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2020. 2. 8. 21:33

아서가 바랬던 것은 복지와 돈을 넘어선 '존재감'의 상호인정이 아니었을까? 

영화 조커는 정치적 반란을 다룬다. 마치 19세기 뉴욕 폭동을 연상시키는 '부자 타도' 무정부주의적 반란같다. 그러나 토드 필립 감독은 1981년 뉴욕 (영화에서는 고담 시티)를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2019년 미국  현실이기도 하다. 주목해서 볼 점은 아서와 사회복지사와의 대화인데, 이는 미국 정치,사회 체제와 규범의 오작동을 보여준다.  


첫번째는 아서가 사회복지사 상담의 한계를 폭로한다. 아서는 사회복지사 공무원에게 항의한다. 왜 당신은 나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버려라' '일은 잘 하고 있느냐?' '마치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나를 취급하느냐?' '그러나 나는 존재한다. 사람들이 이제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알게되었다'고 소리친다.


아서는 자신에게 약을 주고, 정신상태를 점검하는 사회복지사 공무원에게 감사 표시를 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공무적으로 행정적으로 기계처럼 대우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아서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친구, 우정, 사랑, 동료애,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다. 같은 동료 인간으로서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아서는 그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한다. 동네 10대 아이들에게 맞고, 사장에게 부당해고 당하고, 동료에게 배신당한다. 아서는 순진한 덜렁이 광대가 더 이상 아니고, 자기 존재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처형하는 '잔혹하고 단호한 악당' 조커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것은 '내가 존재하는 사실'을 '나를 무시한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식임은 선언한다. 그리고 행동개시한다. 


아서가 엄마 페니를 질식시켜 죽인 후, 모친 사망 소식을 듣고, 직장 동료 게리와 랜들이 아서를 방문했을 때,

아서는 '엄마 사망을 자축한다'고 말하고, '정신병 약도 끊었다'고 그들에게 말한다. 아서는 자기가 정신병 약을 먹고, 상담사와 복지사의 행정적 관리를 받는 것을 거부해렸다. 물론 그 대안은 어떤 이념적 지향을 표방한 혁명가가라기 보다는 악당 '조커'로 변신이다.


두번째 '조커'가 보여주는 것은 미국 복지 삭감이다. 아서는 상담사가 자기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반면, 복지 상담사는 시 당국이 아서와 상담 예산을 없애버려, 앞으로는 아서가 약과 상담을 제공받을 수 없음을 통보한다. 자기도 해고당하고, 아서도 상담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됨을 알린다.  


아서가 그럼 '약은 어디서 타냐?'고 묻는다. 상담사는 '미안하다 i'm sorry' 라고 답변할 뿐이다. 무능한 미국 사회체제를 보여준다. 토드 필립 감독은 정신병을 앓는 아서의 상담비용 삭감하는 미국 정부의 무능과 무자비함을 폭로한다. 그리고 행정적인 복지상담과 약 제공으로는 아서가 시민으로서 동료로서 공동체 일원으로서 자기 자존감을 회복할 수 없음을 경고한다. 아서는 자기같은 정신병 환자를 시당국이 관리하는 것은 자기 존재를 은폐하려는 것과 같다고 불평한다. 


미국도 한국도 사회복지 체제 과소가 문제다. 특히 교육,의료,고용,육아,노인복지 등은 심각한 사회문제다. 사회복지 혜택과 복지비 예산 인상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사회복지비 증가와 해당 공적 서비스의 증가가 인간존엄성 실현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아서가 절규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 '조커'는 영웅의 승리담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서가 반란 수괴같은 '조커'로 변신했다가 다시 결국 정신병동에 수감된다. 아서는 구질서와 기득권, 그들의 규범에 반항했지만, 그것들을 새로운 체계로 만들 능력은 없었다. 그래서 겨우 할 수 있는 건, 정신병동 재수감이고, 재탈출 시도이다. 아서 (조커)는 자기 자신과 사회 전체를 비웃는다. 



