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햇볕 정책의 의미 출발점은 시기적으로 누가 빠른지 모르겠지만, 김영삼 정부시절 1993년 5월 한완상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이 "햇볕정책"의 골격을 언급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완상의 햇볕정책은 김영삼 내부 강경파에 밀려서 현실화되지 못하고 좌초되었다.
2. 1993년 7월 6일자. 김대중 귀국이후, "영국 구상" 발표.
가장 중요한 것은 1989년 몰타 회담으로 냉전 체제 해체 이후, 한국도 기존의 대북강경론을 버리고, 북한과 한국이 "주고 받는 것 give and take'를 실천하자는 취지이다. 그게 김대중의 '영국 구상'이었고, 별칭이 "햇볕정책"이었다.
<참고사항>
Georgy Toloraya (한국과 북한에서 외교관 생활을 한, 한반도 전문가 게오르기 톨로라야 )
<후기>
나 역시 톨로라야와 동일한 생각이다. 그 동안 평양 김정일 위원장과 북한 군부내 강경파(hard liner)의 대남 노선 대미 노선을 고려해 본다면, 이명박 정부의 <비핵 개방 3000>이 확실하게 김대중-노무현의 <햇볕정책> 노선을 베끼지 않는다면, 평양정부는 계속해서 MB정부에 대해서 삐딱한 '불신임' 정책과 '견제 및 실험기간'을 늘이려고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확실한 '대북 식량원조 카드'와 '경제적 이익 다발'을 챙겨주는 프로그램을 제시하기 전까지.
게오르기 톨로라야는 <햇볕 정책 sunshine policy>이라는 용어도, 김정일 위원장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자존심 상해한다고 말했다. 그럼 대안적 용어가 뭐를 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는, <협조 co-operation> 정도가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역시 외교관다운 이야기였다.
출처: http://futureplan.tistory.com/entry/북핵-위기의-원인과-해법-미국-내-북핵을-바라보는-시각과-대응들 [한국정치 노트 Notes on the Politics of Korea]
4. 클린턴 행정부 당시 미국 북한 전쟁 일측촉발 당시 강석주와 만났던 미국 로버트 갈루치 핵전담 대사, 조지타운 대학 국제대학 교수이다. 김대중 햇볕정책을 '용감한 결단'이라고 칭찬하다.
5. 1998년 9월 2일. 북한 미사일 발사 ; 대포동 1호 발사 , 한미일과 긴장 관계
8. 김대중 햇볕정책은 동시에 남북 당국자, 정상회담을 추진해나갔다.
서해 교전은 하되, 대화 채널은 계속 유지했다.
10.
공해 international waters 개념이 남과 북한 사이에 문제가 되기 시작하다. NLL 문제 .
11. 국내 정당들 사이에 햇볕정책을 두고 논쟁이 가열되다.
.
13.
자민현의 변웅전 의원이 제기한 "상호주의"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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