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 이라는 단어의 역사성에 대한 메모.
페이스북에 보면 정의당 당원들 중 일부가 ‘소명으로서 정치’, 확신(신념) 정치와 책임 정치를 구분하는 막스 베버 이야기를 올린다. 처음에는 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를 연계시켜 이해하려는 제 2의 칼 뢰비트나 루카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시도인 줄 알았다.
요새는 한국이나 미국 유럽 학계가 ‘철지난 지식 상품’으로 간주해서 잘 다루지 않지만, 위르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 이론” 1권 4부 제목이 “루카치에서 아도르노: 사물화로서 합리화”, 1장 제목은 ‘서구 마르크주의 전통에서 막스 베버’이다.
하버마스가 베버의 합리화 이론을 공부한 것은, 사적 소유에 기초한 자본주의 시장체제는 근본적으로 혹은 급진적으로 개혁될 수 있다는 믿음을 폐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97년 IMF ,2008년 미국 금융공황, 2020년 한국 자본주의 금융 시장은 라임 등 각종 사모펀드 범죄 혐의로 8개월째 난리인 상황을 고려하면, 자본주의 시장을 ‘합리화 과정’이라는 탐침으로 설명할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잉글랜드 자본주의 탄생을 막스 베버는 사회진화론적 ‘합리화’ 과정으로, 칼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착취와 소외’가 산출한 잉여가치의 자본으로 환골탈태의 과정으로 설명했고, 이 둘 간의 간극은 아직도 너무 크다. 둘 중에 하나 선택 문제가 아니라, 현실 설명과 비판의 구체성이 더 중요하다.
막스 베버는 마르크스의 ‘자본’이 출간되기 3년 전에 태어났고, 독일 패망 후 2년 후,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1920년에 별세했다. 베버는 노동자의 소외나 자본주의 착취구조를 주로 탐구하지 않았고, 당시 유럽 국가들에 노동자들이 정당을 만들 때도, ‘그런 교회는 가담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냉랭한 태도를 취했다. 왜 그랬을까? 막스 베버에게는 다른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의 정치적 목표는 동쪽의 러시아의 팽창으로부터 독일 독립을 사수하는 것이고, 프랑스와 영국, 특히 영국에 뒤처진 독일 자본주의화를 가속화하고 리버럴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막스 베버에게 독일 산업화와 리버럴 민주주의 전차는 독일 중상층 리버럴,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국가 공무원들이다. 헤겔이 ‘법철학’에서 밝힌 신 독일 입헌공화국의 주체로 ‘교양있는 공무원’을 설정한 것과 거의 유사하다. 막스 베버는 잉글랜드의 자본주의 발달과 달리, 독일에서는 국가가 직접나서서 산업자본주의를 키워야 한다고 봤다. 독일이 산업자본주의를 잘 발전시킨다면 부르조아와 노동자 계급의 이익-이해관계는 서로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는 독일 노동자와 사민당에 대해 불신했는데,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사민당이 집권하게 되면, 경제가 중앙집중적으로 통제되고 관리되기 떄문에 거대한 관료주의 체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유럽과 러시아 지식인들과 노동자들 사이에 퍼진 ‘혁명적 열정’을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1907년 미헬스 (Michels)에게 보낸 편지에서, 막스 베버는 “사민당 (에스페데)에 가담할 생각은 없고, 어떤 당에도 가입하지 않았지만, 부르주아 정당에 가까운 입장을 표명했다”고 썼다.
1919년 1월 28일, “소명으로서 정치” 강연에서 그는 자긍심으로 가득찬 혁명이라는 대의에 들뜬 러시아 인텔리겐차들은 책임감이 없는, 목표도 없고, 불명료한 지적으로 흥미로운 로맨티시즘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막스 베버의 공산당 관료독재 체제가 러시아 등 사회주의에 탄생할 것이라는 예언을 두고, ‘거 봐라 막스 베버가 옳았다’는 찬사가 반공주의자와 리버럴리스트 사이에서 쏟아지기도 했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는, 칼 마르크스와 그 친구 프리드리히 엥엘스 (엥겔스는 일본인들이 잘못 들어서 엥겔스로 적은 것으로 보임)는 ‘소련에 가서 우리 동상 다 치워, 이것은 우리가 말한 게 아니다’라고 데모했을 것이다.
베버의 ‘소명으로서 정치’를 읽고 취할 점은 배우고, 비판적인 태도도 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소명으로서 정치’를 독해해야지, 이 내용을 한국 진보정당의 ‘정치 윤리’로 승격시켜서는 곤란하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전범자 국가이고, 그 ‘책임정치’의 주체들은 누구여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당시 조선은 1919년 31독립운동할 때였다.