사회복지는 아서의 자존감 확인의 필요조건이지,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사회 구성원을 복지혜택의 수동적 고객으로, 행정 서비스 대상으로만 대우하는 사회복지제도는 아무리 돈을 많이 뿌린다고 해도,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시민들의 자유와 우정, 자존감의 상호인정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사회복지는 공적 행복의 수단이지, 목표 그 자체는 아니다. 








영화 전반부에 나오는 아서의 상담사, 그 대화 배경은 어둡다. 







아서는 결국 다시 정신병동으로 수감된다. 복도를 걸어가는데 발자국이 빨갛다. 멀리서 햇볕이 비친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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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2020. 2. 8. 20:34

영화 '조커'에서 제일 재미있고 인상적인 장면은 아서의 '노트'였다.  아서가 반란 분자 악당 '조커'로 변모하기 전까지, 코메디언이 되기 위해 '조크 북'을 열심히 작성했다.  선데이 서울같은 여자 사진도 붙여놓았다. 코메디 소재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서 노트를 보면, 아서가 정신이상자라기 보다는 생각이 많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아서 노트 문장들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그의 진실한 삶의 독백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사회복지자는 아서 일기를 '저널 journal'이라고 불렀다. 아서는 알파벳 철자도 틀린다. confused를 confusd 로,  sense도 cents로 썼다. 


1. 

I just hope my death makes more cents (sense) than my life .

내 죽음이 내 삶보다는 더 쉽게 이해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어떤 맥락인지 알기 위해서, 그 위 문장들을 읽어봤다. 

"보도 위에서 사람들에 깔려 죽지 않고 싶다. 길가 인도 위에서 사람들에게 밟혀 죽는 것을 상상이나 해 볼 수 있겠냐? 나는 사람들에게 깔려죽고 싶지 않다. 난 사람들이 나를 바라다 봐 줬으면 좋겠다.

내 죽음이 내 삶보다는 더 쉽게 이해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해석을 하자면, my death makes sense (to me) 이런 것이라면, '내가 내 죽음을 이해했어. 내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겠어' 가 될 것이다. 내 삶보다 내 죽음을 내가 더 명료하게 이해했어. 내 생명, 인생, 삶은 잘 몰라도, 내 죽음만은 더 분명하게 이해를 하고 싶다. 이런 뜻으로 보인다.








2.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의사소통 실패를 보여주다. 



The worst part about having a mental illness is people expect you to behave as if you don’t

정신병으로 인해 생기는 가장 나쁜 건, 다른 사람들이 마치 네가 정신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가? 

"왜 남자 노인이 불면증에 걸렸는가? 그 이유는 자기 아내랑 잠을 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흐리멍덩할까그 이유는 그들이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그들이 돈을 못 벌어서이다.)

몇 번이나 의사가 말을 했냐그 미친’ 남자들이 구속복(straightjacket)을 입은 정신병동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했나? '좀 헐겁게 풀어줘'

 정신병으로 인해 생기는 가장 나쁜 건, 다른 사람들이 마치 네가 정신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 






Why did the old man like having insomneea? Because he didn’t half to sleep with his wife

Why are poor people always canfusd? Because they don’t make any cents


How many times did the doctor tell, what did the crazy men say to the wsh strung strait jacket? Loosen up a little. 


The worst part about having a mental illness is people expect you to behave as if you don’t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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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2020. 2. 8. 18:52

영화 조커, 주인공 아서는 왜 엄마까지 죽였을까? 폭행 방관자, 진실 은폐자. 조커는 ‘기생충’보다 훨씬 더 명료하게 사회반란을 다룬 정치적인 영화인데도, 이성적 혁명지도자도 없고, 판에 박힌 헐리우드 권선징악도 없다. 오히려 조커의 주인공 아서는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왜 정신이 아픈 사람을 내세웠을까? 그건 아마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어딘가 아프기 때문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영화 전체 줄거리는 1981년 뉴욕 (고담)시 어설픈 광대 아서가 ‘악당 조커’로 탈바꿈하는 과정이다. 계몽주의적 혁명지도부 대신, 화산 분출전 들끓는 마그마 같은 성난 시민들이 나온다. 순진한 덜렁이 아서가 ‘단호한 악당 조커’로 변신하는 과정마다 살인이 등장한다.


