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민주당2020. 3. 22.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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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논란에서, 정치적 주체를 뒤돌아보다. Nakjung Kim-November 2, 2019 · 

유시민 작가가 '왜 잡아가지도 않는데, 마스크를 쓰고 집회에 나왔냐고' 잔소리를 했다. 그 심리구조는 70년대 길거리에서 여자들 미니스커트 길이를 잣대로 재던 박정희 경찰들이랑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Fucking Liberalist 는 욕이 아니어야 하는데.


유시민의 정치적 입장은 리버럴리스트이다. 자본주의 시장체제 옹호하고 그 기반 위에서 민주주의 해보자는 입장이 '리버럴리스트'이니까.

그리고 리버럴리스트의 중요한 덕목이 있는데, 그건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관용'이다. 그러니까 '너희들 왜 마스크 쓰고 나왔어 ?'라는 신경질적이고 속좁은 발언은 리버럴리스트로서 할 소리는 아니다.


누군들 모르는가? 아래 1986년 전두환과 싸우는 이화여대 학생들이 화염병 들고 마스크쓰던 시절과, 2019년 문재인 정부하에서 나름 엘리트임을 과시하면서 조국 장관임명 반대한다, 혹은 입시 공평성 실천하자고 외치는 시절이 다르다는 것을.


조국 찬성이건 반대건, 다양한 이유들을 각자 가지고 있음을, 활수한 리버럴리스트로서 왜 수용하지 못할까?


'세대론'은 서유럽 68세대 이후, 빈껍데기 관점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주의깊게 비판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586들? 그게 전반적인 그 나이 또래 세대의 문제라면, 내가 지적하는 건,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서, 너무나 쉽게 잊어버렸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모든 것은 변한다. '변증법'을 입에 달고 살았던 세대가 속칭 586이고 그들의 '패션'이었다. 마스크와 화염병, 짱돌처럼.

변증법은 요상한 만능열쇠가 아니라, 자기가 어떻게 변화되고 달라져 가는지를 그 계기점들을 설명하면서, 자기 일관성, 일이관지한 삶 과정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인식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맥락에서 변증법은 '긴 여행 오딧세이'이다. 586들이나 90년대 학번들은 '변증법은 도식적으로 정,반,합 삼단 법칙'이라고 배웠지만, 이는 정확한 것은 아니다. 변증법은 물리학 '법칙'도 아니고, 꼭 삼단만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조국 논란 과정에서 '빈 깡통' 논변과 주장들이 많았다. 기본적인 정치,철학,경제 용어들, 도덕과 윤리, 파시즘, 민주주의, 금융자본의 투기성, 교육과 신분제도 관계 등에 대해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데, 기초적인 지식 자체도 결여되어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조국 논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이제 한 세대의 마감을 보고 있다. 물론 나는 586세력들은 80세까지 끝까지 간다고 보는 입장이지만. 좋건 싫건 그럴 확률이 높다.


정치적 장수만세를 외치는 것은 586 민주당 정치인들과 그 세대 자유다. 그러나 "야 니네들 마스크 벗고 시위해" 라고 잔소리하기 위해서는, 그럴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적어도 유시민과 조국 세대는 지난 30년간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그들의 일관성에 대해서, 먼저 설명을 해야할 것이다.


조국, 유시민, 그리고 그들을 옹호했던 수많은 과거 민주화 투사들이, 30년만에 드러낸 자기 정체성은 '민주주의 벗' '민중의 친구'가 아닌 '파워 엘리트'인 경우가 많았다.


무엇이, 어떤 계기들이 있었길래, 지난 30년 동안 이들이 말하는 내용들이 빈깡통으로 변했을까?




자료사진: 1986년 이화여대 학생들의 화염병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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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민주당2019. 12. 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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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최장집 교수의 발표는 모호하고, 비판의 촛점을 잃었다.  DJP 연합은 1998-2002 집권과정에 와해되었는데,연합정치의 성공인양 과대평가했다. 현재 민주당은 중도 리버럴인데,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같은 진보정당과 구별하지도 못한 채 '진보'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최교수의 비판 대상이 누가 누군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문성근의 100만 민란을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잘못된 개념 작성이고, 문성근에 대한 과대평가다. 


