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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좋은 기획 기사. 한겨레. 회생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해야. 개인과 가족의 파산. 1) 파산의 경제 구조적 원인. 자영업자 대출 1052조원, 역대 최고 2) 96살 부모 간병에 빚 5천.

by 원시 2024. 2. 5.

개인에게 모든 부담을 지워버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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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획 기사. 한겨레. 회생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해야. 개인과 가족의 파산. 1) 파산의 경제 구조적 원인. 자영업자 대출 1052조원, 역대 최고 2) 96살 부모 간병에 빚 5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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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살 부모 간병에 빚 5천…내 우울증 약값 부담돼 거짓말을 했다


[가족 파산] ②가족은 어떻게 ‘빚의 굴레’가 되었나

 


65살 김민자씨의 ‘간병 지옥’
24시간 침대 옆에서 때맞춰 죽·약
간병·채무에 우울증·공황장애
84살 정청일씨 ‘가족 파산’
종교사기 당한 딸 도와주다 기울어
뇌출혈·암·관절염…병원비 눈덩이
기자김지은,박준용,윤운식,김혜윤


수정 2024-02-05 12:01등록 2024-02-05 05:00


개인회생 상황에 처한 김민자(가명)씨가 지난해 12월14일 서울 서대문구 반지하 방에서 어머니를 보살피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간병은 순간의 자유도 허용하지 않는다. 심장병과 신우신염을 앓는 96살 어머니를 돌보는 김민자(가명·65)는 하루 21시간 동안 그렇다.

시간에 맞춰 죽과 약을 챙겨야 한다. 낙상하거나 상태가 급변할까 싶어 침대 곁을 떠나지 못한다. 유일한 자유 시간은 요양보호사가 방문하는 오후 4시부터 3시간 동안이다. 그렇다고 이 시간만 딱 떼어 일을 할 수도 없다. 김민자도 허리 협착 때문에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간병과 병원이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은 지옥과 같다. “그래도 어머니가 있으니 근근이 사는 거죠. 지금도 어머니(라는) 숙제만 마치면 죽자고 생각해요.”

국가가 간병을 개인에게 방치한 결과

8년 동안 어머니 간병에 갇히게 되면서 생활비와 어머니 약값은 오롯이 빚이 되었다. 그 빚이 5천여만원으로 불어나면서 김민자는 2년 전부터 개인회생에 기대고 있다. 소득이 없는 이에게 빚을 탕감해주는 개인파산이 아니라 원금 일부를 갚게 하는 개인회생을 선택한 건 돈을 빌려준 친구에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개인회생을 통해 금융기관 대출 500만원을 5년에 걸쳐 갚고 있다.


간병과 채무 사이에서 김민자는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병원에 가서 우울증 약을 몇번 탔는데 약값이 부담스러워서 ‘어지럽고 잘 안 듣는 것 같아요’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담당자가 눈치를 채고 ‘병원비 걱정이 되어서 그러시는 거죠?’라고 하더라고요. 그냥 눈물이 터졌습니다.”

가족 파산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경제적 붕괴의 원인은 간병 부담이다. 가족에게 당연한 듯 간병과 돌봄을 맡기는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서 간병과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은 점점 늘어나지만 정작 일을 할 수 없어서 이 비용을 감당하기 위한 소득은 점점 줄어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간병 살인이나 가족 살해 후 자살이라는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한겨레가 파산 신청자 12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빚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원인’을 묻는 질문에 11.7%(15명)가 ‘의료비 지출’을 이유로 꼽았다.

간병비 한달 400만원…전년보다 9% 넘게 폭증

통계청 자료를 보면, 최근 2년 동안 간병비는 전년 대비 9% 이상 오르고 있다. 2019년 3.1%, 2020년 2.7%였던 간병비 상승률이 2021년 6.8%로 급격히 뛰더니 2022년 9.2%, 2023년은 9.3%나 올랐다. 하루 12만~13만원씩 한달이면 400만원가량의 간병비가 든다는 호소가 나오는 까닭이다. 


파산 관재인인 김창수 변호사는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누군가는 간병을 해야 하는데, 꼭 간병이 아니더라도 돌봄을 하다 보면 소득이 떨어지게 되고 이 때문에 카드로 버티다가 개인파산이나 개인회생으로 가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주성철(59)도 코로나19와 간병 부담 탓에 파산 신청을 했다. 대리운전 일을 했는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술자리가 줄어드니 소득이 확 줄었다. 그런 와중에 어머니가 쓸개 쪽에 병이 생기면서 병원과 요양병원을 오가게 됐다. 병원에서 코로나19 때문에 가족은 간병을 할 수 없다고 해서 간병인 비용도 따로 냈다.

그렇게 2020년 중반부터 제2금융권 대출을 받기 시작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1년 동안 간병비로만 3천만원 정도를 빌렸다. 생활비까지 더해서 그 빚은 2~3년 사이 8천만원으로 불어났다.

주성철은 지난해 파산 신청을 하고 건설 현장에서 일해서 번 돈으로 면책되지 않는 빚 일부를 갚으면서 최종 면책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제가 옷을 자주 사 입고 외식도 자주 하고 술을 자주 먹고 사치를 하고 그런 건 아니거든요. 검소한 건 또 아니지만 소박하게 살아왔는데, 이상하게 티도 안 나게 돈이 없어져버리더라고요. 가족에 대한 원망은 없어요. 내 인생이고 내 업보다, 생각하고 순리대로 받아들여야지요.”



