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 철폐. 손해배상 가압류 - 노동3권 파괴하는 노동악법. 쌍용자동차 노조에 100억 배상 판결. 대법원 계류중. 정부와 회사가 소송을 취하하는 게 해법이다.

정책비교/노동 2021. 8. 2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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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심 재판부 - 2009년 쌍용자동차 노조 파업시, 회사의 손실 인정. 금속노조가 쌍용자동차 회사에 33억 1140원을 배상해야 함 (손해배상 가압류)

[1]  "경찰은 2009년 쌍용차 옥쇄파업 당시 크레인과 헬기 같은 각종 장비가 파손됐다며 16억8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사측도 파업기간 동안 재산상 손실을 입었다는 이유로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에 100억원의 손배 소송을 제기했다."

 

2013년 1심 재판부는 경찰에 14억1천만원을, 사측에 33억1천14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도 경찰과 사측 손을 들어줬다.

 

[2] 2019년 11월 15일 2심 재판부 - 원고,피고쪽 항소 모두 기각하고 1심 판결 유지.

이자까지 불어나 80억원이 넘음.

 

[3] 2020년 5월 - 대법원에 계류중. 

경찰은 임금·퇴직금·부동산 가압류만 취소했을 뿐 소송은 취하하지 않았다.

사측도 2018년 노노사정(쌍용차·쌍용차노조·금속노조 쌍용차지부·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사회적 대타협 당시 ‘정부가 취하하면 사측도 취하하겠다’는 내용을 구두로 합의했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4] 정의당 이은주 의원 2020년 9월, 

 ‘쌍용자동차 국가손해배상 사건 소취하 촉구 결의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결의안에는 이은주 의원을 포함해 117명의 여야 의원이 참여.

2021년 국회 반응없어.

 

계류-繫留 -사회 일반 의회의 심의ㆍ의결 대상으로서 제안된 안건이 처리되지 못하고 위원회나 본회의에서 논의

중이거나 논의할 대상으로 놓여 있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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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쌍용차노조에 “2009년 파업 손실 회사에 배상하라” 등록 :2019-11-15 17:34

 

국가·회사 손배 규모…지연이자 포함 100억원 넘어 쌍용차지부, “법이 우리에게 죽으라고 하는 것 같다” 김정욱 민주노총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이 지난 1월30일 오후 서울 미근동 경찰청 앞 기자회견에서 10년 만에 공장으로 돌아간 쌍용자동차 복직 노동자들이 첫 급여의 일부를 가압류당했다며 경찰을 규탄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법원이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파업에 나섰던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을 상대로 회사가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노조 쪽의 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5부(재판장 이동근)은 15일 쌍용자동차가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을 상대로 파업 피해를 배상하라고 낸 소송의 항소심 선고에서 원고·피고 쪽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지난 2013년 1심 재판부는 2009년 파업으로 회사가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을 인정해 금속노조가 회사에 33억114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배상금은 6년 동안 지연이자가 붙어 현재 80억원이 넘는 액수로 불어났다. 

 

이날 판결 직후 쌍용차지부는 성명을 내고 “법이 우리에게 죽으라고 하는 것 같다. 오늘 회사 손배 2심 선고를 앞두고 가진 일말의 기대마저 져버렸다”고 밝혔다. 

 

쌍용차지부는 또 “경찰청 인권침해 조사 결과 2009년 정리해고 사태에서 강제진압이 인정되었고 (당시 파업 진압이) 국가 폭력임을 민갑룡 경찰청장도 고개 숙이며 인정했다. 

 

이 인정을 받기까지 우리는 서른명의 희생자의 장례식을 치렀다”며 “경찰과 이명박 청와대, 회사가 공모한 노조파괴 문건도, 경찰이 스스로 밝힌 국가폭력 진상조사도 우리를 향한 손해배상 소송을 멈추지 못했다. 