그 나이먹도록 엄마와 둘이 살면서 엄마를 돌봐온 아서가 왜 엄마를 죽였을까? 아서가 우연히 엄마의 편지를 읽고 난 후, 자신의 탄생 비밀에 의문을 던진다.


엄마 페니는 아들 아서를 ‘해피’, 그리고 고담시장 후보로 나온 토마스 웨인을 ‘굿맨’이라고 불렀다.


엄마 페니는 토마스 웨인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최고로 경애하는 토마스, 난 곧 죽을 게 확실해요. 최근들어 매우 아팠어요. 그래서 이 편지를 당신에게 쓰는 겁니다. 당신도 잘 알듯이 난 당신을 너무 사랑해요. 지난 7개월 동안 당신에게 열 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어요. 혹시나 당신이 답장을 해줄 것이라는 가느다란 희망을 가지고서요.


솔직히 말해서 지난 세월 당신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 사랑 때문에 우리 둘 모두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기에요. 이런 말을 이제와서 꺼내는 게 어리석지만, 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당신 아들과 나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이렇게 편지를 보내요. 전 지금 보험도 없고,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해요.


토마스, 당신만이 저와 당신 아들에게 유일한 희망입니다.


아서는 약간 슬퍼보이지만 좋은 아이예요.


토마스, 우리에게 인정을 베풀어 줘요, 그럼 우리 살림이 조금 나아질 거예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는 페니 플렉으로부터”


엄마의 증언은 이렇다. 아서가 토마스 웨인과 페니 사이에 태어난 아들인데, 페니 와 토마스가 이 사실을 남에게 알리지 않기로 비밀 각서를 썼다는 것이다.


아서는 이 엄마 편지를 본 후 경악을 한다. 그리고 엄마가 말한 아버지 토마스 웨인을 찾아가 보기로 결심한다. 한번은 토마스 웨인 집으로, 다른 한번은 클래식 공연장으로. 그러나 토마스 웨인은 아서를 냉대한다.


토마스는 엄마 페니 말과는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 “페니가 너를 입양해왔다. 너희 엄마 페니 플렉은 과대망상증 환자다.”


이 말을 듣고서도 아서는 토마스 웨인에게 통사정을 한다.


“왜 다들 나에게 무례하냐? 나를 한번 안아주면 안되느냐?”


그러나 토마스 웨인은 “너희 엄마는 미쳤어” 그러면서 아서의 얼굴을 갈겨버린다.


누구 말이 진실인가? 아서는 혼동에 빠진다. 엄마 말이 맞는지, 토마스 웨인 말이 맞는지를 직접 확인하고자 아캄 스테이트 정신병원에 직접 찾아간다.


여기에서 아서는 30년 전 엄마의 병력을 확인하고 좌절하며 통곡한다. 엄마 병력이란, 현실과 상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망상증세, 자기애 과다 성격장애, 자녀 폭행 성향이었다.


페니 진단서에는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었다. 경찰이 어린이 아서를 집에서 발견했을 때, 아서는 난방기에 묶여있었고, 두뇌 손상, 영양실조 상태였다.


페니의 남자 친구중 한 명이 아서와 페니를 지속적으로 폭행했고, 그로 인해 아서 두뇌가 손상되었다. 성인이 되어서 정신병으로 고생하고 웃음을 통제하지 못한 병의 원인이었다.


이 사실을 안 이후, 아서는 부족해 보이는덜렁이 광대에서 악당 ‘조커’로 변신한다.


그리고는, 입원해 있는 엄마 페니를 찾아가, 엄마를 베개로 질식시켜 죽인다. 지금까지 자기 인생을 비극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알고보니 염병할 희극이었다고 말한다. 엄마 페니가 그 동안 불렀던 이름 “해피”는 날조였다. 여기까지가 감독이 보여준 이야기다.