딸이 겪은 종교 사기와 집 화재 피해로 빚 부담을 겪는 황순희(오른쪽)씨가 지난해 11월17일 전북 남원시 자택에서 생계 수단인 공공근로 근무표를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황씨는 허리디스크로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사기 피해나 주식 투자로 가족 파산하기도

한겨레가 만난 파산 신청자 중에서는 사기를 당한 가족 구성원을 도와주다 함께 채무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사례도 많았다. 한겨레의 파산 신청자 128명 설문조사에서 채무의 주요 원인으로 ‘사기’를 꼽은 이는 13.3%(17명)였다.

전북 남원에서 농사를 짓는 황순희(80)와 정청일(84) 부부는 둘째 딸 정소망(47)이 종교 사기 피해를 당하면서 집안이 기울었다. 딸은 2003년부터 종교 공동체에 발을 들였고, 2022년 거기서 벗어날 때까지 19년 동안 착취를 당했다.

황순희 부부는 여러 차례 종교 공동체를 찾아갔으나 딸을 만나지 못했고, 되레 “딸이 아프다”는 말에 치료비 격으로 2천만~3천만원 정도를 종교 공동체에 사실상 강탈당했다. 황순희 명의로 대출을 받아서 낸 돈이었다. 딸이 가져간 카드의 결제 대금이 다달이 날아오기도 했다. 이후에는 정소망의 남매 4명도 수천만원의 돈을 빼앗겼다.

그러다 10년 전 정청일이 뇌출혈로 쓰러지고 이후 혈액암과 위암, 퇴행성 관절염까지 겹치면서 매달 100만원 정도의 병원비를 쓰게 됐다. 5만원짜리 영양주사를 맞지 않으면 거동조차 힘들지만, 빚 때문에 돈을 아끼느라 저렴한 주사를 찾아서 맞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5년 전에는 누전으로 집에서 불이 나 새로 집을 짓는 데 또다시 1억원 정도 대출을 받았다. 그나마 가족은 딸 정소망이 파산 신청으로 빚을 탕감받고, 황순희 부부의 빚은 큰아들(54)이 건설현장 일용직 일로 갚아나가면서 서로 의지해 살고 있다. “아들이 ‘노가다’로 1년에 700만원씩 빚을 갚고 있어요. 그 돈 다 갚으면 자기 70대 된다고 하더라고요.” 황순희가 말했다.


최근에는 주식이나 코인 투자 실패가 가족을 파산으로 내모는 경우도 많다. 한겨레의 파산 신청자 128명 설문조사에서 채무의 주요 원인으로 ‘주식이나 코인 투자 실패’를 꼽은 이는 9.4%(12명)였다.

서울회생법원의 ‘2022년 개인파산사건 통계조사 결과보고서’에서도 ‘투자(주식 등) 실패 또는 사기 피해’에 따른 파산 신청자 비율이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2%대를 유지했으나 2022년에는 11.3%로 급증했다.

윤진아(가명·67)는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남편이 본인도 모르는 주식 종목에 투자했다가 주가가 급락하면서 4천만원이나 되는 빚을 지게 됐다. 생활이 막막해지고 자녀에게 빚을 대물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면서 지난해 파산 신청을 했다. 그는 “자꾸 안 좋은 생각까지 하다가 파산 신청을 하면서 살길이 트이게 됐다”고 했다.

간병이나 사기 피해, 주식이나 코인 투자 실패 등으로 가족 구성원 가운데 한곳에서만 구멍이 나도 채무의 부정적 효과는 순식간에 번진다. 유순덕 주빌리은행 상임이사는 “보통 가족 중 한명의 신용이 한계에 다다르면 가족들의 신용을 끌어들여서 빚을 갚게 된다. 한 사람만 빚을 진 뒤 채무 조정을 해서 (굴레를) 끊으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 온 가족이 돌려막기를 하다 보니 결국 모두가 돈을 구할 데가 없어져야 끝나게 되는 것”이라며 “개인이 제때 채무 상담을 해서 빚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27224.html

 

96살 부모 간병에 빚 5천…내 우울증 약값 부담돼 거짓말을 했다

간병은 순간의 자유도 허용하지 않는다. 심장병과 신우신염을 앓는 96살 어머니를 돌보는 김민자(가명·65)는 하루 21시간 동안 그렇다. 시간에 맞춰 죽과 약을 챙겨야 한다. 낙상하거나 상태가 급

www.hani.co.kr

 

 

 

 

 

 

 

 

 

직장까지 찾아와 “남편빚 갚아라”…조여오는 빚 ‘가족의 공멸’

 


[가족 파산] ②초등교사 강연희씨가 죽음 내몰린 이유


상환 독촉에 가족 살해 뒤 본인도…
최근 3년간 63건 발생, 168명 숨져
가정경제 무너지며 파국 내몰려
기자박준용,김지은

 


수정 2024-02-05 10:45등록 2024-02-05 05:00

 

 

강연희(가명·40)는 응급실에서 눈을 떴다. 2019년 10월15일 새벽이었다. 전날 밤 강연희는 남편과 함께 수면제를 먹었다. 7살과 5살이던 아이들에게도 먹였다. 잠들기 전에 피운 연기로 인해 남편과 두 아들은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숨졌다. 

