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철학2020. 1. 1. 05:37


December 31, 2014 at 7:31 AM · 


민족-민중 집단적 의지 형성과 조직화 (1) 문제 중요성



1987년 대통령 선거 이후, 노태우가 합법적으로 당선되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1980년 광주 학살자와 1212 군사반란 범죄자였지만, 1987년 대선을 통해서 노태우는 ‘합법성’을 취득하고, 도덕적 ‘정당성’은 결여되었지만 6공화국이라는 정치적 ‘정당성’의 운신의 폭을 넓힐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당시 소위 민민(민족민중)세력은 정치적 도덕적 정당성 모두 결여한 전두환 5공화국과 노태우 6공화국 동일성과 차이을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정치 투쟁을 이끌어 나갈 것인가? 다시 말하면, 전두환 5공화국의 ‘폭력과 강압’,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는 없지만 유사-파시즘 요소가 가미된 그러나 5공의 무지막지한 ‘폭력과 강압’이 아닌 ‘법적 질서 (김기춘 검사/법무장관)’ 강조와 이데올로기 투쟁을 결합한 노태우 6공화국의 차이을 어떻게 해명하고 이에 대응할 것인가? 이게 큰 문제였다.



80년대 그람시에 대한 개설서들이 몇 권 번역되어 한국에 소개되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위 문제들을 푸는데 어느정도 실마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나는 보았다.


당시 내 생각을 간단히 요약하면, 노태우 6공화국이 87년 합법적인 대선을 통해 당선되었지만, 정치적 도덕적 정당성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 담론 (여론전)을 잘 수행하면서 그 6공 체제의 약점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운동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중앙집중적 데모 위주가 아니라, 각 학과로 정치,계급 투쟁의 깃발이 이동해야 해야 한다. 이 둘은 병존,공존도 해야 하지만, 공간의 이동, 방점의 이동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민족-민중 집단적 의지 형성과 조직 (2)



그람시의 고민은 이탈리아에서 어떻게 민족-민중의 집단적 의지를 형성하고 조직화할 것인가였다. 그람시는 이 역할을 이탈리아 공산당 PCI 가 해야 한다고 봤고, 이탈리아 근대사에서 결핍된 자코뱅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봤다. 


프랑스 혁명에서 빌어온 자코뱅 노선이란, 20세기 초반 이탈리아에서 농민들을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 하에 묶어두고 동시에 모든 종류의 경제주의, 생디컬리즘, 자생(자발)주의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 민족-인민(민중) 집단적 정치의지야말로 이태리 국가의 기초라는 게 그람시의 생각이다.



그람시가 이 민민(민족-민중)의지를 강조한 배경에는, 유럽의 국제정치가 있다. 1815년에서 1870년 이 시기는 유럽의 보수세력과 지배계급들이 유럽 전역의 자코뱅 세력들을 필사적으로 깨부수고 탄압하려고 했다. 그람시를 이러한 보수적 정치 지형을 ‘국제적 수동적 균형체제’라고 불렀는데, 이 체제 하에서 지배계급들은 경제적 기업의 권력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람시는 이러한 국내외 정치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 지식인들이 민민(민족-민중/인민) 정치의지를 발현하는데 공헌해야 한다고 보고, 이탈리아 자코뱅 세력들 (근대 군주= 정당)이 지적 도덕적 개혁 조직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지적 도덕적 개혁이 경제-사회적 개혁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게 그람시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경제 사회의 개혁(변혁) 역시 지적 도덕적 개혁을 수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람시가 근대 군주로서 ‘정당(자코뱅)’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민족-민중 집합적 정치 의지 형성과 조직화를 그 정당의 책무로 설정한 배경은 무엇인가? 그의 리소르지멘토(이태리 통일운동)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그것은 당시 이탈리아 노동자 계급의 상황, 그 고향 사르디니아 남부 농민과 투린과 같은 북부 산업 노동자 관계, 지역 갈등, 사르디니아 민족주의 문제, 반동적인 지주 계급, 위계서열 권위주의 문화가 강한 이탈리아 생활세계 등과 연결되어 있다.



