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녀들은 어디로, 우리가 고향을 떠난 이유
65명의 지방 소녀들이 학교를 졸업했다.
졸업생들은 진학과 취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서울로 떠났다.
수년이 흐른 지금 65명 중 십여명만이 고향에 남아있다.
지방소녀들은 어디로, 우리가 고향을 떠난 이유
기획 최민지· 강은 기자 제작 김유진 · 이수민 기자
‘안녕히 가십시오 - 강원도(Good-bye, Gangwon-do)’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구불거리는 대관령 길을 넘는 아버지 차 안에서 김현주씨(당시 19세)의 가슴은 설렘으로 울렁거렸다. 트렁크가 가득 차고도 모자라 뒷좌석에 실은 짐가방을 그는 꼭 끌어안았다. 고향 강릉을 떠나 ‘대관령을 넘는’ 것은 오랜 바람이었다.
“중·고등학교 6년 내내 목표는 강릉 밖으로 나가는 거였어요. 어쩌면 모두의 목표였겠지만요.”
흔한 이야기다. 비수도권의 고향을 뒤로 하고 서울에 자리잡은 청년이 어디 현주씨 뿐인가. 5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청년들은 진학과 취업을 위해 서울로 향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다. 구불거리는 고개가 매끈한 터널로, 아버지의 자동차가 KTX로 바뀌었을 뿐이다.
‘청년들은 무엇 때문에 고향을 떠나나’
‘떠난 이들이 향하는 곳은 왜 수도권이며 왜 돌아가지 않나’
청년층 이탈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을 건져내기 위해선 우선 이 질문들의 답을 찾아내야 한다. 경향신문은 2008년 현주씨와 함께 강릉의 A여고를 졸업한 3학년 1반 동창생 36명의 졸업 후 행적을 추적했다. 마찬가지로 전북 고창의 B여고를 2014년 졸업한 1반 동창생 29명의 행적을 추적했다.
65명의 소녀들은 언제 고향을 떠났고,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졸업 후 이동 경로 현황
추적을 통해 확인한 강릉, 고창 소녀들의 근황에서는 뚜렷한 ‘수도권 지향성’이 확인됐다. 두 여고 졸업생 중 현재 소재가 파악된 사람은 52명이었고, 이 중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살고 있는 사람은 29명(서울 25·경기 4)으로 절반이 넘는다.
강릉의 A여고를 기준으로 봤을 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소재가 파악된 30명 중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 살고 있는 사람은 현주씨 포함 16명(서울 13·경기 3)이다. 전업 주부인 1명을 제외하면 15명이 거주지인 수도권에서 일한다.
경기도 수원 소재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강릉을 떠났던 김현주씨도 현재 서울에서 일하고 있다.
강릉 A여고 졸업생 김현주씨의 졸업 후 이동 경로.
강릉 A여고 졸업생 중 소재가 파악된 30명 가운데 14명에 대해서는 대면·전화·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의 진학과 취업, 결혼 등 청년기 주요 고비의 이동 경로와 선택에서 지방과 지방 청년의 현실을 읽어내려 했다.
졸업앨범 속 인물의 사진위에 마우스를 올리시면 졸업 후 이동 경로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전문은 해당 인물의 사진을 클릭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졸업앨범 속 인물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강릉 A여고 3-1반 졸업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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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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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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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혜
간호사·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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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종사·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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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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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승무원·대구
이세리
공무원·속초
서성민
미상·미상
성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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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진
직장인·서울
장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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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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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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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서울
최민지
기자·서울
최희주
미상·미상
탁유솔
미상·미상
한예현
직장인·분당
졸업앨범으로 돌아가기
김은비·IT기획자
졸업 후 → 강릉을 떠나 부천으로 대학 진학 → 현재 서울에서 거주
Q. 언제 고향을 떠났나요?
2008년 2월에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서울 생활 14년차. 대학은 정확히는 경기도 부천인데 사실상 서울이지. 경계여서.
Q. 서울에 오고 싶었나요?
응. 더 다양한 걸 경험하고 싶었어. 내가 생각하는 대학의 이미지 자체가 당연히 서울이라는 거에 한정돼있었어. (공부할 때 목표 같은 게 있었어?) 무조건 인서울이라고 생각했어. 내가 고등학교 때 일본어를 했었거든. 정부 프로그램으로 교류단 이런 활동을 했었어. 고등학교 때부터 대외 활동을 했는데 그런 게 서울에서 했거든. 그래서 그때부터 서울을 많이 왔다갔다 했었고. 그때 더 많이 알았지. 서울이 훨씬 기회가 많다는 걸.
