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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비교/노동

사고현장 무서워서 가기 싫다는 고 김용균씨 동료들 이야기를 들으며

by 원시 2018. 12. 15.

전기 없으면 1분도 생활할 수 없는 시대에, 전기를 생산하는 고 김용균씨와 같은 노동자들을 위험에 방치해 놓은 이 비정한 사회.


어쩌다가 일터가 목숨을 거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는가? 



고 김용균씨 동료들은 석탄 가루가 날리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사 제목대로 '사고 현장' 9호기 10호기에는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내일 출근을 위해 고 김용균 빈소를 떠났다. 이들의 희망사항은 정규직 직원이 되는 것, 그리고 석탄 분진을 만지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일터였다.



전기 생산을 위해 증기 터빈을 돌려야 하고, 그 물을 끓이기 위해 석탄을 태운다.  그 석탄을 실어나르는 컨베이어 벨트를 점검하다가 기계에 끼여 김용균씨는 사망했다. 벌써 열 두번째 죽음이라고 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고 김용균씨와 가장 친한 동료가 말한 게 더 아프다. 



작년에 보일러실에서 사망한 뉴스는 사람들이 무관심했는데, 이번 김용균씨 사망 기사에 많은 댓글이 달려 "신기하다"고 했다. 무슨 좋은 의미로 '신기했다'고 말했겠는가? 고 김용균씨 이전 11명이 죽었을 때는 사람들이 별로 관심도 없었고, 언론에서도 자세히 다루지도 않는데다, 자기 스스로도 '떠나고 싶은 일터'여서, 그 단어 '신기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세상에 알려진 답은 너무나 빤한데, 고 김용균씨 동료들은 위험 지대에 노출되어 있다.



기술적으로도 석탄을 대체하는 연료를 쓰는 발전소, 그리고 석탄이나 석유 등 화석연료를 쓰지 않는 대안적 전기 발전소가 시급하다.


그리고 고 김용균 동료들, 그들이 바라는 정규직 노동자, 석탄 분진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일터,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정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일하다가 1년에 2000명 넘게 죽어가는 한국, 노동자 생명을 보호하는 안전법을 내팽겨쳐버린 자유한국당 (새누리당)은 국회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이런 반 노동자당 자유한국당 눈치보는 민주당도 피갈이를 해야 한다. 이제는 국회와 정치권을 갈아 엎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2명 중 1명이 또 다른 ‘김용균’…“사고 현장 무서워서 못간다”

등록 :2018-12-13 15:44



고 김용균씨 빈소에서 만난 또 다른 20대 김용균들




12일 오후 충남 태안군 태안읍 태안 보건의료원 상례원 2층 3호실에서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고 김용균(24)씨의 부모들이 오열하고 있다. 태안/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러려고 1년6개월 동안 뺑뺑이 돌렸냐!”


12일 충남 태안군 태안읍 군청로 보건의료원 상례원 203호. 태안화력 9·10호기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숨진 고 김용균(24)씨 빈소에서 정적을 깨는 고성이 들려왔다.


 강문대 대통령비서실 사회조정비서관 등 청와대와 고용노동부 관료들이 노동조합 간부들과 사고 처리절차 등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나온 고성이었다.


 ‘1년6개월’은 지난해 5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첫 일정으로 인천공항을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한 이후 흐른 시간을 일컫는다.


‘높은 사람’들의 논의가 오가는 테이블 대각선 방향에 앉은, ‘소년’도 ‘아재’도 아닌 20대 남성 10여명이 그들을 멀뚱히 쳐다봤다. 김용균씨처럼 한국발전기술에 소속된, 한국서부발전 하청 노동자들이다.


 김용균씨가 일자리를 찾아 경북 구미에서 태안으로 흘러왔듯, 이들도 멀리는 부산부터 경남 창원, 전남 여수, 강원도 정선과 강릉, 전북 전주와 익산, 충남 보령 등 전국 각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태안에 왔다. 


