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고약하고 부당한 동아일보 송평인의 신영복 평가:
동아일보 댓글부대는 송평인의 글에서 '맑은 생각 신영복'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반공반북 저주의 알바성 댓글을 달았다. 하지만 송평인의 신영복 평가 글은 좀 고약하고 부당한 측면도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1) 신영복이 경제학자로서 정치경제학 용어를 가지고 '신영복 이상사회'를 설명하도록 애초에 사형구형이나 '무기징역'을 선고하지 말던가, 20년간 신영복이 대학에서 자유롭게 연구했으면, 당시 박정희 경제정책의 기초를 만들어주고 간 로스토우 (W.W.Rostow)의 "경제성장단계들: 반-공산주의자 선언(1960)"보다 더 나은 경제대안을 신영복이 만들었을 수도 있다.
- 2) 20년간 그를 감옥에 처넣었으면, 적어도 감옥 안에서 '경제학 강사'를 해왔던 신영복이 한국경제를 위해 공부하고 글 쓸 수 있는 자유를 주던가 했어야 했다. 신영복은 글을 마음대로 쓸 수 없어서 20년간 부모님, 형수님, 제수씨에게 편지를 쓸 때만 펜을 잡을 수 있었다.
- 3) 연구자로서 한창 지식을 삶아먹어도 부족할 나이인 27세~47세 사이에, 종이, 펜을 뺏어놓고 나서, 이상사회를 정치경제학 용어로써 설명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는 건 부당해보인다.
- 4) 이북에서 탈출해온 육사 8기 출신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은 박정희,김종필도 좌익세탁을 하라고 할만큼 반공반북으로 똘똘뭉친 자였다.
- 송평인이 김형욱이 애초에 신영복의 머리를 세탁해버리려고 했으나 신영복 이 그것을 극복하고 철학자로 거듭났다고 말하려는 의도라면 이해는 간다. 하지만 신영복은 이빨치료도 받지 못해 이빨을 잃어가면서 자기자신과 죄수들과 대화하면서 감옥생활을 견뎌야 했다. 아름다운 '철학자'가 아니라, 지옥같은 감옥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투쟁이었다.
- 5) 난 신영복의 철학과 맑은 심성은 68년 통혁당 사건 이전에 이미 '아름답게' 형성되었다고 본다.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 감옥에 처박힐 이유가 없었다.
동아일보 기사: [횡설수설/송평인]김형욱이 만든 철학자 신영복
http://news.donga.com/3/07/20160119/75989137/1
신영복은 1969년 1월 16일 군사재판장에서 사형을 구형받았다.
그는 1970년 5월 5일에 최종적으로 무기징역을 언도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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