Q. 다시 고향에 돌아가 살 생각이 있나요? 혹시 못 산다면 이유가 있을까요?
응 살 수 있어.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들어. 몇년 전만 해도 강릉에서 못 산다고 생각했어. 근데 서른 넘으니까 집순이 생활하고 특히 코로나 터지면서 그 생각 많이 했어. 한 절반을 재택근무 했거든. 그러다보니 집에 원룸에 혼자 있으면, 홈이 오피스가 되니까 주거 공간이랑 구분이 안되고 너무 답답한 거야. 갇힌 느낌이고. 그래서 강릉 내려가서 재택근무를 했어. 그 전에는 부모님이랑 오래 있고 하면, 부딪히고 그랬는데 오히려 부모님이 일 나가실 때 나는 집에서 혼자 일하니까. 방에서 일하다 나와서 거실 나와 쉬고 부모님 퇴근하면 저녁 먹고. 차 타고 나가서 바다바람 쐬고. 강릉 우리집에서 창밖에 보면 바다가 보이거든. 그런 생활 오랜만에 하니까 좋더라. 그런 환경에서 오는 안정감이 있더라고. 나중에 직장도 재택근무 하는 데로 구해서 강릉 서울 왔다갔다 하고 싶단 많이 했어. 코로나 영향이 있었어. 야외생활을 줄이니까 집에 대한 중요성이 커진 거지.
강릉은 요즘 ‘힙스터의 성지’로 떴다. 해안을 따라 늘어선 개성 있는 카페와 서핑샵이 전국에서 온 이들로 북적인다. 2018년 평창 올림픽 개최에 앞서 개통된 KTX 강릉선으로 수도권과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정동진 등 강릉의 주요 관광지를 찾은 방문객은 연간 1900만명에 달했다.
인구 유출도 둔화 추세다. 2015년 이후 전입이 전출을 역전, 2019년 말 기준 강릉시 인구(21만3442명)는 전년대비 485명이 증가했다. 빠르게 쪼그라드는 여느 지방 소도시들과 대조적이다.
같은 비수도권이라도 중소도시에서 군 단위로 내려가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전라북도 고창군은 KTX 개통과 관광자원 개발로 인구 유출이 둔화된 강릉과 달리 빠르게 인구가 줄어드는 곳 중 하나다. 1960년대 중반 19만명에 달했던 고창군 인구는 1980년대 10만명 아래로 떨어졌고 2015년에는 6만선까지 무너졌다.
고창의 청년들은 이와 같은 고향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2014년 고창 B여고를 졸업한 개나리반 학생 29명의 졸업 후를 추적하고 이 가운데 5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수도권 지향은 고창 소녀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수도권 직행보다 광주나 전주 등 인근 도시로의 이동이 많았다.
고창 B여고 개나리반 졸업생 박재영씨의 졸업 후 이동 경로.
개나리반 출신인 강금주씨(가명)는 이에 대해 “광역시나 중소규모 도시에서 수도권으로 빠진 청년들의 자리를 군 단위 출신 청년들이 채우는 식”이라고 말했다.
졸업앨범 속 인물의 사진위에 마우스를 올리시면 졸업 후 이동 경로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인터뷰 전문은 해당 인물의 사진을 클릭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졸업앨범 속 인물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고창 B여고 개나리반 졸업앨범
현재 거주지역 표시
감수정
공무원·고창
강금주
기자·서울
강주현
공시생·미상
고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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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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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민
공무원·전주
한서연
구직중·서울
졸업앨범으로 돌아가기
김은비·IT기획자
졸업 후 → 강릉을 떠나 부천으로 대학 진학 → 현재 서울에서 거주
Q. 언제 고향을 떠났나요?
2008년 2월에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서울 생활 14년차. 대학은 정확히는 경기도 부천인데 사실상 서울이지. 경계여서.
Q. 서울에 오고 싶었나요?
응. 더 다양한 걸 경험하고 싶었어. 내가 생각하는 대학의 이미지 자체가 당연히 서울이라는 거에 한정돼있었어. (공부할 때 목표 같은 게 있었어?) 무조건 인서울이라고 생각했어. 내가 고등학교 때 일본어를 했었거든. 정부 프로그램으로 교류단 이런 활동을 했었어. 고등학교 때부터 대외 활동을 했는데 그런 게 서울에서 했거든. 그래서 그때부터 서울을 많이 왔다갔다 했었고. 그때 더 많이 알았지. 서울이 훨씬 기회가 많다는 걸.
