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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history)

노태우 사망. 문재인 정부의 비겁함. 보수 일간지 1면. 노재봉의 전두환,노태우 군사쿠데타 찬양. 살아남은 자 이야기.

by 원시 2021. 10. 30.

이루마가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모르겠지만. 노래가 없던 시절이 더 진솔했던 거 같다. 프로페셔널하지 않아서. 이 멜로디에도 충분했던.


그리고 세상에 무슨 그런 예측이 있는가? 그만큼 우리 마음이 반동적으로 되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영화 "꽃잎"에 나온 이정현은 나중에 알고보니 80년 5월 당시 실화였다. 


우리의 행동동기, 결심,결행 동기는 다양하다. 선악만이 행동동기는 아니다. 더 포괄적인 삶의 욕구와 에너지가 우리를 행동으로 이끈다. 예측할 수 있다고? 518은 돈으로도 훈장으로도 명예로도 보상할 수 없다. 현재 연관 단체의 똑바름냐 아니냐와 별개로. 전쟁은 철학도,경제학도, 심리학도,역사학도 설명하기 힘든 정신적 상황을 낳는다. 광주 518도 임진왜란과 같은 1주일간 전쟁이었다.


어떤 행동 동기와 결과. 한 여고생이 계엄군에게 성폭행과 협박을 당했다. 그런데 그 이후 그 여학생은 계엄군복을 입은 군인들을 '오빠'라고 불렀다. '군인이 나를 지켜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스톡홀름 증후군도 넘어서는 잔혹한 심리적 상처다. 518 이후 정신병동에 입원해야했다. 그에게는 가끔 집으로 외출이 허용되었다. 가난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기다렸다. 


그 여고생은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다가 어머니를 사정없이 팼다. 폭력을 자행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래서 다시 정신병동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래도 부모와의 인연을 끊지 못해,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한다.
그 어머니의 증언이다. 어느날 그 여자는 집에 있던 라디오로 아버지 머리를 때려 숨지게 했다. 그러나 죄의식도 없고, 왜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종로 명동 대학로, 그리고 대한극장 앞 도로에서 백골단과 마주칠 때, 무방비 상태로 곤봉으로 맞고, 최루탄이 얼굴에 범벅이 될 때, 그 원초적인 공포와 분노, 아마 내가 느꼈을 이 동물적 폭력성을 그 여자는 계엄군 총 앞에서 100배,1000배는 는 더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폭력의 인과관계는 우리 예측을 뛰어넘는다. 


한번 태어나는 삶, 이 거대한 우주의 인연 앞에, 어떤 예측이 가능한가 모르겠다.


전두환이나 노태우가 대검이나 M16을 그 여고생에게 쥐어주고, 그 아버지를 때려 죽여라고 명령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전-노의 피해자가 그 아버지를 라디오로 머리를 때려 죽이는 비극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예수의 죽음은 완전한 신과 불완전한 인간 사이를 화해시키는 죽음이다. 반드시 죽어야만 신과 인간이 화해할 수 있는 구조이다.


그런데 아버지를 때려죽인 그 여고생은 스스로 어떤 화해도 불가능하다. 왜 때려 죽였는지 인과관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소수의 사람들은 도청에서 죽기를 각오했지만, 광주 80만 시민들은 대부분 숨죽여 떨고 있었고, 도청으로 달려가서 인간띠를 만들지 못해, 양심의 가책이 떨고 있었다. 계엄군의 그 대검과 총 앞에 온 몸이 얼어붙고 사지가 벌벌 떨리는 것은 광주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멜로디와 노래의 의미, 가끔 생각해보지만, 이제 나도 많이 잊고 산다. 운동권 노래도 없던 시절, 프랑스 팝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야 했던 때,  노래라도 불러야 '거리 시위' 나갈 용기라도 생겼었다.
지금도 사실 위 가족들의 비극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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