 

강연희는 숨이 붙어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강연희는 두 아들에 대한 살인과 남편에 대한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은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강연희가 벌인 ‘살해 후 자살’ 시도는 극단적 유형의 아동학대 범죄다. 다만 강연희를 범죄로 내몬 배경에는 수십억원의 빚이 낳은 사회적 압박이 있다. 파산에 이른 가정 경제의 붕괴가 살해 후 자살이라는 극단적 공멸로 가족을 몰아붙였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낯선 일이 아니다. 한겨레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빅카인즈’에 접속해 검색해봤더니, 2명 이상의 가족이 가족 간 살해와 극단적 선택으로 집단 사망한 사건은 2021년부터 3년 동안 모두 63건 발생했다. 사망자는 168명이나 됐다. 63건에는 가족 살해 후 자살이 40건, 동반자살이 10건 포함돼 있었다. 나머지 13건은 살해 후 자살인지 동반자살인지 보도로는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63건 가운데 경제적 원인으로 인한 사건이 31.7%(20건)였고, 관계 문제로 인한 사건이 17.5%(11건), 돌봄과 간병 문제로 인한 사건이 12.7%(8건)였다. 한겨레가 대법원 판결문 열람 시스템에서 2018년부터 5년 동안 가족을 살해한 뒤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남은 범죄자의 판결문 10건을 추려냈더니, 여기서도 7건에서 대출과 채무, 파산과 같은 경제적 원인에 대한 언급이 발견됐다.



한국에서 처음 살해 후 자살의 실태를 연구한 2022년 한국심리학회지 게재 논문 ‘국내 살해 후 자살의 현황과 특성’에도 경제적 원인에 따른 가족의 공멸 상황이 분석돼 있다. 이 논문은 ‘경찰 수사기록을 통한 자살사망자 전수조사’ 자료를 이용해 2013년부터 5년 동안 벌어진 살해 후 자살 269건을 분석했는데, 가족·동반자 살해 후 자살로 분류된 242건 가운데 ‘경제 문제’가 포함된 사건은 41.7%(101건)나 됐다. 

 

 

논문은 “경제 문제 중에서도 부채 및 파산 문제를 지닌 경우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논문 저자인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최진화 박사는 “과거 아이엠에프(IMF)로 인해 국가 전체가 경제적 위기에 있을 때 가족 살해 후 자살이 증가했다는 선행 연구도 있었다”며 “우리나라는 돈이 없으면 가족이 함께 힘들어질 거라는 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사건 수사 관계자와 지인의 진술, 법무부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사건 공소장과 판결문 내용을 종합해 강연희의 살해 후 자살 시도 사건을 깊게 들여다봤다.

 



빚에 짓눌린 아내는, 결국 남편과 어린 두 아들을…

불행의 시작은 2017년이었다. 금융계에서 일하는 남편의 사업이 계속 망해가며 수십억원의 채무가 생겼다. 남편은 강연희의 명의로도 적지 않은 돈을 빌렸다. 남편은 상황이 심상치 않을 때마다 고액의 납입금이 찍힌 통장을 보여주며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사실이 아니었다.

상황은 2019년 9월20일 임계점에 이르렀다. 강연희가 교사로 일하는 초등학교에 사채업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남편이 빚을 졌으니 당신이 연대보증을 하라”고 말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이들을 제지했지만, 이들은 나흘 뒤 학교에 다시 찾아왔다. 동료 교사들은 물론이거니와 학생들까지 모두 강연희의 경제적 문제를 알게 됐다.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은 30대의 나이에 임용 준비를 시작해 남들보다 늦게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기 시작한 강연희는, 이런 모든 노력이 무너진 상황에 절망했다.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하고, 사건 발생 하루 전까지 이사할 집을 알아보며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강연희는 결국 가족 살해 후 자살이라는 공멸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강연희의 지인은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학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렵게 얻은 직장이었는데 사채업자들이 찾아오면서 연희가 더는 학교에 나가지 못하게 됐다고 생각했어요. 사건이 일어났을 무렵에는 ‘아이들 과자 사 먹일 천원이 없다’고 말하더군요. 이런 충격들로 인해 우울증이 급성으로 찾아온 것 같습니다.”



파국을 겪고도 강연희의 빚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하고 3년이 지난 2022년 강연희가 수감 중인 교도소로 소송 서류가 날아왔다. 원고는 ○○대부 등 대부업체 2곳. 이 업체들이 강연희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채무 수천만원의 변제를 요구하는 민사 소송을 낸 것이다.




가족 3대 파국으로 내몬 30억원대 빚

채무 압박을 견디다 못해 3대가 파국을 맞은 사건도 있다. 대구에 살던 장호태(가명)는 아내가 부동산 업체를 운영하다가 30억원대 빚을 졌다. 2020년 4월 장호태는 아내(45)와 함께 질소가스 흡입으로 어머니(67)와 아들(12)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했다. 