그런데 과연 누구 말이 진실일까? 만약 엄마 페니 말이 사실이고, 돈과 권력을 가진 토마스 웨인이 페니 병력까지 다 조작해 버렸을 수도 있지 않는가? 그리고 페니도 폭력의 피해자 아니었나? 이 진실 여부는 공백으로 남는다.


아서는 아캄 스테이트 병원에서 본 엄마의 병력이 진실이라고 믿고, 자신을 ‘해피’라고 부르고 토마스 웨인을 ‘굿맨’이라고 했던 엄마를 죽인다. 어머니를 죽인 이유는, 엄마 남친에게 폭행당한 아서 자기를 방관했고, 두뇌 손상을 입은 사실을 숨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서는 엄마가 자기 생명의 시작과 인생살이의 진실을 은폐했다고 결론내리고 살인을 결심한다.


그런데 엄마 살해는 한 정치적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엄마 페니는 부와 권력을 지닌 토마스 웨인을 구원자로 간주해오며 살고 있다. 토마스 웨인도 고담 시장에 출마하면서 ‘시민들을 가난에서 구출하겠다. 나만이 그들의 희망이다’라고 위용을 과시했다.


하지만 고담 시민들은 ‘부자를 죽여라’는 팻말을 들고 폭동에 가담했다. ‘해피’ 아서는 토마스 웨인이라는 부자의 자비를 학수고대하는 엄마의 환상을 질식시켜 죽임으로써, 자기 자신을 ‘악당 조커’로 재탄생시킨다.


엄마 살해를 실제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아서에게는 ‘폭행 방관자’, ‘진실 은폐자’에 대한 정당한 응징,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부자의 자비라는 환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난 조커를 보면서, 엄마 페니를 질식시키는 장면까지 전개과정을 잘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예전 어떤 후배 말이 떠올랐다.


“난 결혼해도 애를 낳고 싶지 않아요.”


“왜?”


“우리 아빠를 보면서, 난 저런 아빠가 되지 말아야지. 애 낳으면 저렇게 될 것 같아서……”


그럼에도 영화가 끝나고도, 혹시 엄마 페니 말이 맞고, 토마스 웨인이 다 꾸몄을 수도 있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그리고 부자의 자비를 오래시간, 수십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엄마 페니도 아직 많은 게 현실이다.


(해방춤을 추는 아서, 아서에서 조커로 변신하는 과정이다, 계단 위에서 아서를 체포하려는 두 형사 장면이 인상적임)




(엄마 페니가 토마스 웨인에게 보낸 원조 요청 편지)



(남친에게 폭행당한 페니와 아서 신문 사진)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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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2020. 2. 8. 16:49

2020.feb 7.  

[1] 1989년 노태우 정권 하에서, 부동산 투기꾼 명단이 공개되었다.

한국의 부동산 투기 원조는 박정희 정권이었고, 그 시기는 강남개발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부끄럽게도 당시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손정목 선생 인터뷰>를 보고서야 알게되었다. 도시공간 정치에서 아주 중요한 문헌을 남겨주신 손정목 <서울도시계획이야기>, 손정목 선생이 더 오래사셨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안타깝다.


[2] 2002년 민주노동당 지방선거부터 지금까지 정책을 공부하다가 느낀 점 중에 하나가, 아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겠지만, 97년 IMF 긴축독재 통치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지금 문재인 리버럴 민주당 정부보다, 1988년~1992년 노태우 정권 경제정책이 더 진보적인 내용들, 친민중,친서민적인 정책들이 더 많았다는 점이다. 


물론 광주학살정권이라는 통치정당성 결여, 88년 총선으로 여소야대 국면, 건재했던 학생운동, 성장하던 노동운동의 정치적 압박 때문에, 노태우 정권이 ‘개혁 제스처’를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다 80년 중반 3저 호황으로 한국 경제가 기업,가계,정부 모두 어느정도 여윳돈이 있었던 시기, 한국전쟁 이후 가장 경제적으로 풍요로왔다.

그 와중에 터져나온 사회적 문제가 ‘부동산 투기’였다.


