자가시 언덕을 넘어 읍내에 있는 병원으로 뛰었다. 수퍼마켓 옆에 의원이 하나 생겨서 그곳으로 Y를 업고 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다니던 논둑길 위로 Y를 업고 뛰어간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5월이면 아침 이슬에 운동화가 다 젖어버렸던 그 길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형과, 나중에는 동생들 Y와 Z와 등교 하교하던 그 논둑길.


Y는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여름날 비온 후라 논둑길이 미끄러웠다. 읍내와 우리 집 사이는 온통 논이었고, 그 중간에는 전봇대들이 몇 개 있었다. 정신없이 뛰었다. Y 허벅지에는 내 땀으로 미끌미끌거렸다. 당시만 해도 Y는 지금과 달리 포동포동했다. 집과 의원이 있는 중간에서 한번 쉬었다. 숨이 벅차서, 그리고 어깨와 팔이 빠져버릴 것 같았다. 등에 업혀 있는 동생도 미끄러져 나가 논으로 빠져버릴 것 같았다.


“야, 한번만 쉬었다 가자”

“응”


이제는 울 힘도 없는지 조용히 식은 땀만 흘리고 있는 동생을 잠깐 등에서 내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숨을 몰아쉬고 나서 다시 업었다. 중간에 있는 전봇대를 넘어서 집과 의원의 중간지점을 통과했다. 그 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병원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바로 의사가 동생 다친 팔을 꿰매주었다. 나는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병원 복도에 있는 긴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한참 대기실에서 기다리니 동생이 걸어나왔다. 병원비를 냈는지 안냈는지 기억도 없다.


“괜찮냐?”

낮은 목소리로 동생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픈데, 의사가 계속 말을 시키더라고”

“그래 거 이상한 의사다야 ”


병원을 나온 후에, Y는 걸을 수 있었고, 그 논둑 길을 한참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다쳤을까? 빨간 대야 물통 속에 유리병 조각이 있었다는 것이다. Y와 Z는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놓은 빨간 대야에서, 물을 돌리면서 자기들끼리는 배를 띄워놓고 놀았는지, 그 물 통 속을 돌리면서 놀다가, 병 조각에 찔린 것이다. 지금도 어떻게 그렇게 크게 깊게 찔렸는지 잘 모르겠다. 누가 환타 병이나 사이다 병을 깨뜨렸나? 왜 대야 속에 병조각이 들어가 있었던 것일까?


Y와 이 대형 참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의과대학생이었던 Y는 당시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회고했다.

“그 의사가 나에게 말을 시킨 게 잘한 것이다. 환자가 긴장하고 있으니까 긴장을 풀게 하기 위해서, 아픔을 조금이라도 잊게 하기 위해서 말을 시킨 거라고”


아침이슬로 늘 등굣길에 운동화가 젖을까 맨 앞에 가지 않으려고 서로 중간 꽁무니로 가려고 했던 시절, 길이 좁아서 늘 일렬로 행렬을 지어서 다니던 그 길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전속력으로 논둑길을 달렸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렇게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지도, 숨이 벅차 중간에 쉬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생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된다. 그 긴박했던 30분 시간들. 병원 (의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논둑 길. 헉헉거리고 숨이 멎어버릴 것 같은 그 시간, 그 불안감은 잦아들고,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다 받아주었던 그 논둑 길.





“시체 한번 볼랑가?”

연건동 병원를 가로질러 가다가, 그것도 해가 지고 으슥한 밤에 Y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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