 

어머니와 아내, 아들은 숨진 채 발견됐고, 장호태만 중환자실로 옮겨져 극적으로 깨어났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존속살해, 아들에 대한 살인, 아내에 대한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12년, 2심에선 징역 17년형이 선고됐고, 대법원에서 2심형이 확정됐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장호태는 자신의 혐의 방어에 별다른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다 가족 사망 1주기가 되던 날 교도소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돌봄 부담이 경제적 곤궁함으로 바뀌어 공멸로 나아간 사건도 있다. 이성자(가명·41)는 2019년 발달장애를 지닌 9살 딸을 살해하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이성자는 딸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감당하느라 자신이 3600만원, 남편이 1억5천만원의 빚을 졌다. 그러다 울산의 한 방사선 업체에서 일하던 남편이 실직하면서 삶의 의지를 잃게 됐다. 이성자는 개인파산, 남편은 개인회생을 신청했지만, 이성자는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비극으로 치달은 파산 가족들의 배경에는 채무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가 자리한다. 한국사회복지학회 학술지 게재 논문인 ‘가계 부채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박정민·오욱찬·구서정, 2017)을 보면, 가처분소득 대비 총부채액 비율이 400%를 넘는 경우 그 비율이 100% 미만인 경우보다 우울감을 느낄 가능성이 1.5배 높았다.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상환액 비율이 30%를 넘으면 이 비율이 10% 미만일 때보다 우울감을 겪을 확률이 1.7배 증가했다.



채무자들의 도덕적 압박감도 정신적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2019년 음식점을 차렸다가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으며 빚을 지고 2022년 폐업한 홍선희(가명·68)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채무에 대해 얘기하며 “죄송하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해서 썼다.

 

 그는 “빚을 결국 갚지 못하는 마음에 미안함이 컸다”며 “추심전화가 올 때도 정말 미안하고 죄지은 마음, 압박감이 컸다.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가 생길 정도였다”고 말했다. 개인전을 개최했다가 실적이 좋지 못해 제1~2금융권 등에 빚을 졌다가 파산까지 이르게 된 미술가 박강천(가명·65) 역시 “채무자로서 돈을 갚지 못해서 도덕적으로 미안했다”며 “파산하면 빚이 탕감되니까 파산 신청을 해도 되나 고민도 했었다”고 말했다.

 

 

 

 

 


파산 가족 압박하는 혹독한 채권추심



무엇보다 추심 압박이 정신적 스트레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2009년 제정된 채권추심법에 따라 채권자의 과도한 추심 행위는 금지돼 있다. 채무자를 폭행·협박·체포·감금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반복 방문하면 처벌된다. 채무자 동료나 가족 등에게 채무 사실을 알리는 행위도 금지돼 있다.

 

 하지만 법은 현실을 제어하지 못한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에 의하면, 지난해 상반기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상담·신고된 불법사금융피해 건수는 모두 6784건으로, 전년도 같은 시기(5037건)에 견줘 34.7%나 늘었다. 특히 미등록 대부업체에 대한 신고(2561건) 비중이 가장 컸다.

채권추심법 위반 사범의 구속률도 1%에 불과하다. 2022년 한해 동안 1177건의 불법사금융 사건에서 2085명이 검거됐는데, 구속된 사람은 22명(1.1%)이었다. 

 

게다가 채권추심법 위반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가 지난 7월 펴낸 ‘2023 양형기준’을 보면 ‘반복적 또는 야간 방문, 전화 등 행위’는 ‘기본 4~10개월’, ‘폭행·협박 등 행위’는 ‘기본 6개월~1년6개월’ 양형에 그쳤다. 실제로 2020년 6월 울산에서 미등록 대부업체를 운영하며 반년 동안 채무자 444명을 상대로 4억여원을 대출해주고 이자율이 연 4867%에 달하는 고리를 뜯으며 채무자에게 “산에 데려가서 정신교육을 시키겠다”는 협박을 일삼은 대부업자들이 지난해 10월 징역 4~6개월, 추징금 7200만~8800만원에 그치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기도 했다.

박세연(가명·63)도 혹독한 채권 추심에 시달렸다. 박세연은 2022년 건설사에 다니던 동거인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자재 수출이 막히면서 빚이 쌓였다. 박세연도 음식점을 운영하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며 폐업했다. 카드로 대출이자를 갚다가 연체가 시작됐고, 박세연의 카드 빚과 동거인의 빚에 대한 추심이 이어졌다. “하루에도 수십통의 전화가 걸려 왔어요. 추심하는 사람이 여러 차례 쫓아오기도 하고,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기도 했죠.”

한겨레가 파산 신청자 12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생활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묻는 질문에 ‘채권자들의 추심독촉’이라고 답한 사람이 44.5%(57명)나 됐다. ‘생활상의 불안감’(48.4%)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답변이었다.

파산 관재인인 김창수 변호사는 채무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이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고 조언했다. “개인파산을 하더라도 면제재산 제도에 의해 임대차 보증금은 지킬 수 있고, 가구원 수에 따라 최저생계비를 책정하고 나머지를 변제하기 때문에 기초적인 생활비를 뺏어가는 일도 없습니다. 이런 점들이 잘 알려지면 극단적인 상황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앞서 소개한 논문 ‘국내 살해 후 자살의 현황과 특성’에서 연구진은 “일본은 빚이 있는 사람에게 변호사 무료 상담과 중재를 해주는 협의회를 운영하고 있고 2011년부터는 경제적인 고통을 사회적으로 해결하려는 정책을 수행해 경제적 원인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18.5%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자살이 동반된 일가족 사망