아울러 ‘소명’이라는 단어도, 막스 베버가 1904~5년에 쓴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말했듯이, 서구 기독교, 카톨릭으로부터 신교의 분리과정, 루터, 칼뱅, 리처드 박스터 등이 ‘소명’을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살펴야 한다.
사실 이러한 ‘소명’ 개념은, 근래 한국 정치에서도 있었다. 이명박이 하느님의 소명에 따라 ‘서울시’를 하느님의 나라로 봉헌한 적이 있다. ‘소명’ 단어는 우파도, 좌파도, 리버럴도 다 쓸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가 너무 번져서, ‘소명’이라는 단어의 역사성만 간략히 설명하자.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읽은 진보정당 독자라면, 딱 한 줄 감상평을 남길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저임금 노동자의 일도 그 노동력을 착취하는 고용자의 ‘일과 직업’ 모두 ‘소명’에 속한다면, 그 ‘소명’을 명한 신은 누구 편을 들겠는가?
그러나 청교도 금욕주의를 강조했던 사람들의 논리는, ‘그것이 바로 신의 소명’이라는 동어반복을 할 것이다. 사실 이 점은 막스 베버도 책 말미에 지적한다. 가난한 저임금 노동자의 ‘소명’도 신을 기쁘게 하고, 그들을 착취하는 자본가의 ‘소명’도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막스 베버는 이 주제를 깊게 탐구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는 왜 ‘소명’을 강조했는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밝히고자 한 것은, 중국과 인도에도 없고, 이집트와 이슬람 문명권도 없는, 서구 문화의 고유고 특수한 합리주의는 무엇이길래, 자본주의가 잉글랜드와 서구에서 발달되었는가이다.
막스 베버의 주장은 청교도 금욕주의가 서구 자본주의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부르주아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중국, 인도, 이슬람 문명권에는 없는, 서구에서만 경제 기술 과학 군사 법 행정의 ‘합리화’ 과정이 있었다. 도대체 이것을 무슨 단어로 설명을 해야 하는가?
막스 베버에 따르면, 서구 경제적 합리주의 발달이 부분적으로는 합리적 기술과 법 때문에 가능했지만, 어떤 종류의 실천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을 채택하느냐는, 행위 주체의 능력과 성향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다면 그 행위 주체의 성향과 능력을 결정짓는 게 무엇인가? 막스 베버는 경제적 합리적 행위를 기초하는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힘, 의무에 대한 윤리적 생각 등이 ‘행동’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요소라 주장했다.
따라서, 중국, 인도, 이집트에는 없는 그 무엇, 서구에서만 가능했던, 자본주의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 속에 사는 집단의 신념과 태도(에토스), 특정 종교적 사상이다. 그것이 바로 청교도의 ‘금욕주의’이다.
청교도 금욕주의란 무엇인가?
잉글랜드 청교도 지도자 리차드 박스터의 ‘종교적 금욕주의(절제주의)’는 다음과 같다.신의 의지가 명령한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신의 은총을 받기 위해서, 인간은 자기 맡은 바 ‘일’, 그 ‘노동’을 신이 준 ‘소명’으로 간주하고, 성심성의껏, 양심껏, 아주 근면한 태도로 그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바로 ‘종교적 금욕주의’다.
프로테스트탄의 윤리 – 절제주의적 삶과 ‘소명’의식이 자본주의 경제 질서 체제를 탄생시키는 과정을 베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청교도는 ‘소명’을 따르며 노동했다. 우리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 수도원의 금욕적 삶이 우리 일상에서 관철될 때, 우리 현실 생활에서 지배적인 도덕이 되었을 때, 그 금욕주의는 근대적 경제 질서라는 어마어마한 우주를 창조해내는 역할을 했다”
진보적인 정치 이론과 담론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막스 베버의 자본주의 탄생의 원동력이 ‘청교도의 금욕주의적 삶’과 ‘소명으로서 노동과 직업’의 실천이라면, 임금 노동자와 그들의 삶은 어떻게 설명하느냐라는 질문을 바로 던질 것이다.
그러나 막스 베버는 ‘노동자의 소외와 착취’는 탐사 주제와 또 연구방법론으로도 채택하지 않았다.
사회과학 연구자들 역시 명료한 자기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특히 막스 베버는 독일 대토지 계급인 융커 (Junker)도 산업 노동자들도 독일 국가 건설의 기관차로 간주하지 않았다.
막스 베버의 초점은 “근대 서구 정치 경제 기술을 만든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국가 공무원들이었다. 이것은 중국 인도에도 없고, 이집트 등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게 베버 연구 결론이다.