1987년을 절차적 민주주의 완성으로 봤는데, 1987년 대선에서도 드러났듯이, 프랑스 헌법을 가장 많이 참고했다는 제6공화국 헌법에서는, 막상 프랑스 헌법의 진수였던 '대통령 결선투표제도'를 누락시켜, 광주 학살 주범 노태우를 당선시켰다. 



최장집의 이분법 '1987년 민주화'와 '87년 이후 민주주의 공고화(consolidation=심화시킨다는 뜻임)', 이런 이분법은 마치 1987년이 절차적 민주주의 완성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착시를 낳는다. 


이런 오류들 이외에도, 최장집은 로버트 달의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를 다른 민주주의 관점들보다 우위에 놓는 맹신을 보여준다. 하지만 로버트 달의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의 장점도 있지만, 그것의 한계도 명료했다.  수퍼 부자나 금융,독점자본가의 전횡을 막지 못했고,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 


신문 기사들을 근거로 몇 가지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1.  최장집 교수의 모호한 개념 "진보", 그리고 민주당과 조국에 대한 방향타 잃은 비난. 결과적으로 정의당에도 도움이 안되고, 시민들의 참여민주주의 발전에도 별로 영감을 주지못한다.


안철수와 같은 배를 탔던 최교수 자신의 정치적 결정에 대한 자기 비판서는 없다. 그게 선행되어야 민주당이건 정의당에 대한 비판에 힘이 실릴 것이다. 이것 없이 중앙일보 등에 민주당 586들을 비난하는 글을 실었는데, 비판 촛점이 너무 빗나갔다.


우선 먼저 지적할 것. 언론이나 최장집 교수 등이 먼저 민주당을 '진보'라고 하는 것을 고쳐야 한다. 물론 당 이름에 '진보'라는 단어는 쓸 수 있다. 캐나다 보수당 이름이 '진보 보수당 PC : progressive conservative'이다. 사실 '진보'는 아무나 쓸 수 있다. 하지만 한국적 정치 상황에서는 크게 3가지 이념적 분류가 가능하다. 자유한국당=보수, 민주당=중도 리버럴 liberal, 정의당 등 진보정당 = 좌측 정당이다.


두번째, 민주당 586이나 문재인 대통령을 '선악 구도'로 정치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자유한국당도, 정의당도 자기 정당 이념에 근거해서 '정치적 선악'을 구분한다. 이런 이데올로기 (정치적 가치관과 관점)가 없다는 정당정치는 불필요하다. 그냥 중세 교회나 조선시대 유교통치를 하면 된다.


세번째, 최장집은 운동권의 분화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1970-80년대 학생운동권은 변절한 김문수는 자유한국당에, 전대협 의장 이인영 그룹은 민주당에, 진보좌파와 급진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학생운동권은 정의당, 노동당,녹색당 등에 포진되어 있다.


최장집의 아래 저 문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1) 학생운동권 중에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정치계급 (the ruling class)는 민주당586 그룹이다. 


2) 그 뒤에 나오는 문장은 해석논란이 많고 넌센스 문장이지만, 굳이 해석해보자면, 이성적 이념에 근거한 급진주의 (radicalism) 태도를 가지고, 세금과 같은 소득재분배, 노동소득과 같은 소득분배, 부동산과 같은 자산 재분배를 포함한 인민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집단이 있다. 이들은 속칭 민주당도 자유한국당도 아닌 정의당을 포함한 ‘진보정당들’이다.


2. 또 다른 최교수 문제점을 보자.


(1) 이번 조국 논란에서 조국 교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최장집의 조국 교수의 “진보집권플랜” 책을 독일 칼 슈미트와 유사하다고 한 점은 적절하지 않다.


조국이 ‘진보 대 보수’ 개념틀의 상충을 사용했더라도, 그가 보수의 정치적 숙청이나 법실증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장집은 “다원적 통치체제로서 민주주의”가 마치 “직접 민주주의 =다수 인민 총의”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는데 이는 타당성이 떨어진다.


(2) 알려졌다시피 최장집은 로버트 달 (Robert Dahl)의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를 신봉한다. 하지만 그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실제 내부를 살펴보면, 미국의 수퍼 파워 엘리트, 부자, 월스트리트 금융자본가가 다원주의를 오히려 파괴하고 ‘정치와 경제’를 독점하고 있다. 이런 경향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비판해야 하는데, 이 비판적 기준이 명료하지 않다.