자살이 동반된 일가족 사망은 ‘살해 후 자살’과 ‘동반자살’로 나뉜다. ‘동반자살’은 2인 이상의 가족 구성원이 각각 동의에 따라 집단으로 생을 마감한 일을 뜻한다. 반면 ‘살해 후 자살’은 동일인에 의한 살해와 자살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으로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엔 이 또한 ‘가족 동반자살’이라 불렀으나, 피해자가 ‘동의 없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아동인권옹호단체의 문제 제기에 따라 ‘살해 후 자살’로 쓰고 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27225.html

 

직장까지 찾아와 “남편빚 갚아라”…조여오는 빚 ‘가족의 공멸’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강연희(가명·40)는 응급실에서 눈을 떴다. 2019년 10월15일 새벽이었다. 전날 밤 강연희는 남편과 함께 수면제를 먹었다. 7살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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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김밥집 5천만원 빚에 파산, 자식은 개인회생 뒤 뇌졸중

 


[가족 파산] ① 부모-자식 동반 빚더미
파산자 5명 중 1명은 가족도 파산 경험
빚 못 갚는 데 대한 사회적 압력에 비해
사회안전망 부족…동반 파산·가족 해체

 


기자

 

김지은,박준용,장필수,강창광

 


수정 2024-01-31 17:57등록 2024-01-31 05:00


자영업을 하다가 가게 문을 닫고 파산 신청한 최지영(가명)씨가 지난해 11월13일 서울 도봉구 자택 인근 한 가게 앞에 서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빚은 가족 안에서 전염성이 강하다. 서로 돕고 살려는 가족일수록 전염성은 더 강해진다. 가족 가운데 한명이라도 경제적 위기 상황에 몰리면 이를 도우려다 연쇄적으로 채무가 전이된다.

한겨레가 지난해 8월16일부터 석달 동안 33명의 파산관재인을 통해 진행한 128명의 파산 신청자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흐름이 뚜렷이 드러났다. 128명의 파산 신청자에게 ‘가족 중에 개인파산이나 개인회생을 신청해본 사람이 있는지’ 물었더니 18%(23명)가 ‘있다’고 답한 것이다.

 

 ‘파산을 신청한 결정적 계기’에 대한 질문(복수응답 가능)에는 19.5%(25명)가 ‘배우자 또는 자녀에게 빚 대물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한겨레가 ‘가족파산’에 주목한 까닭이다. “한명이 빚의 늪에 빠지면 온 가족이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공동체라는 미명하에 배우자나 부모, 자녀들의 명의로 대출해 돌려막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김연진 은평금융복지상담센터장의 말이다.



62살 엄마도, 36살 자식도 살길이 없다

최지영(가명·62)도 가족이 굴레가 됐다. 최지영이 채무의 늪에 빠진 건 2018년이다. 동업하던 친구가 추천한 지역의 시장에서 김밥집을 개업했는데, 재개발 예정지였음을 뒤늦게 알았다. 개업 반년 만에 거주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손님이 뚝 끊겼다. 5천여만원의 빚을 지게 된 최지영은 식당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원래도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앓고 있던 상황에서 신부전증까지 겹쳤다. “신부전증이 오면서 소변이 잘 안 빠져서 복부에 물이 차더라고요.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띄엄띄엄 일을 하게 되면서 한달 수입은 80만원 정도에 그치게 됐다. 월세 45만원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지만, ‘내 빚은 어떻게든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신용회복위원회 개인채무조정 제도를 찾았다. 파산이 변제하지 못하는 채무를 면책받는 제도라면, 개인채무조정은 일정 기간 채무 상환을 연장하거나 유예하는 제도다.


그런데 격투기 도장을 차렸다가 사기를 당한 뒤 빚에 시달리다 개인회생까지 했던 아들(36)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아들의 생계를 도우며 병간호까지 하게 되면서 최지영은 더는 빚을 갚을 방도가 없게 됐다. 결국 지난해 초 파산을 신청하고 혹독한 추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빚 상속 막으려 이혼했는데 아들도 개인회생

 



박우람(가명·63)은 가족에게 빚 대물림을 방지하기 위해 가족을 떠나면서 한동안 가족이 해체된 경우다. 그는 무역 관련 사업을 하다가 1억원대 빚을 지게 됐다. 대부업체에까지 손을 벌리면서 이자는 순식간에 불어났고 카드 돌려막기로도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 됐다.

 


위협했다가 달래기도 했다가 차압도 하는 등의 지독한 추심이 이어졌다. 결국 그는 빚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2008년 아내와 이혼한 뒤 몰래 집을 떠났다. “이혼하지 않으면 빚이 아내랑 자식들한테 다 상속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이혼하고 도망 다녔어요.”

 



편의점과 세차장 아르바이트, 일용직 노동 등을 하며 10여년 고시원 등을 떠도는 생활을 했다. 그러다 금융복지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개인회생으로 채무를 정리한 뒤에야 가족을 찾아가 그동안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런데 자신이 떠난 사이 가족의 생활을 책임지던 작은아들 역시 채무에 시달리며 개인회생 신청을 했다는 걸 알게 됐다. “가장이 파산하면 결국 자식한테 넘어간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들의 개인회생도) 저 때문이라고 생각하죠.”