Q. 다시 고향에 돌아가 살 생각이 있나요? 혹시 못 산다면 이유가 있을까요?
응 살 수 있어.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들어. 몇년 전만 해도 강릉에서 못 산다고 생각했어. 근데 서른 넘으니까 집순이 생활하고 특히 코로나 터지면서 그 생각 많이 했어. 한 절반을 재택근무 했거든. 그러다보니 집에 원룸에 혼자 있으면, 홈이 오피스가 되니까 주거 공간이랑 구분이 안되고 너무 답답한 거야. 갇힌 느낌이고. 그래서 강릉 내려가서 재택근무를 했어. 그 전에는 부모님이랑 오래 있고 하면, 부딪히고 그랬는데 오히려 부모님이 일 나가실 때 나는 집에서 혼자 일하니까. 방에서 일하다 나와서 거실 나와 쉬고 부모님 퇴근하면 저녁 먹고. 차 타고 나가서 바다바람 쐬고. 강릉 우리집에서 창밖에 보면 바다가 보이거든. 그런 생활 오랜만에 하니까 좋더라. 그런 환경에서 오는 안정감이 있더라고. 나중에 직장도 재택근무 하는 데로 구해서 강릉 서울 왔다갔다 하고 싶단 많이 했어. 코로나 영향이 있었어. 야외생활을 줄이니까 집에 대한 중요성이 커진 거지.
수도권에 자리를 잡은 강릉 소녀들에게도 고향은 숨통 트이는 곳이다. 30대 초반으로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간 직장 생활을 한 이들은 매일 아침 ‘지옥철’에 몸을 실으며 강릉의 깨끗한 공기나 바다를 떠올린다.
하지만 ‘고향에 내려가 살 수 있냐’는 질문에는 대부분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릉은 홈(Home)이에요. 돌아가고 싶지 않은 홈.” 김현주씨 목소리에서 씁쓸함과 단호함이 뒤섞여 있다. 그는 “강릉에서는 내 일(영화 마케팅)을 할 수 없다. 이 일을 하는 내 자신이 좋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라며 “강릉에서의 현주라는 그 삶의 단계는 확실히 지나온 느낌”이라고 말했다.
일자리는 귀향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예로 강릉의 지역내총생산(GRDP)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숙박이나 음식점업 등 서비스업(71.9%)이다. 전국 평균(59.8%)을 크게 웃돈다. ‘강릉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카페 아니면 공무원’이라는 자조가 우연이 아니다. 기자와 연락이 닿은 비수도권 거주자 중 일부는 “서울로 갈 방법을 찾고 있다”는 말로 인터뷰를 거절했다.
취업 상황에서도 불균형은 드러난다. 비수도권 거주자들의 경우 공무원이거나 공공기관, 공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6명으로 약 40%를 차지했다. 수도권 거주자 16명 중 3명 만이 공무원·공기업 직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압도적인 비율이다.
수도권 거주자 16명의 일은 영화 마케터, 배우,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 자산운용사 직원, IT 서비스 기획자, 미디어 콘텐츠 운영자, 간호사, 교사 등 다채롭다. 대부분 강릉에 내려가면 같은 일을 지속할 수 없거나 임금 수준을 유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Oh, I’m an alien. I’m a legal alien.”
(오 나는 이방인, 합법적 이방인이죠, 스팅, ‘잉글리시 맨 인 뉴욕’)
강릉 소녀들의 가슴을 파고 드는 노래가사다. 서울에 얼마나 머물렀건, 서울살이에 얼마나 익숙해졌건 그들은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느낀다.
강릉 소녀들은 서울이 뭐냐는 물음에 ‘잡을 수 없는 무지개’, ‘애증’, ‘기회의 땅’, ‘나를 성장시킨 곳’, ‘미래’라고 했다. 서울에 대한 양가감정이 읽혔다. 놓쳐선 안될 메시지가 한 가지 더 있다. 서울이 제공하는 성장, 미래, 기회와 기꺼이 맞바꿀 무언가가 지방에 없는 한 이들의 귀향은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창간 75주년 기획 - 절반의 한국 ②
episode 1
설레며 대관령 넘던 여고동창들,
강릉소녀 그 후
기사 보러가기
episode 2
청년 100인 인터뷰, “서울은‘나쁜 심장’”
기사 보러가기
디지털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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