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목격자’ 마틴,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의 부친 ‘위로’
등록 :2016-05-25 15:03수정 :2016-05-25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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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광주에서 5·18항쟁 당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의 아버지 윤석동(가운데 휠체어 탄 이)씨와 5·18을 취재해 세계에 알린 ‘푸른 눈의 기자들’이 만났다. 오른쪽 두번째부터 윤상원을 마지막으로 인터뷰했던 브래들리 마틴 <전 볼티모어 선> 기자, 도널드 커크 전 <시카고트리뷴> 기자, 노먼 소프 전 <아시아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유족 제공
80년 5월 도청 인터뷰 인연
생가 방문 윤석동씨와 재회
5·18항쟁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1950~1980)을 마지막으로 인터뷰했던 브래들리 마틴(74) <전 볼티모어 선> 기자가 지난 18일 오후 윤상원의 아버지 윤석동(89·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씨를 만났다. 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현장을 취재했던 노먼 소프 전 <아시아월스트리트저널> 기자와 도널드 커크 전 <시카고트리뷴> 기자도 동행했다.
브래들리 마틴이 윤상원의 생가를 찾은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마틴은 80년 5월26일 밤 시민군 항쟁 지도부가 있던 전남도청에서 윤상원을 만나 마지막 인터뷰를 했던 언론인이다. 그는 “그 청년의 생사가 궁금해” 항쟁 8년 뒤 처음으로 윤씨의 집을 방문했다. 마틴은 “바로 코앞에 임박한 죽음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부드러움과 상냥함을 잃지 않는 그(윤상원)의 눈길이 인상적이었다”고 쓴 적이 있다.
아들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전달한 마틴 기자와 깊은 우정을 쌓아온 윤씨는 마틴의 손을 잡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1943년부터 60년이 넘도록 농사 이야기와 일상을 꾸준히 기록해온 그는 아들의 죽음에 상처받은 마음을 적어 놓기도 했다. ‘상원이가 살아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1988년 5월29일)’,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그때 일을 회상하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으나, 세월이 흐르니까 폭도란 누명을 씻고 (아들 윤상원의) 명예가 회복되어 가고 있다(1988년 5월28일)’고 썼다.
윤씨는 “마틴과의 만남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얼굴에 서운함과 슬픔이 배어있는 표정을 지었다고 가족들이 전했다. 1년여 전부터 신장투석을 받고 있는 윤씨는 이날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마틴이 “키를 맞춰야겠다”며 허리를 구부리자 엷은 미소를 지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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