1906년 남부 사르디니아 농민들의 '독립운동'은 북부에서 파견된 군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당하고, 반대로 북부 투린 지방 노동자들을 탄압하는데는 남부 사르디니아 군대가 동원되었다. 이러한 복잡한 정치 상황, 특히 노동자 계급의식의 성장이 더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그람시의 대안은 민족-민중 집합적 의지 형성과 조직화였고, 그 주체로 정당를 설정했다.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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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20122019. 1. 24. 19:43

2012.12.21 01:20

[대선1 교훈] 진보좌파에게 ‘이데올로기 형성’과 역사적 투쟁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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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의 당선은 보수 시민사회의 승리이다


정치적 진보좌파에게 ‘이데올로기 형성’과 역사적 투쟁의 중요성




박근혜의 당선은 보수 시민사회의 승리이다. 시민단체라고 하면 참여연대 YMCA 경실련 등 시민단체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민사회에 대한 좁은 이해이거나 김대중-노무현 지지자들이 주로 이해하는 시민사회 개념이다. 좌파적 시민사회 개념이 아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의 당선은 뉴라이트와 같은 보수적인 시민단체들, 친미-보수-교회들, 민주정의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계보를 잇는 보수정당의 굳건한 주춧돌을 이루고 있는 동네 통반장 아줌마들이다.




시민사회는 “실천적인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인 사회관계들의 복합체이다. 그런데 특정 생산 관계가 바로 이 시민사회의 틀을 수립해나가고, 시민사회 역시 그 생산관계 토대 위에서 발전해나간다. 자크 텍시에르(Jacque Texier의 그람씨 시민사회 개념 해석,p.135)” 


서울대 출신 배우 김태희를 묘사할 때, 나치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조센징을 비하할 때 사용하던 생물학적 사회진화론에 근거해서 김태희를 묘사한다 “우월한 유전자 김태희”, 이런 이데올로기도 한국 시민사회의 일부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을 당연하다고 보는 ‘사회적 적자생존 논리’를 강화하는 생물학적 사회진화론의 일부이다.




정치 담론, 이데올로기 공간으로 내려오자. “민주화가 밥맥애 주나. 물가는 대머리 금마 전두환 때가 훨 나았다. 박정희가 밥은 먹게 해주지 않았나? 김대중 노무현이가 한 게 머 있노. 돈 퍼 주고 노벨상 타고, 김정일이한테 돈 다 퍼주고, 그 돈으로 장거리 미사일 계발 해뿌지~ 마라 치와라, 니가 다 정치 몰라서 그렇대이~” 이런 정치의식(이데올로기)도 한국의 시민사회이다. 보수 시민사회의 핵심을 이루는 이데올로기이다.


박근혜의 당선은 보수 시민사회의 이데올로기 전투의 승리이다. 2007년 이명박 당선이후 차기 주자 박근혜가 내세울 수 있는 정치적 표어는 “아버지 (박정희)가 이룬 경제 성장, 박근혜가 복지혜택으로 돌려드립니다”였다. 이 슬로건은 필자가 만들어낸 것이지만, 보수당의 내적 논리에서 보면 위와 같은 ‘정치 컨설팅’은 어느 누구나 해낼 수 있다.




정치의식과 개념틀이라는 이데올로기 투쟁에 실패한 민주당, 그 자기 모순




문재인 등 민주당 그리고 심상정-노회찬-이정희-유시민의 정치적 오류, 즉 부동층 유권자들을 강력하게 반-박근혜 표로 이동시키지 못한 정치적 실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진보좌파도 마찬가지이다. 박정희 다카키 마사오의 딸 “박근혜”라고 했지만, 김대중-노무현을 계승하는 민주당 문재인은, 박정희 산업화 세력(김종필)과 김대중 민주화 세력의 DJP 연합을 통해서 대통령이 된 김대중을 전면 부정할 수 없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다르다면, “아버지 박정희가 이룬 경제성장, 이 근혜가 복지로 돌려드립니다”에 맞서는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 이데올로기 형성 실패 배후에는 1997년 박정희를 적극적으로 포용한 김대중 (현 민주당) 노선의 자기 모순에 있다.




