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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_리더십

깡패조직과 사회주의 정당의 차이와 동일성 - 나눔의 실천

by 원시 2016. 8. 10.

정치적 패배자들의 문화 - 나눌 줄 모른다. 

권력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고, 미래의 식량으로 사용할 줄 아는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

콩, 한개라도 9형제자매가 나눠먹을 수 있다.



2012.10.18 19:13

김석준 (전 대표), 문성현(민노당 전대표)는 민주당으로 왜 갔는가?

원시 조회 수 1401 댓글 5


한국 진보정당의 위기 원인을 뒤돌아 보다:


아무도 믿지 않는 시대, 

진보를 하더라도 '선배도 제치고 후배도 나몰라 하고  친구는 까고, 내 것은 꼭 챙기고, 내 이름은 알려야 하는 시대'에 


조폭 조양은에게 버림받은 그 부하 박모씨의 증언이다.


"건달은 공산주의사상을 가져야 한다. 공동 생산하고 공동 분배해야 한다. 돈을 벌면 나눌 줄 알아야 하는데 그(조양은)는 혼자만 챙겼다.:  (* 출처: 김태촌·조양은 40년 흥망사 ; 2007.06.01 통권 573 호 (p136 ~ 159)

불행하게도 한국 진보정당 운동의 현실, 지난 2004년 민노당 10석 의석 이후 당의 역사는 지도자들과 간부들부터 <비열한 거리>에서 연출한, 조폭들의 자해 소동과 유사한 결론을 내고 말았다. 


중요성: 진보정당 대표들이 민주당 문재인 선거캠프로 합류했다. 추석 인사차 한국에 전화했더니 지인으로부터 "민주노동당이 없어졌는데, 당신은 무엇하시오?" 답례를 들은 충격만큼 강도가 크다. 진보신당도 아니고 '민주노동당이 없어졌다.'고 했다. 아니 한편으로는 무덤덤하다. 예측은 어느정도 가능하니까. http://www.newjinbo.org/xe/1537473  그러나 김석준 전 진보신당 대표에게는 "왜 문재인 캠프 선거위원장으로 갔냐?"고 물어보고 싶기는 하다. 그는 한국 정치사에서 7명의 대통령을 경험하면서 지금까지 진보의 자리를 지킨 사람이기 때문이다. 7명의 대통령과 30년의 세월. 그 부산 '날으는 삼겹살(김석준 별명)'은 왜 문재인 캠프로 갔는가? 


김석준 전 대표의 민주당 행은 아쉬움이 크다. 아무도 믿지 않은 시대에 우리가 행동지침의 중심추를 잡을 수 있는 건 '역사'의 교훈인데, 그의 30년 역사가 단 신문기사 하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0112204415&code=910110 무슨 쌍둥이 기사도 아니고 문성현씨와 더불어 ... 아쉬운 이유는, 민주노동당이 2002년~2004년 사이 성장하는데 김석준 전 대표가 부산 시장 선거(2002년)에서 한 역할이 크기 때문이고, 당시 이문옥 서울시장 후보와 더불어 민주노동당을 전국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정책정당'의 이미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국정당사에도 민주-보수당 구조를 깨뜨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런 내 평가는 김석준의 민주당행과는 서로 어긋난다. 그래서 그의 속사정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의 변경만은 아니었고, 그 내부에는 심리적 갈등과 다른 정치적 요소들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왜 김석준, 문성현은 민주당으로 갔을까? 1차적인 가까운 원인은 잘못된 <통합정당: 통진당의 파산>으로 인한 운동권 내부의 '도덕적 해이' 현상이다. 벼랑끝 의식이나 피란민 '막차 타기'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5월 12일 통진당 폭력사건보다 나쁘지 않으면 큰 지탄의 대상은 되지 않는다. 


내 개인적인 제안 역시 실패했다. 통합-독자 프레임은 잘못되었기 때문에, 정치적 신뢰를 쌓는 시간들 2012년 총선~2012년 대선까지를 두자는 견해는 수용되지 못했다. 그들은 너무나 달아올랐고, 역사적 시간 측정은 현실적 욕구 앞에서 '고상한 동양화'에 지나지 않았다.


두번째 원인을 지적하고 싶다. 내가 지난 10년간 지켜보고 기록해온 진보정당사, 민주노동당-진보신당에 제한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김석준-문성현 전대표가 이재오-김문수씨도 아닌데 20년이 뒤늦게 진보정당 착근을 포기한 이유는, 바로 우리 내부에 있다. '나누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4년 국회의원 선거로 10명의 국회의원이 탄생한 이후, 지난 8년간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은 한국정치에 이바지한 바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무슨 말인가? 이유를 너무나 단순화시키거나 윤리적으로 재단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실제 역사를 잠시 보자.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10명 중, 대중 언론에 기억되는 사람은 노회찬과 심상정이었다. 문단심(문성형,단병호,심상정)에서 심단문으로 순서가 바뀌고, 보수강성대국 시민사회 (그람씨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렇게 쓸 수 있다)는 이들 삼남매조차도 이간질하고 머리를 맞대지 못하게 만들었다. 1688년 영국에서 탄생한 근대 의회제도의 파워는 한국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셈이다. (의회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큰 의미없으므로 생략) 


운동주체들이 자기들이 바꾸려고 하는 '제도', 즉 경기장 게임규칙들을 모르고 들어갔다가, 자기들끼리 자중지란에 빠진 것이다. 그게 이 의회제도 자기장이 갖는 강력한 힘이다. 의회에 먼저 들어간 노회찬 심상정은 '기록'을 남지 않았다. 의회활동의 노하우를 미래의 '국회의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공유하지도, 토론하지도, 자문을 구하지도 않았다. 


