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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6

배우 이선균 유작 '행복의 나라'. 1026 김재규와 박흥주. 박흥주 대령의 직장, 중앙정보부라는 특수한 일터에서 갑자기 동료들을 사살해야 하는 명령을 받았을 때, 박흥주 대령의 심정이란 무엇이었을까? 언젠가는 만들어야졌을 할 영화, 혹은 드라마이다. 김재규의 직속부하였던 박흥주 대령은 10.26 당시 그 날 어떤 심정이었을까? 군인이라는 특수직업, 상관의 명령을 그는 어떻게 해석했을까? 그 문제이다. 위계 질서 체계라는 측면에서 볼 때, 박정희는 대통령이고, 김재규는 박흥주 대령의 직속 상관이다.그렇다면 박흥주 대령은 누구의 명령을 따라야했을까?  다른 각도에서도 박흥주 대령을 해석할 수도 있다. 박흥주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부하도, 박정희의 공무원도 아닌, 시민 박흥주로서, 정치적 사고의 주체로서 박흥주라는 측면을 부각시킬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격변과 사건, 혁명과 반란에서는, 한 개인의 사상과 선택 보다는, 그 집합적 행동이 가지는 특질이 개인보다 더 규정적이고,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평가하.. 2024. 9. 16.
차지철 관련 언론보도. 518광주 항쟁 참여자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는 독재자 박정희와 그의 충복 차지철을 저격했다. 그런데 차지철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그의 전 아내 송희성 여사는 이혼 후, 광주에서 교육자로 일했으며, 1980년 518 광주항쟁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언론보도 내용. ------------------------  “차지철 前부인 송희성, 광주 민주회장 지내… 역사의 아이러니”문화일보입력 2023-12-29 11:15  https://munhwa.com/news/view.html?no=2023122901072836050001   1990년대 문화예술인들 모임에서 만난 정주영(오른쪽) 당시 현대 명예회장과 김종원 씨가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한상언영화연구소 제공 ■ 회고록 ‘시정신과 영화…’ 낸 1세대 영화평론.. 2024. 9. 14.
518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0일 - 광주 뉴스 없어. 동아 1면, 김재규 사형 확정. - 518광주항쟁 당시 언론보도. 5월 20일  5월 20일 동아일보 석간에도 광주 518 뉴스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광주 뉴스 없어. 동아 1면, 김재규 사형 확정. 2024. 5. 22.
1026 박정희 사망. 김재규 박흥주 박선호 언론 보도. 1026 관련 언론 보도 자료.  .  .10·26 40주년]① 궁정동의 총소리…엇갈리는 평가2019-10-25 06:00글자크기 변경 공유 댓글[편집자 주: 1979년 10월 26일 저녁,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 인근의 궁정동 안가(安家)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김계원 청와대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 등과 만찬중 김재규 부장이 쏜 총탄을 맞고 숨졌습니다. 우리 헌정사상 초유의 국가원수 피살이었습니다. 연합뉴스는 26일 40주년을 맞는 10·26 사건을 당시 수사 관계자, 변호인 등의 회고록과 증언 등을 토대로 재구성, 그 의미를 되짚어 보는 3건의 기사를 송고합니다. 기사에 인용된 회고록 내용과 증언에는 전달자의 시각과 입장이 반영되어 있는 만큼 진실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알립니다... 2020. 3. 5.
1976년 김종인, 한국 박정희 정부 하에서는 세금정책 재분배 효과 기대힘들다 김종인 있는 그대로 보기 시리즈. 김종인 '리즈시절' 사진이다. 1976년 김종인은 '흥미롭게도' 유럽복지국가들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조세정책을 통해서 소득 '재분배'를 할 수 없다고 봤다. (진짜 그랬을까?/응당 했어야 할 세제개혁을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반면 김완순 교수는 같은 동아일보 지면에서, 소득계층별로 '적정' 조세 부담율을 적용하자고 주장했다. -김종인이 말한 서유럽국가들과 한국의 차이는 이해하지만, 박정희 시대에도 존재했던 소득/자산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법인세나 상위소득자에 대한 '누진과세(직접세)'는 실시하는 게 옳았다. 1978년 총선에서 박정희 공화당은 야당 신민당보다 의석수는 많았지만 득표율은 1.11% 더 적었다. 한마디로 민심이반이었다. - 얼마전에 별세한 당시 공화.. 2016. 3. 11.
박근혜 통치, 정윤회는 정말 최후의 보디가드일까? 박근혜식 보수 정치 철학을 수립하지도 못하고, 심리적 보디가드 영화 찍다 임기를 마치다. 박근혜 정치관은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총격 사망,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총격 사망에서 비롯된다. 박근혜 정치 심리학의 최고 목표는 무한한 안전지대를 만드는 것이다. 심지어는 박근혜의 정치적 기반인 영남이나 대구 구미도 믿지 않는다. 박정희의 고향 후배 제자인 김재규의 총에 아버지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22세 어머니를 잃고, 27세에 아버지를 잃었다. 보통 여느 20대 여성이면 연애, 직장, 친구들과의 희로애락을 체험했을 것이다.그러나 박근혜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20대를 보냈고, 그 상처는 세상 어떤 슬픔도 그 상처의 깊이를 초월하지 못한다. 박근혜는 2014년 평화롭고 제도.. 2014.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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