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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노동

고 김용균 1주기, 김용균 직장동료들 증언 "변한 게 거의 없다"

by 원시 2019. 12. 8.

추도문 중에 이 부분이 가장 아프다.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 추도문 중에, "너가 있는 그곳에서는 좋은 부모 만나서 행복해라"는 말이 나온다. 한국은 20세기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가장 빠르게 달성한 나라로 칭송받고 있다. 과장이 아니라 실제 그렇다. 그런데 우리 민주주의에서 빠진 게 있다. "옆집 아이도 우리 아이처럼" 존중해줄 수 있는 성숙한 삶의 양식이 결여되어 있다. 엄마 김미숙씨는 여전히 '좋은 부모'가 되어 주지 못해서 김용균이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죽었다고 자책을 하고 있다.


김용균의 동료들은 1년이 지났어도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증언했다. "왜 우리 하청 노동자의 목소리는 외면하는지. 저희 같은 노동자를 개 돼지 취급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봅니다"라고.



고 김용균의 모친, 김미숙씨는 '좋은 부모'가 되지 못했다는 자책에 그치지 않았다. "많은 너의 삶과 비슷한 용균이들을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그리고 "꺼져가는 생명의 시급함을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발만 동동구르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김미숙씨는 아들 김용균을 대신해 일터에서 일하다 죽는 비극을 막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처럼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김미숙씨의 다짐이다.



한국 일터에 만연한 무책임, 그리고 일반 시민들과 노동자들도 일터에서 죽음의 원인을 '자기 탓'으로 돌려왔다. 이제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바꿔야 한다. 김미숙씨 발언대로 이제 '안전조치는 회사의 기본 의무가 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적은 부주의로 죽게되면 본인 잘못으로 몰고가는 폐단'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고 김용균 사망 1주기다. 그 동안 변한 것은 거의 없었다. 노동부가 '사내하청 노동자 다수 공공 대형 사업장 대상'으로 안전 보건 불시점검을 실시했다. 총 399곳에서 353곳이 안전하지 않은 일터였다. 10개 일터 중, 9개 일터가 산업재해 가능 작업장이라는 뜻이다.


일터에서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으면, 회사 경영자가 현행 법보다 최소 50배 ~ 최대 100배 징벌을 받지 않는다면, 한국은 OECD 국가들 중에 노동자 인권이 가장 낮은 나라로 남을 것이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박창진씨가 고 김용균 모친 김미숙씨와 김용균 추모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873064.html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이 하루 속히 입법화되고, 시행되어야, 일터에서 사망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회사 경영자와 노동부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는 것 이외에도,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작업과정에 대해 '통제력'을 가지지 않는 한, 산업재해 숫자는 줄어들지 않는다. 회사 운영에 노동자들이 직접 참여해서 노동 과정 안전권을 행사할 수 있게끔 노동자들의 권한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의 김용균 1주기 추도사 >







사랑하는 아들 용균아. 너 사고 소식을 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년이 되었구나.


쳐다보기에도 아까운 꽃보다 더 이쁜 내 새끼. 꿈도 한 번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안타까운 삶을 마감한 내 아들. 애달픈 내 아들 용균아. 엄마는 너 없이 사는 세상 꿈에도 생각 못해봤고, 어떻게 미치지 않고 살아낼 수 있을지 아직도 마음은 갈팡질팡이구나.


엄마이기에 강할 수 있고, 또 그러기에 한없이 무너짐을 느끼며. 내 가슴속에선 우리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지게 만든 이 나라가 한 없이 원망스럽고 너를 지켜내지 못한 내 스스로가 아직도 살아보겠다고 꾸역꾸역 밥을 먹고 살고 있다는 게 그 자체가 비참하구나.


아무리 좋은 먹거리와 환경을 접하더라도 내 분신을 잃어버렸기에 허망한 삶이 되어버렸고. 이 세상은 더 이상 나에게 큰 의미도 없고. 즐거움과 행복은 이미 남들만이 가질 수 있는 나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끼며 살고 있단다.