그리고 직접민주주의는 끊임없이 간접민주주의, 대의제 민주주의 (총선,대선 등)를 개선해나가는데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최장집은 이러한 직접민주주의를 ‘전체주의’로 매도하고 있는데, 이는 근거가 빈약하다.


스위스는 주민 선거가 가장 많은 국가들 중에 하나다. 선거제도가 ‘간접 대의제’이지만, 직접민주주의 근사치가 되도록, 주민들 의견들을 여러가지 방식들을 만들어서 묻는 것이다.


소환제, 국민과 직접 소통, 시민들이 행정, 입법, 사법 위원회 참여 등 직접 민주주의 요소들을 제도화하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자들에게는 필수 과제이다. 이런 직접민주주의 정신은 전체주의와는 인연은 없다.  




관련 기사



https://news.joins.com/article/23652334?fbclid=IwAR2EwzA5eXMH-iolzam5XIxWVPYvlD5rSi_n799pTfyXD5sTF3-Iq2JKJ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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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민주당2019. 9. 1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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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kjung Kim

2019.September 13 at 12:37 AM · 

 

 

김상봉 철학자의 "서울대 촛불은 도깨비 불"글을 읽고, 몇가지 비판적 메모.

 

 1) 소통과 사실에 기초한 글이 아니다. 

 

김교수의 글에는 서울대생들의 주장들과 그 근거들에 대한 비판이 많이 결여되어 있다. 이 긴 글의 핵심요지는 특권층 서울대생들이 조국 딸을 비난하는 것은 50보 100보다라는 것이다.

 

김교수는 더 비난의 강도를 높여 서울대생 데모 이유는 그들이 조국 딸과 똑같은 스펙쌓기 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라고 야유했다.

 

김교수는 서울대생들의 논쟁들과 집회 발언들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 학생들이 외친 구호는, 조국 교수의 진보적 발언들과 책 내용들이 그 행동과 달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대생 주장 논거들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고, 김교수는 서울대생들은 시위 자격이 없다고 외치고 있다. 서울대 내부에는 조국에 대한 다양한 정치적 입장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다양한 주장들에 대한 검토가 빠져있다.그래서 김교수 글이 풍부하지 못하고 설득력이 떨어진다.

 

서울대생 촛불은 불장난이고 도깨비불이라는 김상봉 교수의 글은 91년 김지하의 '죽음의 굿판'을 치워라와 박홍의 '배후에 주사파가 있다'의 순한 맛이다. 이데올로기만 다를 뿐이다.

 

 

한때 유행처럼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론, 정치토론법이 유행했다. 하버마스의 이상적 대화 상황의 조건들 중에 하나는 상대방에게 말할 권리를 나와 동등하게 주라는 것이다.

 

 

2. 김교수 글은 민주주의가 결여되어 있다. 한국의 좌파와 진보는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를 심화발전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우리의 정체성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좌파와 질적으로 다른 한국 진보와 좌파, 조국교수의 사회주의의 특질이 바로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태도이디.

 

 

왜냐하면 우리는 30년 군사독재 하에서 획일적 전체주의와 군사적 자본주의 하에서 민주화 운동과 노동해방 여성 해방을 외치고, 평화공존을 주창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 길다고 김자르던 가위로 머리 자르던 윤리 교사에게 민주주의를 배웠다. 386은 너무 잘 알 것이다.

 

 

난 서울대 고려대 부산대 학생들이 조국 교수를 비판하는 데모에서 '공정성'만 언급하고, '계급 차별'을 주창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첫번째 이유는 사실이 아니다. 두 가지 내용들이 다 들어있었다. 두번째 서울대 총학생회장 등 주류파가 '계급 차별'은 살짝 제외하고 부르조아 공정성, 형식적 절차적 공정성만을 외쳤다고 해도, 그것은 정치적 데모이다.

 

 

당연히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의 제한적 의미의 공정성 주창을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리버럴리스트 정당인 민주당은 자기 정당의 가치와 정확히 부합하는 공정성 fairness 주장을 반대해서는 안된다.

