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공개금지는 폐기되어야 할 불필요한 악법이다.
온라인과 유투브로 뉴스를 분 단위로 보는 시대에 여론조사를 금지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유권자들에게 오히려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는 일에 신경을 더 써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팩트체크] '6일간의 깜깜이' 여론조사 공개금지, 외국은 어떨까?
송고시간2020-04-09 10:08
공개 금지기간 설정 국가가 다수지만 선진국 대부분 없거나 한국보다 짧아
미·일·영·독·호주 등 금지기간 없고, 캐나다는 하루·프랑스는 이틀
'코로나19 뚫고' 소중한 한표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재외국민투표 개시일이었던 지난 1일 중국 베이징(北京) 주중대사관에서 설치된 투표소에서 재외 유권자가 투표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2020.4.1
chinakim@yna.co.kr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김예림 인턴기자 = 9일부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의 여론조사 결과 공표가 금지된 가운데, 인터넷에서는 '최후의 여론조사' 결과들을 놓고 여러 말들이 나온다.
금지기간 시작에 임박해서 나온 조사결과에 대해 이런저런 정치적 시각이 투영됐던 것이다.
유권자들이 볼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조사 결과가 여당 또는 야당에 유리하게끔 편파적인 조작이 가미됐다는 식의 의혹 제기가 납득할 만한 근거 제시 없이 이뤄지고 있다.
SNS상에는 '여당이 여론조사를 자신들에 유리하게 조작해서 선전도구로 이용하고 있는데 어떻게 막을 수 없냐? 공표 금지 기간을 좀 더 길게 할 필요를 느낀다'거나 '여론조사 공표금지기간 앞두고 갑자기 유선 비율(유선 전화로 거는 방식의 조사 비율) 높인 여론조사가 쏟아지는 건 보수결집을 위한 수작일 수 있다'는 식의 글들이 올라와 있다.
이런 주장들은 선거전 여론조사 공개 금지에 대한 찬반 논란으로까지 연결된다.
공직선거법 제108조는 '누구든지 선거일 전(前) 6일부터 선거일의 투표마감시각까지 선거에 관하여 정당에 대한 지지도나 당선인을 예상하게 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하여 보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금지기간 개시 전에 조사한 결과는 '금지기간 전 실시' 사실을 명시할 경우 금지기간 중에도 공표할 수 있다.
여론조사결과 공표 금지 기간 규정은 왜 생겼을까?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공식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공정성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선관위는 "공정한 여론형성 또한 공정한 선거를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조건"이라며 "공직선거법에서는 선거의 공정성에 영향력이 큰 여론조사의 결과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공표 또는 보도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선관위는 이어 "여론조사는 조사의 주체가 의도한 방향대로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볼 수 있다"며 "만약 누군가가 여론조사를 악용하려는 의도를 가진다면 우리는 사실과는 전혀 다른 여론조사결과를 보게 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여론조사결과 공표 금지 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유권자의 알 권리를 제약하는 측면이 있고,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되지 않는 동안 여러 가짜뉴스나, 자의적 판세 전망이 난무하는 등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 사례는 어떨까?
세계여론조사협회(WAPOR·이하 협회)가 2017년 133개국에 대해 실시한 조사결과, 약 60%의 국가가 선거전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기간을 두고 있었고, 5%는 아예 선거전 여론조사를 금지하고 있었다.
선거전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기간을 두고 있는 나라의 금지기간 '중간값'은 '5일'이었다.
반면, 선거전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규제하지 않는 나라는 33%였다.
나라 수만 보면 금지기간을 두는 나라가 훨씬 많은 것이다.
협회의 2012년 조사와 비교해서 5년 사이에 금지기간을 늘린 나라는 24개국, 줄인 나라는 14개국이었다.
그러나 WAPOR의 조사 결과, 자유민주주의 체제 국가 가운데 '선진국'으로 불릴만한 나라 중에서는 금지기간이 없거나, 있더라도 한국보다 짧은 나라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스웨덴,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네덜란드,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금기기간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페인과 이스라엘이 각 5일(이하 선거일 포함), 프랑스가 2일, 노르웨이와 캐나다가 각각 하루를 금지기간으로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탈리아가 한국(선거 당일 포함 7일간 금지)의 2배에 달하는 14일의 금지 기간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지만 주요 선진국들은 대체로 금지기간을 두지 않거나 설사 두더라도 최소화하거나 과거에 비해 줄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지방선거 투표하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파리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이 3월15일(현지시간) 자신의 투표권 등록지인 북서부 르투케에서 지방선거 1차 투표를 하고 있다. ymarshal@yna.co.kr
공표 제한을 두고 있는 나라 중 프랑스는 1996년만 해도 7일이었다가 정보화 시대 언론환경의 변화를 반영해 기간을 단축했다. 한때 아예 없앴다가 부활시켰지만 기간은 선거 전날부터 당일까지 이틀에 불과하다.
인근 국가인 스위스의 신문사가 프랑스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거나 스위스의 여론조사기관이 프랑스 조사기관에서 사들인 결과를 공개하는 등 규제의 사각지대를 이용한 공표 사례가 나오자 결국 공표 금지 기간을 단축했다고 윤형석 변호사가 '선거여론조사결과 공표금지 조항의 위헌성 및 입법적 대안'이란 제목으로 작년 펴낸 논문에서 소개했다.
프랑스 유권자들이 유럽의 다른 나라 조사기관이나 매체를 통해 여론조사 결과를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 매체들만 보도하지 못하게 되면서 규제가 유명무실해진 상황에서 기간을 대폭 줄였다는 것이다.
또 캐나다는 1993년, 선거일 전 3일간 결과 공표를 금지하도록 법제화했다가 대법원이 위헌 결정을 내린 뒤 선거법을 개정해 현재는 선거 당일에만 금지하고 있다.
윤 변호사 논문에 따르면 캐나다 대법원은 선거여론조사 결과 공표금지 조항이 선거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시기에 정치정보에 해당하는 선거여론조사의 유통을 원천적으로 금지해 유권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언론 기관과 여론조사자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캐나다 정부는 잘못된 여론조사로 인한 잠재적 피해로부터 유권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항변했지만 대법원은 유권자들이 실제로 취약한 집단이라는 증거가 없으며, 유권자들은 여론조사에 지속해서 노출되므로 부정확한 조사결과를 적절히 선별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윤 변호사는 소개했다.
한국에서도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단축 관련 움직임이 있었다.
지난 20대 국회의원 선거 후인 2016년 6월 중앙선관위는 국회에 제출한 공직선거법 개정의견에서 선거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보도 금지기간을 이틀로 단축하는 방안을 담았다.
'휴대전화 가상번호(통신사에서 성별·연령별 정보가 담긴 특정 지역구 유권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제공하면서 '010'으로 시작하는 원 번호와 다른 이른바 '안심번호'로 제공하는 것)를 활용해 선거여론조사를 실시할 경우'를 전제 조건으로 선거일 이틀 전까지 결과를 공표하거나 보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정확성이 담보될 수 있는 선거여론조사에 한하여 공표제한기간을 완화하여 언론의 자유와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려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또 2017년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로 유사한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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