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군 “미국, 스스로와 협상하는 지경”···트럼프 ‘15개 요구안’은 1년 전 것 재탕이었다
수정 2026.03.25 16:34
이영경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재국 파키스탄을 통해 15개 요구안으로 구성된 휴전 계획을 이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이 미국의 15개 요구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며, 이스라엘과 걸프 국가들은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끝내기 위해 협상을 서두르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를 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CNN 등은 24일(현지시간) 미국이 파키스탄을 통해 15개 항목으로 구성된 요구안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파키스탄, 튀르키예, 이집트 등 중재국들이 48시간 내에 미국과 이란의 회담을 주선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전했다.
“우선 한 달 휴전, 추후 세부사항 논의 추진”···1년 전 협상안 ‘재탕’ 지적
이스라엘 방송 채널12는 미국이 이란과 우선 한 달간 휴전한 후, 휴전 기간 15개로 구성된 합의안을 놓고 협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와 스티브 윗코프 중동 특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동의하에 이 같은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채널12는 전했다. 이는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 적용됐던 모델로, 일반적 틀에만 합의하고 세부 사항에 대한 논의를 뒤로 미루는 방식이다.
채널12는 또한 15개 항목의 구체적인 내용도 보도했다. 미국 측의 요구안에는 이란의 핵 능력 해체, 이란 영토 내 우라늄 농축 금지, 나탄즈·이스파한·포르도 핵 시설 폐쇄, 이란의 대리세력에 대한 지원 중단, 미사일 수량과 사거리 제한 및 자위 목적에 한정한 운용, 호르무즈 해협 개방 등이 포함됐다.
이란은 그 대가로 전면적인 제재 해제와 부셰르 원자력발전소의 전력 생산을 포함한 민간 원자력 프로그램을 지원받게 된다. 또 이란이 합의를 위반하면 제재가 자동 복원되는 ‘스냅백’ 조항 폐기도 포함됐다.
한편 미국이 이란에 전달했다는 15개 요구 사항이 이미 1년 전 이스라엘·미국과의 ‘12일 전쟁’ 이전에 만들어진 요구안의 ‘재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디언은 15개항이 지난해 6월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기 직전에 진행됐던 핵 협상의 기초가 됐던 것으로, 항목 중 일부는 올해 들어 전쟁 발발 전까지 세 차례 진행된 미·이란의 핵 협상 진행 내용과 전쟁으로 이란의 주요 핵 시설이 파괴된 상황 등 현시점에서 달라진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구문’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이란이 1년 전에 받아들이지 않았던 내용을 거의 재탕”했다며 “회담에 대한 미국의 진지함이 부족하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보다 더 큰 진전을 이룬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꼬집었다.
이란군 대변인 “미국, 내부 분열 끝 스스로와 협상하나”···‘미 수용불가’ 요구사항 내걸어
에브라임 졸파가리 이란 중앙군사본부 카탐 알안비야 대변인. 타스님 뉴스통신
에브라임 졸파가리 이란 중앙군사본부 카탐 알안비야 대변인. 타스님 뉴스통신
미국 측 요구안을 이란이 순순히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란군을 통합 지휘하는 중앙군사본부 카탐 알안비야의 에브라임 졸파가리 대변인은 미국이 이란에 15개항 요구안을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과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내부 갈등이 극에 달해 스스로와 협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조롱 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란에 대한 적대적 생각이 당신들의 더러운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질 때까지 유가는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공습으로 이란 지도부 대다수가 사망하고 강경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정국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이란은 미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안을 내걸고 있다.
WSJ는 이란이 미국 측에 걸프 지역의 모든 미군 기지 폐쇄, 전쟁 피해에 대한 배상금 지급,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대한 통행료 징수, 전쟁이 재개되지 않을 것이란 보장, 이스라엘의 레바논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공격 중단, 이란에 대한 모든 제재 해제, 미사일 프로그램 제한에 대한 협상 불가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 내부에서는 협상 도중 두 차례나 이란을 공격한 미국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반응과 함께, 협상이 이란 고위 인사 암살을 위한 ‘함정’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WSJ는 이란 당국자들이 종전 논의를 위한 대면 협상이 미국이 협상 파트너로 지목한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 의장에 대한 암살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12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우주군 박물관에 이란의 미사일들이 전시되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11월12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우주군 박물관에 이란의 미사일들이 전시되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걸프국, 성급한 협상 우려 “이란이 상황 주도할 수도”
이스라엘과 걸프 국가들은 미국이 종전을 위해 세부 사항에 대한 합의는 미룬 채 성급하게 협상을 마무리 짓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채널12는 “성급하고 모호한 원칙적 합의라는 시나리오는 이스라엘의 정치·안보 관계자들이 밤잠을 못 이루게 하고 있다”며 “모든 쟁점이 해결되지 않은 시점에 교전이 중단될 경우, 이란이 사실상 승기를 잡고 상황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WSJ는 걸프 국가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서둘러 전쟁을 끝내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란이 심각하게 약화돼 위협이 되지 않을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도록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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