파산 전문 김관기 변호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난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빚을 안 갚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압력도 굉장히 크다”며 “그런데도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족에게 부양가족의 사회보장 책임을 떠밀고 부담을 지우게 되면 가족 때문에 파산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한번 실패에 빚 절벽…가난은 수치가 아님에도

한겨레의 파산 신청자 128명 설문조사에서 드러난 또 다른 키워드는 ‘코로나19’와 ‘고금리’였다. 파산 신청자들에게 ‘스스로 빚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원인’을 묻는 질문에 ‘사업 실패’라는 응답이 46.1%(59명)로 가장 많았다. 응답자들은 주관식 문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급감으로 생활비를 채울 수 없는 상황에 다다랐다’거나 ‘장사를 시작한 지 한달 만에 코로나19가 닥쳐서 업종을 바꿔보았지만 결국 실패했다’ 등과 같은 답을 내놨다.




‘사업 실패’ 다음으로 많았던 답은 ‘대출 이자 등 금융비용 부담’(35.9%·46명)이었다. 특히 응답자들이 대출을 받은 기관들을 살펴보니 이자가 상대적으로 높은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 제2~3금융권 이용자가 많았다. 한 응답자는 ‘카드와 카드론으로 인해 지인을 통해 빌리고 금리가 높은 대출도 사용했는데 결국 부채가 수입을 넘어섰다’고 답했다.

 



이런 추세는 정부 통계로도 입증된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실이 국세청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자영업자들의 연도별 중위소득은 2017년 830만원에서 코로나19 발생 이듬해인 2021년 659만원으로 20.6%나 줄었다. 특히 소득 상위 20%인 자영업자들의 연평균 소득은 2017년 7744만9천원에서 2021년 7308만8천원으로 5.6% 줄어든 반면, 소득 하위 20%인 영세 자영업자들의 연평균 소득은 2017년 186만9천원에서 2021년 84만1천원으로 55%나 감소했다.

 



자영업자 삶 뒤흔든 고물가, 고금리

김회재 민주당 의원이 국회 입법조사처에 의뢰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지난해 2분기 기준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 가구의 실질 처분가능소득이 월평균 537만원으로 2022년 같은 기간보다 19.5% 줄었다.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가구의 실질 처분가능소득도 343만원으로 16.2% 감소했다. 처분가능소득은 가구의 소득에서 이자 비용과 세금 등을 뺀 소득이고, 실질 처분가능소득은 처분가능소득에서 물가 상승 영향을 뺀 수치다. 고물가와 고금리 탓에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한국의 채무자들은 미루고 미루다 벼랑 끝에 몰려서야 파산이라는 탈출구를 찾아온다. 한겨레 설문조사에서 ‘스스로 빚을 감당할 수 없었던 시기부터 파산을 신청하기까지 걸린 시간’을 묻는 질문에 ‘10년 초과’라는 답변을 한 파산 신청자가 28.9%(37명)로 가장 많았다. ‘5~10년 이내’라는 답변(19.5%·25명)이 두번째로 많았다.



파산 신청이 늦어진 원인(복수응답 가능)에 대한 질문에는 ‘빚을 상환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해서’가 33.6%(43명)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신청하는 방법을 몰라서’(32%·41명), ‘대리인 보수 및 신청 비용 부담’과 ‘파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대한 부담’이 각각 20.3%(26명)로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빚 갚을 ‘의무’를 없애는 파산 제도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도덕적 죄책감이 여전히 높고, 정작 마음을 먹더라도 비용 부담과 절차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파산 신청을 망설인다는 의미다.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26588.html

 

엄마는 김밥집 5천만원 빚에 파산, 자식은 개인회생 뒤 뇌졸중

빚은 가족 안에서 전염성이 강하다. 서로 돕고 살려는 가족일수록 전염성은 더 강해진다. 가족 가운데 한명이라도 경제적 위기 상황에 몰리면 이를 도우려다 연쇄적으로 채무가 전이된다. 한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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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월 500만원, 파산…퇴직 50대가 경제적 사망에 이른 경로
[가족 파산] ① 58살 자영업자 주저앉힌 사회

 


128명 파산 신청자 설문조사
자녀·부모 ‘이중 돌봄’에 낀 중년
작년 개인회생 신청 35% 급증
기자박준용,김지은,김정효,김혜윤

 


수정 2024-02-01 00:15등록 2024-01-31 05:00

 


최기선씨가 지난해 12월7일 자신이 운영하는 봉구비어 인천검암점에 앉아 있다. 그는 2022년 파산 신청을 하고 현재 면책 심사 중이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코로나19 여파에 고금리 파동이 겹치면서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한 사람의 파산은 그 사람과 연결된 가족까지 함께 무너뜨린다. 가족은 이후 공멸하거나 해체된다.

한겨레는 지난해 8월16일부터 석달 동안 파산 신청자 128명을 설문하고, 이 가운데 63명을 추려 대면과 전화로 심층 인터뷰했다. 4회에 걸쳐 가족파산의 실태를 깊이 들여다본다.


최기선은 56번째 생일이던 2022년 12월22일 자신에게 경제적 사망 선고를 내렸다. 개인파산을 신청한 것이다. 최기선은 이후 1년 넘게 서울회생법원의 파산면책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면책이 결정돼야 남은 빚에 대한 책임이 소멸된다.

인천 검암동에 있는 호프집에서 오후 5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하루 13시간 일하고 설거지하다 의자에 쓰러져 자는” 최기선의 삶은 어떻게 파국에 이른 걸까.

