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 붓글씨가 방 벽에 숨어있었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당무유용 종이 쪽지가 반듯하지 않고 기울어질 정도로 오래 되었다. 몇 년 전에 벽에 붙여 놓은 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신영복 선생은 원래 경제학자였는데, 왜 노자 '도덕경' 구절을 붓글씨로 썼을까? 그 이유도 신선생의 노자 해석도 다 모른다. 붓글씨 서체, 서화집을 남겼지만, 이것 역시 자기자신과의 화해의 한 수단에 불과했을 것이다.
며칠 전 신영복의 "엽서"를 읽었다. 신영복이 감옥에서 아버지, 어머니, 형수, 계수 등에게 쓴 편지들 모음이다. 여러 편지 엽서들 중에, 신영복이 71년부터 86년까지 감옥살이를 했던 대전 교도소에서 전주 교도소로 이감하면서 아버지께 쓴 엽서를 읽을 때, 목이 뜨거워졌다. '자유'의 이동이 아니라, 또 다른 '감옥'으로 향하는 이동이었기 때문이다. 자유의 공기를 들이킬 시간이 너무 짧은.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신영복이 자기 키를 적어 놓은 대목이다. 키 168 cm, 몸무게 70 kg, 가슴들레 98cm, 허리둘레 80cm, 혈압 80-120. 그리고 몸무게를 65kg 까지 감량해보겠다고 '엽서'에 적었다. 삶에 대한 의지가 읽혀졌다. 학창시절 응원대장이었던 사나이의 일상같은.
제일 안타까운 대목은 신영복이 '풍치'라는 것 때문에 감옥 안에서 이빨을 많이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신영복의 붓글씨를 보며, 다시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을 해석해본다.
신영복 선생님의 명복을 빌다. 커다란 '무'의 세계로 가시다.
- 내가 해석하는 의미는, "전체"를 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물과 인간사회를 볼 때, 있음과 없음이라는 이 두 가지를 다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눈에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가 말한 '무'란 전체를 보지 못하는 우리 인식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다.
- 서른 개의 수레 바퀴살이 있고, 그 가운데는 한 속바퀴통이 있다. 그 비어있는 없음 때문에 수레바퀴는 "쓸모있는" 것으로 된다. (수레의 기능을 갖추게 된다)
찰흙을 구워서 그릇을 만든다. 마땅히 그 빈 부분 (없음) 때문에 그 그릇의 쓸모가 생겨난다.
문과 창을 끌로 뚫어서 방을 만든다. 마땅히 그 빈 부분 (없음) 때문에 방의 쓸모가 생겨난다.
그러므로 어떤 있는 것이 이로움을 주는 것은, 그 없음이 쓸모가 있는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老子 道德經 第十一章] 제 11장:
三十輻,共一轂,當其無,有車之用。
埏埴(연식)以爲器,當其無,有器之用。
鑿戶牖(호유)以爲室,當其無,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無之以爲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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