 

 

Liberalism 의미는 역사적으로 종교에 대한 관용적 태도에서 나왔다. 의견과 신념이 다르더라도 차이를 서로 포용하는 사람이 리버럴리스트이다.

 

 

유시민과 김상봉 교수의 글은 적어도 리버럴리스트는 아니다. 왜냐하면 의견이 다르다 해서, 유시민은 서울대 데모를 자유한국당의 배후조종 정도로 비하하면서 물반 고기반이라고 조롱했고, 김교수는 불장난이자 도깨비불이라 야유를 보냈기 때문이다.

 

 

김상봉 교수의 글은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정신과는 맞지 않는다. 2019년 9월 서울대생 촛불시위는 사회주의나 정의당 혁명지도부의 지도를 받지 않는, 어쩌면 단일 사안에 대한 즉각적 일시적 데모에 가깝다. 서울대 고려대 촛불을 너희도 특권층인데 조국을 봉변할 자격이 없다는 김상봉 교수의 글이 정당한 비판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요소들이 있다.

 

 

3. 김상봉 교수의 글은 저자의 의도와 반대로 전남대 동신대 학생들의 지적 실천적 능력을 무시했다. 김교수의 진단은 간단하다. 조국 논란은 태풍 속 서울대 찻잔이라는 것이다. 이런 진단은 수동적 공격성 passive aggressive 정치 행위에 가깝다.

 

 

비록 서울대생들이 부르조아 공정성, 마이클 샌델류의 정의론 수준, 존 롤즈와 같은 정치적 자유주의, 즉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더라도, 조국 교수 딸, 나경원 아들 이슈를 한국 교육제도의 변혁 기회로 발전시켜야 한다.

 

 

전남대 동신대 경북대 충남대 제주대 학생들도 이번 조국 논란에 대해 정치적 입장들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조국후보자는 서울대 교수이기 때문에 서울대생들이 자기 학교 교수가 부끄럽다고 들고 일어난 것 뿐이다.

 

 

전남대 교수 딸 아들 문제가 동일하게 발생했다면 전남대생들도 민주광장에 촛불을 들었을 것이다. 아니 금남로 충장로로 진출했을 것이다.

 

 

경북대생들도 조국 딸 논란에 입장을 표명해서 좋은 호응을 받았다. 김교수의 글은 전남대 동신대생들의 지적 실천적 능력을 자의적으로 폄하한 결과를 낳았다.

 

 

4. 서울대생 촛불 시위를 조국의 봉변이라고 비난한 것은 사태를 호도한 것이다. 난 조국 교수에 대한 인권침해는 비판해왔다. 부친묘소 비석까지 공개한 김진태는 의원 자격없다.

 

 

그러나 딸의 논문 제 1저자는 교수로서 조국 후보자가 직접 나서서 말렸어야 할 사안이다. 정말 인간적으로 조국 교수를 이해하고, 이 모든 논란이 종료될 때,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겠다. 2007년 조국 교수가 2017년 정치권에 일할 줄 누가, 오이디푸스도 오딧세이도 예측했겠는가?

 

 

이러한 인간의 슬픈 미래를 불확실함을 서로 주체성으로 한탄할 수는 있겠다.

 

 

철학개론 논리학 시간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배운다. 김상봉 교수글은 서울대 촛불 시위에 참석한 학생들이 조국 딸의 특권을 가진 자들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그 속에 전남 화순 너릿재 아래 사는 학생들도, 대구 남산동 학생도, 마산 돝섬 수퍼 딸도 있을 수 있다. 김교수의 글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다.

 

 

 

 

 

 

 

김상봉 교수 글 -> 

 

http://bit.ly/31otZ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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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관련 기사:

    왜냐면] 김상봉 교수의 글에 반(反)함 / 이동건

    등록 :2019-09-11 17:15수정 :2019-09-11 19:29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에서 오셀로는 악의를 품은 이아고의 교묘한 계략으로 자신의 아내 데스데모나를 살해한다.

    악 그 자체로 묘사되는 이아고지만 그 역시 사연은 있었다. 권력자들의 총애를 받은 신참내기 오셀로가 장수가 된 후 오랫동안 공을 세운 자신 대신 다른 이를 부관으로 임명했던 것이다.

    질투심으로 악인이 될 수밖에 없던 이아고의 전략은 자신과 같이 오셀로의 심부에 ‘질투심’의 불씨를 지피는 것이었다.