 

법원은 단 한번도 우리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의 목숨줄은 양승태 대법원의 재물이 되어 거래되었다. 이 모든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법원은 여전히 우리 책임이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서 대법원이 청와대와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 등을 상고법원 설치와 맞바꾸는 재판 거래 대상으로 삼았다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또 지난해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조사위원회는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과정에서 국가폭력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경찰이 낸 손해배상 소송을 철회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노동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 대응하고 있는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도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또다시 고통을 주고 있는 데 대해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낀다”며 “(쌍용차 노동자들은) 10년 만에 복직했다. 

 

곧 11년 만에 복직할 마지막 해고노동자가 공장 문턱을 넘으려 한다. 회사와 경찰이 진정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면 더 이상 소송으로 백억원에 육박하는 돈으로 노동자들의 발목을 잡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고 밝혔다. 

 

쌍용차지부는 경찰에서도 손해배상 소송을 당해 현재 지연이자를 포함해 21억원 가량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되어 있다. 이대로 두 판결이 확정되면 쌍용차지부가 회사와 경찰에게 물어야 할 손해배상 금액은 100억원이 훌쩍 넘게 된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7221.html

 

법원, 쌍용차노조에 “2009년 파업 손실 회사에 배상하라”

국가·회사 손배 규모…지연이자 포함 100억원 넘어 쌍용차지부, “법이 우리에게 죽으라고 하는 것 같다”

www.hani.co.kr

 

 

쌍용차 노동자 11년 만에 출근 ‘100억원대 손배 폭탄’은 그대로 35명 4일 첫 출근 … “손배 확정판결시 고통 커, 정부·사측 철회 노력 안 보여” 기자

어고은 입력 2020.05.04

 

 

지난 1일 부서배치를 받은 쌍용자동차 마지막 해고노동자들이 11년 만에 출근한다.

하지만 국가와 회사가 2009년 정리해고 반대 파업과 관련해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이 이자를 합쳐 100억원을 넘어선 상황이어서 ‘미완의 복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3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에 따르면 복직대상자 47명 중 개인 사정으로 유급휴직을 연장한 12명을 제외하고 35명이 4일 오전 출근한다.

 

이들은 1일자로 각 부서에 배치됐다. 복직자들은 경기도 평택공장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쌍용차 인재개발원으로 이동한다. 근무복과 안전화를 받고 2개월간 교육을 받을 예정이다.

 

연수원 교육과 현장적응 훈련을 거쳐 7월1일부터 일한다.  11년을 기다린 복직이지만 노동자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을 상대로 국가와 회사가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2009년 쌍용차 옥쇄파업 당시 크레인과 헬기 같은 각종 장비가 파손됐다며 16억8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사측도 파업기간 동안 재산상 손실을 입었다는 이유로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에 100억원의 손배 소송을 제기했다.

 

2013년 1심 재판부는 경찰에 14억1천만원을, 사측에 33억1천14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도 경찰과 사측 손을 들어줬다.

 

노동자들이 부담해야 할 배상금액은 지연이자까지 더해 현재 100억원을 훌쩍 넘는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2018년 쌍용차 노동자에 대한 손배·가압류 철회를 권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임금·퇴직금·부동산 가압류만 취소했을 뿐 소송은 취하하지 않았다.

 

지부에 따르면 사측도 2018년 노노사정(쌍용차·쌍용차노조·금속노조 쌍용차지부·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사회적 대타협 당시 ‘정부가 취하하면 사측도 취하하겠다’는 내용을 구두로 합의했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과도한 손해배상 책임으로 노동 3권 행사가 위축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대법원 재판부에 제출한 바 있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은 “내일 출근을 앞두고 있지만 손해배상 문제를 생각하면 앞이 깜깜하다”며 “대법원이 우려했던 대로 선고할 경우 당사자들이 겪는 고통과 충격이 상당할 것”이라며 착잡한 속내를 밝혔다.