단 한번만이라도 너를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밤이 되면 별을 보며 너를 찾았고, 매일 꿈속에서 만나길 기도하며 잠을 청했단다. 서너 번의 꿈속 너의 모습은 늘 유치원 이전의 모습이었고, 위태로운 환경에서 너를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그런 꿈을 꾸었단다.


지난번에 아빠 꿈에 너의 모습은 온화한 얼굴로 "다른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아빠에게 말했다고 얘기를 들었을 땐 평소의 너의 성품을 생각하면, 엄마 아빠가 아들 걱정할까봐 걱정말라며 안심시키기 위해 그렇게 꿈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생각되었어.


너는 이곳에서 부족한 부모 만나서 힘들게 살았지만 너가 있는 그곳에서는 좋은 부모 만나서 오래오래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엄마는 바란단다.


너가 그렇게 떠나간 뒤 엄마는 그동안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단다. TV 속에 보여지는 세상과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이런 현장은 구조적으로 안전이 방치되어 너처럼 억울하게 죽고 다치는 사람들이 그동안 수만 명에 달한다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랍고 분노스러웠던지. 지금도 매일 산재 사고를 접하며 속앓이를 하고 있단다.


너를 닮은 또 다른 용균이들은 사회에 나와도 좋은 일자리는 한계가 있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정규직 혹은 일용직으로 내몰려,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서 일할 게 뻔하고,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고용이 불안해서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불이익을 당해도 말도 못하는 억울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수많은 너의 삶과 비슷한 용균이들을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단다.



내 소중한 아들 용균아. 엄마는 너를 잃고 너무 큰 충격이라 살아내는 것조차 겁이 났었어.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좋은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그분들에게 의지하고 기대며 살고 있단다.


너와 함께 일했던 발전소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건설업, 조선소, 철도, 마사회, 우정사업소. 우리 나라 구석구석 어느 한 군데도 안전한 곳이 없는, 그래서 더 처절한 삶을 다들 살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짐을 느끼며, 꺼져가는 생명의 시급함을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단다.


엄마는 얼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뭉쳐서 연대로 우리들이 바라는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를 기원하고 간절히 바라고 있단다. 그리고 이분들을 마음을 담아 동지라고 부르고 있단다. 동지라는 말이 이렇게 많은 마음이 담긴 좋은 말인지 이제는 느끼며, 이 말의 귀함에 누가 될까 조심스레 부르려 하고 있단다.


아들아. 지난해에 너의 죽음의 부당함을 바꾸고자 많은 동지들과 사회 여러 단체들과, 유가족들과, 일반 시민들이 뭉쳐서 너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정부와 맞서 싸웠었어. 


물론 너도 알겠지만. 그래서 원만한 합의안도 이끌어냈고, 많이 부족해서 너에게 부끄러운 법이긴 하지만 산안법도 통과시켰고, 특조위 진상조사를 통해 사측이 너에게 누명을 씌웠던 것을 완전히 벗기게 되었단다.


그렇지만 업무수칙을 다 지키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구조. 

원청은 하청을 주었으니 책임이 없다 하고, 하청은 내 사업장이 아니어서 권한이 없다 해서 책임 공백이 생겼고. 그 속에서 일하는 아들은 목숨 지킬 권한조차 없었던 이 비정규직들의 억울함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지 참담한 심정이었단다. 그래서 억울함을 참지 못해 또 울고 말았어. 너는 그곳에서 다 보고 있겠지.



아직 엄마는 이곳에서 할 일이 많단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유가족 앞에서 약속했던 것도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고. 그래서 합의 이행, 약속 지키려고 해야 하고, 특조위 권고안도 현장에 이행되는지 지켜봐야 하고, 너를 죽게 만든 책임자들 강력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단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너를 비록 살릴 순 없지만, 다른 사람이 우리처럼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고 싶단다.


엄마는 이제 우리와 같이 처지에 놓여 있는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길을 위해 걸어갈 것이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손을 잡고 밝은 빛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곳에서 너도 엄마 잘 하라고 응원하고 지켜봐줘.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 없는 내 아들 용균아. 많이 보고 싶고. 사랑한단다.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 님이 추모1주기 집회에서 읽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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