    조국 서울대 교수가 법무부 장관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기 위해 서울대생들이 촛불을 들었다.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한겨레> 칼럼을 통해, 서울대생들이 학생증을 검사하고 서울대생만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에서부터 비판을 시작한다.

    내부와 외부를 나눌 까닭은 무엇이며 누가 오든 마다할 까닭은 또 무엇이냐고. 지식인들은 조국 교수의 장관 임명에 사활을 건 듯 다양한 논의를 전개한다.

    얼마 전, 유시민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서울대생들의 촛불집회에 자유한국당이 어른거린다며 참여자들이 과연 서울대생인지 모르겠다는 묘한 뉘앙스를 남겼다.

    한쪽에서는 너희들의 정체가 뭐냐고 묻고 다른 한쪽에서는 왜 정체를 묻냐며 서울대생들을 토끼몰이 한다.


    서울대생이 집회에서 학생증을 검사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학생들만의 집회가 아닌 우파 정치세력의 개입이 있다는 유시민의 주장에 대해 자신들의 순수성을 입증하기 위한 하나의 답변이지 않나.

    그런데 김 교수는 서울대생들이 나와 너를 구분하고 있으며 학벌주의의 혜택을 누리는 특권계층으로 일반화한다.

    두 사람이 서울대생들에게 서로 다른 요구를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드러난다.

    즉 “서울대생은 특권을 누리고 있으며 이런 특권을 누리기 위해 스카이캐슬행 입시열차에 자발적으로 탄 권력계층이다. 그러니 입 다물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리스 비극에서 운명의 신 모이라는 가계의 저주를 오이디푸스에게 내린 것이었다고 했지만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사실 스핑크스의 문제를 푼 가장 지혜로운 인간이 바로 자신이라는 오이디푸스의 자만심과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해 길가에서 아비를 죽인 그의 어리석음이었다.

    이와 같이 조국 법무부 장관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비판받는 것은 그의 자식, 아내의 악이라기보다는 그것을 모른 그의 무지 때문인 것이다. 자신은 몰랐다는 일관된 답변은 그가 무지했다는 것을 토로한 것이며 법리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의 비극은 스스로의 무지로 스스로에게 닥쳤을 뿐이다.


    현재 여당의 지지 동력은 첫째, 조국 사태를 검찰의 악랄함에 우롱당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연결 지을 수밖에 없는 신경증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가시이며 그 가시는 끊임없이 그들에게 아픔을 생산한다.

    우린 아직 그를 환송하지 못했으니 노 전 대통령은 유령으로서 아직 우리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다음으로 질투심이다. 앞서 오셀로가 질투심에 사로잡혀 자신의 아내를 죽이고 자신을 파괴할 수밖에 없었듯이 이제 한국 사회의 체제에 삽입된 학벌주의는 서울대생에 대한 과도한 증오심과 비아냥거림을 만들고 있다.

    김 교수가 몸담았던 ‘학벌 없는 사회’가 더 이상 학벌에 대한 문제제기만으로는 답이 없으니 자본과 맞서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라졌다.

    이제 ‘서울대생=입사=권력자’의 등식은 깨지고 있다.

    이미 서울대생 안에서 또 다른 계층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그들에게 서울대생은 모두 기득권자라고 포박하는 것은 타당한가.

    그들 모두는 질투의 대상인가.

    김 교수는 서울대생들의 촛불시위에는 어떤 공공성도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서울대생들이 조국 장관 임명을 반대하며 든 촛불에도 공공성은 존재한다.

    공직자에게 필요한 인격의 일관성 요구, 그리고 허구에 불과하지만 공정성의 마지노선인 입시의 공정성을 회복하려는 공공성의 가치가 내재해 있는 것이다.

    정말 문제는 학생증을 확인하면서 내부와 외부를 구분한다는 서울대생이 아니라 조국 장관에 대한 지지 여부로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여 새로운 이념적 학생증을 배부하는 작금의 상황이다.