 

김정욱 지부 사무국장도 “회사도, 정부도 (손배소송 철회에 대한)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며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고 우려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소송을 제기한 쪽에서 검토를 한 뒤 정리해야 할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노동부가 입장을 밝힐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고은 ago@labortoday.co.kr

 

 

 

 

국회의원 142명, “쌍용차 국가 손해배상 청구 부당” 대법원 탄원 

 

정의당 이은주, “국가폭력 수단 노동자가 배상하는 것은 반인권” ‘쌍용차 국가손해배상 사건 소취하 촉구 결의안’ 여전히 계류중 

 

기자명 조연주 기자  승인 2021.08.12 11:00 

 

▲ 김정욱 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사무국장이 1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연 ‘쌍용차 복직 노동자에 대한 국가손배 임금가압류 규탄 기자회견’에서 경찰에 복직 첫 월급 50%를 뺏긴 심정을 밝히고 있다. 성민규 

 

경찰이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도구들이 파손됐다며 노동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두고 국회의원 142명이 부당하다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은 대법원에 계류중인 ‘쌍용자동자 국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정의당 의원 전원과 더불어민주당, 기본소득당 무소속 의원 142명이 탄원서를 냈다고 12일 밝혔다.  

 

탄원서 내용을 살펴보면, 이들은 “집회시의의 자유와 노동권을 헌법에 보장하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권리행사를 공권력을 투입해 가로막고 그 비용을 손해 명목으로 청구하는 것은 사실상 국민의 기본권 행사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부디 재판부에서 피고들의 오랜 고통을 헤아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의 가치를 우위에 두는 판결을 해주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또한 “쌍용차 사태의 서른 번째 희생자 故김주중 씨는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를 받던 2018년 6월, 국가폭력의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 그런 피고에게 국가폭력의 수단으로 사용됐던 헬기, 기중기 등의 파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계속하는 것은 반인권적 처사다“라고 덧붙였다. 

 

 2018년 7월 대한문에 설치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30번째 희생자 분향소. 2009년 쌍용자동차는 3천 명에 달하는 노동자를 정리해고했다.  ⓒ 김한주 기자 

 

 

지난 2009년 쌍용자동차가 회사 매각 등을 이유로 2646명에 대한 구조조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당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해고 회피 방안을 회사에 제시했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항의한 노동자들이 77일간 옥쇄 파업을 벌이자 대테러 전략에 투입되는 경찰 특공대가 출동해 이들을 강제 진압했다.  사건 이후 9년간 이후 해고자 및 희망퇴직자, 가족들 가운데 자살 또는 질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만 30명에 이른다. 

 

 경찰은 당시 쌍용차 노동자들을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헬기와 기중기 등 장비가 파손됐다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노동자들이 1·2심을 패소했고, 2016년 상고된 이후 현재까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현재까지 노동자들이 갚아야 할 돈은 27억 원을 훌쩍 넘겼으며, 하루 지연이자만 61만8298원에 이른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는 당시 진압과정에서 국가폭력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이를 두고 민갑룡 경찰청장은 직적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공식사과를 했지만, 손배소를 취하하지는 않았다. 

 

이어 취임한 김창룡 당당 경찰청장 또한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하지 않은 바 있다.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이은주 의원은 12일 오전 탄원서 참여 의원들과 함께한 쌍용자동차 손배소 관련 탄원서 제출 기자회견에서 “대법원의 결정 전에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이 소송을 제기한 국가가 스스로 소를 취하하면 된다”고 밝혔다.  

 

앞서 이은주 의원은 지난해 9월 ‘쌍용자동차 국가손해배상 사건 소취하 촉구 결의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결의안에는 이은주 의원을 포함해 117명의 여야 의원이 참여했다. 

 

이 결의안은 올해 2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됐지만 아직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은주 의원은 “9월이면 소취하 촉구 결의안을 발의한 지 1년”이라며 “탄원서를 제출하는 마당에 왜 국회가 의견을 표명하는 결의안을 의결하지 않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이은주 국회의원. 

