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도 안부를 전하지 못한 몇 친구들에게 카톡에 몇 자 적었다.
승호형, 박승호 박사의 이름이 중간에 보였다.
1976년 서울대 자연대 계산통계학과라고 했던가? 그는 자연대 사람이었다.
내가 새마을세대 빵빵레 운동권이라고 형을 놀리곤 했다. 승호형이 워낙 진지한 성격에다 80년대 학번, 90년대 학번 후배들에게도 직선적으로 말하거나, 세대 차이를 잘 인식하지 못할 때, 그를 놀리며 '새마을 빵빵레' 세대 운동권 마인드로는 안된다니까요, 이렇게 말하곤 했었다.
승호형도 이런 '받아치기'에 그냥 웃고 말았다. 술이 들어가면 얼굴이 붉그스레 해지고, 담배는 많이 피워 정말 '골초'였다.
"형 이제는 담배도 좀 끊고 그래야 오래 운동할 것 아닙니까?"라고 골초 승호형에게 핀잔투로 말하기도 했었다.
승호형을 처음 만난 건, 1998년 3월 김수행 선생의 대학원 강의 " 97년 IMF 원인 분석" 시간이었다.
강사들이 흔하게 입는 소박한 양복에 넥타이는 매지 않는, 키가 나보다 더 크고 훤칠했고, 눈은 부리부리했다.
이력도 특이했다. 그래서였던가, 형과 나는 쉽게 친해졌고, 허물없이 대화하고 토론하고 같이 공부하는 사이가 되었다.
승호형은 80년대 초반에 자연대를 졸업하고 경제학과 석사를 마치고 나서, 노동운동을 하러 현장(공장)에 갔다.
그리고 전대협 발족 이전까지는 전노운협 활동을 하다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98년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그는 변화된 자본주의 성격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노동운동을 모색하려고 했었다.
그리고 1997년 이전 한국 자본주의와 국가권력과 IMF 독재 통치 이후 그것들은 너무 달라질 것이고, 1953년 이후 처음으로 노골적인 '국제, 국내' 자본의 창끝이 얼마나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가에 대한 지적 학습이 필요했다고 본다.
2023년 카톡 명단에 박승호라는 이름이 보인다. 원래 프로필 사진도 넣지 않았던 그.
2022년 12월 6일인가, 승호형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작년 여름에 승호형이 췌장암 투병을 하고 있다는 멀리서 들었다.
형이 언젠가 오스트레일리아에 '방문 연구자' 로 간 적이 있었다. 목소리는 여전했고,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생각과 의견의 차이가 있건 없건, 승호형과는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승호형이 언젠가 '정의 (justice)'에 대해서, 마르크스의 입장, '고타 강령 비판'에 대해서, 내 의견을 물어오면서, 글을 하나 써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는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하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고민해보려고 했을 것이다.
등산을 좋아했던 승호형인데, 왜 췌장암이 찾아왔을까? 그는 아마도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와 생년이 같은 1958년, 그 58년 개띠쯤 되었는데, 할 일도 많은데, 너무 일찍 떠나버렸다.
승호형이 하던 말 "나는 황소 걸음이다", 해방운동의 길을 천천히 우직하게 걸어가겠다는 뜻이었다.
천천히 우직하게 한 100년 걸어가지 못했소이까?
사진도 없는 승호형의 카톡을 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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