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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노동

"우리가 김용균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다"

by 원시 2019. 12. 10.


진보정당에서 구호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김용균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다"로. 


민주당 586들은 이제 다 잊었을 수 있지만, "영화 1987"년 시대 사람들이 공유했던 가치를 한 문장으로 말하라고 하면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였다. 그게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 정권 30년을 관통하는 한국 민주주의의 핵심이었다. 전두환이 골프치고 "이거 왜 이래? " "니가 대신 벌금 내주라"는 뻔뻔함 때문에, 어느 누군가 피를 흘리지 않으면, 저 가해자들이 기득권자들이 더 날뛰고 성내기 때문이다. 


김용균은 동정의 대상을 넘어야 한다. 김용균의 피, 그 이전 그 이후 매일 5명씩 일터에서 죽어가며 흘린 피는 우리가 향유하는 우리 민주주의의 맨얼굴이다.  이 가혹한 야만의 대한민국 컨베이어벨트를 멈춰 세워야 한다. 


작업장 사무실 일터 주인은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교수도 판사도 김용균도 21세기에는 다 노동자다. 

일하는 과정, 지식이든 상품이든 그 생산하는 과정에 노동주체는 단순히 '직원'이 아니라, '생산비용'이 아니라,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일터가 위험하면 노동자가 직접 개선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 노동자는 울고 불고 떼나 쓰는 어린애가 아니다. 당신들 머리 속에 잘못 아래새겨진 노동자에 대한 생각, 노동자는 '내가 월급주는 얘들이야' 라는 머슴 하녀관을 두뇌 속에서 파내야 한다. 


민주당 586 우상호 이인영 의원에게 묻는다. 백양로 연세 민주광장에서 우상호 학생회장이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라는 선창에서 김용균의 얼굴은 있는가? 이인영 전대협 의장에게 묻는다. 고려대 민주광장에서 "민중"과 "민주"의 외침 속에, 아파트 짓다가 떨어져 죽고 있는 민중 이씨의 얼굴은 있는가?  이제 전대협 100만 학도 다 노동자가 되고, 직원이 되었고, 그 아들 딸들이 다 노동자가 되고 직원이 되었다. 도대체 당신들의 민주주의는 언제 오는가?  


독일이 '2016년 촛불시위'를 세계 최고 참여민주주의라고 칭송하고 한국인들에게 상을 줬다. 

그 '참여 민주주의' 속에, 김용균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구했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통령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라는 하청 비정규직 청년의 간절한 소망이 들어있는가?


적폐청산 그 자체가 잘못된 용어라고 오진하는 고려대 최장집 교수에게 답한다. 적폐청산이란 다름아닌 당신들 머리속에 잘못 아로새겨진 노동자, 우리 직원들에 대한 생각, "너네들은 내가 월급주는 머슴이야"라는 생각을 파내는 게 '적폐청산'이고, 민주주의 완성으로 가는 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민주당 586들이 '적폐청산' 단어를 만들어낸 게 아니라, 박근혜 퇴진을 외친 합리적 보수파부터 민주당 중도파, 정의당과 같은 진보정당, 급진적 시민들, 무정부주의자들까지 다 외친 '구호'였다. 

  

김용균은 우리들이 매일 쓰는,없으면 멘붕에 빠지는 휴대전화 배터리를 충전해주는 전기를 생산하다가 몸이 찢겨져 죽었다. 태안화력발전소 원청 사장에게 묻는다. 당신 딸 아들이 석탄 점검하다가 죽어도, 그 컨베이어벨트를 멈추지 않을 것인가?


전기를 생산해주는 청년의 노동에 대해 왜 우리는 그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가? 동정을 넘어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야말로 제 2의 김용균 죽음을 예방하는 길이다. "옆집 아이를 우리 아이처럼" 키우고 존중할 정도는 이제 되지 않았는가? 


"우리가 김용균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다"





출처: 경향신문, 이보라, 김정근, 강윤중 기자




반복되는 죽음의 외주화

"나도 '김용균'이다"···다시 광장에 선 노동자들


글 이보라·사진 김정근·강윤중 기자 purple@kyunghyang.com



입력 : 2019.12.09 18:56 수정 : 2019.12.09 22:38




김용균 1주기...우리가 김용균이다!