또한 문재인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 (재벌 100조 혜택)을 비판했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특별히 ‘복지 체감’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런데다 진보진영이나 노동운동 진영으로부터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정부 시절 물리적 탄압보다 더 잔혹하고 끈질긴 ‘손해배상 청구’와 ‘정리해고’ 주체가 바로 김대중-노무현 참여정부라는 비판을 받았다. 

따라서 박근혜표 복지가 그 재원이 무엇인지 불분명하고, 또 세금 정책 역시 친-자본주의 시장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박근혜표 복지 이데올로기가 정치적으로 박근혜 지지자들을 강하게 결속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김종인을 내세운 복지 정책이 선별적이냐 보편적이냐 그게 이데올로기 투쟁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박근혜 새누리당은 실제로 복지 정책을 공약대로도 실천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박근혜 전통적인 지지자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태도, 보수적인 삶의 가치와 도덕관념(moral)등의 이데올로기를 충분히 결집시킬 슬로건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대선에서 이긴 박근혜의 승리는, 한국 보수적 시민사회의 담론의 승리, 선거라는 정치적 공간에서 이데올로기 게임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로 상징되는 새누리당은, 과거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정부 계보를 잇는 측면도 분명히 있지만, 이번 대선의 특징은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보수적 시민사회의 정치적 담론, 이데올로기를 그 구성원 스스로가 공유하고 확산시키고 재생산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선거 평가는 새누리당(보수집단)과 대항하는 민주집단, 혹은 진보진영, 이 둘 사이, 혹은 셋 사이에 놓여진 ‘전선’이 부각되었다. 


그러나 2012년 대선은 1997년 IMF 통치 이후, 한국 자본주의의 사회적 원리 (이윤추구, 부자아빠등)가 새누리당과 이 토대를 형성하고 있는 보수적 시민사회가 어떻게 잘 협조하는가를 보여줬다. 그리고 보수적 시민사회가 진보좌파보다, 그리고 87년 6월 항쟁의 계승자라고 자임하는 리버럴 민주당보다 훨씬 더 ‘역사 투쟁’을 잘 수행해냈다.




박근혜도 잊어버리고 말하지 못한 게 있다. 1979년 박정희가 살해되기 전에 한 말이 그것이다. “우리 근로자들이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했다. 이제 마이 카 my car 시대가 온다.”


새누리당 박근혜는 박정희가 얼마나 잔혹하게 노동자와 민주적 노동조합운동을 탄압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당연히. 박근혜의 역사 투쟁이라는 것은, 자기 관점에서 ‘역사들’을 철저히 계급지배의 관점에서 지배적 언어들과 이데올로기를 ‘추출’해내는 것이다.




2002년 민주노동당 시절, 우리는 ‘세금의 정치학’을 가지고, 민주당과 보수당(한나라당-새누리당)의 약점을 치고 급습했다. 


그 이후 잘못된 정치 편향이 생겨났다. 정치 이데올로기 (담론) 창출이 부재한 채, 몇 가지 정책 아이템으로 대선-총선 수퍼마켓에 나가려는 경향이다. ‘세금의 정치학 (부유세건 직접세건)’은 구체적인 정책임과 동시에 ‘이데올로기 투쟁 (정치 공간에서 담론 투쟁’이다. 세금의 정치학은 생산, 분배,재분배, 소비 중에서 ‘재분배’에 해당한다.그리고 혁명도 아니고 개량(reformism)의 영역이다. 그렇지만 2002년 대선에서 리버럴 (민주당) 노무현과 보수 이회창의 칼날을 무디게 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 창이었다.




정치는 진보좌파만 하는 것도, 노동자들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정치는 '밀어부치기'로 하는 것만은 아니다. 역사적 체험, 그에 근거한 담론의 형성, 전파, 공유 과정을 통해서, 길이 길이 오랜 시간을 두고 정치행위가 발생한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보수적 시민사회도 정치를 자기들 방식대로 한다. 이번 대선이 그것을 보여줬다. 이 보수 시민사회 일상정치와 365일 게임해서 이겨야 한다. 그래야 코리안 시리즈에서 우승할 확률이 높다. 




** 위 인용 참고 자료: Morera, Esteve. Gramsci's Historicism: A Realist Interpretation. London:Routledge,1990 

Posted by NJ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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