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하씨가 걱정이 되긴 했다. 내성적이고 얌전한 사람이 사고를 치면 외향적인 사람보다 더 큰 규모로 친다는 속설이 있지 않은가.
심은하씨도 한석규의 밍기적 때문에 나름 속끓였다. 그래서 은하씨도 돌도 던지고, 유리창도 깨고 그랬겠지만. 그게 21세기 전 일이다. 98년 즈음 복지삭감, 노동자 해고 IMF 긴축 독재가 민심을 망쳐놨다. 이런 사회적 절망 분위기 탓일까? 심은하씨도 그런 비정한 광풍의 무풍지대는 아니었으리라.
그 후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었을까? 심은하씨는 영화 출연도 하지 않고, 죄없는 사진관 유리창만 깨고, 아련한 아쉬움으로 퇴장했다. 사실 일에 치여 살다보니, 은하씨가 퇴장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른다.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다.
415 총선, 위성정당 난리 통에, 그 심은하씨가 재등장했다. 사진관 유리창 사건의 아픔을 딛고, 얘들도 둘 낳고, 남편 선거운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뉴스였다.
코로나 19 때문에 마스크를 썼지만, 백합 같이 시들어 가는 아사코와는 딴판이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 한석규와 아이스크림 나눠먹던 시절로 회귀한 것 같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보수당이라 하여 홍준표처럼 “니들이 정치를 알어? 뭘 알어? 대구서도 1등 먹었다”고 뽐내는 사나이는 아니었다.
심은하씨는 동네 아저씨들에게도 서슴없이 다가가 말을 건네는 싹싹한 동네 젊은 아줌으로 변신중이었다.
때론 정치는 말로,논리로,책으로,연구논문으로,페이스북에다 도표 그려가며 ‘사회과학인 척’ 하는 것보다는, 심은하씨처럼 유리창에 남몰래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와장창 소리는 뙤약볕에 소나기 같은 시원함, 카타르시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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