 

https://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403860

 

국회의원 142명, “쌍용차 국가 손해배상 청구 부당” 대법원 탄원 - 노동과세계

경찰이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도구들이 파손됐다며 노동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두고 국회의원 142명이 부당하다는 탄원서를 제출했다.이은주

worknworld.kctu.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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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NJ원시 2021.09.07 18:32 신고 Modify/Delete Reply

    2003년 배달호 열사의 죽음 뒤에는 "손해배상 가압류"가 있었다.

    1953년 10월 14일 출생
    1981년 1월 22일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에 입사
    1988년 제2대 대의원
    1993년 제7대 대의원
    1995년 노사대책부장, 민영화 대책위원
    1997년 제11대 대의원(제3지구대장), 민영화대책위원
    1998년 제12대 대의원, 파견대의원, 민영화대책위원
    1999년 제13대 대의원(제3지구대장), 운영위원
    2001년 제15대 대의원 파견대의원
    2002년 교섭위원
    2002년 7월 23일 구속
    2002년 9월 17일 출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2003년 1월 9일 분신으로 운명
    2003년 3월 14일 장례후 양산 솥발산에 안치됨.

    잠든 투쟁정신을 일깨우는 호루라기 노동자 - 배달호열사


    2003년 하반기를 열사정국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열사정국은 2003년 한 해 전체였으며 그 시작은 배달호 열사였다. 2003년 새해벽두인 1월 9일 6시경 단조공장 쿨링타워 근처에서 분신하였다.

    재산과 급여의 가압류로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자신보다는 해고자와 구속자들을 더 안타깝게 여기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 두산자본과 싸워 이기고자 했던 배달호 열사! 열사를 생전에 알던 사람들은 대오의 맨 앞에서 호루라기를 불던 노동자로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항상 투쟁의 전선에서 앞장섰던 열사는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후배들에게 투쟁의 모범을 보여 준 진짜 노동자였다. 그가 불던 호루라기는 함께한 동지들의 투쟁정신을 다시 일깨우고 승리를 위해 진군하는 나팔과 같은 소리였다. 앞이 안 보이는 절망의 순간에 열사는 동지들에게 끝까지 투쟁하여 승리해 줄 것을 당부하며 자신의 몸을 호루라기 삼아 불어 댄 것이다. 동지들이여, 일어나 싸우라고......

    배달호 열사는 1953년 10월 14일에 태어났다.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에 1981년 1월 22일에 입사하여, 1987년 7월 설립된 한국중공업노동조합에서 1988년부터 2001년까지 6대(제2대, 7대, 11대, 12대, 13대, 15대)에 걸쳐 노동조합 대의원을 역임하고, 1995년에는 제10대 집행부 노사대책부장으로, 2000년에는 교섭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95년부터는 민영화 대책위원으로 1999년에는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배달호 열사는 두산중공업노동조합의 조합원으로서, 2002년 두산재벌의 부당한 해고와 징계 등 비인간적인 노동정책에 맞서 싸우던 중 2002년 7월 23일에 구속되어, 9월 17일에 출소했으며 집행유예(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기간 중에 있었다. 회사는 노조 활동을 이유로 고소, 고발하여 징역을 살게 하는 것도 모자라 또 다시 열사의 집 등 모든 재산과 임금을 가압류하였고, 이 때문에 생계가 어려워지자 배달호 열사는 생계비 충원을 위해 회사 복지기금에 대출 요구를 하였으나 돌아온 것은 가압류자는 대출 불가라는 회사의 통보뿐이었다. 그 후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고 2002년 12월 26일에 징계기간이 끝나서 현장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현장에 복귀하자마자 회사에서는 단지 노조 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관리자와 노무팀의 관리 대상에 올려놓고 배척과 통제, 감시를 끊임없이 진행하였고, 이 때문에 그의 곁에 있던 동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없어서 홀로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힘들 게 보냈다고 한다. 회사는 노조활동 중단을 요구하는 각서까지 요구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열사의 죽음은 바로 두산 자본의 악랄한 노동조합 탄압과 파괴행위에 항거한 분신이었다. 배달호 열사의 분신을 이해하려면 두산중공업 노/사 투쟁과 정부의 사유화 정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왜 배달호 열사는 분신에 이르게 되었는가? 한 직장을 21년 다녔고, 투쟁하며 열심히 살았던 나이 쉰의 열사에게 닥친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첫째, 공기업의 사유화 정책이 문제였다. 자산 가치 5조(자회사 포함)에 이르는 한국중공업을 3천 억이라는 헐값에 인수한 두산재벌은 오직 돈벌이에만 급급했다. 두산재벌은 인수 후 1,124명을 명예퇴직 등의 이름으로 내쫓고, 외주,소사장제 도입, 일부식당 용역화, 일방적인 사업이관(내연발전사업, 강교사업부 등) 실시, 3,000억에 한국중공업 자회사인 한중DCM이 두산기계 인수, 한중 이익잉여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하여 경영권 장악, 2002년 초 민주노총 투쟁 참가를 빌미로 간부와 조합원 대량 징계(201명) 등 파행적인 경영을 일삼았다.