최기선의 가계는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급락과 고금리로 인한 이자 부담 급증이라는 외부 요인에 의해 속절없이 무너졌다. 본가와 처가 부모는 물론이거니와 성인이 됐지만 자립하지 못한 자녀들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이 가계의 붕괴를 가속화했다.


최기선처럼 노부모와 함께 자립하지 못한 자녀들까지 돌봐야 하는 이들의 파산을 ‘이중돌봄’(더블케어) 파산이라고 한다. 여기에 손자·손녀 양육까지 떠맡으면 ‘삼중돌봄’(트리플케어) 파산이 된다.

“아내가 ‘당신 정상이 아니야. 폭발하면 사고 친다’며 병원 가보라고 해요. ‘병원 갈 정신이 어딨어’라고 했는데, 내가 봐도 정상이 아니라는 걸 느껴요. 삶과 죽음 사이에서 라인을 타고 있는 느낌입니다.”


자영업자 대출 1052조원…역대 최고

2024년 1월, 자영업자와 저소득층은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8일 공개한 ‘2023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3분기 말 자영업자 대출잔액은 1052조6천억원으로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특히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이 1.24%를 기록해 전년 말(0.69%)에 견줘 0.55%포인트나 올랐다.

통계청이 지난달 7일 발표한 ‘2023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는 지난해 3월 말 기준 소득 하위 20%의 평균 부채가 2004만원으로 전년에 견줘 22.7%(371만원)나 불었다. 2013년(26.0%)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이러자 채무조정 제도를 찾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4만1239건으로 전년(4만1463건)보다 소폭 줄었으나,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12만1017건으로 전년(8만9966건)에 견줘 34.5%나 늘었다. 최근 10년 새 가장 많은 수치다.

 20년 동안 파산관재인을 해온 김창수 변호사는 “재난이나 큰 경제적 위기가 있어 소비가 줄면 그 시점부터 1~2년 이후 개인사업자가 파산하는 여파가 생긴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신장병·장모는 치매…또 빚을 늘렸다

최기선은 2017년 7월 술집을 개업했다. 자동차회사와 보험회사 등에서 20년 넘게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퇴직한 뒤였다. 영업사원으로 번 돈은 생활비와 3억원대 아파트 구입에 썼다. 술집을 열기 위해 주택담보대출로 권리금 8천만원을 빌렸다. 주택 구입 때 받은 대출까지 2억원가량의 빚을 안고 장사를 시작했다.

많게는 70~80명까지 앉을 수 있는 86㎡(약 26평) 가게를 유지하는 데는 월 1천만원 가까운 돈이 든다. 월세 287만원, 음식과 술 등 재료비 600만원, 관리비와 전기요금이 80만~100만원 정도다. 여기에 대출금 이자가 150만원 정도 추가된다. 그래도 처음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면 하루 50만원, 월 1500만원 매출로 월 300만~400만원 정도 순이익이 났다.


2020년 봄 코로나19가 오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밤 9시 이후 영업제한이 생기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하루 10만원 매출도 어려워졌다. 최기선은 그렇게 말라가던 매출이 최악으로 갔던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2021년 8월7일 매출은 고작 7천원이었다. 맥주 2잔 값이다.

이때 모든 악조건이 겹쳤다. 2020년 첫째 딸(23), 2022년 둘째 딸(21)이 대학에 입학하며 학비와 기숙사비가 필요해졌다. 첫째 딸이 아이돌보미 아르바이트를 하고 둘째 딸은 학회장 등을 하며 장학금을 받아냈지만, 딸들에게 교통비라도 쥐여주려던 최기선의 손에 남은 현금은 10만원뿐이었다.

2020년에는 79살이던 어머니가 빙판에서 넘어지며 고관절 골절 판정을 받았다. 최기선은 한달에 수백만원이 드는 입원비와 관절 수술비 대신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집에서 간병하기로 했다. 어머니는 당뇨와 고혈압, 신장질환 투병도 해야 했다. 최기선은 아울러 2019년 경증 치매 판정을 받은 장모(88)의 생활비와 병원비도 대야 했다. 그때 은행에서 ‘소상공인을 위해, 저리로 대출을 지원합니다’라는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빚을 늘리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3억 아파트마저 경매 넘어간 날

그렇게 늘어난 빚은 고금리 상황이 되면서 최기선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3%대였던 금리가 2022년 말 7%대까지 올라가면서 이자가 월 500만원까지 불어났다. 아파트 담보 금액이 꽉 차면서 가압류 통보가 왔고, 곧 경매에 넘어갔다.

법원경매정보의 매각통계를 보면, 지난해 전국 60개 법원에 접수된 아파트와 단독 및 다가구 주택, 연립과 다세대 주택의 경매 건수는 6만7360건으로 2022년 4만4736건과 2021년 4만7196건은 물론이거니와 코로나19가 닥친 첫해인 2020년 6만597건마저 훌쩍 넘어섰다. 고금리를 버티지 못해 보유하고 있는 주택이 경매에 내몰리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는 의미다.

최기선은 결국 아내와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 부부 개인파산 신청을 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돈이 있었으면 어머니가 연명할 수 있었을 겁니다. 내가 어머니를 죽였어요.”

