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의 뿌리와 518 광주, 마지막 도청 - 현재의 패배와 미래의 승리.
-민주당 미진한 점이나 자유한국당의 교활한 부정직성과 뻔뻔한 몰염치를 탓하기 전에, 진보정당이 지난 20년간 잘 했다면, 518 유공자를 비난하는 집회가 광주 금남로 충장로에서 열리지 못했을 것이다.
진보정당의 철학적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 뿌리를 일상생활과 정치에 깊게 넓게 키우지 못한 까닭에, 이종명 김순례 김진태 지만원이 뻔뻔하게도 광주 518은 북한군 소행이며 518 유공자들은 세금 축내는 괴물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518 광주는 피를 나누고 (헌혈), 밥과 물을 나누고, 계엄군의 총탄과 곤봉, 헬기 기관총, 장갑차 공포 앞에서도 ‘지금은 우리가 패배해도, 미래는 우리가 승리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결국에 이긴다’는 낙관적 의연함이 있었다.
마치 임진왜란과도 같았던 난리 속에서 대동정신을 발휘해 시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대인동 양동 시장 아줌마들부터 들불야학 노동자들, 중,고,대학생들, 무명의 빈민들까지 다 같이 힘을 합쳤다.
- 시민군들이 부른 노래는 ‘민중’ ‘민주주의’ 단어가 들어간 노래가 아닌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이었다. 최정예 공수부대와 싸워야 하는 그 처절한 공포를 이기기 위해 시민군들은 정규군인들이나 불러야했을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여”를 함께 불러야 했다. 프로페셔널한 팔뚝질도 아니었다.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죽이자”는 눈빛이 팔뚝질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주인공인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 운동가, 두 분의 사후에 영혼 결혼식 주제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만들어졌다 )
진보정당이 지난 20년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하는 노동자들과 시민들과 같이 불렀던 노래는, 정서적 교류는 무엇이었는가를 돌이켜 보면, 진보정당, 운동권이 80년 광주 5월의 대동정신이나 시민의 자유를 배우고 확산시키고 내실을 다졌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부끄럽다.
-5월 27일 지금은 도청에 남아 죽어 ‘패배하지만’, 미래는 민주주의의 승리를 점쳤던 윤상원은 당시 30세였다. 지금 살아있다면 69세일 것이다. 진보정당 세대는 살아생전 ‘패배하지만’ 미래는 ‘빌딩 부동산과 아파트 평수, 금고 현금 크기가 아니라, 나의 사회적 역할로서 노동과 기여가 우리 사회의 행복을 결정하는 그런 민주주의의 승리’를 점칠 수 있을 것인가?
- 정치권들은 광주 사람들에게 빚졌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보상비와 국가유공자 지정은 광주 518 대동정신과 자유를 향한 투쟁의 필요조건에 불과하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광주 518 부상자들과 생존자들 대다수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PTSD)로 정신병을 앓거나, 지금도 병상에 있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계엄군에게 너무 심하게 맞은 이후 정신병을 앓은 한 여성은 라디오로 자기 아버지 머리를 때려 숨지게 하는 그런 비극도 있었다.
5월 21일 광주시민 사살명령자 전두환은 골프치러 다니고, 정호용 특전사령관은 재산이 1000억원을 축적한 사이, 광주항쟁 부상자들과 생존자들 대다수는 빈곤선에 머물러 있다.
전두환 범죄집단이 ‘사과’한다고 해서 광주 518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1997년 12월 20일 김대중 김영삼 전대통령들이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한 것은 정치적 오판이었다. 518 광주는 정치적 거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와 419 혁명 기간에 경찰 발포로 전국에서 죽거나 다친 희생자 규모는 80년 518 광주의 것과 비슷하다. 이승만 독재 하에서 발포 책임을 지고 최인규 내무부 장관과 곽영주 경무대 경찰서장은 사형당했고, 법무부 장관 홍진기는 사형언도를 받았다.
- 광주시민들에 대한 집단 사살을 명령한 전두환과 정호용,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은 419 혁명 이후 범죄자들이 처벌당한 수준 이상으로 ‘처벌’ 받아야 한다.
시민사살 명령을 내린 전두환은 아직도 광주 518은 북한군 사주를 받은 광주폭동들이 일으킨 내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광주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한 전두환은 ‘사면’도 ‘용서와 화해’의 대상이 아니라, 이회창 박근혜가 줄기차게 주창한 ‘법치’로써 '처벌받아야 할' 범죄자들이다.
무장하지 않은 채 공수부대에게 맞은 시민들을 구출하기 위해 헌혈하는 광주시민들을 향해 헬기에서 기관총으로 난사하는 경우는 국가간 전쟁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전두환, 정호용, 박희도, 이상훈 등 1212 쿠데타 세력과 518학살자들이 스스로 ‘화해와 사면’을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태극기 극우파들을 앞세워 “518 유공자들이 세금을 축내는 괴물이다”라고 비난하고 있다. 심지어 2019년 518 기념식이 열리는 광주 금남로에서 서울 광화문 앞에서 데모를 하고 있다. 집단살인에 대한 처벌이 먼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 진보정당의 뿌리는 어디인가? 윤상원 열사 아버지 윤석동씨는 정치권을 질타했다. “자기들이 필요하면 우리 상원이를 찾고, 518을 기념하러 오고” 한숨을 내 쉰 적이 있다.
518 당시 금남로, 대인동, 충장로, 양동, 유동에서 밥을 해 나르던 아줌마들은 ‘국회의원’도, ‘유공자’도 아니다. 그들은 지금도 시장에서 일하고 살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나중에 518묘소에 가서 청년들이 하도 여러 번 불러서 따라 부르다보니 몇 소절 부르게 되었다고들 한다.
한국의 진보정당은 ‘패배를 알면서도, 그 도청에 남아, 몇 백명으로 수천명의 공수부대와 헬기 장갑차와 맞서 싸우면서도 미래에 승리할 것을 예견한’ 그런 낙관적 의연함이 있는가?
정의당 이정미 대표나 심상정 의원이나 518광주 기념식장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자기반성과 미래의 다짐을 발표해줬으면 한다.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 시내와 화순, 곡성, 담양, 나주 등에서 시민군과 시위대들에게 밥을 나눠준 아줌마들 때문에, 광주항쟁은 대동정신과 시민의 자유 쟁취, 시민민주주의 실천의 공간으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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