그는 기술, 상업과 무역, 법률 국가공무원들이 한 사회의 일상 생활의 가장 중요한 기능들을 수행했다고 설명하고, 3가지 서구 자본주의의 특질을 1) 회사와 개인 재산의 분리, 2) 합리적인 비즈니스 회계장부 작성, 3) 자본주의적 노동 조직화 (*막스 베버는 노예 노동의 비효율성 지적)로 서술했다. 서구에만 부르주아와 근대 시민 개념이 있었다. 노동자 계급도 서구에만 있었다. 왜냐하면 서구에만 법적인 ‘통제와 처벌 discipline’ 을 통해서 자유로운 노동을 합리적으로 조직화했기 때문이다.
물론 서구 자본주의 탄생과 정신을 프로테스탄트 윤리, 청교도 금욕주의에서 찾는 베버의 주장과 진단은 많은 비판에 노출되었다.
왜 한국, 홍콩, 싱가폴, 타이완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자본주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가장 빨랐는가? 그 이유를 베버처럼 “유교의 근면성 강조와 가족주의’에서 찾으면 될 것이라고 했지만, 막상 한국에 와보니, 인구 30% 가량이 기독교 신자여서 ‘도로 프로테스탄트 금욕주의로’ 였다는 농담이 있다.
사실 책 서두에서도 베버가 직접 밝히지만, 이러한 베버의 자본주의 정신과 기원에 대한 탐구 방법이 나오게 된 것은 몽테스키외 발언 때문이었다. 조선으로 치면 숙종, 장희빈 그 즈음인데, ‘법의 정신’을 쓴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 사상가 몽테스키외가 잉글랜드 사람들이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가장 잘 만들어놓은 3가지를 언급했다. 그 세가지는 1) 독실한 종교적 믿음과 행동, 2) 상업과 무역, 3) (시민) 자유이다.
여기에 착안해서, 막스 베버는 그렇다면 잉글랜드 사람들이 가장 우월한 무역과 상업, 자유로운 정치 제도를 채택했다는 사실과 ‘독실한 종교적 믿음과 행동’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지 않겠는가라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그 서술 결과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물론 자본주의가 발달해 기계 생산 체제로 되자, 이러한 ‘금욕주의’는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어 사람들에게 무시당했다. 그 책에서는 간략하게 몇 페이지 나온다. ‘청교도 금욕주의’는 서구 자본주의 정신이었지만, 자본주의 생산력이 최고조에 달하자, 자본주의는 ‘금욕주의’를 사다리로 쓰고나서, 걷어차 버렸다.
잉글랜드 청교도 지도자 리처드 박스터는 물질적인 재화나 상품은 마치 아기 천사가 입은 가볍고 얇은 망토처럼, 그 천사의 어깨 위에만 놓여져 있어야 하고, 어떤 시점에는 그 망토는 벗어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가혹한 운명의 명령으로 그 가벼운 망토는 쇠로 만든 새장(새 철장)이 되어야 했다.
자본주의 생산력이 급격히 성장하자, 물질적 재화는 인간을 거꾸로 지배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그 자본주의를 형성한 종교적 금욕주의는 이제 새 철장을 탈출하고 말았다.‘소명’ 의식이라는 의무감도 이제 죽은 종교적 신념이라는 귀신이 되어 승리한 자본주의 거리를 배회할 뿐이다.
막스 베버는 책 끝에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갈구하면서, “정신없는 전문가들, 심장없는 감각적 쾌락추구자”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 삶의 목표, 행위 동기, 의미의 상실을 지속적으로 구조적으로 체계적으로 만드는 자, 만드는 경제 사회 체제에 대한 탐구와 물음은 없었다. 이것이 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적 시장이란 ‘소외와 착취’ ‘물신숭배’ ‘목적과 수단의 가치전도’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공간이라는 진단과 비판을 내린 것과 베버의 차이다.
막스 베버 역시 칼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합리화의 역설 (가벼운 천사의 망토가 쇠철장이 되고, 그 쇠철장을 탈출해야 하는 인간의 새옹지마, 사회구조의 변증법적 운동) 과정을 설명했다.
다만 막스 베버는 ‘청교도의 금욕주의’가 서구 자본주의 정신이고, 그 탄생의 원동력이라고 봤고, 칼 마르크스는 베버가 말한 서구 자본주의의 합리화 과정에는 토지를 박탈당한 잉글랜드 도시 노동자들의 피와 땀, 그들의 잉여노동이 베어 있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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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bermas, Jürgen. Theorie des Kommunikatives Handelns, Band I. (Frankfurt: Suhrkamp)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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