최기선은 파산면책 결정이 나오면서 가게 보증금도 잃게 되면, 술집을 접고 택배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50대 이상은 할 수 있는 일이 택배 배달이나 운전직밖에 없어요. 살고 싶은데 내몰리는 느낌이 듭니다. 파산한다고 해서 지인들 빚은 사라지지 않으니, 일해서 남은 빚을 갚아야지요.”

파산하는 중장년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최기선처럼 다중돌봄 상황에 처한다. 자신의 삶을 위한 벌이가 아니라 부양가족의 삶을 위한 벌이가 중장년의 어깨를 겹겹이 짓눌러 경제적 파산으로 이끄는 것이다.

“더블케어란 60대 때 자녀가 자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도 모셔야 하는 경우를 말해요. 중년이 회사 내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면서 아주 평범한 중산층이라도 경제적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일본에서는 20년 전에 이미 사회 문제가 됐고, 한국에도 곧 나타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유애정 국민건강보험공단 통합돌봄연구센터장의 설명이다.

 

 

 


부모, 독립 못 한 자녀 돌봄에 끼인 중장년

이인숙(62)에게 이중돌봄은 ‘시간차’를 두고 발생했다. 2002년 배우자가 건강식품 사업에 실패하며 빚을 남기고 잠적했다. 은행에서 압류가 들어왔고, 이인숙은 곧 신용불량자(금융채무불이행자)가 됐다. 채권 추심자가 찾아와 협박하는 일도 생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7살이던 둘째 아들은 뇌경색 진단까지 받았다.

주말도 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하루 12시간 식당 서빙을 하고, 찜질방 청소도 했다. 하지만 4대 보험이 되는 직장에는 갈 수 없었다. “한번은 호텔 룸메이드 일을 해보려고 용역업체 소속으로 2개월 교육을 받았는데, 건강보험료 낸 걸 보고 압류가 들어온다는 걸 알게 됐어요.”

주말에도 일하는 엄마와 “놀이공원 가보는 게 소원”이라던 아들 둘도 10대 때부터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인숙을 도왔다. “쌀이 떨어져서 아는 언니 집에 쌀을 빌리러 갔다가 말을 못 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어요.”

아들 둘이 성인이 된 뒤에는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오면서 영업을 할 수 없게 됐다. 전화로 하는 영업에 성과가 잘 나올 리 없었다. 여기에 2021년 충남 서산에 사는 어머니(80)에게 치매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왕복 6시간 동안 서울과 서산을 오가며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일을 줄여야 했다.

이중돌봄에 들어가는 비용 부담과 함께 소득이 급격히 줄면서 이인숙은 지난해 5월 결국 파산을 신청했고, 지난달 면책 결정이 나왔다. “언젠가는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버텼는데, 20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더라고요. 법적으로 한번 정리하고 사람다운 삶을 살아보자 싶었습니다.”

임수철(가명·67)은 기초생활보장 수급비 80만원으로 근근이 살아가면서도 서른살이 넘은 두 딸의 생활비까지 부담하며 함께 살고 있다. 임수철은 대리운전과 퀵서비스 기사로 일하다 2016년 직장암 수술을 받고부터 일을 하지 못하게 됐다. 공공근로라도 하려고 했지만 병증 때문에 근로능력평가에서 근로능력이 없다고 나와서 지원도 하지 못했다.

32살인 첫째 딸은 2022년 5월 공기업에 임시직으로 취업했지만, 정규직 전환에 실패해 무직 상태다. 31살인 둘째 딸은 마케팅회사에 정규직으로 취업했지만 임원으로부터 갑질 피해를 당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두 딸은 재취업을 준비중이지만 쉽지 않다.

임수철은 2022년 파산 신청을 했고, 면책 결정까지 받았다. “딸들을 독립시키고 싶어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니까 그런 말도 꺼내지 못해요. 딸들도 집안 형편 걱정을 많이 하고 있죠.”

202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를 보면, 만 19~49살 성인의 약 29.9%가 부모와 함께 산다. 특히 만 19~49살인 비혼 성인은 64.1%가 부모와 함께 산다. “고령화로 여러 세대가 함께 생존하면서, 인구학적으로 중장년층이 부모와 자녀를 모두 돌볼 수 있는 환경이 되고 있습니다. 중장년층이 실직과 자영업 실패 등을 겪으면 부양하는 가족까지 연쇄 위험 효과가 발생해요.” 최선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의 말이다.

최기선은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면서 지난달 보증금 200만원, 월세 55만원짜리 66㎡(20평) 크기의 빌라를 1년 단기 임대해 이사했다. 집주인이 직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탓에 분쟁 중인 집이어서 언제 다시 나가야 할지 모른다. 최기선의 가족에게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간 건 큰 충격이었다. “20년 전 좁은 집에 살 때 막내딸 소원이 ‘우리도 엘리베이터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거였어요. 저도 어릴 때 사과상자로 지은 ‘하꼬방’(판잣집)에 살았거든요. 이미 경험해본 가난, 그래서 더 무섭네요.”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주요 파산 신청자의 상황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26586.html

 

이자 월 500만원, 파산…퇴직 50대가 경제적 사망에 이른 경로

코로나19 여파에 고금리 파동이 겹치면서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한 사람의 파산은 그 사람과 연결된 가족까지 함께 무너뜨린다. 가족은 이후 공멸하거나 해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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