    둘째, 두산재벌의 산별노조 불인정과 노동조합 파괴공작이다. 2002년 두산중공업지회의 투쟁은 기업별노조 교섭이 아니라 금속산별노조의 교섭이었다. 두산재벌은 금속노조를 인정치 않고 10여 차례의 집단교섭에 한 차례도 참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꾸준히 진행해 온 신노사문화정책을 바탕으로 조합원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부당노동행위를 서슴지 않았으며, 급기야 노동조합의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조직적으로 방해하여 노동조합이 총회 중단을 선언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해고 18명을 포함하여 620명을 징계하는 대량학살을 자행하였다. 이는 두산재벌의 노동조합 파괴수순이었다.

    셋째, 지속적인 탄압과 손배,가압류이다. 두산재벌은 노사합의가 이루어졌음에도 이행하지 않으며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지속하는 한편, 78억 원에 달하는 손배,가압류를 조합비 뿐 아니라 개인의 재산과 급여까지 차압하여 노동자 자신 뿐 아니라 가족까지 생계의 위험에 빠지게 하였다.

    넷째, 사법부마저 자본의 편에서 노동자를 탄압하는 것이었다. 배달호 열사는 사법부가 합법적인 쟁의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터무니없는 실형을 선고하는 모습을 보며 법이 가진 자의 법이며 사법부가 자본의 편이라는 사실을 유서를 통해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공정해야 할 사법부마저 두산 자본의 편이라고 생각한 열사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노동자들은 어디에서 자신의 억울함과 부당함을 호소할 것인가?

    이상이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 중 중심적인 것이었다.
    ‘죽어서도 우리 민주광장에서 지켜볼 것’이라던 열사 때문이었나? 투쟁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금속노조와 금속연맹, 그리고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열사 배달호동지 분신사망대책위원회’는 1월 9일 분신으로부터 3월 14일 장례식까지 63일에 걸친 투쟁을 통해 손배,가압류를 철회시키고 사회적인 이슈로 만들었으며, 금속노동자들이 연대투쟁의 모범을 보여주었고, 산별노조의 필요성을 실감케 하였으며 해고자복직의 단초를 열었다. 열사가 바랬던 두산중공업지회의 조직력 복원은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일정 부분의 성과를 낸 투쟁이었다. 열사가 지켜보는 민주광장에서 두산 노동자들의 투쟁은 언젠가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배달호 열사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추어 일어날 두산중공업노동자를 기대하며... 배달호 열사의 6주기에 다시금 노동자의 투쟁정신을 생각해 본다.

    관련 자료로는 배달호 열사정신계승사업회에서 발간한 ‘열사의 뜻 이어가리라’(배달호 열사 투쟁자료집) 이 있으며, 추모 노래로 ‘배달호 열사의 노래’(호루라기 사나이)가, 추모 시집으로는 ‘호루라기’(객토동인, 갈무리)가 있다. 유족으로는 노모(1933년생)와 부인 황길영, 두 딸이(84년생, 86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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