[3] 정치적 배경: 1988년 총선 이후 여소야대. 노태우 정부가 야당들의 압박에 시달리다, 89년 5월 당시 조순 부총리에게 상습투기자 명단 공개하라 지시. 국세청이 이를 수용 투기자 명단 발표함.

투기자: 미등기 전매 24명, 1년 미만 전매 46명, 무자력자 거래 33명, 타인 명의 위장거래 9명, 허위 또는 이중계약서 작성 11명, 123명 명단 공개.

투기자 직업 무직이 40명으로 가장 많음 (이들은 전문 투기꾼임)

대상: 1989년 2월~4월, [a] 강남 지역 아파트 [b] 북방정책 발표 이후 투기지역 토지 취득자

2711명 중, 명백한 투기 행위자.

소득: 585억 1500만원

추징세금: 295억 1200만원

국세청이 명단 공개한 이유: 부동산 투기가 사회문제화 하고 개인명예보다는 공공 이익에 중요하다고 판단.


물론 노태우 정권이 실시하려했던 토지공개념의 3가지 법률들 (택지초과 소유 부담금제, 개발이익 환수제, 토지초과 이득세)은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혹은 IMF 긴축-신자유주의 정책 도입으로 인해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그러나 토지의 공적 소유에 대한 논의는 부활시켜야 하고, 법률안도 다시 만들 필요가 있다.


서울과 같은 글로벌 메가 시티 등에서 주택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 ‘보유세 대폭 강화’ 등과 같은 세금 정책들도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토지의 공적 소유 개념, 97년 이후 초국적 자본의 국내 부동산 투자 자유화로 인해 ‘소유’ 개념의 변화와 국제분쟁 가능성, 서울과 지역 도시들과 현저한 격차 발생, 전세,월세,임차인들의 주거와 영업권에 대한 대폭 권리 강화, 지방도시 재정 자립화와 산업정책의 현실화 등이 정치화되어야 한다.


도시공간에서 ‘소유권’을 둘러싼 정치투쟁들을 활성화하지 않으면, 노태우 정권이 내놓았던 ‘양보안’들은 현 정부건 다른 정권 하에서도 도출되지 않을 것이다.


박정희 정권 이후 45년 넘게 부동산 투기 노하우를 쌓아온 '투기꾼'들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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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정의당2020. 2. 8. 16:42

돌아온 '진벙장'에 대한 뉴스. 이건 그냥 내 추측이다. 진중권은 민주노동당-진보신당-정의당 등에서 강연할 때는 자원봉사(무료)로 했다. 안철수는 사장 출신이니, 정치적 견해도 다른 진중권 선생을 강사로 초빙했으면, 두둑한 강연료를 많이 내기 바란다.


진벙장의 안철수 창당 강연 수락은, 415 총선에서 '민주당만 빼고 정견따라 다른 당 투표'를 진중권이 주장했기 때문에, 강연수락은 이러한 자기 정치 노선을 실천한 것으로 보인다. 진교수가 안철수를 좋아해서는 아니다.


물론 조국 사태 이후, 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김경율 회계사나 동양대 교수직을 양심적으로 사직하고, 나름 진실을 알리느라 무진장 애쓰는 진중권, 두 사람이 허경영과 차별성도 없는 정치개혁안으로 나를 충격에 빠뜨린 안철수를 만나거나, 강연에 참가하는 건,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


허경영은 정치개혁안으로 국회의원 100명으로 축소, 안철수는 200명으로 축소하자는 개-반동적인 주장을 하고 있음. (진보세력이 주장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는 의원숫자를 500명으로 늘리는 게 그 핵심임)


그런데다, 안철수는 금융마피아 이헌재, 97년 IMF 복지삭감 긴축독재 노선 중에 가장 악날했던 반민중적 금융정책을 쓴 이헌재를 멘토로 삼았다. 평생 독일 사민당에 투표했다는 하버마스와 절친이라던 한상진은 사사오입 개헌안으로 악명놓은 이승만을 재평가하자며, 안철수와 같이 가서 분향하고 그랬나?