발전소 업무 경력 34년의 이아무개(62) 과장은 “태안발전소에서 근무하는 한국발전기술 직원 절반가량이 20대이고, 30대까지 포함하면 3분의 2 정도 된다”고 말했다. 이유는 “경력자보다 20대 신입사원 급여가 더 싸니까.” 그렇게 뽑힌, 얼굴에 여드름 자국도 채 가시지 않은 20대 남성들이 원청이 꺼리는 위험 업무에 투입됐다.


27살 강아무개씨는 강릉 출신이다. 강씨가 태안까지 와서 굳이 발전소에 취직한 건 어른들이 했던 말들 때문이다. 고향 강릉에는 안인화력이 있다. 어른들은 입버릇처럼 “아이엠에프(IMF) 때도 발전소 직원들은 잘리지 않고 월급이 꼬박꼬박 나왔다”고 했다. 


4년제 대학 토목과에 진학했다가 가세가 기울자 한 학기 만에 자퇴하고 입대했던 강씨는, 전역하고 카메라와 휴대전화 렌즈를 만드는 공장에 취업했다가 곧 그만뒀다.


 2교대 근무로 낮과 밤을 바꿔 일하면 한 달에 300만원을 벌 수 있었지만, 좀 더 미래가 있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었다. 폴리텍대학에 진학해 6개월 공부하면서 기계정비산업기사와 설비보전기사 자격증 등을 취득하고, 어른들의 말처럼 안정적인 발전소를 찾아 태안으로 왔다. 


문제는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서 일하면, 어른들 말처럼 ‘발전소 직원’이 되는 줄 알았다는 점이다. 김용균씨처럼 현장 점검을 위한 순찰 업무 등을 하며 3년4개월을 보냈지만, 요즘은 이 직업에 안정성도 미래도 없다는 걸 깨닫고 있다.


 “원청 정규직들처럼 석탄 분진이 날리지 않는 깨끗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12일 오후 충남 태안군 태안읍 태안 보건의료원 상례원 2층 3호실에서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고 김용균(24)씨의 동료들인 석탄 화력 운영팀 직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태안/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8살 박아무개씨는 2015년 태안화력 9·10호기가 시험 운전을 할 때 한국발전기술에 입사했다. 그리고 지금은 김용균씨와 달리 ‘정규직’ 신분이다. 김용균씨도 1년을 일하면 정규직 전환을 해준다는 조건으로 입사했었다. 


문제는 그 ‘정규직’이라는 신분이 발전소 정규직과는 다른 등급의 것이라는 점이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의 계약이 끝나면 언제든 일감이 떨어질 수 있다. 


전북 익산에서 온 박씨는 4년제 대학 기계공학과를 1년 만에 자퇴하고 군 제대 뒤 공장에서 보안요원 아르바이트를 했다. 


역시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고, 폴리텍대학에 진학해 2년 동안 용접 실무를 배운 뒤 한국발전기술에 입사했다. 


하지만, 박씨 역시 제대로 된 안전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원청 직원들이 꺼리는 위험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 “정규직이라고 해도 어차피 하청이라 소용없어요. 문재인 정부가 끝나면 저희 계약이 연장된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한국발전기술은 2015년 12월부터 3년 동안 한국서부발전과 하청 계약을 맺었다. 원래대로라면 3년 계약은 이달 31일 끝난다. 그러나 계약 만료는 내년 6월까지 반년 미뤄진 상태다. 


하청 노동자들은 한국서부발전과 한국발전기술이 정권이 바뀔 때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바뀔 때까지 (계약 연장을) 끌 거예요. 정부 바뀌면 다 뒤집힐 테니까. 그때까진 계속 질질 끌겠죠.”


 부산에서 온 한국발전기술 소속 중장비 기사 강아무개(40)씨의 말이다. 강씨가 한 마디 더 덧붙인다. “여긴 돈 못 버는 애들만 와 있어요. 예전에 다른 발전소에 있을 땐 40대 초반인 제가 제일 어린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여긴 거의 신입이에요.”


근무를 마치고 작업복을 입은 채 늦은 저녁 빈소를 찾은 한아무개(25)씨는 말수가 적었다. 


