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문학 교육 철저히 바꿔야 한다.
시를 자기 수준에서 창작할 수 있도록 수준높이 문학 교육이 필요하다.
에세이, 시, 소설, 희곡 등을 짧게라도 스스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5세~20세 이후 자기 삶, 직장, 일상 생활, 연애, 가족과 유대에도 도움이 된다.
나 역시 중학교, 고등학교 때 국어 1, 2, 문학 교과서로 시, 소설, 희곡, 수필, 산문 등을 배웠다. 문학에서 정답은 작가와 독자들 사이에 있는 주관적인 해석에 있기 때문에, 한 정답을 객관식으로 고르는 것은 삶의 총체성을 다루는 '문학 정신'에 어긋난다.
학생이 시, 소설, 희곡, 수필을 직접 쓰거나, 기존 작가의 작품들에 대한 자기 소감을 쓴 것에 대해서 평가할 수는 있겠다. 이러한 평가는 장려되어야 하고, 사고와 표현력의 확장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시를 분석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장려해야 하지만, 하나의 '답'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정답 고르기' 문학 교육방법은 이제 폐지되어야 한다.
이육사 아래 시에 대한 해석들은 수 십가지 수 백가질 것이다. 그것을 자유롭게 말하게 하라. 오히려 그게 이육사의 '광야'를 이육사 시대를 넘어 오늘과 내일에도 살아있는 시로 만들 것이다.
이육사 -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1945년 《자유신문》에 발표. 1946년 《육사시집》에 수록.)
아래와 같은 성실한 시 해석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험 목적용 시 해석과 교육 방식은 지양될 필요가 있다.
한겨레 보도.
1995.7.1 조선일보 보도. 이육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