언론이 다 왜곡하고 조장하기도 한 측면도 있지만, 안철수는 97년 IMF 체제 이후, 김대중 정부가 내건 '정보 혁명 (산업화에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선도한다)'과 IT 산업,벤처지원 정책에, 가장 큰 수혜자였다.


이러한 수혜자 안철수가 과연 '공정'에 대해서 알까? '공정'은 돈주고 살 수 없다. 하지만 안철수 사장님이 거의 강제로 실직상태가 된 진중권 논객에게 '공정'한 강연료를 지불하길 바랄 따름이다.

아주 두둑히.



위 사진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80415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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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정의당2020. 2. 8. 16:38


2020.feb7.

진중권은 입진보가 아니다. 그 이유 3가지. 정의당 심상정, 윤소하 의원의 ‘진중권 탈당’ 논평은 감탄고토 (甘呑苦吐)였다.

주제: 신자유주의 체제의 유산 감탄고토를 종식시키자.


인간관계가 참 짧다. 아니 짧아졌다. 그래서 아쉽다. 2004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10석 이후, 운동권의 자긍심은 불량제품 고려청자 박살나듯이 팍 깨졌다. 달면 삼키고 쓰면 토해내는 ‘감탄고토’, 다시 말해서 진보가 그렇게 경멸하는 신자유주의적 행동지침이 평당원들 사이에, 지도층, 오래된 운동권들, 20대에게 다 퍼졌다.


진보정당이 집권당이 위해서는 지방행정(군수,시장,구청장등) 15% 정도를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20세기 전 세계 정치가 논증하는 집권 전제조건이다. 이런 집권전략은 실천하지 않은 채, 2004년 이후 16년간 ‘국회의원’ 중심으로 진보정당을 이끌어왔다. 변화구없는 170km 속구 투수이다.


진중권이 최근 이런 심경을 남겼다. 요지는 이렇다. ‘지난 18년간,총선, 국회의원 그거 많이 해봤잖아요? 그런데 뭐가 특별히 달라졌다는 느낌 없어요.’ 난 진중권이 패배주의나 허무주의, 진보정당 불필요론에 빠졌다고 보지 않는다.


인간관계들이 너무나 근시안적으로 변해버렸고, 좁쌀 마인드가 ‘리더십’으로 둔갑했다.


원래 하려던 이야기, 진중권은 입진보가 아니다로 돌아간다. 세가지 이유들만 언급한다.


첫번째, 윤소하 의원이 ‘진보지식인입네 하는 분들, 난해한 말로 삶의 현장을 왜곡하지 말라’고 진중권을 비난했다. 진중권은 이 발언과 무관하다. 아니 반대다.


내가 본 진중권은, 2002년 6월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 이문옥 선거운동권이 되어, 지하철에 당시 국회의원 0석이던 ‘민주노동당’ 이름을 알리기 위해 만든 ‘어깨 띠’를 두르고 ‘민주노동당’을 입으로 외쳤다. 두개골로 외친게 아니라, 진중권의 ‘입’으로 외친 것을 온라인으로 봤다. 나중에 만난 이문옥 서울시장 후보의 증언도 일치했다.


한국에 민주노동당이 최초로 국회의원 10석을 만든 2004년 총선 이전에,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 시장 후보 이문옥, 부산 시장 후보 김석준 (현 교육감)이 민주노동당을 ‘전국화’ 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진중권도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간 민주노동당 띠 두르고 선거운동했다. 그 띠를 ‘입’으로 물고 다닌 게 아니라, 어깨에 둘러멨다.


두번째, 정의당 노유진 팟캐스트를 들은 적이 있다. 진중권 예술철학자 겸 시사 평론가에게 확인해봐야겠지만, 진중권은 노유진 카페에 무료로 자원봉사 출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맨입’으로 출연해서 자기 이권을 챙겨간 게 아니다.


그리고 이런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진중권과 노회찬은 ‘노유진’에서 유시민과 정치적 차이를 드러냈다. 예민한 청취자들은 몇 차례 그 차이를 감지했을 것이다.