    오이디푸스와 오셀로는 자신의 눈을 찌르고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파멸시킴으로써 자기책임의 윤리를 완수한 영웅이 됐다. 조국 장관이 소인배로 머물지 아니면 대인이 될지는 이제 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동건 성균관대 서양철학 전공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09365.html#csidx48b4910e53778c19ead9c9438068677

    2020.03.06 09:4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한국정치/민주당2016. 4. 2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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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의 정치적 주장들은 농약을 많이 뿌린 배추들에 가깝지, 유기농 배추는 아니다. 


1. 김용옥은 '413 호남 투표에 분노한다'고 했지만, 내가 볼 때는 '호남 민심이 김용옥의 정치적 머리를 능가했다.' 그리고 과거에도 그랬지만, 미래도 김용옥을 뒤로 따돌릴 것이다. 국민의당과 안철수의 보수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선거결과를 보면, 1987년 이후 만들어진 정당질서들을 호남 유권자들이 가장 먼저 빠른 속도로 해체시켰다. 


-진보정당이 국민의당 자리 대신 들어섰으면 더 좋았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다. 김용옥의 주장은 호남민심이 413총선과 2017년 대선을 동시에 고려하고 있다는 것도 간과했다. 정치적 다원주의라는 입장에서 보면 대구 유권자들이 30년 넘는 여당인 새누리당을 심판했듯이, 광주와 호남에서 30년 넘게 여당이었던 더민주를 심판함으로써, 다당제, 다원주의적 정치 질서들을 창출했다. 


- 호남 유권자들이 정당투표에서 더민주당에 30.61%, 국민의당에 48%, 정의당에 7%를 줌으로써, 적어도 3개 정당들을 경합시키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더민주 지역구 후보들의 경쟁력 없음에 대해서는 논외로 치자) 


- 전라도 신화라고 김용옥이 표현했는데, 그 단어 역시 적절한 용어도 아니다. 김용옥의 정치적 판단은 비-역사적이다. 이승만 정부 하에서는 대구가 가장 강력한 반-이승만 세력이었고, 박정희 정부 하에서 부산-마산 항쟁이 79년 터졌다. 그 연속 선상에서 80년 광주항쟁과 시민무장투쟁도 해석되어야 한다. 


- 그리고 1789년 프랑스 혁명이 결국 나폴레옹 등장으로 끝났다고 해서 그걸 '프랑스 혁명 신화는 깨졌다'고 하는가? 김용옥이 정치학자도 역사학자도 아니지만, 자의적으로 아무렇게나 용어를 써서는 안된다. 프랑스 혁명은 보편사이고, 1980년 광주항쟁은 그냥 '호남인들의 비지니스'인가? 실제 광주항쟁이 보여준 저항정신, 시민참여민주주의, 제국주의에 대한 각성,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역사적 각성 등은 오히려 '보편정신'으로 승화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다. '전라도 신화'는 애초에 없었다. 



기사 출처: 

http://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40934.html?_fr=m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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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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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대포장된 사람입니다.
    책은 많이 읽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정치,경제, 역사, 사회 등에 대한 성찰이 너무 피상적이고, 그의 강의를 듣고 있자면 자의적인 해석이 너무 많습니다.

    헌데 김용옥뿐이겠습니까?
    진보매체에 글을 올리는 자들의 수준을 보면 기가 막힐 정도인데...

    너무 공부를 안하고 성찰의 깊이는 형편없습니다.
    통섭적 시각이 아니면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을 자신의 관점에서만 해석하다보니 논리적 오류와 비약이 난무합니다.

    2016.04.25 22: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늙은도령님. 예. 잘 지적하신 것 같습니다. '통섭'은 힘든 작업입니다. 개인적으로도 많이 공부해야 하고, 넓게 깊게. 또 다른 사람들과 꾸준히 오래 작업해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데, 그런 집단들이 많지는 않으니까요.

      김용옥교수는 가끔 재미있는 이야기도 할 때도 있는데 (엔터테이너로서), 정치 분석이나 제안들은 아무래도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많습니다. 특히 위 '전라도' '호남' 분석은 넌센스입니다.

      80년 광주 정신이 언제부터 '전라도 신화'로 변질되었나요? 전라도 '민담'이나 '설화' 수준이나 그냥 '에피소드' 식으로 80년 광주를 해석하는 것은, 프랑스 혁명이나 영국 혁명은 세계 보편사처럼 다루면서, 한국사는 '자학'이나 '지역사' 수준으로 폄하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2016.04.26 12:06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