노회찬 심상정 등이 출간한 책들을 검토했지만, 개인 정치가 광고 PR (첼로로 대표되는 노회찬, 야구 소녀로 대표되는 심상정 등)은 있었지만, 내 동료들과 내 후배들이 국회의원이 되었을 경우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가? 공적인 기록과 일지는 없다. 


노회찬, 심상정 개인에 대한 비토나 비난이 아니다. 그 자리에 김종철, 강상구도 대입해볼 수 있다. 내가 급기야 기독교인도 아닌데 '예수'와 '성경' 구절을 인용하기 시작했다. 과연 한국의 운동권은 남들이 보지 않더라도 '밥 한 그릇'이라도 남들과 나누고 사는가? 아니 평소에 그게 버릇이 되고 습관이 되어 있는가? 기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다른 예를보자, 오늘 페이스북에서 소식을 들은 이재영 (전 민노당 정책실장) 이야기, 그가 민노당 정책실장으로 있을 때, 정책실 안에 도서관을 짓자고 했고, 그도 찬성했다. 그러나 2004년 이후 수많은 정책위원들이 고용되었고, 수많은 내용들이 제안되었지만 (지금 유행처럼 번진 스웨덴, 렌-마이드너 모델, 네덜란드 모델 등은 이미 당시에 다 검토되었다. 그리고 단순 모방차원은 아니었다), 정치기획으로 발전되지 못했다. 그 연구원들부터 '정책정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으로부터 버림받았고, 배신감을 안고 떠나가기도 했다. 내부 붕괴이고 자멸이다. 


지금 진보신당이건 구 민주노동당이건 게시판에, 지난 10년간 생산된 정책들을 열람할 수 있는가? 새로운 당원들이 와서 당의 역사를 알려면 무엇보다도 '정책'을 배우고 비판하고 새로 써야 하는데, 그런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는가? 기본적인 '나눔' , 정치적 공유 정신이 없거나 결여되어 있다. 


말로는 좌파니, 사적 소유 철폐니 하지만, 행동과 실천은 철저하게 자본주의 삶의 원리에 충실하거나, 자기 경력이 쌓거나, 자기 자리 지키기에 열중하고 있는 셈이다. 노회찬 심상정 의원부터 그랬으니, 그들과 함께 움직이는 집단 사람들은 또 어떠하겠는가? 그들이 대표로 있었던 당의 문화는 어떠하겠는가? 새로운 사상, 정보, 정책, 기획들이 당원으로부터 나와도, 자기 세력에게 도움이 안되면, 세력으로써 ‘사상’을 가로막았다. 그게 통합진보당 512 폭력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유시민은 부차적이다.


어린시절 할아버지께서 형제가 많은 나에게 늘 했던 이야기가 있다. '일태도 구분식

一太刀  九分食 : 콩 하나도 9형제자매가 9개로 쪼개서 나눠먹는다. 그리고도 남은 콩 조각을 집 앞 연못에 빠드리니, 퐁 하고 소리가 나더라는 우애 이야기'.  내가 이를 다 실천하고 살았다는 게 아니다. 당을 사랑하고,  노동자들 투쟁에 동참하라고 권유하는 건 좋다.


그러나 하나 더 덧붙이고 싶다.  그 뒤에 남은 성과물을 독식하자 말라.  지금 이 시점에 우리가 정말 뒤돌아 볼 일이 무엇인가?  적어도 정당 차원에서는 정치적 성과물은 철저하게 '일태도 구분식' 원칙에 따라서, 달이 시내물 곳곳이 차별없이 비추듯이 '월인천강지곡'이 당 안에 울려퍼져야 한다. 


김석준 전 대표의 행보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침묵하는 게 좋다고, 예의라고 할 수도 있고, '에라이 배신자여, 당신만 고생했냐? 나도 고생했다', 소주병을 깨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또 우리의 무능력을 탓하거나, 총선 제도 탓, 가난한 정당에서 선거를 2년마다 치러야 하는 현실과 정치악법(진보당에게 불리한 정당법, 자금법)을 탓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외국에서 바라보는 안타까움 (한국은 고립된 육지이고 섬이다. 유럽 국가들과 달리, 외로운 좌파운동을 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이런 시각에 대해서는 다음에 쓰기로 한다. 


진보신당과 바깥 좌파들은 정당을 만들어놓고서 '정치적 성과물'의 투명한 분배, 그리고 규칙들을 만들고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 좋은 정책들, 실천들을 해도, 내부 붕괴하고, 심리적 박탈자들의 내란을 계속될 것이다. 


진보신당 간부들과 활동가들은 '김석준의 민주당 행'에 대해서 침묵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김석준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타산지석보다는 '따라배울 전범과 모범'이 더 중요하다. 안철수 현상, 정치 이론적으로 보면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다. 사회주의가 망하자 '자본주의를 탑재한 서구 리버벌 민주주의 (미국과 유럽, 일본)'가 역사에서 완전히 승리했다고 자신하던 미국 대학교수, 프란시스 후쿠야마 (Fukuyama)를 찬양하는 안철수를 '모범적 멘토'라고 하는 이 현상도 있지 않은가?


 (안철수의 생각: 김영사: 책을 토론토로 보내주신 채훈병 당원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김석준의 민주당행은 이런 점에서 아쉽다. 진보정당이 목적지가 아니라 거쳐가는 중간 역으로 간주해버리는 게 습관화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어떻게 갈 수 있는가? 


타인에 대한 배신감으로는 진정한 미래의'사랑'을 얻을 수도 즐길 수도 없다. 우리 내부에서 솟구쳐 나는 그런 생산적인 에너지가 있을 때, 우리가 타고 있는 이 기차가 우리의 목적지까지 도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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