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12 23:00
평화노동당 (노동 해제3) 노동자 중심성이 아니라, 생활터전의 중심주체를 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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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노동당 : (노동 해제 3) 노동자 중심성이 아니라, 생활터전의 중심주체로서 노동자를 말해야 한다
평화노동당의 당명은 노동 패러다임 바깥, 일터를 포함하긴 하지만 생활터전이라는 보다 더 포괄적인 삶의 공간에서 노동자들의 자유와 평등, 행복의 실현을 담고자 한다. 만약 노동 바깥인데 왜 ‘노동당’ 명칭을 쓰느냐? 형용모순이라고 지적한다면 그 비판은 수용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명칭에 노동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실천주체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노동정치, 노동해방정치, 또 진보정당 좌파정치는 노동자라는 존재 자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 노동당>에서 초점을 맞추는 정치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문화적 의식들을 형성하는 요소들이다. 극단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한 현실을 먼저 이야기하자. 한국에서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민주당도 진보좌파정당도 아닌, 새누리당에 투표하고 있다. 이 문제를 계급을 배반하는 투표행위라고 서술한다고 우리의 정치적 임무는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왜 한국의 노동자 대다수가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리버럴리스트 민주당에 투표하는지를 설명하고 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의 노동자들 대다수가 보수-새누리당에 투표하고 있는데, 계급 혹은 노동 패러다임이 아직도 유효한가? 이런 질문은 당연히 던질 수 있다.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그러한 유효성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식 구성요소들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과 그들의 정치적 의식 사이에는 샛강이 아니라 한강 두만강이 흐르고 있다. 정치의식들을 규정하는 요소들은 가족,지역,종교,가치관,계급,계층,정치적 경험들, 문화 등 수없이 많다. 다르게 표현하면 일하는 사람들, 노동자의 계급의식이나 정치적 의식은 계급과 연관되지만, 계급/노동 패러다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의식규정요소들 사이에 위계순서,우선성(경제,정치,문화 요소들)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 가능성과 방향성이다.
한국 자본주의와 일상생활 속에서 노동자의 정치의식을 쳐다보면, 직종 숫자 만큼이나 천차만별이다. 97년 IMF 신자유주의적 긴축통치 이후, 자본과 국가권력이 노노갈등을 부추기는 것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미 수 천가지 직종들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정치의식들과 계급의식들을 천차만별이다. 당장에 민주노총 내부 조합원들 사이에도 정치의식들이 다르고 계급의식이 단일하지 않다.
우리 당은 이러한 다양한 노동자들의 정치의식들과 실천들과의 정치적 소통을 해야 한다. 그러한 소통을 바탕으로 노동자 정치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생활터전 도시와 정치 사진 2009.jpg
(향후 30년간 한국 좌파 정당 운동에서 가장 주요한 주제로 떠오를 도시 공간 정치라는 주제. 어떤 토론회장,
좌파정당으로서 우리 당이 심혈을 기울여야 할 정치적 주제들이다)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최근 “노동 중심성”이라는 단어는 전략적인 측면에서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 번째는 현장에서부터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다시 해보자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토론한 노동계급의식의 정치적 집결체로서 정당운동이 왜 실패했는가? 그에 대한 대안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정치적 기획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심성’ 강조에 앞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들의 분화에 대한 정치적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과거 사회당을 보면, 이미 구정치의 영역 (노동, 복지, 군사, 안보, 안전 등) 뿐만 아니라, 신정치와 새 사회운동의 영역인 평화, 녹색, 여성, 생태, 인종차별반대, 소수자 운동 주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중심성이라는 말이 어떤 특정 집단의 정치적 헤게모니 선점으로 오해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노동자 중심성이 아니라, 노동자가 생활터전에서 정치의 주체로 되어야 한다로 바꿔야 한다. 굳이 노동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진정한 자유나 해방과 구별해서 말하자면, 삶의 터전에서 자유와 평등의 구현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위에서 말한 노동자 정치의식과 계급의식의 형성 지역, 그 충돌과 갈등이 일어나는 공간이 바로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다. 좁게 말하면 도시공간이다. 97년 이후 한국자본주의가 규정한 삶이란 어떠한가?
일터에서는 노동자도 친구도 없다. 정규직 비정규직 갈라져 있고, 유니폼도 다르고 소득도 다르다. 삶의 터전인 쉼터, 놀이터, 집터 역시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분열되어 있다.
생활터전 도시와 정치 구로 민중의 집.jpg
( 좌파 정당이 삶의 터전에 뿌리 내리기 시도를 하고 있다. 구로 민중의 집 사진. 보수적 시민사회와의 경쟁에서 살아남느냐가 관건이자 정치적 과제이다.)
노동운동이 살기 위해서는, 또 진보좌파정당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삶의 터전, 일터, 놀이터 쉽터, 집터 등에 끊임없이 침입하는 자본과 돈, 부당한 권력과 맞서 싸우고 저항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정치적 임무는 일터에서 재산권 생산수단, 노동소득을 다루는 법률, 집터에서 도시계획, 아파트 용적율, 뉴타운 건설 등, 쉼터 놀이터에서 문화 스포츠 활동에서 계급차별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제거해나가는 것이다.
도시라는 공간 자체가 계급적이다. 우리들의 행복과 희로애락 역시 계급계층차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도시 공간의 사적 소유 재산권과 자산에 대한 해체와 재구성에 돌입해야 한다. 좌파 정치의 중요한 주제들은 일터와 ‘노동’ 안 패러다임에서만 발견되지 않는다. 일터를 포함한 포괄적인 삶의 터전 속에서 계급계층 차별적 요소들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 좌파 정당의 정치적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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