유시민의 논지는 “정의당 안에 좌파(노회찬,진중권 등 포함)는 심장이 너무 뜨거워”그러면서 더 큰 공간으로 이동하지 못한다고 타박했다. 유시민 주장은 정의당이 민주당에 과감하게 들어가서, 빅텐트 안으로 들어가서, ‘집권 정치, ‘큰 정치’를 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이에 반해, 진중권과 노회찬은 민주당과는 차별되는,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사유제도에 충실한 리버럴 민주당과 ‘정의당’은 달라야 한다는 정치적 주장을 했다. 진보정당의 독자성이야말로 정의당의 존재 이유라고 주창한 사람들이 진중권과 노회찬이었다.


조국 사태에서도 진중권은 이러한 정의당의 독자적인 자기 입장을 고수하려고 했다. 그래서 리버럴스트 민주당이 말하는 ‘기회의 공정’을 넘어서, ‘결과의 공정’, 이 결과의 공정까지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체제 변혁을 주장하고 있는 게 지금 진중권 글이다.


세번째 진중권이 입진보가 아니라 진보 실천가인 이유는, 2008년 촛불 시위 때, 진보신당 온라인 방송의 ‘송해’ 리포터 역할을 탁월하게 해냈기 때문이다.


당시 난 컬트조와 ‘칼라tv’ 온라인 방송을 기획했는데, 운동권들이 연단위에서 연설하는 방식을 뛰어넘는 쌍방향 의사소통 ‘미디어 실천’을 진보신당 안에서 실천하고자 했다.


KBS 전국노래자랑 ‘송해’ 역할을 진중권에게 맡겨서, 촛불 시위에 나온 시민들이 ‘연단’ 위로 올라와, 정치 주체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진중권이 송해로 변신, "왜 촛불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나요?"를 물었고, 참여자들이 답변하기 시작했다. 직접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진보정당의 정치 실천 방식을 보여준 것이다.

지루하게 윤리학자처럼 당위론에 그치기 쉬운 데모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 만든 컨셉이었다.


진중권은 이러한 ‘시민에게 마이크를 주는’ 역할을 가장 탁월하게 소화화냈고, 시민들 속에 파묻혀, 칼라tv중계를 하다가, 전경차에 시민들과 같이 끌려가는, 즉 시민과 리포터가 한몸이 되는 협연을 연출하기도 했다.


진중권의 본 직업은 ‘예술철학’ 연구자이다. 한국에 ‘미학자’로 알려져있으나, aesthetic (미학)이 외국 거리에서는 손톱 네일아트 숍 이런데서 쓰이니, “예술철학”으로 하는 게 좋겠다. 암튼.


그가 정치 시사평론가를 하는 건, 불의를 못참아서였다. 윤소하 의원이 부당하게 평가한 것처럼 “진보지식입네 하고” “난해한 말 (발터 벤야민이나 아도르노 등 독일 철학자들이 쓰는 문장들 등)”이나 쓰면서 삶의 현장을 왜곡한 적은 거의 없다.


총선이라 바뻐서, 화해할 시간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윤소하 의원은 진중권 전당원이 지난 18년간 무형 유형으로 진보정당에 기여한 것을 인정하고, 정치적으로 화해하기 바란다.


그리고 진중권 전 당원께서도, 복잡한 심경, 서운함, 너무나 자연스런 감정이고, 많은 이들도 동감할 것이므로, 특정 인물이나 코멘트보다는, 지난 20년 어렵게 쌓아온 진보정당과, 어렵지만 향후 가야할 20년, 30년을 위해, 대승적으로 화해하길 바란다.


97년 IMF 신자유주의 독재 체제 이후, 우리 사회에, 사람들 사이에 코로나바이러스처럼 퍼진 이 감탄고토라는 전염병을, 이제 우리가 같이 예방해야 하지 않겠나요?


돌아온 진병장 환영~하며.


원시 씀.


(2008.5월 어느날, 데이비드 맥날리 David McNally가 한국 진보정당, 인터넷 방송에 참여해, 박형준 진중권 등과 토론하고 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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