2018년 12월10일 김용균씨가 석탄가루가 뒤덮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채 발견됐다. 청년의 죽음 이후 정치권은 법을 개정하고, 대책을 마련한다고 부산을 떨었지만 그때 뿐이었다. 정작 ‘김용균’을 보호하지 못하는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한국 사회의 모순과 현실을 드러낸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끼어 죽고, 떨어져 죽고, 뒤집혀 죽어간다. 하루 평균 6명이 그렇게 죽어간다.


지난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에 참가한 ‘김용균들’은 죽음을 멈추지 못하는, 방기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이 현장에서 손팻말을 든 23명의 노동자들을 촬영했다.


손팻말에 ‘불안정’ ‘불법파견’ ‘하청’ 같은 단어로 자신을 규정했다. 


‘한해 2400명이 살인당하는 현실을 개탄하는 노동자’라는 말로 세상을 비판했다. 


‘일진다이아몬드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로서 의지도 손팻말에 적었다. 한줄 짜리 손팻말 글귀는 모두 하나를 말했다. 


‘우리가 김용균이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과 만납시다.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한국서부발전 협력사인 한국발전기술 하청노동자 김용균씨(24)는 사망 두달 전 대통령과의 대화를 신청하며 손팻말에 이 문구를 적었다. 두달 뒤인 2018년 12월10일 김씨의 육신과 정규직 전환 같은 젊은 날의 여러 기대와 계획, 희망이 석탄운송설비(컨베이어벨트)에 휘말려 들어갔다.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수많은 ‘김용균들’을 정작 보호하지 못한다. 


김씨가 일한 화력발전소 연료 설비 운전 작업은 도급 금지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들을 대의해야 마땅할 정치 세력들은 노동 기본권과 안전 문제를 ‘지금은 이 정도만’ 하고, ‘나중에’로 미루려 한다.


 ‘지난 1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선언이 아니라 ‘증언’이다. 지금 ‘김용균’들의 삶은 그대로다.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안하죠. 고정식 안전펜스를 설치했는데 오히려 저희에겐 더 위험하고 번거로워요. 소통 없이 독단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그렇게 됐죠.” 


최규완씨(34)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씨는 김씨와 같은 한국발전기술 하청노동자다. 영흥화력발전소에서 현장운전원으로 일한다. 인터뷰 당시 12시간을 밤새 일해 피곤한 상태였다. 그는 지난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에 참가했다.



최씨는 “용균이가 죽고 ‘보여주기식’ 안전관리만 늘어났다”고 말한다. “생각할 것도 없죠. 용균이 덕분에 법이 바뀌긴 했지만 발전소 쪽은 해당 사항이 없어요.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게 없습니다.” 


그는 ‘직고용’이 이뤄져야 안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봤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설비나 안전에 문제가 생겨도 말할 권한이 없다. “원청은 저희를 기계 부속품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아요.”


 최씨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람으로 여겨 달라고 했다. 그는 문제를 같이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


마트 노동자 정준모씨(36)도 광화문을 찾았다. 일할 때 의자에 앉지 못한다. 무거운 종이 상자를 나를 때마다 힘들다. 상자에 손잡이가 뚫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용주는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부담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뭘 하자고 제안하면 비용 한계가 있으니 천천히 고민해보자고 넘어가죠.” 그는 노동자 입장을 대변하는 정치가 실현되길 바란다.


비정규직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씨(26) 누나 김도현씨(29)도 광화문에서 손팻말을 들었다. 


태규씨는 지난 4월 경기 수원의 한 건설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원청은 벌금 450만원을 내고 책임을 면했다. 추모대회 참가 이후 독감이 걸려 힘겹게 말을 이어 가던 김씨는 이 말만큼은 힘주어 말했다. “일하다 사람이 죽은 겁니다. 용균이 1주기가 지났지만 저희 같은 경우 원청이 기소도 안됐어요. 정부가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들을 처벌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죽음은 계속될 겁니다.”


경향신문은 추모대회 날 손팻말을 든 노동자 23명의 사진을 촬영했다. 노동자들은 손팻말에는 이름과 일터를 손수 적었다. 


‘나 성정림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나 진환은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손팻말 속 ‘비정규직’ ‘하청’ ‘기간제’라는 단어는 노동자들이 더 이상 일하다 죽지 않게, 차별받지 않게 해달라는 호소와 절규, 투쟁 의지를 담은 듯했다.





원문보기: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2091856001&code=940100#csidx55d4981a7ad37c9977a98c5ccc89b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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