그는 발전소에서 김용균씨와 제일 친했던 동료다. 한씨는 회사 ‘형님들’ 사이에 껴서 말없이 귤껍질만 깠다. 한씨는 귤껍질을 까는 손을 보면서 새삼, 석탄을 만져야 하는 발전소 일이 싫다고 했다. 일을 마치고 나면 손톱 사이사이에 석탄가루가 껴서 까만 때가 낀 것처럼 보였다. 이따금 휴대전화에 석탄가루가 묻은 걸 보면 짜증이 난다고 했다.


“취직이 안 돼서 (태안에) 왔어요. 눈을 낮추다 보니까 여기 왔어요. 원래도 특별히 가고 싶은 회사가 있는 건 아니었는데, 그냥 이름 많이 알려진 곳?”


경남 창원이 고향인 한씨는 경북 구미 출신인 김씨와 고향이 가까운 편이어서 친했다. 둘이 만나면 주로 회사 얘길 했다고 했다. “원래도 발전소 안에 위험한 게 많아서. 


컨베이어벨트 힘이 세서 발을 헛디디거나 하면 빨려 들어갈 수 있죠. 공구도 많이 쓰니까 손을 다치기도 쉽고.” 그래서 한씨는 “항상 떠나고 싶기는 한데, 갈 데가 없으니까” 태안에 있다.


 “사무직을 하고 싶은 건 아닌데, (발전소) 일이 좀 더럽잖아요.”


그는 귤껍질을 다 까고 스마트폰으로 김씨의 기사를 검색했다. 한씨는 세상 사람들이 친한 동생의 죽음에 대해 남긴 댓글을 한참 읽어내려 갔다.


“신기해 가지고요. 작년에 3호기에서 사고가 났을 땐 기사가 조금 뜨고 지나갔는데 이번엔 이렇게 많이 떠서….” 지난해 11월 태안화력 3호기 보일러실에서 44살 노동자가 김용균씨처럼 기계에 끼어 사망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 지회가 11일 공개한 ‘태안 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주요 안전사고/사망사고 현황’을 보면, 2010년부터 8년 동안 이 발전소에서는 모두 12명의 하청 노동자가 추락 사고나 매몰 사고, 쇠망치에 맞는 사고나 대형 크레인 전복 사고, 김씨와 같은 협착 사고로 숨졌다.


고향을 떠나 발전소에서 일하는 청년들은 연고가 없는 태안에서 서로를 위무하는 가족이 되어 지냈다. “시골 동네”라 별다른 놀 거리도 없는 동네에서 20대 하청 노동자들은 서로 숙소를 번갈아가며 고기를 굽고 술 마시는 걸 유일한 낙으로 지냈다. 


지난 6일은 김용균씨의 생일이었다. 김씨를 조카처럼 예뻐했던 중장비 기사 ‘강씨 아저씨’는 사고 3일 전 김씨에게 삼겹살과 통닭을 사줬다. 3차도 갔지만, 뭘 사줬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술도 마셨다.


 “얘네가 나이가 어리니까 집에서 요리를 안 해 먹어요. 햇반에 참치캔 하나 열어서 밥 먹고…. 그래서 다 같이 밥 먹는 일이 많죠.”




태안화력 9·10호기 사고 현장 모습.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 제공.


밤 10시. 김씨의 죽음을 추모하는 20~30대 하청 노동자 20여명이 모여 소주잔을 돌렸다.


“나 거기(사고 현장) 무서워서 이제 못 가겠어요. 어린 애가 된 것 같아요.”


“너 무서우면 내가 같이 손잡고 가줄게. (웃음)”


‘소년’도 ‘아재’도 아닌 20대 하청 노동자들은 친구를 집어삼킨 발전소가 두렵지만, 누구도 크게 슬퍼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다. 


사고가 난 9·10호기는 가동을 멈췄지만, 발전소는 내일도 계속 돌아간다.


 “갈 사람은 가야지.”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한다며 누군가 말했다. 


운영팀은 새벽 6시30분, 정비팀은 아침 9시에 출근하기 위해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13일 아침 태안에는 눈이 내렸다. 


열세 번째 죽음은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오늘도 또 다른 김용균들은 새하얀 눈을 맞으며 시커먼 화력발전소로 들어갔다.


태안/선담은 기자 su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74289.html#csidx6713be609f1fbcaa651c270e1392a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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